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197)
EP.197 약속을 기다리는 개
거센 바람을 헤치며 둥그렇고 넓적한 원반이 하늘을 유영한다. 바람이 뒤쪽으로 거세게 부는 탓에, 슬쩍 놓았을 뿐인데도 뒤로 쭉쭉 뻗어간다. 그 속도는 메타컨베이어 벨트보다 조금 느린 수준.
“멍멍멍멍!”
그 뒤를 아지가 쫓았다. 쿵, 콱, 찍. 거센 소리를 내며 메타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리다가, 벨트에서 뛰어내린 뒤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데굴데굴 구른 뒤 다시 바람처럼 달린다. 그 뒤 저 멀리 사라진 원반을 기어이 잡아냈다.
그림처럼 멋있게 원반을 잡은 아지는, 그동안 멀어진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보며 눈을 빛냈다. 원반을 잡으러 간 동안 멀어진 거리조차 아지에게는 놀이의 대상이었다.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맨땅을 콱 짓밟고, 솟아오른 흙더미가 가라앉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발자국이 포탄의 흔적처럼 남는다. 부서지는 땅과 흩날리는 흙더미를 뒤에 남기며 아지는 맹렬하게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추격했다. 강처럼 흐르는 땅 위로 단숨에 올라탄 아지는 냉큼 달음박질쳐서는 내 코앞에 도달했다.
오랜만의 운동이 즐거운지 눈을 반짝인다. 감정을 보여주는 꼬리가 경쾌하게 흔들렸다. 바람이 일 정도로 흔들리는 갈색 꼬리가 보여주는 건 분명한 즐거움이었다.
“멍멍멍!”
아지는 입에 문 원반을 나에게로 건넸다. 바람을 하도 맞아서인지 손끝이 차갑다. 원반이 차가운 건지, 내 손이 찬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와, 원반 잡기 자체 하드모드. 개의 왕쯤 되니까 이게 되네.
“아지야, 대단해!”
아지는 가슴을 쭉 펴며 답했다.
“멍! 나, 대단해!”
“개 중에 왕이로다! 자, 수고했으니 보상이 있어야겠지? 여기, 고기!”
“멍! 그건 괜찮아! 너 먹어!”
내가 고기 한 점을 내밀자, 아지는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나에게 양보했다.
그러니까, 아지가 열심히 원반을 잡아 온 다음,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기를 보고선 하는 말이… 나 먹으라고? 이게 맞아?
예삿일이 아니다. 분명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사건임이 틀림없다.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물었다.
“아지야. 너 어디 아프니?”
“멍? 아니?”
“아니면 뭐 주변을 정리하는 중이야?”
“정리? 나, 정리 안 해!”
“개라도 정리는 좀 했으면 싶다만.”
그렇다면 뭘까.
고기 통조림도 아니다. 회귀자의 포켓에 있던 고기를 센 불에 빠르게 구워서 만들어낸, 육즙을 그대로 보관한 구운 고기.
인간조차 식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입가에 침이 절로 고이는 요리를 양보해? 그것도 나에게?
골똘히 생각을 마친 나는, 마지막 남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설마, 벌써 늑대의 왕과 일전을 준비하는 중이니?”
전력으로 뛴 탓에 머리털이 사정없이 뻗쳤다. 머리에 묻은 물기라도 터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든 아지가 곧장 부정했다.
“아직! 나, 인간 왕과 약속 못 맺었어! 군국, 약속 어겼어!”
“군국이 약속을 어겨? 그 나쁜 놈들, 내가 언제 그럴 줄 알고 있었지.”
“멍! 맞아, 나빠! 나, 착한 왕 찾아야 해!”
인간에게는 누구보다 호의적일 아지가 답지 않게 볼멘소리로 불평했다.
한껏 맞장구를 치다가 단숨에 태도를 바꾸어 중얼거렸다.
“그런데 사실 예견된 사안이긴 했어.”
예로부터, 개의 왕은 인간과 동맹을 맺어서 늑대의 왕과 싸워왔다.
그건 정기적인 행사 같은 것이라 몇십 년 간격으로 계속되었다. 그 전설적인 전쟁에서 개의 왕이 이길 때도 있었고 늑대의 왕이 이길 때도 있었다.
