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0)
EP.20 범인은 이 안에 있겠지 그럼
무저갱에서 밤을 알리는 건 저무는 태양이 아니라 깜빡거리는 주간등이다. 군국 표준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면, 태양을 대신하려는 인조등이 노을을 흉내 내듯이 붉게 물든다.
본 따 만든 것은 그 형태에 구애받기 마련이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주간등의 빛이 지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처럼 천천히 가라앉고 나면, 무저갱 곳곳에 있는 희미한 야간등이 건물 안쪽을 비춘다.
베낀 것은 티가 나는 법이라, 야간등은 저녁 하늘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하다. 빛의 잔재가 그리는 어슴푸레한 남색 하늘 대신 침침한 조명이 무저갱을 비춘다. 안개처럼 스며드는 달과 별의 반짝임과는 확연히 다른, 어둠 속에서도 그늘을 만드는 불쾌한 빛이다.
온누리를 비추는 태양의 은총과 비교하면 뭣들 빛이 안 바래겠냐만.
주간등이 꺼지니 복도의 조명도 약해졌다. 이제 문틈에 설치해둔 거울조각은 어둠밖에 비추지 않는다. 덧붙여 내 방에 들어오는 조명도 꺼져서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책상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는 52장의 카드가 놓여있었다. 회귀자가 주었던 연금화와 오늘 하루의 시간을 몽땅 써서 만들어 낸 카드다.
나는 마술사이자, 카드와 호구를 재료로 돈을 연성해내는 연금술사. 카드 한 벌은 나의 무기.
한 손으로 책상 위를 훑었다. 책상 위에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던 52장의 카드는, 단 한 번의 손짓에 얌전히 내 손안으로 들어왔다. 네모나고, 딱딱하고, 탄력적인. 익숙한 촉감이 나를 반긴다.
뒷면을 위로 한 덱을 반으로 갈라 셔플한다. 잘 휘어지고 탄력적인 카드가 서로의 틈으로 파고든다. 섞고, 뒤집고, 비틀어서 다시 섞었다. 툭. 다 섞은 카드 뭉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다이아몬드 1.”
가장 위에 있는 카드를 뒤집었다. 다이아몬드 1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되도록 섞었으니까.
카드를 며칠 잡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실력은 어디가지 않았다. 내 마음속 깊숙이에서 나를 기다렸을 뿐. 나는 무심하게 다이아몬드 1을 들어올렸다. 뾰족하고 붉은 문양 하나가 카드 한 면이 자기 것인 양 다 쓰고 있다. 나는 카드를 검지와 중지로 잡은 뒤 휘릭 뒤집었다. 그 직후 양손을 펼쳤을 때, 다이아몬드 1은 어디에도 없었다.
카드의 품질도,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깊게 숨을 내쉬며 각오를 다졌다.
“자. 가볼까.”
차라리 아지가 훔쳐먹는 것이었으면 한다. 하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도망치기 위해서라도, 나만의 무기는 하나 챙겨야겠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어둠에 잠긴 복도는 소리마저도 삼킨 듯했다. 낮에는 조용해도 최소한의 활기는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탄탈로스라는 명칭에 걸맞게 음침하고 조용했다.
깊게 뻗은 복도로 향했다. 어둡고 고요한 복도에서는 발소리도 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다.
식당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안쪽에서 타인의 생각이 느껴지는지 살폈다.
안쪽에서는 조금의 잡음도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인간은 없다는 뜻.
생각이 없는 건지, 인간이 아닌 건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슬그머니 안쪽으로 들어간 나는 식당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대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아지가 냄비를 탐하는 순간 검거하면 된다. 혹여나 귀신이 나오면 즉각 도망치면 되고.
본디 사냥은 기다림의 미학인 법. 그 어떤 영광스러운 샤냥도 그 뒤에는 인고의 기다림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저 냄비가 있는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내 집중력도 떨어져 머리가 꾸벅거리며 시침질을 할 때. 몇 분이 지났을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걸려들었구나.
그것 봐. 역시 침입자잖아. 안쪽에 사람이 있기는 무슨. 그런 증명도 할 수 없는 음모론 따위 믿지 않아.
나는 잔뜩 힘을 주고,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며 사냥감이 함정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렸다. 냄비에 손을 댄 순간 빼도 박도 못 한다. 그때 되면 곧장 나가서 덮쳐야지….
