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17)
EP.217 과거의 이야기,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3
먼 옛날, 인간은 본디 짐승이었다.
도구를 쥘 수 있는 손과 언어를 빚어낼 수 있는 혀를 신이 내린 선물이라 칭송하지만, 사실 잘난 척 말한 것치곤 다른 짐승에 비해 크게 특출난 특징은 아니다. 평범한 다른 짐승들이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쓸 만한 개성이었을 뿐.
인간은 그저 이 땅을 거니는 짐승 중 하나였다.
눈앞에 먹이가 있으면 먹고, 자기 씨를 흩뿌리기 위해 노력했다.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말 그대로 필사적인 노력이라, 굳이 상대나 상황을 가리지 않았다.
그 노력에는 같은 인간을 사냥해 먹이로 만드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살인, 강간, 멸족, 강도. 그 모든 것들은 따로 이름 붙여지지 않은 채 야만 속에서 상식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다른 모든 짐승과 마찬가지로.
그러던 어느 순간. 인간은 존엄을 찾았다.
야만을 경멸하며 법과 도덕을 세웠다. 처음의 성녀가 이 땅에 떨어지고 인간의 왕이 자취를 감추었을 때, 인간은 진정으로 지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온갖 야만을 금기로 취급하고 역사 이전에 묻어버린 채, 그들은 세상 위에 서서 옳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정의와 불의를 정했다. 그 속에서 인간은 번영과 질서를 발견해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토 속에 묻혀있을 뿐. 금기는 여전히… 존재했다.
“말도, 말도 안 돼…. 니콜라스. 그런 짓을 저지르겠다고?”
뜻밖의 소식을 들은 란카르트는 눈을 크게 뜨고는 펼친 책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그의 눈동자는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을 보듯, 혐오와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수단 방법 가릴 처지가 아니라도… 이건, 이건! 너무하잖아!”
어찌나 공포에 질렸는지, 어지간해서는 겁먹지 않던 그조차도 격하게 몸을 떨었다. 제 팔을 애처롭게 붙잡고 흐느끼며, 란카르트는 거칠게 포효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토록 비효율적으로 먹일 생각을 하냐고! 재료가 있으면…! 그 재료의 목숨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완벽하게 포식시켜야지!”
란카르트는 마법사다. 마도장교는 그 특성상 온갖 고문서에 대한 열람권을 지닌다. 란카르트는 우연한 기회에…라고 하기에는 조금 노골적으로 금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금기에 대한 어떤 기밀정보를 접했을 때, 그는 환호해서는 즉각 니콜라스에게 찾아갔다. 친구를 위해 조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척 그의 앞에 내밀었다.
계획은 성공했으나, 어디까지나 일부 뿐이었다.
거세게 감정을 내뱉은 란카르트는 머릿속 지식을 입 밖으로 꺼내 정리했다.
“1종 금기. 탐식. 죽이고, 피와 살로 목을 축여, 그들의 힘을 얻는 금단의 의식. 가장 손쉽기에, 가장 끔찍한 금기.”
금기, 라고 부르기도 힘들 것이다. ‘탐식’ 자체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인 농작물, 혹은 그것들을 먹고 자란 짐승의 고기. 인간은 그것을 취하고 강해진다. 이로 씹고 목구멍으로 넘겨 몸 안에 품으며, 자기 육신을 성장시키고 그 안에 스며들어있던 마력과 기력을 얻고 건강해진다.
아주 간단히 말해, 탐식은 곧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의 총칭.
“하지만 기본적으로 몸 밖의 것은 몸 안의 것과 달라. 분해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지. 그렇기에 탐식은 아주, 아주 비효율적이야. 무언가를 변환하기 위해선 그만한 손실을 요구하는 법이니.”
그렇기에 금기이다. 이 탐식으로 힘을 얻으려고 하였던 이들은, 고작 티끌만큼 강해지기 위해 수천 수만의 목숨을 먹어치웠으니까. 역사적으로 폭군, 재앙, 혹은 악마라 불렸던 이들은 흔히들 이러한 방식으로 힘을 얻곤 했으며, 대부분 토벌당했다. 1의 힘을 얻기 위해 100을 먹어치운다 한들, 그동안 쌓은 업보가 너무 커져 감당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단, 탐식을 꼭 그토록 커다란 규모로 해낼 필요는 없다. 효율을 중시하는 몇몇 인간들은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다.
