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01)
EP.201 강처럼 흐르는 땅 – 3
인간은 언제나 밤을 두려워했다. 적의 모습을 가려주는 어둠과 습격자의 가장 큰 친구인 잠까지. 밤에 찾아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위험하기 그지없었으니.
그건 어디까지나 밤이 우리 편이 아니었을 때 한정이다.
시조 티르칸쟈카가 우리 편이라면, 밤은 평화와 고요의 장막으로 우리를 감싸주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순간으로 바뀐다.
[해가 졌구나.]사방이 어둠이라면, 티르는 며칠 잠을 자지 않아도 무방하다. 심장의 박동을 되찾고 기능 일부를 회복했으나, 여전히 그녀의 몸을 움직이는 힘은 혈조술이다.
단, 그렇게 버린 것 중에는 태양을 견디는 힘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다. 그 당시, 땅 밑에서 간신히 생을 이어나가던 한 소녀에게, 태양을 견딜 여력까지 남겨두라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으니.
해가 지자, 티르가 관에서 나왔다. 붉은 눈을 빛내며 티르는 세상을 굽어보았다.
“오래 기다렸구나. 이제 눈을 붙여도 된다. 어둠은 나의 시간이며 영토. 무엇도 이 안에 들이지 않겠다.”
티르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겹겹이 사방을 둘러쌌다. 서산 너머에서 반짝이는 노을도 이곳에 닿지는 않았다. 한낮의 만물을 굽어보는 태양이라면 모를까. 서로 비슷한 눈높이에 있다면 이쪽의 어둠도 노곤한 태양빛에 꿀리지 않다.
어쨌건, 티르는 눈을 떴고.
나는 구박했다.
“티르. 잠깐 시간 괜찮죠?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요.”
“그래. 무엇이든 물으려무나.”
“서로 전력을 확인해야 하니까, 약점이 뭔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실 수 있겠어요?”
“…음?”
‘약점? 나의 약점 말이더냐? 그건 갑자기 왜…? 아하, 불안한가 보구나. 그렇다면, 맏어른으로서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도리일 터.’
묘한 의무감에 휩싸인 티르는 어둠을 두르며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다.
“약점이랄 것은 없다. 나는 시조 티르칸쟈카, 한때 전 세계가 두려워했던 존재. 두려움 그 자체에게 두려움이랄 게 있겠느냐?”
“꼭 그렇지는 않잖아요? 햇빛을 대놓고 피하시더만.”
멈칫, 내 추궁에 움찔한 티르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꺼리는 것이다. 본래 한낮의 태양에도 나는 어둠을 두르고 거닐 수 있었으며, 심장을 되찾은 지금은 맨몸으로 서도 문제 될 것 없다. 다만, 중요한 싸움을 위해 힘을 모으고자 잠시 쉬었을 뿐.”
“그게 약점인 거 아니에요?”
‘햇빛 아래에서는 운신에 제약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만, 약점이라고 할 것까진.’
이 분 약점의 뜻을 모르고 계시는 거 같은데. 햇빛 아래에서 운신에 제약이 생기는 게 약점 아니야?
내 감상을 모르는 티르는 가느다란 어깨를 한껏 들어 올리며 호언장담했다.
“나는 태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흡혈귀에게 있어, 태양빛은 조금 따끔한 빗방울에 지나지 않으니. 급이 낮은 아인이나 예일링이라면 모를까, 엘더는 태양 아래서도 버틸 수 있으며 시조인 나에겐 단순히 거슬리는 존재에 불과….”
“확실한 전력 파악을 위해서 묻는 거잖아요. 태양 아래서는 힘을 잘 써요, 아니면 잘 못 써요? 긍정, 혹은 부정으로 대답하세요.”
조금 따끔한 빗방울도 하루 종일 쏟아지면 몸에 구멍을 내지 않을까? 애초에 따끔한 시점에서 에러가 아닐까?
티르는 잠깐 어물쩍거리다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긍정, 이란다.”
“오케이, 확인. 햇빛 아래에서는 약해진다.”
“단,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심장을 되찾기 전의 이야기. 지금은 동등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네가 걱정할 부분은….”
“그건 힘이 몸 밖으로 안 나와서 가능한 일이잖아요. 만일 혈조술을 몸 밖으로 쓸 수 있었다면 밤에는 흙잡졸이 아닌 군단이 걸어 다녔겠죠.”
“…으.”
사실 폭격에 티르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내친 김에 나는 전력 파악을 빙자해서 사실을 조금 더 캐내보기로 했다.
“만일 낮에 싸운다면, 어둠은 얼마나 다루실 수 있어요?”
“어찌 어둠에 양을 가늠한다는 말이냐. 나의 어둠은 무한하니, 다음 밤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마르지 않을 것이다.”
어? 이상하다. 왜 진심이지?
분명 티르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한계가 없다면 하루 힘을 비축할 이유도 없잖아. 정작 자기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힘을 모으는데, 마르지 않는다는 말도 진심이라고?
아, 잠깐.