식당 안으로 들어온 그림자는,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로 식당을 휙 둘러본 뒤.
“너, 거기서 뭐해?”
나한테로 걸어왔다.
생각을 읽는다고 내가 딱히 잘 숨는 건 아니라는 거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회귀자를 가리켰다.
“당신이었군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뭘?”
“그렇게 궁금했다면 한 입 달라고 했으면 되었을 것을. 굳이 이 밤중에 살금살금 다가와 훔쳐먹어야 했습니까? 당신의 일탈 때문에 저희 사이에는 불신이 팽배해졌습니다! 불신은 사회를 좀먹는 악. 굴러가는 톱니바퀴 사이에 낀 녹처럼 마찰과 잡음을 만들어내는 방해물! 당신이 얼마나 끔찍한 행위를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진짜 뭔 소리야.”
회귀자는 내 말을 무시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할 일 없으면 조용히 하고 있어.”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더니. 이 탄탈로스에 똥을 싸질러놓고 모른척하기는!”
“도대체 뭔 천박한 소리야?!”
반사적으로 반박한 회귀자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설마, 진짜로 내가 음식이나 훔쳐먹으라고 여기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조금 전까지는요.”
“그렇다면야, 가 아니잖아! 조금 전까지라고? 내가 너 같은 거랑 동급으로 보였어?!”
똑같지 뭘. 같이 여기 갇힌 처지면서.
어쨌든 조금 전 막 생각을 읽었다. 안타깝게도 회귀자는 음식을 탐하러 온 게 아니라, 식당을 떠나기 직전 느껴졌던 기척이 신경 쓰여서 밤에 다시 찾아왔던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걸었다.
“그러면. 정말로 이 안에 뭔가 숨어있는 존재가 있다는 거예요?”
“아마. 확실하지는 않지만 찾아서 나쁠 건 없겠지.”
“아아.”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회귀자를 향해 고개를 까닥 숙여보이며 말했다.
“수고하세요.”
“…너는 어디 가?”
“무서우니까 도망이요.”
회귀자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언제는 우리를 관리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교관이라며?”
“귀신은 교육생 아닙니다.”
“나는? 내가 감옥을 조사하겠다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어?”
“누가 조사하랬습니까? 그리고 조사하지 말라면 안 할 겁니까? 말려도 할 거라면, 제가 끼어드는 의미가 있습니까?”
“와.”
‘말은 여전히 얄밉게 하네. 그보다 뭐지? 진심이야? 아니, 설마. 무슨 계획을 짜고 있는 게 아닐까?’
계획이고 뭐고. 진짜 유령이라면, 생각을 읽지 못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비인간들을 상대로는 버러지 미만이라고.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식당 문으로 향했다.
“자. 그러면 가볼게요. 사후보고 하는 거 잊지 마시고. 가능하다면 샘플과 함께 보고서를 제출해주세요.”
“그럴 거면 지켜보지 그래?”
“죄송합니다. 소등 시간이라 자야 해서.”
“잔말 말고 거기서 지켜봐.”
“네? 왜요?”
‘내 칼을 쳐낼 정도의 강자가 경계하는 기색…. 혹, 이곳에 진짜 강대한 무언가가 숨어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주의를 돌리려고 하는 걸까? 그 의도가 무엇이든, 일단 방해해보자. 딱히 무서워서…는 아니고. 만약을 대비해 후방에 남겨두는 정도는 괜찮겠지.’
두려움은 전염되는 법이라, 내가 완전히 겁을 먹은 티를 내자 회귀자도 그만큼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잠정 적으로 여기는 나를 후방에 남겨둘 생각까지 할 정도로.
회귀자는 생각을 끝마치고는 둘러댔다.
“지금 저 안에 숨어서 기생충처럼 지내는 존재가 침입자일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그들을 배제하는 건, 이 감옥을 관리하는 너의 몫이니까. 너도 지켜봐야지.”
“그건 맞는 말이네요. 확인해보시고 침입자면, 선조치 후보고 하세요. 그때까지는 방에 가있겠습니다.”
잘 해봐. 나는 이만 간다. 내가 문으로 나설 때.
‘야! 가지 말라고 했는데! 칫, 일단 급한 대로 천앵을 던지자!’
그러면 안 돼. 죽어버린다고.
나는 몸을 빙글 돌려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회귀자의 등 뒤에 가까이 붙었다.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회귀자는 질색하며 말했다.