“3년간 동일한 기공을 익히고 비슷한 마력을 길렀으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생체 주기를 가졌어. 다른 사람, 이라고 하기엔 닮은 부분이 너무, 너무 많지. 참으로 완벽한 상황이야… 마치, 처음부터 이걸 염두에 둔 것처럼.”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규모가 조금 있다 하는 비밀 조직 중에서는 고아를 거둬 오랜 기간 같이 기르다가 하다, 한 명만 남기고 다 포식시키는 경우가 수두룩하여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탐식이 군국이 학교를 만든 이유 중 하나라는 건 분명했다. 다만, 그 금기가 지금까지 한 번도 행해지지 않았을 뿐.
준비해낸 것치고 놀라운 일이긴 했으나 란카르트는 그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하긴. 나나 그 멧돼지 여자에게는 전혀, 전혀 필요하지 않지. 고작 백, 이백 먹어 치운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 히스토리아 그년은 실제로 혼자 이백 명을 상대로 승리하기도 했고….”
세상은 합리성 위에 서 있다.
지금까지 군국이 백 명의 학생을 희생시켜 한 명에게 힘을 몰아주지 않은 것은, 그렇게 만들어낸 어정쩡한 인공 초인 한 명이 다른 백 명보다 가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쭙잖은 정의나 도덕 문제가 아니라, 그게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다만. 휴이에겐 의미가 남달라. 그 녀석은… 힘의 크기만 부족할 뿐. 다루는 능력은 충분하니.”
만일 힘을 탐식하는 편이 더욱 합리적인 경우가 나타난다면. 그때 군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같잖은 정이 들었다고.
모두가 터부시하는 금기라고.
지금껏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고.
오직 부정하기 위한 부정을 해가며, 합리성을 외면할 것인가.
“군국은 시험에 통과했어. 이 나라에서 일할 가치는 있겠어….”
니콜라스는 짧은 고민 끝에 휴이에게 학생들을 먹이기로 결정했다. 단, 그는 조금 비효율적인 방식을 택했다. 그들끼리 서로 죽이게끔 한 게 아니라, 죽음의 위기 속에 몰아넣고자 한 것이다.
란카르트와 히스토리아, 그리고 기타 타 직군 진학생 38명을 제외한 162명의 학생은, 실습을 위해 하멜른 강을 따라 올라가는 도중 조난할 예정이었다. 늑대와 멧돼지, 악어가 사는 숲에서 이틀 동안 생존해야 할 것이다.
…아마, 캠프에는 금기개진이 설치되어 있겠지. 누군가의 피가 양식이 될 수 있도록.
“ 그 방법은 저열하기 짝이 없지만, 그거야 내가 손을 좀 대면 되니. 그런데 니콜라스, 왜 그런 애매한 방법을 썼을까… 설마?”
합리성을 찾던 도중, 가능성 하나를 떠올린 란카르트는 아연실색했다. 말도 안 되는 가설이었다. 제 생각에 어이가 없어진 그는 배꼽을 잡고 한껏 웃기 시작했다.
“혹시, 혹시 니콜라스. 휴이가 그 기회를 차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하! 하하하! 설마,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는 천재라고. 분하게도, 나보다 더한! 그런 괴물이, 고작 무언가에 얽매일 것 같아?!”
한참을 웃은 그는,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웃음을 딱 멈췄다. 갑작스레 찾아온 적막은 조금 전의 광소와 대비되어 더욱 섬뜩한 느낌을 풍겼다.
란카르트는 가설을 부정하듯, 혹은 부정하게끔 만들어버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건 시험이야, 휴이. 나는, 나는 너를 믿어. 누구보다, 심지어 나보다도… 재능이 있는 너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란카르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둡게 중얼거렸다….
“믿어줘서 고마워, 란카르트. 하지만 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엥? 그 새끼 이름이 여기서 왜 튀어나와?”
필기 시험이 끝나고 다들 힘이 쭉 빠진 채 걸어 나오는 동안, 히스토리아와 나는 여유롭게 시험장 바깥 그늘에 자리를 잡은 채 앉아있었다. 우리 둘은 시험과는 동떨어진 사람 같았다.
실제로도 동떨어져 있긴 했다.
히스토리아야 사관학교 입학도 전에 별을 달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연일 이야기가 오가는 이레귤러이고, 나야 1등인 게 상수인 걸어다니는 성적상한선이었으니까.
히스토리아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 이번에도 예상대로 내가 1등할 것 같아서.”
히스토리아는 오늘 지은 것 중 가장 큰 미소를 지었다.
“유감이네! 그 자식, 이번에야말로 이겨보겠다며 매일 책 끼고 다니던데.”
“맞아. 열심히 하더라고.”
덕분에 나도 덕을 좀 봤지 뭐야. 그 녀석 공부한 거 그대로 읽어서 써먹으면 되니까.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다른 사람 거 참고해도 되고.
