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92)
EP.192 살고 싶다고 말해 – 8
‘큭.’
순간 울펜의 의식이 아득해졌다. 피가 튀고 골통이 흔들렸다. 아릿한 충격이 머리를 울리고는, 그마저도 충분치 않다는 듯 전신을 덮쳤다.
울펜은 정신력으로 어찌어찌 버티고 자세를 다잡았다. 애써 좁힌 거리가 멀어졌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마치 호랑이를 앞에 둔 것만 같은, 온몸이 저리는 감각. 울펜은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 있었다. 다름 아닌 무저갱에서.
항거할 수 없는 강자를 마주했을 때 비슷한, 무엇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인간 자체의 격이 나누어진 듯한 강함.
저항의 의지조차 무의미해지는 힘의 차이.
그게 눈앞의 젊은 장성에게서도 느껴졌다.
‘도망…쳤어야 했나!’
그러나 이미 늦었다. 마술사를 상대했을 때도 그랬듯, 상대방의 시야에 닿은 그 순간부터는 저항하는 것만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정신을 다잡은 울펜은 다시금 소도를 잡으려고 팔을 들었다.
그때, 시야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그 직후 왼팔이 끊어졌다.
망토 아래로 피가 튀며, 왼팔의 팔꿈치 아랫부분이 기이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울펜은 신체 중 일부가 자신을 저버리는 광경을 제 눈으로 목격했다.
탕.
뒤이어 들리는 총성. 그리고 그보다 훨씬 늦게 찾아온 고통.
“아, 쓰읍. 이제 좀 맞네.”
그 궤적의 끝에는, 총구를 겨누고 있는 총사가 보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총에서는 푸른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자아, 간단한 규칙이야. 내가 묻고, 네가 대답한다. 대답하지 않을 때마다 사지 중 하나가 날아가. 어때, 네 버러지 같은 머리로도 이해하기 쉽지?”
화약이 아니었다. 고작 화약 수준으로는 이만한 힘을 낼 수가 없다.
반탄기공의 극한. 극도로 압축된 기공을 총알에 담아, 단숨에 폭발시켜 튕겨내는 것.
화약이 약하다. 그렇다면 기공으로 쏘아낸다.
총신이 충격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공으로 강화한다.
반동이 크다. 기공으로 상쇄한다.
기술, 원리, 도구.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상회하는 기공으로 빚어낸, 최강의 무기는 반탄기공조차 극복한다.
말만 총이지, 사실상 창이나 다를 바 없다. 손가락을 까닥이는 방식으로 쏘아내는 무한한 길이의 창.
다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건 방금 만들어낸 총탄. 그렇다면, 저 총은 비어있다는 것.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처라도 입혀야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
그렇다면.
울펜은 왼팔을 뻗었다. 날아가는 왼팔을 기공으로 붙잡고는, 그 피를 흩뿌리며 돌격했다. 뼈와 근육이 보이는 소름 끼치는 단면을 내밀었다.
“웩. 안 그래도 속이 안 좋은데….”
구역질할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는 그녀의 아래로, 자세를 낮춘 울펜이 온 힘을 다해 달려들었다.
아직 멀쩡한 오른팔로 반쯤 쪼개진 소도를 내민다. 동시에,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숨기고 있던 단검을 은밀하게 꺼내 들었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퍼지며, 어둠 속에서 날을 새카맣게 칠한 검이 불쑥 솟구쳤다.
지근거리, 방심한 상대를 죽이기 위한 그림자 검. 소도의 그림자 아래 하나의 칼날이 더 숨겨진, 오직 살인만을 위해 단련한 기예…
가, 총사의 팔꿈치와 무릎 사이에서 으스러졌다.
팔꿈치와 무릎 사이에서 오른팔이 조각조각 났다. 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더는 쥘 수 없는 손이 되어, 박살 난 손가락 틈으로 소도와 단검이 흘러내렸다.
엄습하는 고통. 그에 비해 총사는 사람 팔 하나를 고장 내놓고도 무심했다.
“사지 두 개. 이제 다리만 둘 남았네.”
중얼거린 총사가 권총 손잡이로 울펜의 등을 찍었다. 가볍게 두드렸을 뿐인데, 울펜은 전신이 찢겨나가는 충격을 느끼며 땅바닥에 부딪쳤다. 대지가 솟구쳐서 그를 덮친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군홧발이 가볍게 울펜의 몸을 뒤집었다. 두 팔이 걸레짝이 된 채 누운 울펜의 시야에 높게 솟은 건물과 벌레를 보듯 내려다보는 듯한 총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제 대답할 마음이 들었냐?”