한쪽의 승리는 반대편의 죽음으로 결정된다. 다음 대 왕이 태어나 자라기 전, 승리에 취한 왕은 둥근 달에 대고 울부짖었다.
개와 늑대의 전쟁,
그 오랜 싸움은 너무 유명해서 비밀조차 되지 못한 채로 모두에게 전해졌고, 역설적이게도 그 유명세가 개와 늑대의 싸움을 방해했다.
“군국이 구태여 늑대의 왕과 일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겠지. 전쟁 한 번 하는데 드는 돈이 얼만데.”
“멍? 그럼 나, 속은 거야?”
“뭘 새삼스럽게. 힘만 센 동물이 거짓말에 속는 건 동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거라고.”
이 동화적이며 전설적인 전쟁은, 개를 편들어주는 인간 세력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한때 제국이 개를 편든 전쟁에서는 고작 반나절 만에 개의 승리가 결정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짐승끼리의 싸움에 국가적인 전력이 동원되어야 한다면 어떤 나란들 하고 싶을까. 나라는 점차 개의 왕을 외면했고, 그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 개는 패배만 반복하였다.
몇십 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대난투. 승리해도 얻을 것은 쥐뿔만 한 명예뿐이며, 패배하든 승리하든 크나큰 희생을 치른다. 흘러가는 역사 속에 사는 인간들은 그 역사적인 전쟁이 굳이 자기 세대, 자기 영토에서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왜 그들만 독박을 써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인간이 전투를 회피하며 개를 방치하고, 유기하고, 버리는 동안.
“그동안 늑대 무리는 더 강성해졌지. 어지간한 나라와도 맞설 수 있을 정도로.”
“멍. 맞아. 나, 혼자 못 이겨. 그래서 나, 인간 왕 필요해.”
시원하게 인정한 아지는 나보고 밥이나 먹으라는 듯 눈짓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먹고! 너, 왕 해!”
“참나. 왕은 네가 시켜주는 거냐? 하라고 하면 그날부로 내가 왕이야?”
“아냐, 멍! 많은 인간! 대표! 왕! 왕왕!”
“짖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으니까 좀 설명이나 해봐라.”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생각을 읽고 판단을 내렸겠지만, 내 독심술이라도 개의 생각은 못 읽는다. 아지가 조리있게 말해주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 도리가 없다.
“힘내! 왕! 할 수 있어! 많이 먹어! 산책도 해! 튼튼해져!”
“그래서 이제 네가 직접 왕을 키울 생각이냐?”
“아우우우우! 맞아! 그러니까, 너 힘 내!”
“미안한데, 우리는 많이 먹고 튼튼한 인간을 장사라고 하지 왕이라곤 안 한다.”
내가 핀잔을 주자 아지도 입을 딱 다물고는 말했다.
“바보! 나도 알아! 근데, 건강, 최고야! 너, 건강해!”
“이게 뭔.”
개에게 바보라고 듣는 것만큼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방금 내가 들어봤으니까 확실하다.
“너 모든 개를 대표하는 대언자라며. 이딴 식으로 말해서 알아듣겠냐? 정상적으로 말해라, 좀.”
오죽 답답했으면 내가 개에게 대답을 바랄까. 그러나 이놈의 개는 지 말만 하고는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답답해진 내가 다그치려는 때였다.
그때였다. 우리가 숙소 겸해서 쓰고 있는 컨테이너의 뒤가 덜컹하고 열렸다. 거대한 문이 덜컥 쓰러지며 안쪽에서 고양이의 늘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아아. 멍청한 멍멍이는 인간의 왕을 찾고 있는 거다냐.”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내달리는 땅의 격류다. 그늘도 바람막이도 없는 그 위는 햇빛과 바람에 직접 노출되어 있다.
티르칸쟈카는 햇빛을 싫어하고, 나비는 강풍을 꺼린다. 직접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전자와는 달리 나비가 강풍을 싫어하는 건 마른 바람에 털이 부스스해진다는 사소한 이유 때문이지만, 짐승에게는 자기 기분만큼 중요한 일이 또 없다.
그래서일까. 낮이든 밤이든 비가 오든 총탄이 쏟아지든, 컨테이너 안에서 가만히 죽치고 있던 나비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기어나왔다. 나비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피며 대답했다.
