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06)
EP.206 강처럼 흐르는 땅 – 8
장성기. 칼날총.
오직 히스토리아를 위해 군국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무기.
손잡이 끝이 쇠사슬로 연결된 두 자루의 권총이었다. 까만 총신의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솟아나 있었는데, 뾰족하게 날이 서 있어서 찌르는 데에도 베는 데에도 용이했다.
칼날이 달려있다고 총이나 사슬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총구 안쪽에서는 특수 가공된 묵직한 탄환이 적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며, 권총에 연결된 쇠사슬 역시도 나름의 쓸모가 있었다.
히스토리아가 내던진 총이, 쇠사슬을 절그럭거리며 회귀자의 눈앞까지 날아왔다.
총알이 아니라, 총이.
‘저 망할 총. 총도 아니고 칼도 아닌 게…!’
회귀자가 지잔을 한 바퀴 돌리며 들이밀었다. 사슬을 감으려는 시도였다.
그 순간 낌새를 눈치챈 히스토리아는 다른 쪽 총을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회귀자는 천반경으로 반응하여 총알을 막아냈으나, 그 틈을 타 히스토리아는 사슬을 잡아당기며 돌진했다.
타탕, 견제용 사격 두 발. 그에 행동을 제약당한 회귀자의 머리로 칼날총이 떨어졌다. 회귀자는 지잔으로 마주 쳐올렸다.
쩌엉, 장성기와 지잔이 부딪혔다. 히스토리아는 묵직한 촉감에 눈을 찌푸렸다.
‘까맣고 무거운 검. 흐음, 대충 보이지 않는 검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정면으로 부딪칠 필요는… 없어.’
판단은 신속했다. 히스토리아의 손목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손잡이를 놓으며 손가락만 걸치니, 칼날총이 지잔에 걸린 채 빙글 돌았다. 순간적으로 지잔을 떨쳐낸 칼날총이 회귀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치잇!”
무거운 지잔은 반응이 늦다. 대신 회귀자는 천앵을 휘둘렀다. 타앙, 하고 폭음이 울려퍼지기 직전, 회귀자가 총구를 쳐서 비껴 올리는 데 성공했다. 거센 총성이 스치고 지나간 탓에 둘의 귀가 먹먹해졌다.
싸움을 멈추기에는 너무 사소한 피해였다. 회귀자와 히스토리아는 다시 충돌했다.
잠깐의 힘겨루기. 짧은 칼날총에 비해 천앵이 길다. 회귀자가 칼날총을 떨쳐내고 총사의 얼굴을 크게 그어버리려는 그때.
시야 아래쪽에서 군홧발이 바닥을 휩쓸었다. 뻐억, 허벅지가 걷어차인 바람에 균형을 잃은 회귀자가 신음을 흘렸다.
“망할…!”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고, 총구와 총성으로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불안정한 자세에서 이어지는 하단 공격. 당하는 입장에서는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정작 히스토리아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미안, 내 다리가 좀 길어서.”
“어디, 짧게 해줄까!”
천앵이 번개처럼 떨어지려는 동안 쇠사슬이 짤그락거리며 끼어들었다. 분개한 회귀자는 사슬째로 갈라버리려고 힘을 주었다. 천앵의 칼날이 사슬과 사슬의 이음매에 정확하게 내리꽂혔다.
“휘유. 낚였고.”
히스토리아가 휘파람을 부는 동시에.
촤르르르륵.
순간적으로 사슬이 느슨해지며 천앵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동시에 히스토리아는 발끝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사슬을 가볍게 감고는 쏘아냈다.
회귀자의 시야에 수십 개의 사슬이 철렁이며 사방을 덮쳐오는 것처럼 보였다.
‘천반경이 반응하지 않아…! 전회차를 통틀어 상정 외의 공격이라는 뜻이야?! 어떻게 매번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공격하는 건데!’
대신 천반경에는 상정 외의 공격에 반응하는 수비식도 있었다. 다급하게 회귀자가 외쳤다.
“천앵!”
천앵에 압축된 공간을 해방한다. 공간이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며 총사와 회귀자의 거리가 벌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패는 거리다. 공격을 아무리 해봤자 닿지 않으면 무의미하기 마련이니, 반동 없는 지잔이 무엇이든 막아내는 최강의 방패라면 천앵은 공격 자체를 무산시키는 최고의 방패.
