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22)
EP.222 과거의 이야기,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마무리
“총교관을… 장교를… 대령을 죽였어. 어떻게 해?”
“그 새끼는 죽어도 싸! 릭크도 칸타나도 죽었다고! 죽였으면, 죽는 게 당연하잖아!”
“하멜른에, 아니, 군국에겐 어떻게 말할 거야? 아니, 구조대가 오기는 할까? 우리 여기서 버려진 거야…?”
“잘 설명하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보다, 금기가 뭔데? 금기가, 도대체 뭔데 총교관이 우리를 죽이려던 건데?”
“멍청아, 그것도 모르고 싸웠냐! 아까 휴이가 설명했잖아. 뱀파이어릭 마법진이라고!”
짐승의 습격에서 열일곱이 죽고, 니콜라스와의 전투로 열다섯이 전사했다. 피해는 컸지만 솔직히 말해서 말도 안 되는 위업이었다.
숙련된 사냥꾼들도 광란하는 사슴과 배회하는 늑대를 상대로는 일단 물러난다.
거기다 대령이라면 장성 바로 아래. 강함은 천차만별이지만, 그래도 잔뼈가 굵은 군인이다. 재능을 인정받은 사관생도라면 모를까 평범한 군사학교 졸업생으로는 대적하기 힘든 상대인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기엔 그들이 잃은 게 너무 많았다.
“…다들, 닥쳐.”
지혈을 끝마친 시아티는 천으로 감싼 절단면을 움켜쥐고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살아있는 사람 중, 이 싸움에서 가장 큰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비틀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휴이. 나는 너를… 믿지 않아. 우리를 이 지경까지 만든 건, 너니까.”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티는 창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너의 지시는 틀리지 않았어. 너의 지시를 따른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까… 알려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시아티가 음울하게 물었다. 텅 빈 눈동자에는 미래를 향한 한 점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어디까지나 그녀에게 방향을 가리킬 화살표였다.
그러나 나는 바람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텅 빈 그녀의 마음을 향해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어떻게든.”
“그래도 네가 뭘 원하는지 알면 조금 더 판단하기 쉬울 거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칠까? 아니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니콜라스의 부정을 폭로할까? 어떤 방식을 원해?”
내가 묻자 잠시 뒤, 시아티는 다시 초점을 되찾았다. 텅 비었던 눈동자에는 이글거리는 증오만이 가득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면, 그것을 들어줄 수 있어?”
“할 수 있는 만큼은.”
“군국이,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시아티가 즉답했다.
“한평생 하란 대로만 해왔어! 일하고, 배우고, 혼나고, 공부하고, 시험을 치고, 평가받고. 조금이라도 더 군국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참고, 아파도 견디고, 힘들어도 남 몰래 울면서도, 더 좋은 평가를 받아서, 뭔가를 하려고 했어! 그런데!”
감정에 치우쳐진 외침은 백 명이 넘는 아이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바람을 읽는 나 자신에게 여과없이 다가왔다. 시아티는 사라진 오른팔을 더욱 꾹 움켜잡으며 절규했다.
“이건, 아니잖아! 재료로 쓰는 건, 아니잖아…! 아무리 우리가 필요 없어도, 흔해 빠진 2레벨이어도…!”
군국에게 2레벨 이하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이들. 있어도 없어도 그다지 아쉬울 것 없는 존재다.
그래서 버렸다.
사관학교 진급생들은 그대로 놔둔 채, 절실한 나머지만을 데리고 왔다. 재료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이들은 진정으로 나라에 버려졌다. 너희 따위는 없어도 된다…고, 군국이 나서서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울부짖는다고 해도. 이 나라에는 들리지 않을 거야. 보상은커녕 우리를 죽여 입을 막으려고 들겠지. 니콜라스 말대로, 우리는 군국에 있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니까.”
시아티가 말을 마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도 푹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울분에 찬 외침 덕분에 애써 부정하던 현실을 되새기고야 말았다.
결국… 군국은 하멜른 사태를 묻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모두 죽는다.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간단하고 냉혹한 사실을.
“쓸모 있게 되고 싶어?”
그때. 아이들 틈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기척에 깜짝 놀랐다. 붉은 머리의 소년은 처음부터 그 속에 있던 것처럼 느긋하게 다가왔다.
몇몇 아이들이 그를 알아보았다.
“란…카르트?”
