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85)
EP.185 살고 싶다고 말해 – 1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도 같으나, 제자로 하여금 그러한 격언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게 참된 스승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참된 스승이었다.
홀로 나선 스승을 돕기 위해서 직접 찾아온 세피를 보며 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이야. 내가 제자 하나는 잘 뒀어. 스승이 위험에 처하니까 득달같이 달려오는 거 봐.”
내 젊은 시절을 바쳐서 길러낸 보람이 있다.
뒷골목에 살려면 끈이 하나쯤 필요하다. 독심술 하나만 믿고 살기에는 세상이 만만치 않았기에, 나는 아미텐그라드에 도착한 즉시 인맥을 얻을 생각으로 호스트바에 들어갔다.
거기서 지주회사의 후계자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나는 세피의 가정교사인 척, 세피와 그 대부인 알렉세이 사이에서 이리저리 옮겨붙으며 꿀을 달달하게 빨았다.
그러다가 알렉세이가 나락으로 떨어질 조짐이 보이자 빨리 손절매하고 세피에게 붙었지.
캬, 지금 생각해도 참 잘했어. 독심술도 이렇게 쓰니 쓸모가 있잖아.
어쨌건. 지금 나에게 찾아와준 제자를 향해 입바른 말이라도 해줄까.
“저 지금 감동했어요. 이토록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을 줄이야…. 역시 공들여 키운 보람이 있어.”
“스승님께서 저를 생각하는 마음만 할까요.”
‘생각은 무슨. 가면 알아서 따라오겠거니, 하고 말도 않고 먼저 달려나간 주제에. 언제나 남은 사람 생각은 티끌만큼도 안 한다니까.’
여전히 말과 생각의 괴리가 심하네.
하지만 결국 말도 생각의 일부다. 말이라도 곱게 한다는 건 아직까진 내가 벌어둔 포인트가 있다는 뜻.
어쨌건, 천의무봉의 전력을 끌고 왔다면 내가 위험할 일은 없….
어라?
“그런데 뒤에 아무도 안 보이네요. 나머지 병력은요?”
“병력이라니요? 저희는 지주회사. 고용할 수 있는 건 전문노동을 위한 특수노동자뿐이에요. 당장 싸우는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건 여기 페토밖에 없어요.”
세피는 페토 선배를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전력이 말 위에 탄 옷걸이가 전부라고요?”
졸지에 옷걸이가 되어버린 선배가 대꾸했다.
“너는 사람을 앞에 두고 옷걸이가 또 뭐냐….”
“네. 그 옷걸이가 전부예요.”
“사장님은… 아니요. 저는 옷걸이입니다.”
저건 진짜로 옷걸이에 불과하다.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갑옷을 입은 채 무기를 휘두를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상관없는, 그냥 사람보다는 도구가 강한 경우다.
“뭐야, 그러면. 별로 도움도 안 되잖아.”
“큰 도움은 못 드려서 죄송해요. 군국에 용병이라도 있었다면 이끌고 왔을 텐데.”
‘알렉세이가 몰락하면서 지주회사가 사병이나 다름없는 직원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바뀌었잖아요. 지가 직접 조각조각 찢었으면서. 모르는 척은.’
나는 네가 소중한 자신과 존경하는 스승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저지를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어. 용병을 구하거나 강한 군인을 단기 고용한다든가. 거기까지는 아닌 모양이구나. 스승은 제자에게 실망했다.
쳇. 이러면 완벽히 안전하지는 않는데. 그림자라는 위협을 상대로 선배 하나는 못미덥지.
하지만 괜찮다. 나에게는 만약의 상황을 위해 조금 다른 라인이 하나 더 있으니까.
바로 군국의 대위.
“아, 세피. 잠시 대위랑 할 말이 있는데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평소 같았으면 바로 수긍했을 세피는, 이번에는 무언가가 말꼬리를 붙잡은 것처럼 지연된 대답을 했다.
“…그토록 뜯어먹었으면서, 좋을 대로 휘둘렀으면서 이제는 대놓고 비밀? 스승님은 양심이라는 게 없나요? 준 만큼 받는다는 정당한 거래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제가 드렸으면 스승님도 무언가를 줘야 거래라는 형식이 지켜지지 않을까요?”
‘비켜드릴 테니, 조용히 대화 나누세요. 그동안 저는 바깥에서 쓸쓸하게 기다려야겠지만.’
뭔가 이상하다. 생각이랑 말이 뒤바뀐 거 같은데?
“세피. 뭔가 본심이 흘러나오지 않았어요?”
“본심이 아니라 정당한 요구겠죠. 저는 스승님의 뜻을 따라서 대위를 붙잡아두고 필요한 장비를 지원하기도 했는데, 대위도 그렇고 스승님도 그렇고. 저에게는 자기 이야기 한마디도 안 하는군요.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이건가요?”
‘전혀요. 저는 스승님께 거짓말을 한 적 없어요.’
벌어놓았던 포인트가 실시간으로 깎여나갔다. 표정에서 원망과 함께 계속 따라야 하냐는 의구심이 흘러나온다.
세피포인트가 다하기 전 나는 다급히 이야기했다.
“나 때문이 아니라, 대위 때문이에요. 그분은 기밀 작전을 수행중이셔서.”
“그래서 저랑 무슨 상관이죠?”
“기밀이 들키면 죽는대요.”
죽는다는 말이 약간의 충격을 준 게 분명했다. 세피는 흠칫거리며 곁눈질로 마차 안쪽을 곁눈질로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피는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대답했다.
“…알겠어요. 언성을 높여서 죄송합니다, 스승님. 비켜드릴 테니 단둘이 조용히 대화 나누세요. 그동안 저는 바깥에서 쓸쓸하게 기다려야겠지만.”