“뭔 짓이야?”
진짜로 힘을 쓸까 봐 돌아왔다고는 말 못 한다.
그리고 사실, 어째 회귀자의 말대로 진짜 침입자가 있다면. 어쩌면 나 혼자 있는 것보다는 회귀자와 함께 있는 게 더 안전한 거 아닐까?
아지는 지금 나한테 화가 난 상태고, 흡혈귀는 자기가 귀신이라 그런가 이번 일에 별 관심이 없으니까. 지금 회귀자를 제외하면 나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
참 못 미덥게도 말이다.
“자, 앞장서세요. 가서 귀신을 무찌르는 겁니다! 감히 귀신 따위가 저희를 위협하게 둘 수는 없죠!”
“너….”
‘그…래도 일단 뒤에 누군가 있으니 안심은 되네. 칫, 하필 저 남자라는 게 문제지만….’
어쨌건 회귀자는 나를 뒤에 두고는 형형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로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칠색안 중 세 번째, 금안.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화안금정(火眼金睛). 저런 눈을 가지고 있다면야 귀신도 무섭지 않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 아무것도 없다. 옆에서 지켜보며 팝콘을 뜯는 것뿐.
아, 응원이라도 해줄까?
“화이팅! 귀신 따위는 죽은 뒤 생기는 마력의 잔재일 뿐이에요! 무서워하지 말고 갑시다! 셰이 교육생의 검이라면 귀신도 베어버릴 수 있습니다!”
“…조용히 좀 해줄래? 시끄러워서 소리를 못 듣겠잖아.”
“어차피 그 삐까번쩍한 눈으로만 보고 있잖아요. 시각에 집중하세요.”
“소리도 듣고 있거든?”
회귀자는 찬찬히 식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더불어 조금 안쪽에 있는 선반에 달린 창고까지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 보여. 아무것도.”
“에이. 뭐야.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잖아요.”
“그럴 리 없어. 내 감에 의하면, 분명 뭐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보통 진짜로 뭐가 있기 마련이더라고.”
그 감이라는 거 영 미덥지가 않은데. 내 허세를 간파하지 못했잖아.
어쨌건 그 감 덕분에 살아남은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번쩍번쩍거리는 눈으로도 안 보인다면 없다고 봐도 되겠죠.”
“이상한데….”
“단념 좀 해요. 이 쪼끄만 식당에는 더 숨을 곳도 없어요. 테이블 두 개짜리 식당에 손바닥만한 창고가 전부인데 더 어디를 뒤지시려고요? 상대가 벽을 통과할 수 있다면 모를까.”
“벽?”
당연히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회귀자는 내 말을 듣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 벽. 그곳이 있었지. 군국의 콘크리트는 두꺼워. 저 안쪽에 숨어있다면 알아차릴 수 없었을 거야.”
음모론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회귀자의 눈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저기. 그래서 어쩌려고요? 벽을 부수기라도 하게요? 그건 기물파손입니다만.”
“부수지는 않을게.”
‘베어버리기만 할뿐.’
고개를 치켜든 회귀자가 손가락을 들어 자기 눈을 찔렀다.
칠색안 중 사색, 녹안.
불길한 녹색 안광을 가진 이 눈동자는 물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금속, 그중에서도 특히 납은 꿰뚫어 보기 힘들지만.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건, 다시 말해 시야 한구석을 새카맣게 차지한다는 뜻. 따라서 금속을 찾아내기에는 대단히 유리했다.
나는 독심술로 회귀자의 시야를 훔쳐보았다.
검고 흰 시야가 보인다. 세상은 얇은 실을 몇 번이고 덧그려서 만든 것처럼 어둡고 밝았다. 꿰뚫는 시야는 물체의 내부까지 볼 수 있었는데, 회귀자의 시선이 나에게 닿을 때 내 몸속에 있는 흰 뼈가 보였다. 알몸을 보이는 건 부끄럽지만 피부까지 벗겨내면 아무런 수치심이 들지 않으니, 참 묘하다.
회귀자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콘크리트 벽은 흰 마분지처럼 보였고 그 안에 박힌 그물 모양의 철골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회귀자는 천천히 벽을 훑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벽 한 켠에, 자그마한 인형 같은 실루엣이 있었다. 누가 보면 콘크리트를 만들 때 인형을 실수로 집어넣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인형의 정체는.
