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09)
EP.209 동창회
군국의 자랑인 마장은 위엄이 넘치는 여걸이었다. 군인의 모범이며 뭇 시민들의 존경을 받던 프렐비요르가 허공에서 빛을 내뿜으며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웠다.
단지 지위가 높고 상황이 급박했던지라 누구도 웃을 생각을 못했지만. 단 한 사람은 달랐다.
“하하! 할매! 힘이 떨어져서 오줌줄기가 시원찮은 거야? 막 흩날리네!”
파트락시온이 무례할 정도로 깔깔거렸다. 곁에서 달리는 장성들은 다른 의미로 웃지 못했다. 따라 웃기에는 너무 질 낮은 농담이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목청은 프렐비요르에게도 들렸다. 프렐비요르가 근엄한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시끄럽다! 어른이 일하는데 냉큼 와서 돕지 못해!”
“좀만 기다려! 거의 다 도착했어! 어이! 간드! 창!”
“여기 있습니다!”
부관으로부터 예비용 창 하나를 넘겨받은 파트락시온은 오른발을 세게 내디디며 땅을 세게 디디며 우뚝 멈췄다. 그의 어깨에서 힘줄이 돋아난다. 팔을 뒤로 당긴 그는, 달려가는 힘을 그대로 창에 담아 던졌다.
후웅. 창이 묵직하게 쏘아진다. 파트락시온의 손끝이 창을 놓기 직전.
“흡!”
힘이 잔뜩 들어간 손가락이 창대를 다시 움켜쥐었다. 동시에 굽힌 무릎을 펴서 발로 땅을 박찼다. 파트락시온은 자기가 던진 창에 매달려 허공을 날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 그가 착지한 곳은 전장 한복판이었다. 창을 바닥에 찍으며 몸을 일으킨 그가 호기롭게 달려들었다.
절창이 참전했다. 회귀자가 뛰어오르며 외쳤다.
“티르칸쟈카! 절창을 상대해줘!”
“잠깐만 기다려보거라. 저 건방진 것에게 본 때를….”
“빨리 처리하고 쟤를 도와야지!”
티르는 내 쪽을 흘긋 보고는, 입술을 꾹 다물며 그 지시를 따랐다. 마장으로부터 몸을 돌린 티르가 절창과 뒤따르는 장성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시조! 그대의 상대는…..”
“나야! 내가 상대해줄게!”
“허. 새파랗게 젊은 것이…!”
“왜 다들 나이를 걸고넘어지고 난리야, 이래저래 짜증나게! 내가 얼마나 복잡한 기분인지 알아?!”
“말버릇조차 고약하구나!”
프렐비요르는 훈계하면서 마력을 모았다.
모아둔 빛을 다 소모했으나, 화염은 빛 말고도 열을 낸다. 열은 공기를 바람으로 바꾸는 힘을 지녔다. 우공이산은 축적해놓은 열을 그대로 재활용하여 바람을 밀어냈다. 바람을 머금은 망토가 한껏 펼쳐졌다.
“프리셋, 파스칼!”
바람이 프렐비요르의 몸을 높게 띄웠다. 묵직한 컨테이너조차 북풍의 폭력에 무력하게 땅을 뒹굴었다. 바람보다는 폭포에 비견할 만한 힘의 격랑이었다.
그 속에서 회귀자는 천앵을 치켜들었다.
“흥. 미안하지만, 바람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고!”
천앵은 하늘의 힘을 가진 보물. 공간 그 자체를 담아, 바람과 구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을 가졌다.
천검기는 마력과 기공을 사용하여 그 힘을 끌어내는 마검술. 회귀자는 쏟아지는 바람을 가르며 천앵을 휘둘렀다.
천검기, 파초.
“이건… 마법!”
회귀자는 몰아치는 폭풍을 단칼에 베어버리며 나아갔다. 검격에 바람이 쪼개지는 광경을 목격한 프렐비요르는 격분해서 외쳤다.
“그 나이에 마법에 기공까지 익혔으면서, 왜…! 천재라는 것들은, 어찌 이리 제멋대로인가!”
“…칭찬해준 건 고마운데, 이제는 천재라는 단어 들어도 아무 생각이 안 들어!”
“더 용서할 수 없다! 그만한 재능을 받았으면, 휘두를 생각하기 전에 감사할 것이지! 더는 나라의 땅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굴도록 두지 않겠다!”
프렐비요르의 노성이 크게 울렸다.