압도적인 강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상 모든 것을 시야 아래 두는 광오한 태도.
울펜의 저항은 헛되이 끝났다.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한 울펜이 피를 토해내며 물었다.
“…쿨럭. 어째서, 고작 뒷골목 일에, 너 같은 게 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하층민들 몇 죽어 나간다고 파견하기엔 너무 과한 거물이다. 이만한 강자라면 분명 국가적인 전력이며,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야 할 판인데.
울펜이 묻자, 총사는 총으로 자기 머리를 긁었다.
“이상하다. 질문은 내가 한다고 했는데.”
약속은 지켜야지, 하고 중얼거린 총사가 군홧발로 울펜의 무릎을 지그시 밟았다. 비틀어지는 울펜의 입가를 바라보며 총사는 나른하게 말했다.
“이번만은 너에게 말해줄 테니까, 다음 내 질문에는 잘 대답하도록 해…. 하멜른, 알지?”
알다마다. 울펜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국의 터부. 졸업을 앞둔 중등학교의 학생이 떼죽음 당한 사건.
울펜은 그것을 미끼로 군국을 끌어들여, 뒷골목 일대를 청소하려고 했다.
고작 뒷골목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이들이 모이는,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밀려난 곳. 이곳이라면 그는 충분히 왕처럼 군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뒤이어 총사가 한 말에, 울펜은 자기가 지금까지 무언가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하멜른.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 배움의 동산. 거기가 내 모교야. 어때. 이제 조금 정신이 들었냐?”
“…설마. 네가, 하멜른의 마지막 졸업생….”
“닥쳐. 다음은 내 질문이다. 너에게 하멜른에 대해 말한 게 란카르트. 그 개자식 맞지?”
알다마다. 울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하멜른에 대해 이야기한 자가 바로 그였으니.
하멜른의 마지막 졸업생 중 다른 하나, 란카르트 대령.
가장 늦게 탄탈로스에 떨어졌으면서도 온갖 방식으로 죄수들을 휘어잡은 젊은 광인.
어떤 때는 힘으로, 어떤 때는 지식으로, 어떤 때는 욕망으로. 거무칙칙하게 가라앉는 탄탈로스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요술사는 결국 그들을 이끌고 탈옥하기까지 했다.
탈옥하기 직전, 그는 울펜에게도 찾아왔다. 그는 울펜의 쓰임새를 고민하는 듯 한참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울펜. 나에겐 유능한 부하가 필요해. 아주 많이. 겁 많고 음습한 너라면… 음. 아슬아슬하게 우리 파티의 염탐꾼 역할 정도는 맡을 수 있겠어!
-뭐어어? 군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더 위대해질 기회를 마다하고, 그 조그만 쥐구멍으로 돌아가게?
-하아. 네가 이토록 낭만이 없는 소인배일 줄은 몰랐어. 이 세상을 바꿀 힘, 그 편린을 주겠다는데 고작 뒷골목 대장이나 하고 있겠다? 참나. 평야를 내달리는 말도 어제 못 본 땅을 눈에 담아. 그런데 쥐굴에 처박혀 똑같은 풍경을 계속 보겠다니. 우욱.
-아아, 걱정하지 마. 실망했다고 하나하나 죽이진 않아. 귀찮게 왜? 어차피 누군가 군국 뒷골목을 휘젓고 다니면 나도 괜찮거든.
-가는 김에 군국의 비밀 하나 알려줄까? 이거 떠들고 다니면 군국이 미치고 팔짝 뛸 텐데. 네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달라질 거야.
붉은 머리의 마법사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와 같은 괴물에게도 추억이라는 게 존재한 모양인지, 그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멜른이라고, 알아? 거기서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그리고 두 번째.”
총사의 목소리가 울펜을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그 사건을 검은 고양이에 퍼뜨린 이유는 뭐지? 그것도 란카르트의 명령이냐, 아니면 독단이냐?”
이번에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울펜은 의문을 표했다.
“검은… 고양이? 패밀리의 영역 말인가?”
“그래.”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하? 발뺌할 셈이냐?”