란카르트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도, 고개를 돌려보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내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로 일직선으로 걸어왔을 뿐이었다. 이 숲에서 발 아래도 확인하지 않고.
그뿐인데, 그의 반걸음 앞에 저절로 소용돌이가 일며 수풀을 헤치고 먼지를 날려버렸다. 마치 세상이 그를 위해 앞을 청소해두는 듯했다.
군국 최초의 신비. 전략 급 고유마도를 지닌 소년. 마도사의 재목.
란카르트 스펜드라이.
잔가지가 널린 숲속에서 혼자 말끔한 차림으로 선 란카르트는, 난데없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대단해. 정말, 진실로 예상 밖의 사태였어. 혹시나 했는데 설마, 니콜라스를 죽이고 그를 먹어치울 줄은.”
느닷없는 등장에 모두가 말문이 막힌 사이, 란카르트는 혼자 거세게 치고 있던 손뼉을 멈추고는 짐짓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렇지만 너도 알지, 휴이? 니콜라스는 너와 너무 다른 존재야. 그는 늙었고, 찌들었고, 기력 속성도, 기력량도 너와 달라. 극도로, 끔찍하게 비효율적이지. 탐식으로 그를 먹어도 네 기량에 극적인 변화는 없어.”
“란카르트. 다 아는 이야기는 언제까지 할 거야?”
내가 짜증스러운 태도로 내뱉자 란카르트는 말을 하다 말고 움찔거렸다. 나는 팔짱을 끼며 그를 다그쳤다.
“네가 좋아하는 효율적인 대화를 해야지, 란카르트. 설마 네가 나의 지적 수준을 의심해서 처음부터 가르치는 건 아닐 테고.”
“아, 어어, 음.”
“용건만 말해. 나 피곤하니까.”
“아, 알았어, 미안.”
주눅이 들어 사과한 란카르트는 빠르게 용건을 꺼냈다. 단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남은 녀석들을 먹어.”
몇 번의 비약을 거쳐서 나온 결론. 그러나 독심술을 가진 나는 란카르트의 말을 단숨에 이해했다.
어차피 죽을 처지다. 내가 죽이지 않더라도 군국이 죽일 것이다. 그러니까 의미 없게 죽일 바에야, 금기개진 위에서 죽여 내 힘으로 만드는 게 효율적이다.
거기다 이들은 나와 생체적으로 모든 것이 맞추어진 최상의 재료. 니콜라스와는 달리 ‘탐식’이 조금 더 매끄럽다. 지금 기회가 아니면 먹어봤자 의미가 없으니 지금 먹어라… 뭐, 그런 뜻이었다.
당연히, 방금 구사일생한 시아티는 격하게 반응했다.
“란카르트! 재수없는 자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도 니콜라스의 하수인이냐…!”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는 닥쳐. 내가 저딴 패배자의 하수인일 것 같아?”
불쾌해진 란카르트가 고개를 홱 돌렸다.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압력이 시아티를 짓눌렀다. 시아티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란카르트의 고유마도가 그녀가 선 곳까지 닿았기 때문이다.
비틀어진다.
란카르트로부터 가까운 곳은 빠르게, 먼 곳은 느리게. 공기를 포함한 세상 만물이 서로 다른 속도를 갖고 오른쪽으로 소용돌이친다.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흐름 속에서 시아티는 누군가 몸을 붙잡고 찢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으학, 으끄아아악!”
시아티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소리마저도 기이하게 멀리 들린다. 공간이 비틀어지는 고유마도 속에서는 소리마저도 길을 잃고 헤매기 때문이다.
손도 쓰지 않고 시아티를 제압한 란카르트는 다시 시선을 나에게로 향했다.
“만일 네가 손을 더럽히기 싫다면, 나, 이 내가 해주지.”
“귀찮을 텐데.”
“뭘. 친구를 위한 일인데. 이 정도, 요만큼의 귀찮음은 감수해주지.”
물론 란카르트가 말한 ‘친구’라는 존재는 오직 나 하나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시아티를 구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다가오기는커녕 내뻗은 팔조차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찻잔 속에 생긴 폭풍우를 일직선으로 가로지를 수는 없다. 비스듬히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용돌이치는 공간의 미로를 단번에 꿰뚫어보고 극복해낼 수 있을까.
무리다. 누구도 그의 허락 없이는 다가가거나 물러날 수 없다. 심지어 나조차도.
