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10)
EP.210 짜고 치는 게임
“냐아아악! 캬아아아아악!”
“크읏…! 고양이!”
“잘한다, 잘한다! 우리 나비!”
날카로운 발톱이 번뜩였다. 나비의 맹렬한 공격을, 히스토리아는 그녀의 무기인 칼날총으로 나비와 맞섰다.
키기기긱, 발톱과 칼날의 충돌. 당연히, 발톱이 우위다. 칼날총의 이가 나가고 총신에 생채기가 그어졌다. 군국이 자랑하는 4레벨 연금강이었으나 상대가 나빴다.
나비는 짐승의 왕, 그중에서도 나름 강력하여 이름 높은 고양이의 왕이었으니까.
순수한 완력으로는 짐승의 왕을 이길 수 없다. 군국의 딸이라도 마찬가지다. 잠깐 버티나 싶더니, 히스토리아의 팔이 떨리며 뒤로 밀려났다.
‘무슨 속셈이야, 휴이? 짐승의 왕을 폭주시킨다면, 자기도 위험할 텐데. 혹시, 갑옷을 믿는 거야?’
그러나 나비는 놀라우리만치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위협적으로 반짝이는 날카로운 칼날총이 나비를 위협하고 있으니, 나비가 내 쪽에 시선을 돌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혹여나 여유가 생긴 나비가 고개를 돌릴 때면 나는 몸을 우뚝 멈추고는 인형인 척했다. 잠시 이쪽을 의심스럽게 살피던 나비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히스토리아 상대에 전력을 다했다.
‘짐승은 자극에 민감해. 큰 소리를 내거나 상처를 입히면 물러나겠지.’
칼날총이 발톱을 미끄러지며 나비의 손에 생채기를 냈다. 털이 보호하는 앞발은 그 자체로 무기이자 방패. 상처는 얕다.
히스토리아는 손해를 감수하고 힘을 더욱 넣어서 찔러넣었다. 동시에 기공을 집중하여 안을 파고든 채 총을 쏘아냈다.
폭사경, 공파.
총구 속 공기를 압축, 그 자체를 탄환으로 삼는 근거리 충격탄이 나비의 털을 거칠게 헤치며 피부를 찢었다. 폭음에 깜짝 놀란 나비는 전신의 털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물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적의를 불태우며 히스토리아를 덮쳤을 뿐.
거센 힘이 히스토리아를 쳐냈다. 그녀의 전신이 인형처럼 삐걱거렸다.
퉁 날아간 히스토리아가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바로 섰다.
‘물러나지 않아…. 이상하네. 계획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잖아. 휴이, 이것도 네 짓이야?’
아니. 만물의 영장이 그렇게 만들었어. 그러니까 진작 뿌리 뽑았어야지.
‘하아. 위험하네. 아까 당한 상처에, 아침부터 온종일 총을 쏴대서…. 기력이 바닥이야.’
흔들거리는 몸이 위태롭다. 히스토리아는 자꾸만 명령에 반하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달려드는 나비를 두 눈에 담았다. 앞발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는 나비는 발톱과 앞발을 무기 삼아서 계속 히스토리아를 몰아붙였다.
털과 발톱의 폭풍 속에서 히스토리아의 신형이 흔들린다. 발차기로 빈틈을 노려도, 기습적으로 총탄을 갈겨도, 사슬과 칼날로 적을 혼란스럽게 해 봐도.
나비는 짐승의 감으로 피하거나 아니면 버티고는 공격했다.
히스토리아는 테크니션. 타고난 센스로 온갖 묘기를 부리는 전투 전문가다. 그러나 상대가 나쁘다.
압도적인 힘을 앞세운 동시에, 살의나 위협은 짐승의 감으로 피해버리는 짐승의 왕.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모르겠으나, 아직은 짐승의 왕을 이기지 못한다. 하물며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공격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죽겠는데.’
순간적으로 히스토리아의 뇌리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뒤, 사고의 방향이 가장 먼저 원망스럽게 나를 향했다.
‘정말로, 나를 죽일 셈이구나. 휴이.’
