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83)
EP.183 사람은 말에 차이면 죽어
종이 한 장 차이로 말의 공격을 피해낸 세 번째가 뒤로 땅을 구르며 물러났다.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성난 말의 앞발에 어깨가 주저앉았을 것이다.
안도의 한숨은 아직 일렀다. 회심의 일격이 빗나간 사자마는 불만스러운 듯 땅을 긁으며 곧장 따라붙었다.
‘흑영기공!’
세 번째의 전신에서 새카만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흑영기공의 기운이 그의 모습을 어둠의 장막 속으로 감추었으나, 사자마의 갈기가 기묘하게 흔들거리며 또 세 번째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했다.
뒤늦게 저 갈기의 능력을 깨달은 세 번째가 눈을 부릅떴다.
‘털로 바람을 읽는 건가! 저런 능력이라니. 왕국 시절에도 보기 힘든 명마인데…!’
어쩔 수 없다. 말을 써야 하니 최대한 상처 없이 제압하고 싶었지만.
세 번째가 품에서 투척 단검을 꺼냈다. 기공을 한껏 불어넣자, 칼날에서 새까만 기운이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어둠에 녹아들었다.
어둑한 거리에서 세 번째는 보이지 않는 단검을 흩뿌렸다.
“짐승 따위가!”
칼침 한 번을 놔주면 얌전해지리라. 어둠에 일렁거리는 칼날이 말과 기수를 노리고 날아갔다. 반탄기공을 두른 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며, 타고난 힘밖에 쓰지 못하는 짐승은 고통에 울부짖으리라.
그러나.
팅.
힘빠지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튕겨 나갔다. 세 번째가 눈을 부릅떴다.
눈 깜짝할 사이 질기고 튼튼한 천 갑옷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기수를 포함하여 말까지, 급소란 급소는 전부.
그럴 수 있다. 세 번째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군국에는 패킷이 있으니까.
하지만 세 번째가 놀란 건 다른 부분이었다.
‘천에… 흠집조차 나지 않아? 기공을 불어넣은 단검인데?’
만일 세 번째가 상대의 정체를 알았다면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군국 최고의 지주회사이자, 군장을 만드는 데 협업까지 했던 3대 천의무봉, 직녀 세피에르 바키아.
명실상부 군국 최고의 연금술사이자 재단사.
그녀가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만든 옷을 단순한 천옷이라 부르는 건, 천의무봉이라는 이름이 쌓은 위업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는 그 사실을 몰랐으니, 억울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페토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사장님이 직원 복지는 좋으셔서.”
그 말을 끝으로, 가면에 가까운 복면이 페토의 얼굴을 뒤덮었다. 오직 패킷만이 가능한 전신을 완벽하게 감싸는 옷.
천 갑옷을 입고 있지만. 페토의 모습은 옛 기사의 재림이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창 대신 승마용 채찍을 든 페토가 세 번째를 겨누며 말했다.
“스케발리의 페토 틴하트. 간다… 아, 씨! 옛날 버릇! 이래서 무기를 들면 안 되는데!”
페토는 종자로 살던 적 몸에 익은 버릇에 진저리를 치며 채찍을 길게 늘였다. 말을 피해 물러난 세 번째의 위로 채찍이 내리꽂혔다.
기사가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이유. 인간보다 월등히 빠르고 강력한 생물 등에 탄 채, 그 위에서 힘을 휘두르는 폭력의 화신.
비싼 갑주를 입고 기공을 두른 기사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기사뿐이니.
“크윽…!”
은신술을 극성으로 펼치며 세 번째는 몇 번 더 피하는 데 성공했으나, 상대는 말이다. 사람을 뒤에 태운 채로도 콘크리트에 발굽을 박아넣고 묵직한 몸을 비트는 사자마의 모습은 관성이라는 개념을 잊은 듯했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기에는 채찍을 든 기수가 부담스럽다. 채찍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거기에 잠깐이라도 잡히면 발굽 아래 짓이겨질 수도 있었기에.
“말, 말만 없으면…!”
상대의 기량을, 정확히는 상대가 지닌 장비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한 실책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기사가 몰락한 이후 군국에서는 준마의 씨가 말랐고, 패킷은 끼우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으니.
심지어.
‘말이 패킷으로 마갑을 입을 줄은…! 마갑만 없었더라면 짐승 따위는 별것 아닌데!’