그러나, 총사에 한해서는 통하지 않았다.
폭사경, 영점잡이.
탕. 필중이 약속된 총탄이 공간을 찢었다.
“호오.”
궤적을 따라 찢긴 코트 자락과 그 틈으로 새어 나온 피가 바람을 따라 흩어졌다.
총탄이 회귀자의 오른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쳤다고 하기엔 오른팔 살 한 점이 떨어져 나가며 피가 흘러나왔지만, 이치에 닿은 기공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하기엔 형편없었으니까.
“좋은 무기, 좋은 옷, 좋은 반응이야. 셋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어디 한 짝 날아갔을 텐데….”
기공과 뒤섞인 초연이 피어오른다. 히스토리아는 총구에 대고 입바람을 불었다. 흩어진 연기는 바람을 따라 뒤로 흘러갔다.
“물론 급하게 쏘느라 내 총의 위력이 약해진 게 제일 크지만. 어쨌건, 너. 튼튼하네. 보기와는 다르게.”
회귀자는 지끈거리는 오른팔의 열상을 무시한 채로 이를 악물었다.
“까다롭긴…!”
“누나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발끝으로 사슬을 당긴 히스토리아가 칼날총을 빙글빙글 돌렸다. 회귀자는 혈조술로 상처를 조금씩 다스리며 천앵을 치켜들었다.
‘총은 아무리 강해봤자 총. 까다롭긴 하지만 그뿐! 어찌 대응하면 되는데…!’
총을 빼놓고서라도, 히스토리아는 그냥 강했다.
나이도 젊다. 기력도 충분하다. 움직임은 곡예와 같고 힘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천부적인 전투감각으로 주어진 상황과 무기를 최대한 사용한다.
흔들리는 총구로 심리전을 걸고 원거리와 근거리에서도 적재적소로 대응한다. 그에 신경을 쓰고 있으면 번뜩이는 칼날이 몰아친다. 막느라 무기를 휘두르면 뒤따르는 총탄에 대응할 수단이 사라지고, 거리를 조절하자니 근접전에는 체술로 중거리에선 사슬로 따라붙는다.
‘운명안을 개안해야 하나? 하지만 이런 센스 타입은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칫, 진짜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야. 누구보다도 군국에 가까운 이 여자가 신(新)왕국의 중책이 될 거라곤…!’
나름 기력에는 자신이 있는 회귀자였지만, 이대로 더 싸워도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회귀자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더 싸우면 유리해지는 건 회귀자였으니까.
“크억…!”
단 일격이었다.
장성 하나가 허공을 날았다. 무기 위로 가해진 일격을 간신히 버텨낸 장성이 총검을 땅에 찍으며 미끄러지려는 때. 그의 몸이 흰 소녀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거센 바람에도 옷 한 점, 머리 한 가닥 나부끼는 일이 없다. 새까만 양산을 태양을 향해 비스듬히 걸친 채, 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거닐던 티르가 손을 내밀었다.
“힘조절이 어려우니, 알아서 살아남거라.”
사방에 만연한 어둠이 제 주인에게로 향했다. 그 흐름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장성이 팔을 허우적거렸다.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티르는 느긋하다고 할 수 있는 동작으로, 손바닥을 펼쳐 장성을 밀쳐냈다.
귀부인의 투정처럼 보이는 손짓이었으나, 정작 맞은 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중력이 방향을 바꿔서 땅에 메다꽂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허리가 접히고, 몸이 붕 뜬다. 구겨진 몸이 흐르는 땅 위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병사들에게 하늘과도 같던 장성이,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나가떨어진다.
병력을 추스르던 장교 하나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저지불가! 저지불가!!”
애처로운 절규이자, 다급한 보고이며, 이 상황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한 말이기도 했다.
티르는, 그녀의 뒤에 아무도 있을 수 없도록. 하나하나 밀어가면서 진군했다.
“소장님!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막을 수…! 없습니다!”
정작 히스토리아도 한 명에게 발목이 잡힌 상태라 그에 대답해줄 수는 없었다. 히스토리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방어 하나는 인정해야겠네. 쉽게 뚫지 못하겠어.”
회귀자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대꾸했다.
“자신만만해, 아주!”