“찾았다. 아직도 남아있었구나?”
군국 마도 골렘, 소형 모델이었다.
회귀자가 머리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천앵이 손에 잡힌다. 그 순간 이미 회귀자의 검은 출수를 한 것과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휘몰아친 참격이 벽을 얇게 포를 떴다. 고목의 껍질처럼 갈라진 콘크리트가 두루마기가 되어 동그랗게 풀리더니, 끄트머리부터 흙먼지로 화했다. 드러난 공백.
그곳에서 회귀자는 얇은 검의 끝으로 마도골렘을 꿴 채 그것을 끄집어냈다. 골렘의 기체가 경련했다.
『파괴 행위를 멈춰달라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골렘에게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탄탈로스에 처음 내려왔을 때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에이비 대위였나. 군국의 통신병. 감정이 없는 군국의 나팔수.
그 요청에 회귀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건 쥐새끼처럼 숨어서 나를 훔쳐보기 전에나 가능한 요구지.”
『귀하의 파괴적이고 민감한 성향을 고려하면, 본 개체가 미리 나섰어도 파괴되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 판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또한, 본 개체는 귀하가 근처에 있다 판단한 경우 작동을 정지했습니다. 귀하를 훔쳐보지 않았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맞아. 맞아. 네 판단도, 요구도 다 맞아. 역시 군국 답네. 언제나 합리적이지. 그러니까.”
회귀자는 다시금 검을 치켜올렸다. 검끝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회로의 일부가 타오르고, 골렘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지지직거렸다.
“부술게. 잘 가, 안녕. 벽 안에 숨은 건 좀 참신했어.”
『파괴 행위를 당장 중단하십시오. 통신의 단절은 비효율을 유발합니다.』
“헤에. 다급하네. 이 골렘도 슬슬 마지막인가 봐? 하긴. 몇 개가 더 있어도 의미가 없겠지. 이제부터 나는 녹안을 발동한 채 모든 벽을 탐색할 거니까.”
골렘을 괴롭히는 회귀자는 오랜만에 꽤 즐거워 보였다.
골렘이라 생각을 읽을 수 없었구나. 왠지. 휴, 다행이다. 귀신은 아니고 골렘이었잖아. 생각을 읽지 못한다는 점에서 귀신만큼이나 껄끄러운 상대지만 회귀자가 파괴해줄 테니까 상관은 없고.
가만히 지켜만 보아야겠다. 하고 느긋이 있던 순간이었다.
『반복해서 요구합니다. 파괴행위를 당장 중단하십시오. 귀하의 행위 때문에 정보전달 및 배급과 관련한 내용 전파가 불가능해집니다. 반복해서 요구합니다….』
배급이라. 문득 들린 한 마디가 나를 자극했다.
이곳에 갇힌 이상, 언젠가 물자에 한계가 온다. 지금처럼 아지가 음식을 멋대로 집어먹다가는 식량이 순식간에 바닥날 것이다.
온갖 보물을 갖고 있는 회귀자면 또 모르지만, 나에게는 배급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니 골렘 파괴되면 안 되잖아!
나는 급히 회귀자의 뒤로 다가갔다.
“반복, 나는 참 싫어하는 단어야. 하지만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지.”
내가 다가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회귀자는 희열에 휩싸인 채 골렘 괴롭히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내가 골렘을 파괴한다고 네 본체가 어찌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군국이 조금이나마 곤란해진다면 그걸로 된 거야.”
『경고합니다. 적대 행위는….』
“안녕.”
퉁.
천앵을 살짝 튕기자 조그만 골렘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회귀자는 천앵을 납도하여, 곧이어 폭풍처럼 휘몰아칠 참격을 준비했다. 한껏 웅크린 자세에서 압축된 힘이 솟구치기 직전이었다.
저 칼에 찔릴까 봐 사각으로 다가간 내가 회귀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만요! 기다려보세요!”
그렇게 회귀자의 어깨에 내 손이 닿았을 때였다.
내 시야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나는 미처 반응할 새가 없이 무언가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거대한 것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아니, 거꾸로다. 세상이 뒤집히며 시야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솟구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나였다.
천반경天反境. 반反.
하늘뒤집기.
어라?
반격기?
심지어 생각조차 거치지 않은, 몸이 기억하는 수준의 반격기라고?
라는 것을 읽었을 때는, 내 몸은 땅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