잡념이 생긴 탓일까. 세 번째가 아차 하는 사이 사자마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드디어 잡았다는 듯, 사자마가 씨익 웃으며 머리와 어깨로 세 번째를 들이받았다.
“크윽…!”
뒤로 뛰어 힘을 흘렸으나, 그럼에도 전신이 빨래처럼 비틀리는 듯한 충격이 세 번째를 덮쳤다. 기공으로 전신을 뒤덮지 않았다면 뼈가 부러졌으리라.
세 번째는 날아가는 와중에도 능숙하게 망토를 끌러 말의 머리에 휘감았다. 당황한 말이 잠깐 멈춘 틈을 타, 그는 솜씨 좋게 몸을 튕겨 다른 가로등 위에 올라탔다.
닭 쫓던 개 꼴이 된 페토가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은 꽤 높았고, 채찍을 휘두르면 닿기야 하겠으나 별다른 충격은 주지 못할 것이다.
안전을 확보한 세 번째가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두고 보자. 다음에는 준비되지 않았을 때 찾아가겠다.”
그림자 나름의 엄중한 경고였으나, 지금도 떠밀려서 싸우는 중인 페토에게는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미안한데, 지금도 딱히 싸움을 준비하고 온 건 아니거든? 애초에 내 인생은 불의의 사건의 연속이었다고.”
“마치 형수님한테 생긴 애처럼요?”
어둑한 거리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바쁘다, 바빠.
보호소에 연락해서 애들 데려가라고 전하고, 심부름꾼을 시켜서 패밀리에게 싸울 준비하라고 전달해두었다. 저 둘은 나름의 무력을 갖추고 있어서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다.
하아. 보모 역할에 미어캣 역할에. 나처럼 알고 지내면 좋은 친절한 이웃이 또 어디 있냐. 군국, 빨리 나에게 용감한 시민훈장을 수여해줬으면 한다.
어쨌든 일은 끝냈고, 남은 건 마켓인데. 그쪽은 영 불안하다는 말이지. 패밀리나 보호소와는 달리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아서.
운송조합이랑 싸우겠다면 내가 끼어들 바는 아니지만, 그림자 놈들은 좀 그렇지.
좋아. 이제 마켓 쪽을 둘러보자. 대강 다른 곳을 정리한 나는 자동마차를 이끌고 마켓 쪽으로 향했다.
“대위랑 이곳저곳 다닌 게 보람이 있었네.”
대위와 함께 군국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던 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간부급이라는 반그림자의 생각을 읽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전령이나 연락책의 기억에서 그들의 목표를 찾을 수 있었으니.
예상대로 그들의 목적은 마켓과 보호소, 그리고 패밀리였다. 군국 뒷골목에서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굴리는 조직들.
그들과 파이를 나눠먹고 싶지 않았던 그림자는, 뒷골목에 쌓인 불만을 화약 삼아서 단번에 터뜨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다만, 나는 화약이 쌓여있으면 일단 성냥을 갖다 대는 타입이라. 천천히 타들어가야 할 심지에 불을 붙여서 먼저 터뜨려버렸다.
그 결과가 이것. 그림자가 주도한 싸움이 아닌, 진짜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혼돈.
갈등을 빚을 거라면 화끈하게 하라고. 누군가의 의도대로 놀아나지 말고.
내가 그리 중얼거리며 마켓으로 향할 때였다.
앞쪽이 소란스러웠다. 고개를 빼서 내다보니, 마침 저편에서 말을 탄 페토 선배가 반그림자와 싸우고 있었다.
호스트바에서 나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던 페토 선배… 타지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랑 눈이 맞아서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더 신빙성이 생겼을 것을.
어쨌건, 선배는 잘 싸우고 있었다. 기사와 종자 이야기만 나오면 PTSD 생긴 것처럼 굴더니, 역시 여자 관계 때문에 쌈박질을 해댄 경력이 어디 가지 않는군.
사실 선배보단 말이 잘 싸우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선배는 말이 날뛰는 그 와중에도 떨어지지 않고는 상대를 노렸다.
숫자로 보아도 2:1, 장비로 보아도 선배 쪽이 우세다. 심지어 선배는 말을 탔다. 그것도 그냥 말이 아니라 갑옷 입은 말을.