“귀염둥이. 미안. 여유 부릴 시간이 없네.”
히스토리아는 총구를 위로 향하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번쩍이는 빛이 하늘로 피어올랐다. 신호탄이었다. 무기를 갈무리한 히스토리아는 아쉬운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가능하면 본대가 오기 전까지 시간을 끌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네. 부르는 수밖에.”
“한참 멀리 있을 텐데. 신호탄을 쐈다고 여기까지 오겠어?”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어떻게 너희를 앞질렀다고 생각해? 아니, 내가 과연 혼자 왔을지, 그것부터 물어봐야 하나?”
그 말대로였다.
작전상 후퇴가 당당하게 작전 교범에 올라와있는 군국이다. 교전을 회피한다면 모를까, 싸우기로 한 이상 군국이 어설픈 방법을 선택했을 리가 없다.
최소한 전술적 우위는 확보한 다음에야 비로소 싸움을 거는 게 군국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과연 군국이 생각하는 전력의 우위란 무엇일까.
‘군국이라도, 고위 마법사나 고위 사제가 없다면 티르칸쟈카를 상대하기 어려울 텐데…. 군국에 사제가 있을 리 없고. 설마?’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회귀자가 불길함을 느끼고 시선을 돌린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을 시작한다.”
마력을 부르는 힘찬 목소리가 메타컨베이어 벨트 낮게 깔렸다. 그 주인이 누군지 짐작한 회귀자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안 돼! 아마 이건…!’
“어때. 이래도, 시간이 너희 편일까?”
이번에 달려드는 쪽은 히스토리아였다. 회귀자는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 전투를 이어나갔다.
그동안 마법이 시작되었다.
“세트.”
인간이 산꼭대기에 도달하는 법은 무엇일까.
“리.”
힘차게 달려갈 수도 있고, 훌쩍 뛰어서 올라설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절벽을 타고 기어오를 것이며, 하늘을 날아 가볍게 내려앉을 수도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꼭대기에서 태어나, 아랫동네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그러나 가장 평범한 방법은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다.
미련하고, 성실하게.
누구도 찾지 못한 길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극복하여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그들을 선각자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감탄과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아득한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걷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누구나 할 방법으로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 봐야 아무런 경탄도 감동도 없으니까.
어리석은 이는 비웃음을 살 뿐.
『메타컨베이어 벨트 담당, 군국 통신병 피유입니다. 군국 장병들에게 경고합니다.』
이어지는 주문 사이로 골렘이 최대한 목청을 높여 외쳤다.
『잠시 뒤, 프렐비요르 대장님의 마법이 시전됩니다. 장병들은 각자 가능한 최대한의 자기 방어 대책을 강구하십시오.』
멍청하고 비효율적이다. 인생은 짧고 길은 까마득하니, 한계조차도 명확하다. 꼭대기는커녕 중턱에 닿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터.
그러나.
인간이 감탄하는 대자연 또한, 티끌이 모여 산을 이룬 것. 우직한 세월 동안 바위를 파낸 물방울은 경탄을 이끌고, 유수가 파낸 강을 보고 감동에 젖는다.
비록 그것이 우행일지라도 쌓이고 쌓이면, 산을 옮기는 법.
티끌같은 마력을 모으고 또 모았다. 남들이 세상을 만들어낼 때, 그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마법만 사용했다. 제식마법만 사용하여 차곡차곡 기틀을 다졌다. 언제나 마력에 좋다는 것만 먹고 수련하며, 마력량과 친화력을 늘렸다.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개월, 몇 년, 몇십 년…. 수련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녀는 육장성이 되었다.
고차원적인 마법은 여전히 사용하지 못한다. 그럴 재능은 없다.
그러나 마장의 마법은, 대신 양적인 측면에서는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통신병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 이미 장병들은 그들의 진지 속에 숨어서는 방수포와 방화포를 잔뜩 두른 채로 몸을 웅크렸다.
준비가 끝났다.
“체크.”
고유마도, 규모의 마법.
세상을 뒤덮는 듯한 마력이 한순간 한 점으로 수렴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길만 우직하게 파고 온 위인만 낼 수 있는, 실제로 위업을 이루어 낸 자의 힘찬 ‘주문’이.
“피렌하이트, 밀리어네어.”
태양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