빠드득. 울펜의 무릎에 돌덩이를 얹은 듯한 무게가 실렸다. 관절이 으스러지는 고통과 함께 총사의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검은 고양이는 가십을 다루는 폭로지야. 가끔 군사 비리도 포착해내는 터라, 당연히 정보부 쪽에서도 그걸 살펴보고 있지. 그런데 그 이름을 대놓고 적어두면…. 도대체 뭐야? 그냥 나를 부르는 셈이잖아?”
“그… 이름… 이라니.”
시치미 떼지 말라는 듯, 총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다그쳤다.
“중등학교 전교수석, 휴이. 란카르트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것까지 알려준 건지 모르는데. 그 자식 이름을 알려줬다면… 애초에 넌 놀아난 거야. 나보고 너를 죽여달라고 부탁한 거나 다름이 없다고.”
놀아났다는 말에는 동감이었으나, 그와는 별개로 총사가 말하는 건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울펜은 의문을 표하며 대답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뭐?”
“본이 아는 건, 그들의 죽음은 자살이었다는 것. 죽기 전에 군국을 저주했다는 것. 그리고 란카르트 그가… 2등을 차지했었다는 일뿐. 그 이상은… 본이 쓰기 나름이라 하여… 대강 꾸며냈지.”
“그 새끼는 3등이었어! 그것 말고는, 나름 진실이긴 한데.”
울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고, 그만큼 진정성이 있었다
예상과는 다른 사실을 들은 총사는 생각에 잠겼다. 총으로 머리를 벅벅 긁다가, 무언가를 찾듯 주머니를 뒤지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혀를 찼다.
“하긴, 그건 란카르트의 방식이 아니야. 너희가 할 이유도 없고. 그러면 뭐야? 그러면 도대체 누가?”
총사는 발아래 둔 울펜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은 채 깊게 생각에 잠겼다. 울펜이 길가의 돌멩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돌멩이 비슷한 취급을 당한 울펜은, 분함 대신 무력함을 느꼈다.
‘…무력하군.’
울펜이 무저갱에서 깨달은 게 바로 이것이었다.
격이 정해진 세상에서는, 어떠한 저항도 무력하다.
재능이든, 신비든, 시간이든. 인간의 강함을 결정짓는 벽이 있으며, 그 벽은 결코 넘을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닿지 못하며, 극복하지 못할 경지 위에 있는 그들은 아래쪽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벽을 넘어서 절대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그러나, 그만큼 축복받은 이는 정해져 있다.
나머지는 벽에 부딪혀 사라질 뿐.
왕국 시절, 나름 그림자로 군림했던 그에게 탄탈로스의 상식은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신의 부재를 깨달은 신도처럼 울펜은 절망하고 실의에 빠졌다.
무저갱은 울펜에게 있어 그 이름대로 끝도 없이 빠져드는 지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저갱에서 탈출할 기회가 생겼을 때.
울펜은 더 높은 곳을 포기한 채, 약자들 위에 군림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더 강한 자의 눈에 들어 죽는 처지가 되었다.
‘마술사를 상대하며 착각하고 말았다. 절대, 절대로 정면에서는 맞서서는 안 되었어.’
마술사는 나약하지만 온갖 도구를 써서 그를 속이고 기만했다. 직접 칼을 맞부딪힌 것도 고작 두 번. 만일 처음부터 그의 기량을 깨닫고 전력으로 공격했다면….
아니, 그와 싸우며 자신의 전술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결과는 비슷했겠지만 최소한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무언가 가슴에서 톡톡 걸렸다. 그게 무엇일까 아무리 떠올려도, 울펜은 암흑 속에 내던져진 것처럼 헛짚기만 했다….
그런 그의 시야. 하늘로 향하며 점점 좁아지는 건물의 옥상에.
내가 나타났다.
나는 지팡이를 들고 모자를 쓴 채 옥상 난간에 섰다. 생각에 잠긴 총사의 시야에는 내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쓰러진 이에게만 보이는 자리에서, 나는 모자를 살짝 들고 지팡이를 내밀며 인사했다.
울펜은 조그맣게 탄식했다.
“아.”
기량이 부족하나, 한 명은 승리했고 한 명은 패배했다.
나는 성공적으로 도망쳤지만 울펜은 패배한 채 군홧발 아래 놓였다.
살아남고 싶다면 좀 조용히 살았어야지. 자기가 난리를 쳐놓고서는.
뭐, 굳이 자랑하진 않겠어. 나에게는 독심술이 있었으니까 똑같이 비교하기엔 공평하진 않지.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거.
쓰러져 있는 건 너지만, 너는 나보단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