“티르. 혹시 한계는 있는데 딱히 말라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그리 생각할 수 있겠구나. 가장 긴 낮도 내 어둠을 전부 고갈시키기는 부족하니. 내 군단 전체를 어둠으로 수호한다면 모를까, 너와 나, 셰이를 지키기에는 충분하구나.”
말이 그렇지, 정작 용량의 한계는 있다는 거잖아!
“떽! 그러다가 중요한 순간 어둠 다 떨어져서 위험에 처하면 어쩌려고요! 저를 그렇게 흡혈귀로 만들고 싶으세요? 일부러 죽인 다음에 어쩔 수 없구나, 하며 강제 흡혈귀화 시킬 생각인 거죠?!”
“…그, 그럴 리 없지 않느냐.”
‘부자연스럽게 흡혈귀로 만들어보아야 네 원망만 살 일, 나는 너를 최선을 다해 보호할 것이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네 신변에 변고가 생긴다면 어쩔 수 없겠다만.’
흡혈귀 사망보험 든든하다. 마음은 참 기쁘기까지 해.
하지만 그전에 그냥 내가 안 죽게 해주면 안 되려나.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위기의 순간 날아오는 총알 살짝 흘려보낼지도 몰라.
어쨌든, 나는 슬슬 진지하게 전력을 조사하기로 했다.
“우리가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약점이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해요. 솔직하게 말해 봐요. 어둠은 얼마나 쓸 수 있어요?”
“어둠을 무엇으로 재겠느냐? 다만, 오늘 나는 하루 종일 어둠을 갈무리하여 힘을 모았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해가 지기 전까지는 능히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성황청이 무슨 기묘한 수를 쓴다면 또 모르겠지만.”
“만일 어둠을 다 소모하면요?”
“그럴지라도 나의 육신은 남으니, 적들을 하나하나 분쇄하면 될 뿐이다.”
“알았어요. 이제 어둠 부분은 확인했고.”
‘…내가 상당히 못 미더운 눈치로구나. 오랜 도피생활로 심신이 불안해진 모양이지. 안 되겠다. 믿음을 주어야 불안해하지 않겠지.’
아니, 그런 거 아니니까. 진짜 단순한 전력조사니까 거짓 보고하지 말라고. 자기 자신이 그렇게 믿어버리면 나도 깜빡 속아버릴지도 몰라.
“이제 다른 약점은요?”
“햇빛조차 두렵지 않을진대, 다른 약점이 무어 있겠느냐.”
엥? 진짜로? 내가 알기로는 흡혈귀에게는 몇 가지 약점이 더 있을 텐데.
왜 진심이지? 호언장담이야 그렇다고 쳐도, 정말 자기 약점은 하나도 떠올리지 않는 건가?
“아니, 티르. 티르 약점은 온 세상이 다 아는데 뭐가 없다고 해요?”
“기묘하구나. 나조차 모르는 약점을 어찌 온 세상이 다 안다는 말이냐?”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제가 알고 초졸도 알아요. 어쩌면 요즘 급격하게 똑똑해진 아지까지 알 수도 있고요.”
오랜 시간 동안, 흡혈귀는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적, 이라고 단순히 말하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긴 했다.
흡혈귀는 한때 인간이었으며, 살기 위해서는 신선한 인간의 피가 필요했다. 피를 격렬하게 원하는 몸뚱아리를 경멸하면서도 완벽한 육신을 버리고자 하진 않았다. 시간도 그들을 쇠하게 하지 못하며 짐승조차 그들을 피한다. 단, 그들의 종말은 언제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인간은 흡혈귀의 정반대 입장이었다. 흡혈귀의 먹이인 동시에 언제든지 흡혈귀가 될 수 있는 존재. 인간은 흡혈귀를 혐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반불사인 그들을 부러워했으며, 가끔 흡혈귀가 될 기회라 찾아오면 행운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곤 했다.
포식자와 피식자면서, 동시에 탄생부터 죽음까지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된 기이한 관계.
경외는 호기심을 수반한다. 인간은 언제나 흡혈귀에 대해 더 알고자 노력했다. 환상을 품은 채로 진실을 좇으며, 그 간극을 지식으로 메워갔다.
그런데 정작 시조만 모르고 있다는 아이러니.
“아이러니로구나. 나는 모든 흡혈귀의 시작이자, 그들의 종족신. 이 내가 모르는 흡혈귀의 약점이 있다는 말이냐?”
“제가 할 말인데요. 후우. 안 되겠네.”
말 나온 김에 한 번 시험해보자. 나는 고개를 돌려 회귀자를 불렀다.
“셰이 씨! 잠깐 이리 와봐요!”
“잠깐 기다려 봐. 나비만 좀 보고.”
마침 회귀자는 나비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랜 도피 생활에 지친 건 나보다는 나비 쪽이었다. 상자 안에 들어간 나비는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고, 회귀자가 아니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하악질을 해댔다.
지금도 친근한 태도의 회귀자와 그 손에 들린 음식, 그리고 세계수 잎으로 만든 마력초가 아니었다면 몇 번 밥상을 뒤엎었을지도 모른다.