전투가 한창인 저쪽에 비해, 나와 리아 사이에는 아무것도 오가지 않았다. 공격도, 비난도, 고함도, 뭣도 없이 시선만 잠깐 나눈 게 다였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등에 멘 상자를 발치에 내려다 놓고는, 마력초 한 개비를 꺼내 히스토리아에게 내밀었다.
“한 대 피울래?”
히스토리아는 나를 빤히 보다가 마력초를 받았다. 그녀가 입에 마력초를 물자, 약속이라도 한 듯 손가락을 들어 그 마력초 끄트머리에 갖다 댔다.
“세트, 리. 피렌하이트.”
건틀릿 끄트머리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히스토리아가 숨을 들이쉬자 뜨거운 불꽃이 마력초에 빨려 들어가더니, 마력초를 흠뻑 머금으며 느릿하게 타올랐다.
크게 한 모금. 연기를 맛본 히스토리아의 얼굴이 찰나 풀어졌다.
‘맛이… 기이할 정도로 좋아. 뭐지? 녀석이 불을 붙여서…?’
“좋지? 최고급품, 이라고 하기도 모자란 거야. 세계수 잎사귀를 썼다고 들었거든.”
‘…그럴 리가 없지. 그냥, 마력초가 좋았던 거네.’
마력초는 진정작용을 한다. 그중에서도 이 마력초는 세계수의 잎사귀를 쓴 특제품. 고급인 만큼 효능도 좋은 덕분에 히스토리아의 흥분이 제법 가셨다.
역시 학연보단 흡연이 우선이지. 일단 연기를 먹여놨으니, 이제 학연을 강조해서 잠시 시간을 끌어볼까.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이 난다. 그렇지? 너는 제식마법에 서툴러서 마력초 피울 때 꼭 다른 사람 불을 빌리곤 했잖아.”
시간을 때울 생각으로 옛 추억을 말했으나, 히스토리아는 더 이상의 잡담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 꼴사나운 갑옷은 뭐야? 꼴에 무장했네. 나를 이겨보겠다는 거야?”
“내가 너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냥 이건 호신용이야. 격렬한 전투에 휘말려 날아가지 않으려고 입었어.”
“그게 다야?”
“당연하지. 갑옷을 입어봤자 뭐 도움이 되겠어?”
히스토리아는 내 말에 긍정하듯 연기를 뿜어냈다. 내가 바람을 마주하고 있어서인지, 연기는 나를 향해 날아왔다. 마력초 끊은 지 조금 됐는데도 코끝에 맴도는 향기가 상쾌했다.
다시 한 대 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마력초가 고급이라서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담배 친구를 만나서일까.
“싸울 생각이 없다면.”
히스토리아는 손끝으로 쇠사슬을 낚아챘다. 기다란 쇠사슬이 말 잘 듣는 동물처럼 그녀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쇠사슬을 위협적으로 철컥거리며 나에게 명령했다.
“팔 내밀어. 너를 구속해서 공안청으로 데려갈 테니까.”
“나만?”
“너부터.”
“죄목은 뭔데?”
“네가 정해. 뭐로 잡아줄까?”
‘살인, 위증, 내란, 사기, 그리고 공무집행방해. 원하는 죄목은 뭐든지 갖다 붙여도 되지. 하멜른의 161명을 그렇게 죽였다면, 더 이상 죄목은 무의미해.’
그날 있었던 일이 여전히 내 탓이라 굳게 믿는 모양이다. 이 오해를 어찌 풀어야 할까.
아니, 풀어야 할까?
어쨌건 잡히지 않는 게 우선이다. 나는 최대한 무해한 제스쳐를 취했다.
“리아. 알잖아. 내가 한 거 아니야.”
“자세한 내용은 심문실에 가서 들을게, 휴이. 모든 진실을 토해낼 때까진 못 나갈 거야.”
‘토해낸다고 하더라도 나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혓바닥을 놀리게 두진 않아.’
과거의 지인이 적이 되니까 무섭네. 나를 어찌나 잘 아는지, 별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일단 구속하려고 든다.
이미 옛날에 수도 없이 놀려먹은 상대라서 섣불리 심리전에 응해주지도 않을 거고. 그렇다면.
이러고 싶진 않았지만 죄책감이나 후벼 파자.
“왜 내 탓을 하는 거야? 진실을 토해내야 할 사람은 너잖아.”
손으로 가면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맨얼굴이 드러났다. 마주 부는 바람에 눈이 메마른다.
그럼에도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표정 하나하나에 억하심정을 가득 담아서.