오른손잡이의 세계.
그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오른쪽으로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다. 세계의 이치. 그 흐름. 따르지 않으면 충돌하여 휘말린다. 수포를 일으키며 가라앉고 만다.
그 세상의 주인인 란카르트는 금방이라도 시아티를 잡아 비틀 듯이 힘을 주며 말했다.
“아. 참고로. 네 말마따나 네가 나를 방해하더라도, 나는 네 방해를 뿌리치고 이들만 다 죽일 수 있어. 난 니콜라스 따위랑은 달라. 휴이 너도 나름 숨겨둔 비장의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못 닿으니까.”
란카르트는 니콜라스처럼 설득하지는 못할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 눈은 흥미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어떤 대응을 할지 궁금한 사람처럼.
그렇지만.
“란카르트. 좀 재미없게 굴지 마.”
짜증이 나서 툭 내뱉었다. 란카르트가 의아해한다.
내가 남의 바람을 잘 들어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재미있게 해달라는 어린애 떼쓰기를 하나하나 들어주진 않는다. 귀찮거든.
“방금 나는 너와 니콜라스의 시험을 보고 대답을 들려줬잖아? 똑같은 대답을 또 시킬 셈이야? 상수만 바꾼 똑같은 문제 낸다고 투덜거리던 란카르트 스펜드라이는 어디 갔어?”
“아니, 아니. 나는.”
“일부러 힘을 조절해서, 아프지만 죽지는 않게끔 마법을 가한다…. 협박이잖아. 안 통하는 거 알면서 마력이나 낭비해? 짜증나게 하지 말고 마법 거둬.”
란카르트는 일단 내 말에 따랐다. 바깥과 안쪽으로 몸을 쥐어뜯던 힘이 풀리고, 시아티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땅과 맞닿은 얼굴 틈으로 고통 섞인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그럼 어쩌려고? 구조선이, 교관들이 올 거야. 여기 몇 명만 골라서 심문해봐도 이 사건의 전말을 금방 알아차리겠지. 일단 보고가 위로, 사령부로 올라가면 군국이 내릴 ‘합리적’인 판단은 분명….”
“서로 아는 이야기 하지 말자고 했지.”
“아, 응.”
정작 자기도 합리성을 믿지 못해서 이것저것 시험하려는 주제에. 그런 시험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언제 알아차릴지.
란카르트의 입을 다물게 한 나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한마디로 이런 말이잖아. 이 난관을 타파할 다른 대응은 있을 수 없다. 아니, 있을지 모르지만 정확히 란카르트 너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타파하려는지 내 대응이 궁금하다. 맞지?”
“딱히 그건… 잠깐만. 너는 이 상황을, 난관을 타파할 수 있다고?”
“난관이니, 상황이니. 모르겠으면 닥치고 지켜나 봐. 왜 자꾸 끼어들어서 물을 흐려?”
한 번 더 구박해서 기를 죽여놓은 나는 냉큼 손을 휘저었다.
“가서 강 막고 있는 것만 치워 봐. 하류에서 할 게 있으니까.”
“그래봤자. 강의 끝은 바다다. 원시의 공포, 해흉이 바다에 사는 이상 어차피 도망은 불가능….”
“또, 또 다 아는 이야기.”
내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자, 란카르트는 입을 꾹 다물고는 황급히 강변으로 향했다.
내 요청은 억지나 다름없다. 들어주고 말고는 오직 란카르트의 의지에 달려있으며, 들어주지 않아도 하등 문제는 없다.
하지만 방해 말고 지켜보라는 말에 수긍한 이상, 그는 내 요청을 들어야 한다.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졌기 때문에, 그 준비를 도와야만 하는 굴레에 빠졌다.
란카르트가 강변으로 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칠게 우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댐처럼 강을 막고 있던 표류물들이 단숨에 부서진 것이다. 백여 명이 매달려도 어려웠던 일이 란카르트의 고유마도 앞에 저토록 손쉽게 끝났다.
마법. 세계의 규칙을 덧씌우는 신비. 그것을 자기 뜻대로 다루는 이에게, 고작 구조와 무게로 지탱하고 있는 표류물 따위 간단하게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시아티!”
“…큭, 그래. 한 명이… 백 명보다 낫, 지.”
시아티는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일어섰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다 포기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길이…생겼네.”
“란카르트…! 친구로 보진 않더라도, 최소한 동기인 줄 알았는데!”