상자 뚜껑을 닫은 회귀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렵네. 고양이의 왕이라 그런가, 멀리 떠나는 여행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모양이야…. 어디,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지내는 게 나을 텐데.”
“어디 유기하기로 하고, 당장 당면한 과제부터 처리하죠. 인간끼리.”
“말본새는… 그래. 당면한 과제가 뭔데?”
어차피 회귀자는 이 파티의 주력.
대응 능력 하나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약간 만능 상비약 같은 존재다. 전력 파악을 한다면 회귀자와 같이 하는 편이 낫겠지.
“셰이 씨. 혹시 흡혈귀의 약점은 알아요?”
“당연히 알지. 햇빛 아니야?”
“그거 말고는요?”
“소금, 그리고 향신료. 예를 들어 마늘 같은 거.”
티르가 살포시 미간을 찌푸리며 부정했다.
“헛소리. 나는 그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태양을 꺼리는 건 사실이다. 성황청도 그 점을 십분 활용하여 나를 곤란케 했지. 다만, 나는 소금과 향신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것을 접해본 적도 없으니.’
접해본 적도 없다, 이 시점에서 나는 티르의 문제가 뭔지 깨달았다.
아, 약간 민간요법은 티르에게 안 전해졌구나. 언제나 군세를 이끌고 가서 그런가.
설명은 회귀자에게 맡긴다. 초졸도 아는 흡혈귀 대처법을 들어봐라.
“어? 하지만 흡혈귀는 피로 움직이는 존재라, 피에 녹아드는 종류의 향신료를 싫어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오히려 미량으로 치명적인 독은 별로 효과가 없고, 대신 소금을 잔뜩 끼얹으면 대단히 곤란해한다고.”
“어처구니가 없구나. 흡혈귀라고 하면 피를 지배하는 존재. 어찌 피에 엉기는 독도 아닌, 소금을 싫어한다는 말이냐.”
말 나온 김에 이거나 드셔 보시지. 나는 요리용으로 꺼내둔 소금을 손등에 조금 올려둔 뒤 티르를 향해 내밀었다. 티르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꾸했다.
“설마, 소금이더냐?”
“네. 오랜만에 한 번 드셔 보시죠? 약점이 아니라면 괜찮겠죠.”
흰 소금에 섣불리 입에 대지 못하고 티르는 어물쩍거렸다. 나는 어디 한 번 입에 대보라는 듯 더욱 내밀었다.
‘손등에 입맞춤을 하는 꼴이지 않느냐. 대담하구나…. 역할이 바뀌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아니, 소금이 싫어서가 아니었네.
조금 눈치를 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내 손등에 어물쩍 혀를 댔다. 흰 소금 위로 작은 혓바닥이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직후, 티르는 꺼림칙한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맛… 없구나.”
“티르는 맛 못 느끼잖아요. 피 맛밖에 못 보시는 분이.”
“그렇다. 꺼림칙하구나. 내 피와는 맞지 않는다.”
“그게 약점이지 뭐.”
“다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향과 기호의 문제….”
“에비.”
“꺄앗.”
끝까지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 티르를 향해 소금을 훅 들이밀었더니 벌레라도 본 듯 고개를 휙 뒤로 내뺐다. 시조는 답지 않게 귀여운 비명을 지른 티르는 그 상태로 얼어서 가만히 있었다.
후, 이거 봐. 내 피 맛없다면서 울상을 지을 때부터 알아봤어. 입맛 까다롭긴.
“티르. 흡혈귀에 대한 지식은 알음알음 알려지다 못해 소설이나 그림으로 뻗어 나갔다고요. 방심하면 안 돼요. 세상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 세 가지가 호환과 마마, 그리고 흡혈귀인데. 세상 사람들 전부 공유했단 말이에요. 심지어 셰이 씨조차 알잖아요.”
“잠깐만. 나조차 안 다는 말에서 약간의 악의가 느껴지는데.”
그러나 티르는 내 말에 수긍하는지 느릿하게 끄덕이다가, 회귀자가 고개를 돌리자 우뚝 멈췄다.
빤히 바라보는 회귀자를 외면하며 또 작게 헛기침을 한 티르는, 그 시선을 떨쳐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설사 내가 소금 같은 것을 꺼린다고 치자. 무슨 상관이겠느냐? 그 누가 나에게 어떻게 소금을 먹일 수 있다고?”
“그런 것 방심하면 안 돼요. 군국은 존재하는 모든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나라라고요.”
약점이 존재한다면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합리적이기도 할뿐더러, 그렇지 않으면 쉽게 이길 수 없는 상대이기에.
나는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우고는, 한없이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 습격은 탐색전. 아마 티르의 힘을 빼놓으려는 생각이었을 거예요. 다행스럽게 셰이 씨의 힘만으로 몰아내긴 했지만, 그래도 전력을 다한 공격과 탐색전은 또 다르죠. 그들이 찾아오기 전에 계획을 세워야 해요. 그때 가서는 늦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