상대를 탓했다.
“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
“네가 나를 제때 구해줬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 아니야. 뭐 때문에 마지막 순간 나를 외면한 거야?”
침묵하는 히스토리아를 향해 쐐기를 박듯이 마지막으로 일갈했다.
“네가 그들이랑 다른 게 뭔데?”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히스토리아의 생각을 읽었으니, 그녀를 추궁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아무런 미련도 없이 죽은 척 위장해서 수도로 향했다.
지금 질척거리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해서.
하지만 히스토리아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굳건했다.
“다르지 않아.”
나에게 할 말도, 들어야 할 말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죄책감 조금 때문에 기회를 놓칠 인물이 아니었고.
히스토리아의 입술이 담배를 놓아주었다. 담뱃불은 잠시 숨을 죽이고는 거른 듯 말간 연기를 냈다.
“그러니까, 투항해. 내가 육장성인 동안.”
‘군국의 딸이며, 성실한 군인인 동안. 더 늦으면, 혹은 더 위험인물이 된다면…. 나도 너를 살려주지 못해.’
그럴 거면 애초에 나를 잡으려고 들지 않으면 됐지 않나, 싶다. 왜 굳이 육장성까지 되어서, 내가 살아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계속 추적해온 건데.
못 본 척 했으면 알아서 잘 살았을 거 아니야.
내가 원망스럽게 쳐다보기도 잠시, 히스토리아는 반쯤 피운 마력초를 나에게 내밀었다. 최대한 우호적으로.
한때 마력초를 얻기 힘들었을 시절에는 한 개비도 나눠피곤 했다. 그때 했던 행동으로, 나에게 최소한의 믿음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잡혀도 잘만 하면 살 것이다. 나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정보를 성실하게 토해낼 용의가 있고, 어쩌면 군국도 내 말을 믿어주고는 용서할지도 모르지. 무엇보다 동기가 육장성이니 그 빽도 있고.
하지만 애초에, 잡히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왜 동아줄 하나만 믿고 더 위험한 곳으로 굴러떨어져야 할까.
그리고 그 전에.
“아. 이 말 안 했는데.”
시원한 마력초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질였지만, 애써 시선을 피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 마력초 끊었어.”
찾아든 침묵이 무거웠다. 사방이 너무 고요해져서 잠깐 바람이 멎었나, 생각될 정도였다.
히스토리아가 반박자 늦게 중얼거렸다.
“…그래?”
동시에 히스토리아는 마력초를 떨어뜨렸다. 땅에 떨어진 불꽃을 군화가 거세게 짓밟는다. 그것으로 마음을 다잡은 히스토리아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힘으로 해결할게, 휴이. 기절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 악물어.”
“잠깐만. 그 전에. 선물이 하나 더 있어.”
히스토리아가 다가오기 직전, 나는 발로 상자 뚜껑을 열었다. 잠금쇠가 풀리며 꼭 닫혀 있던 깜짝 상자가 베일을 벗었다. 안쪽에서 새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흘러나왔다.
예상했다는 듯 히스토리아는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싸울 태세를 갖췄다.
‘그럼 그렇지. 네가 맨몸으로 올 리가 없어. 하지만, 휴이. 이번에는 깜짝 놀라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거야.’
긴장된 분위기 속. 짙은 연기 속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건, 흥에 겨운 듯 늘어지는 소리였다.
“냐아아-. 냐. 아?”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들리는, 이토록 짙으면서도 상쾌한 향기. 히스토리아는 냄새를 맡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 잠깐, 이 연기는, 방금 그 마력초?’
“너는 담배도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했지? 자, 선물. 이번 깜짝 상자는, 담배 피는 고양이야. 네가 두 배로 좋아할 선물이지!”
행복한 연기가 가득 담긴 상자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나비. 그러나 벨트 위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자 연기는 순식간에 흩어졌다. 나비는 흐린 눈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건 세차고 찬 바람뿐.
나비가 눈을 떴다. 헛되이 바람을 헤집던 나비는 자기가 얼마나 세찬 바람이 부는 곳에 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냐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자기 행복을 앗아간 바람에 분노했다. 그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상자 속에서 튀어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당연히, 짐승에게 있어 강철 마네킹보다는 사람처럼 생긴 형태가 더 적의를 받기 쉬운 법이다.
거기다 그 사람 발밑에 타다 남은 마력초가 있다면 더더욱.
“휴이, 이 미친 자식이…!”
히스토리아는 날뛰는 고양이의 왕을 상대로 2차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