역시나. 예상대로 말이 어깨로 반그림자를 들이받았다. 와중에도 뒤로 뛰어 충격을 흡수한 반그림자는 그 반동을 이용해 훌쩍 가로등 위에 올라탔다.
흠. 저걸 어쩐다. 자동마차로 박을까?
아니야. 그러면 뛰어서 피하겠지. 거기다 들이받으면 내가 아프니까 손해고.
좋아. 결정했다. 나는 자동마차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서 카드를 꺼냈다.
다이아몬드 3, 각궁.
엄지와 소지로 카드를 살짝 접고, 가운데 세 손가락으로는 몸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 상태로 마력을 불어넣어 연금변환.
카드는 휘어진 모양 그대로 자라났다. 새순처럼 부드럽던 카드는 자라나면서 점차 뻣뻣해지더니, 곧이어 잡아당기는 것도 힘들 정도로 단단하게 변했다.
내가 활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세 번째가 선배를 향해 말했다.
“두고 보자. 다음에는 준비되지 않았을 때 찾아가겠다.”
“미안한데, 지금도 딱히 싸움을 준비하고 온 건 아니거든? 애초에 내 인생은 불의의 사건의 연속이었다고.”
“마치 형수님한테 생긴 애처럼요?”
아차. 말이 멋대로.
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미망인의 장례를 치른 뒤 일주일만에 아이가 생겨서, 그 도덕성을 의심받은 선배가 사표내고 달아나는 바람에 얼마나 난리가 났는지 알 바인가.
중요한 건 내가 저걸 맞출 수 있느냐, 없느냐. 그거지.
권양기로 한껏 당겨둔 화살째로 변환시킨 카드다. 변환이 끝난 순간, 온전한 탄성을 되찾고 화살을 쏘아낼 것이다.
영점도 맞추어두었으니, 자세만 제대로 잡는다면 단 한 발만은 필중이며 필살.
사실 각궁보다는 미리 당겨둔 쇠뇌지만, 어쨌든 형태는 각궁이니.
“재능 없는 사람은 준비라도 철저해야지.”
겨냥을 끝마친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변환을 완료했다. 순간적으로 거대한 벽이 내 왼팔을 밀어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퉁, 하고 무언가 당겨지는 소리.
‘화살? 하지만, 화살 따위는 반탄기공으로….’
그래. 저 망할 반탄기공. 아무리 권양기로 당겨놓은 화살이라도 큰 타격은 못 주겠지.
반탄기공이 있는 한, 화살이나 총알은 물속에서 쏘는 것보다도 못하니.
하지만 내가 노린 건 네 몸이 아니다.
가로등이지.
화살은 가로등의 목을 꿰뚫었다.
군국의 시설물을 이루는 무른 연금강은 흔들림까진 어떻게든 버티지만 화살처럼 날카로운 것에는 취약하다. 가운데부터 부러진 가로등은 힘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탄기공이든 뭐든, 대지모신께선 평등하게 끌어당기신다. 순간적으로 지지대를 잃은 세 번째 역시 그 법칙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성난 말이 기다리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 사자마는 앞발을 땅에 박아넣고는 몸을 빙글 돌렸다. 강인한 뒷다리가 세 번째를 노렸다.
“안…!”
공중에서 급히 몸을 돌려 피하려고 했지만, 마침 선배의 채찍이 시기적절하게 날아왔다. 채찍에 휘감긴 몸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그 위로 말의 뒷발굽이 틀어박혔다.
콰직, 하는 소리는 조형물이 부서지는 것에 가까웠다. 감당 못할 충격을 받은 세 번째의 몸이 훨훨 날아갔다.
화살과는 달리, 말의 뒷발차기는 반탄기공으로 못 막으니까.
눈이 뒤집힌 채 날아가는 세 번째 반그림자.
이것으로 반그림자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하나 줄었겠네. 응, 잡다한 놈들이 너무 많지.
사람이 말에 치이는 광경을 일등석에서 관람한 선배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새끼야. 결혼이 계획에 없던 거지. 애 앞에서는 그런 말하지 마라.”
“애나 보여주고 그런 말 좀 해요. 말 나온 김에 한 번 보러 갈까요?”
“아니. 오지 마. 나도 내 딸 소중한 줄은 알아….”
목적을 다한 카드는 서서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카드에는 숫자 3만 적혀있을 뿐, 안에 세로로 한 줄을 이루고 있던 다이아몬드 모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태연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마차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