세피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동마차 한편에 기대어 섰다. 살짝 인사하고는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제복을 입은 대위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뻣뻣한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닫았다. 그와 더불어, 마부석 쪽으로 난 조그만 창도 닫았다. 조용한 밤이었지만 문을 전부 닫자 그보다 한층 더 갑갑한 고요가 찾아왔다.
대위는 나를 보고도 뭐라 말하지 않은채 지그시 쳐다볼 뿐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했습니다. 15구역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로 유복한 삶, 여유로운 태도, 그리고 넓은 인맥과 다양한 대처능력. 어째서, 본관은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았을까요.’
자, 이제.
‘아니면, 의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 그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기를 바랐을지도. 본관도 군인 실격이군요.’
대위와 맞서야지.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입니다.’
생각을 끝났고, 나도 말을 다 골랐다.
대위가 먼저 말문을 텄다.
“귀하는, 마술사라 불리는 존재입니까?”
“아, 그거. 별거 아닌 별명이에요.”
애매하게 웃으며 그녀의 추측을 긍정했다. 여기까지 와서는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일을 저지른 사람이 별 볼 일 없는 잡범이라는 변명보다야, 나름 한 가닥 하는 사람인 척하는 게 나으니까.
비록 그게 허세로 가득 찬 이명일지라도.
침을 삼킨 대위는 나를 추궁해왔다.
“귀하의 행동은 명백한 불법입니다. 본관이 며칠 간의 조사 끝에, 귀하의 행동으로 의심되는 범죄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여전히 말은 딱딱하네. 이래서 원칙주의자들은.
원칙주의자는 원칙으로 상대해야 하는 법.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증거 있어요?”
증거 있냐고 당당하게 말하면 조금 주저할 만도 하건만, 대위는 여전히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마술사. 귀하의 행동을 특정할 만한 정황이 가득합니다. 마술사에 대한 소문 중 1할만 진실이어도 귀하가 복역을 마치는 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군국 대위가 소문만 듣고 사람을 잡아넣는 거예요? 에이, 아무리 군국이라도 그건 아니다.”
“증언 역시 있습니다. 사흘 전, 귀하는 안나를 습격한 범죄자를 사적으로 제재한 경황이 있습니다.”
“경황말고 증거 가져오라니까.”
귀를 후비며 뻔뻔하게 말하자, 대위는 미간을 좁히며 나를 추궁했다.
“대위인 본관의 증언은 곧 증거가 됩니다. 본관은 눈앞에서 사망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그자는 뱃속에 향신료를 담은 채 죽기 직전까지 마술사를 언급했습니다. 귀하가 마술사라면, 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강한 연관성이 의심됩니다.”
“네? 저는 단순히 빼앗긴 향신료를 되찾아왔을 뿐인데요.”
그 비싼 걸 뱃속에 처넣을 리 없잖아. 나는 주머니에서 황금빛 향신료를 꺼내 흔들었다. 내 향신료를 본 대위는 말문이 막혔다.
“그건…?”
‘분명, 그들은 뱃속에 향신료가 있다는 듯이 말했는데….’
뭔 소리야. 저항하는 인간 목구멍에 그게 다 들어갈 리 없잖아. 그냥 동그랗게 만 카드로 살짝 겁을 주며 장난질을 친 결과다.
그가 목구멍 너머로 삼킨 건 맥주병 마개밖에 없다.
“혹시 그 사람, 향신료가 아까워서 자기 배를 가르다가 죽은 건 아니죠? 설마 그 정도 바보는 아니겠지.”
“….”
“헐. 뭐야. 혹시 누군가에게 배를 갈렸어요?”
잠깐만. 정말이야? 어떻게 사람 배를 가를 생각을 하지? 정말 피도 눈물도 없구나.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는 배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그 행동은, 향신료를 먹어서가 아니라 배를 찔려서….’
으으, 끔찍해라. 나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광경이다. 사람이 포장지도 아니고, 어떻게 잘라서 꺼낼 생각을 해.
‘단순한, 장난…? 혹은, 그것을 유도하여 상황 자체를 만든 것? 도대체, 본의는…?’
“아 참, 대위, 그딴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잖아요.”
내게 불리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유리한 이야기부터 하자고.
의아한 듯이 눈으로 묻는 대위를 향해,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한테 고맙다고 해야죠. 군국이 해결하지 못한 일을 대신 해주었으니까.”
말문이 막힌 대위. 아직 이해를 못 한 모양이었기에, 나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대위가 그림자를 막으려고 돌아 다녀준 덕분에, 저도 적의 정체와 목표를 대강 알아냈어요. 그런데 세상에. 저와 한 다리 걸치고 있던 사람들이 위험하지 뭐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먼저 손을 썼어요. 저들 틈에 잠입해서 결행일이 오늘이라고 착각시키고, 준비되지 않은 습격이 진행될 동안 지인들에게 경고했죠.”
기습이 기습이 아니게 되면 효과는 매우 줄어든다. 그림자처럼 의도적으로 개입하려는 세력이 없다면, 그들의 공격은 단순한 소동 수준에서 끝날 것이다. 다른 평범한 사건들처럼.
내 예상은 적중했다. 부추김을 받아 모인 단체 태반이 목표의 반도 못 이루고 격침당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덕분에 뒷골목의 평화는 지켜졌네요! 오늘 있는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기록될 뿐이에요! 이게 다 제가 노력한 덕분이죠!”
대위는 자동마차를 타고 오면서 감시용 골렘으로 그 모든 상황을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군국의 뒷골목은 오늘따라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어수선했지만 생각만큼의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넘어간다면 충분히 묻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시끄럽지만 그리 크지는 않은 소동.
“…하나. 사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위의 안색은 풀릴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