씁쓸한 감정과 함께, 이번에는 총구가 나를 겨눈다.
어라. 왜 갑자기 나를? 설마 나를 길동무 삼을 셈이야?
‘이정도는… 참아. 내 마지막 투정이야.’
나비와 싸우는 와중 나를 공격할 여유 따윈 없다. 이건, 말 그대로 목숨을 버린 일격. 동귀어진에 가깝다.
나는 급히 몸을 틀었으나, 히스토리아의 총구는 또렷하게 나를 따라왔다. 가늠쇠 속에 내 허벅지가 보였다.
타앙.
총탄이 나를 곧게 노리고 날아왔다. 그러나 총탄이 쏘아지기 직전 내 앞을 가로막은 그림자가 있었다. 입에 보자기를 문 아지였다.
“멍!”
나를 지켜주겠다고 선언한 아지는 고개를 휘둘러 총탄을 쳐냈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고, 어차피 목숨까지 앗아갈 공격은 아니라서 막지 않아도 무방했지만, 아지는 본인의 의지로 나를 지켰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개의 왕에 의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한 히스토리아는 짧게 탄식했다.
“…아.”
그 위로 나비가 달려들었다.
히스토리아는 이제 거의 땅을 뒹굴었다. 이제 자세를 가다듬지도 못한다. 머리카락과 옷이 형편없이 헝클어지고, 그녀의 의식마저도 흐릿해졌다.
그런 그녀를 끝장내기 위해 나비가 승자다운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승리에 취했는지 나름 상쾌한 얼굴이었다. 한껏 내민 손톱이 섬뜩하게 빛났다.
‘끝…인가?’
나비도, 히스토리아도 끝을 직감한 그때.
아지가 움직였다.
“멍멍.”
“냐하악! 냐, 냐?”
순식간에 히스토리아 앞으로 나선 아지가 나비를 제지했다. 나비는 신경질적으로 하악거렸으나, 아지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자 찔끔 겁을 먹고는 뒤로 물러났다.
나비가 반항하듯이 울었다.
“냐아! 냐아! 냐아!”
“멍, 멍. 으르르.”
“냐…! 냐!”
무슨 말인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해 못 하는 내가 정상이겠지? 나는 지극히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며 개와 고양이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냐아아아아! 하나하나 스트레스다냐! 이 멍멍이…!”
결국 히스토리아를 끝장내는 것을 포기한 나비는 세로로 된 동공을 더욱 좁히며 고개를 내쪽으로 홱 돌렸다. 무차별적인 공격성이 이제 나를 향했다.
내가 짐승의 마음은 읽을 수 없지만 짐승을 보고 겁먹을 줄은 안다.
나비, 저건 지금 나를 공격할 셈이다!
나비는 나를 향해 달려들려는 듯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용수철처럼 접은 몸을 펴서 도약하려는 순간.
어느새 다가간 아지가 나비의 발목을 꽉 물고 늘어졌다. 나비는 도약하려는 자세 그대로 잡아채여 땅에 머리를 박았다. 엉망이 된 나비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냐학! 또! 또 방해다냐!”
“멍. 우물우물.”
“냐아아아! 냐아아아아! 냐를 물지 마라냐!”
어지간한 곰덫보다도 강렬한 악력이다. 거기에 붙들린 나비는 억울한 듯 짜증나는 듯 신경질을 부렸으나, 그러면서도 아프고 무서운지 애처롭게 냐냐 울기만 했다.
좋아. 나비, 잘 써먹었다. 이제 보상을 줘야지.
예비용으로 챙겨온 마력초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익숙한 향기가 나자마자 나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힘들지? 자, 다시 착해져라.”
“냐? 냐!”
나비는 발목이 물린 채로도 몸을 주욱 늘여서 마력초를 낚아채려고 했다. 아지에게 눈짓을 건네자 아지가 슬그머니 나비의 발목을 놓았다. 그러나저러나, 나비는 마력초를 향해 쫄래쫄래 따라왔다. 손안에 마력초를 담고 살랑살랑 유인하며 상자까지 향했다. 연기 나는 마력초를 상자 안에 톡 던져넣으니 나비도 상자 안으로 샥 들어갔다.