나에게 있어서 시험이란 퍼즐 맞추기 비슷한 것. 적당히 주워다가 들어맞는지 확인해보고, 아니면 거르고 맞겠다 싶으면 톡 갖다 붙이면 된다. 그러면 빈 곳에 딱 맞물리는 정신적인 쾌감이 나를 자극했다.
이건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마음을 읽을 뿐이지 정답을 아는 게 아니다. 누군가 정답이 3번이라는 걸 확신했다고 냉큼 물었다간 둘 다 사이좋게 틀리는 경우가 있다.
시험이란, 정답을 맞추는 게 아니라 믿음과 현실의 괴리를 배우는 행사. 군국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겠지만 독심술 훈련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그런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시험도 1등인 것 같네. 란카르트에게 전해. 1등은 내가 없는 곳에서나 하라고.”
“낄낄. 그 말, 그대로 전해도 돼?”
“내가 감히 허락하지 않은 척해줘. 그 자식 내가 위선떠는 꼴을 더 싫”
“내 전문이지! 그 자식 분해하는 모습은 매년 봐도 질리질 않아!”
“…리아. 그런데 너, 실기 가산점 빼면 란카르트보다 점수가 낮.”
히스토리아는 웃는 낯 그대로 내 어깨를 잡았다. 양철 수통조차 우그러뜨리는 악력이 내 뼈를 상대로 그 힘을 시험하려고 하고 있었다.
“으응? 휴이. 한마디만 더 하면, 대련 시험에 있었던 1번부터 7번 동작에 대해 다 까발린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너도 나랑 동작 안 맞춰뒀으면 2등 될 수도 있었어. 앞으로는 조심해. 까불지 말고.”
언제나처럼 장난을 치며 실없이 웃던 히스토리아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돋아난 정수리가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히스토리아는 얼굴을 묻은 채로 작게 속삭였다.
“…졸업 실습, 조심하고.”
홱. 언제 약한 모습을 보였냐는 듯, 그녀는 곧장 고개를 젖히며 싱긋 웃었다. 힘찬 움직임에 따라서 길게 땋은 머리카락이 그녀처럼 활발하게 움직였다.
“야! 이번에 끝나면, 네가 갈 곳을 정해야지! 어떤 사관학교를 가냐에 따라서 미래가 바뀌니까!”
“그래. 그것도 고민해봐야지.”
“잘 생각해보는 게 좋아! 정 갈 데 없을 것 같으면, 내 부관으로 와! 나는 장성이 될 거니까, 네 자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어!”
불안한 마음을 억누른 채, 밝은 미래를 그리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히스토리아. 왜 불안해하는 걸까. 생각을 읽은 결과 탐식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데.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걸까.
아니면 그냥 졸업과 이별 그 자체를 조금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다른 아이들처럼.
잘 모르겠네. 인간의 감정은 워낙 복합적이라.
나 역시, 그녀의 바람에 따라 애써 밝은 척 대꾸했다.
“에이. 그래도 가오가 있지. 어떻게 3등의 부관으로 1등이 가냐.”
“2등이라고!”
그래도 지금 밝은 모습은 탐식에 대해 모르기에 가능한 거겠지.
만일.
히스토리아가 탐식에 대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변할까?
긍정할까, 아니면 부정할까?
잘 모르겠다. 내가 독심술사이지만 미래를 아는 건 아니니까. 단지 추측할 뿐.
“히스토리아. 만약 뭔가 문제가 생기면… 나 좀, 도와줄래?”
“…갑자기 뭔 소리야, 그게. 어디 죽으러 가?”
그러나 말할 수는 없다. 이건 니콜라스도, 란카르트도 꽁꽁 숨겼던 기밀 중의 기밀이다. 일개 학생 역할을 가진 내가 나를 둘러싼 음모를 알아차린다면 분명 그 출처를 추궁당할 터.
독심술을 가졌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되며,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져선 안 된다. 내 유일한 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는 없으니.
모든 것을 공유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홀로 고독하다. 왜 하필 나일까 싶어도 대답해주는 이 없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무서워서. 악명 높은 졸업실습이잖아. 죽는 사람도 왕왕 나온다며.”
“겁쟁이처럼 굴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히스토리아는 기쁜 얼굴이었다. 그녀는 풋풋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흔들었다.
“구해줄게. 대신, 내가 너를 구하면 내 부관이 되는 거다?”
“생각해보니 1등이 3등한테 부탁하는 게 아이러니다. 취소. 그냥 나 혼자 해낼게.”
“야!”
히스토리아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며 나는 집합소로 향했다.
가는 사람은 많지만 오는 사람은 몇 안 될, 일방통행의 실습이 시작될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