“멍멍이는 개의 왕이다냐. 개의 왕으로서, 인간의 왕과 연합을 맺어야 한다냐. 그런데 인간에겐 냐-와 같은 왕이 없다냐. 그래서 왕의 구색을 갖춘 이들을 바라는 거다냐.”
“오, 나타났냐. 개의 대언자의 대언자.”
“냐는 멍멍이의 대언자가 아니다냐. 멍멍이는 멍청해서, 냐가 대신 설명해주는 거다냐. ”
그게 대언자 아니냐는 말은 접어두었다. 고양이를 상대로 굳이 설득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오랜만에 밖에 나온 나비는 영 불편한 기색으로 자기 앞발을 핥아대며 말했다.
“냐-들처럼, 인간을 다스리고 그들을 부릴 힘을 지닌 이들을 찾는다냐. 장군, 족장, 영주, 제후… 제멋대로 이름을 계속 바꾸는 왕들. 멍멍이는 없어진 인간의 왕 대신, 일부의 왕에게 약속의 이행을 바라는 거다냐.”
으음, 대충 알겠다.
개의 왕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 싸워줄 나라를 찾았다. 인간을 찾은 게 아니라, 최소한 군대라고 부를 만한 구색을 갖춘 이들과 함께했다. 세계 최강이라도 개인이라면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개인의 강함보다는 인간의 숫자나, 혹은 대표성을 바라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나는, 도리어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냐아. 맞다냐. 너는 형편없다냐.”
“짐승놈들이 말 좀 한다고 막말을 지껄이네.”
“다만, 아슬아슬… 영향력만 따지면, 꽤 왕에 가까울 수도 있다냐. 신기하다냐. 너, 높은 사람이다냐?”
“높기는 무슨. 내가 가장 많이 사람을 부려본 건 고작 160명 정도라고. 그나마도 지금은 하멜른 강 아래로 사라졌는데.”
뒷골목 잡범이 왕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아지야, 웃어봐.”
“멍! 응!”
헤, 하고 아지가 해맑게 웃었다. 개에 대한 고사를 실천해낸 나는 내던지듯 말했다.
“됐다. 도망자 신세에 사상 최악의 흉악범에게 몸을 의탁하는 주제에 견주가 되는 건 무책임한 짓이지. 나는 그냥 놀아주는 존재로 만족할래. 아, 나비 너도 놀래?”
“냐. 싫다냐. 바람 냄새가 낯설다냐. 털이 찌릿찌릿 부푼다냐…. 따끔따끔, 냐아아아.”
나비가 불쾌한 듯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부푼 털을 어떻게든 핥으면서 가라앉히려던 나비는 곧 얼굴을 찡그리며 컨테이너 안으로 향했다.
“냐를 부르지 말라냐. 냐는 저 안에서 자고 있을 거다냐.”
“너도 고생이다. 어디 한 곳에서 죽치고 살아도 모자라는데.”
“냐아아. 알면 내버려두라냐.”
나비는 휘적휘적 걸어가서는, 그 안에서도 특히 비좁은 상자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그 상자 주변에는 안에 담겨있던 게 분명한 우편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비가 상자를 차지하기 위해 밀어낸 것들이 실향민처럼 을씨년스럽게 상자 주변을 둘러싸고 었다.
상자 속으로 쏙 들어간 뒤, 살랑거리는 꼬리가 상자 뚜껑을 붙잡고 내렸다. 나비는 그렇게 우편물 상자 속에서 아늑함을 즐겼다.
어쨌건, 나비의 설명을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결국, 아지는 이곳저곳에서 거절당한 채 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에휴, 너도 짠하다. 내가 뭐라고 기대하냐.”
하지만, 애초에 나는 자격을 갖출 수 없는걸. 도망다니기 바쁜 나 따위가 왕은 무슨.
아지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대자 강풍에 시달린 머리털에서 정전기가 일었다. 한숨을 내쉰 나는 간단하게 만든 머리빗으로 털을 빗겨주며 말했다.
“그러니, 아지야?”
“멍! 대충, 맞아!”
“대충 맞다니 또 무슨 말이야…. 너도 같이 셰이 씨랑 손잡고 초등학교부터 다닐래? 말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방금 뭐라고 했냐?”
타이밍도 좋네. 마침 도착한 회귀자가 얼굴을 콱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