연기가 상자 안쪽에서 솟아오른다. 나비는 뭐가 불편한지 손으로 상자 벽면을 탕탕 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냉큼 상자의 뚜껑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되찾은 고요. 담배 피는 고양이는 상자 속으로 되돌아갔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진이 다 빠진 히스토리아는 허탈하게 상자를 바라보았다.
“…흐. 그러게. 깜빡했네. 짐승의 왕이, 온전히 누구 편을 들 리가… 없는데.”
맞는 말이다. 짐승의 왕은 관념의 존재.
내가 수인도 아닌데, 흥분한 나비가 나만 무시할 리 없다. 강철 마네킹처럼 서 있으니 잠시 공격 대상에서 벗어났을 뿐.
마찬가지로, 왜인지는 몰라도 아지가 특별히 나에게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개의 왕. 한낱 고양이가 인간을 죽이려 드는 걸 용인하지 않는다. 만일 히스토리아가 모든 저항을 포기했다면 아지는 히스토리아를 보호했겠지.
군국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구태여 짐승의 왕을 전력으로 치지 않았다. 짐승이 혈향을 풀풀 풍기는 시조를 적대하면 모를까, 이쪽 편을 들어서 군국과 맞서 싸우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처럼, 조금 더 잘 쓰는 방법이 있기 마련.
그러니까 쓸데없이 힘이 세서 그래. 나처럼 연약해봐. 처음부터 저항을 포기하고 아지에게 맡겼다면 힘이 안 빠졌을 거 아니야.
어쨌건 히스토리아는 나비와의 연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 아직 만전인 나는 철갑옷을 쩔그럭거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포기해. 지금, 너 하나 때문에 저쪽도 상당히 무리하는 모양인데.”
회귀자와 프렐비요르, 티르와 절창이 맞서는 가운데, 총사대와 장성들은 전장을 뛰어넘어 이쪽으로 다가오려 하고 있다.
지금은 상성 상 우위인 티르와 회귀자가 막아내곤 있지만, 저 중에서 한 명이라도 놓친다면 나는 군국의 딸내미가 처한 위기에 분노한 장성이랑 1:1로 맞서야 한다. 안타깝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는 시간을 끄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은 단념하게 하자.
“…흐. 다 죽여놓고. 여기서 포기하라고?”
“솔직히 도망치려면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잖아? 벨트에서 뛰어내리기만 해도 되니까.”
군국의 작전서에는 그게 분명 있었을 터다. 메타컨베이어 벨트의 앞을 막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면, 벨트 밖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면 소수인 우리쪽은 추격하기 곤란해진다.
만일 추격한다면 본대와의 거리는 훨씬 빠르게 가까워지며, 도망칠 시간을 소비하는 셈. 저쪽이 훨씬 유리해지니까.
“만신창이가 된 네가 뛰어내리면 총사대와 장성도 같이 물러나겠지. 너는 안전해지고, 우리도 안전해지고. 그러면 윈윈 아니야?”
“…아니, 전혀.”
그러나 내 제안을 거부한 히스토리아는 한계에 이른 몸 상태로 힘겹게 내 앞에 섰다. 히스토리아는 힘겹게 떨리는 팔로 나를 가리켰다.
“어떻게 찾은 단서인데…. 이리 보내라고? 여기서 놓치면, 군 당국은 아예 추격을 단념할지도 몰라. 그건, 안 돼.”
고집하고는.
하지만 대충 예상한 결과다. 당연히 이때를 위해 준비해둔 제안도 있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이쪽 제안을 들어주는 편이 훨씬 좋고.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어, 리아. 어때, 들어볼래?”
“…네가 하는 제안치고, 제대로 된 게 없었는데.”
“안 들을 거야?”
“간 보지 말고 일단 말해.”
‘알면서도 속았고, 그걸 눈치챘으면서도 속였으면서 새삼스럽게.’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좋은 상품을 권하는 판매원처럼, 히스토리아에게 아주 온화한 어조로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