한때 란카르트의 추종자였던, 그러나 더 소중한 정이 든 캐러팔드는 시아티의 부상에 격분한 반응을 보였다. 캐러팔드는 자기가 란카르트의 마법을 동경하고 두려워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로 외쳤다.
“다들 나를 도와줘! 저 개자식에게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못 견뎌!”
“가만, 있어. 흐. 팔 잘린 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냐.”
캐러팔드를 붙잡고 헐떡거리던 시아티는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되뇌었다.
“방금 내가 겪은 게, 우리 모두가 앞으로 겪을 신세야. 다들 익숙해지는 게, 큭, 좋아. 군국도, 그 누구도. 우리를… 돕기는커녕, 신경조차 쓰지 않을 테니.”
아이들이 처량하게 고개를 숙였다.
란카르트 한 명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그들이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이겨낼 가능성은 없다.
조금 전 이겨냈던 대령조차 미리 준비한 함정과 열다섯 명의 용감한 희생 끝에 간신히 격퇴했지만… 군국이 제대로 힘을 쓴다면. 꽝 복권이나 다름없는 학생 백서른 명은 잡초처럼 뿌리 뽑히고 쓰레기처럼 버려지리라.
누군가 외쳤다.
“씨발…! 내가, 뭘 잘못했는데!”
고양감이 가라앉고 울분만이 남는다. 전투의 흥분 속에서 잊힌 고통과 슬픔이 다시 찾아오고, 잠시 반짝였던 불꽃이 꺼지며 어둠이 몰려왔다.
그들은 갈 곳을 잃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조차 그들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 구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적군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으니까.
모두 길을 잃고, 나아갈 곳을 잃고, 희망과 의지마저 잃은 채. 그저 울분만 속으로 삼킨다. 그러는 와중에도 누군가 길을 밝혀주기만을 소망한다.
만일 이곳에 천신교의 위세가 펼쳐졌다면, 그들은 신에게 기도했겠지. 이 시련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천국으로 이끌어달라고.
그러나 세상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다. 죽음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종말이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먹기 좋게 가공된 믿음은 인공적인 것. 인공이라 하면 흉내 낸 거짓에 불과하다. 가장 좋은 것은 몸 안에 둔 채, 나쁜 것만 배설해낸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다.
“지옥에나 떨어져….”
그래도 나는 그 소망에 응해야 한다.
희망마저도 잃고 아무도 길을 떠올리지 못하며, 간절한 소망만이 가슴에 자리 잡은 한가운데.
나는 차갑게 식은 호각을 입에 물었다.
구조선은 표류물이 잔뜩 쌓인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분명 이곳에 머물렀던 흔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어딘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흔적으로부터 추측하건대 짐승의 습격을 받았고 격렬한 전투를 벌인 듯했다. 사방에 핏자국이 널려있고 무언가 묵직한 것을 강가로 끌고 간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와중 나무에 새겨진 검흔을 알아본 누군가가 조심스레 지적했다. 니콜라스 총교관이 칼을 휘두른 흔적이 있다고. 상대는 조직된 다수의 일반병, 아마 학생들 같다고.
교관들은 혼란에 빠졌으나, 이윽고 분개하여 수색을 더욱 서둘렀다.
니콜라스가 굳이 이런 오지에서 아이들을 공격할 이유는 없지만 아이들은 니콜라스를 공격할 이유가 충분하다.
졸업실습에 참가한 교육생들은 경쟁에서 도태된, 2레벨이 확정된 실패작들이다. 그들이 수석인 휴이나 총교관 니콜라스에게 억하심정을 품고 협박 혹은 공격을 가한 게 틀림없다…고 교관들은 판단했다.
어쨌건, 수색을 서두를 필요성이 늘었다. 구조대는 캠프 탐색 팀과 강 하류 쪽 탐색 팀으로 나뉘었다. 쌓인 표류물 한 구석이 허물어져 있었기에 강 하류로 내려갔을 가능성도 고려했다.
그렇게 구조선이 강을 따라 내려갈 때였다. 하류 쪽 주둔지에 도착하자 목격 정보를 얻었다. 뗏목 여러 개에 나눠 탄 아이들이 주둔지를 지나쳐 하류 쪽 도시까지 내려갔다는 이야기였다.
왜 그들을 붙잡지 않았냐며 불평…할 수는 없었다. 니콜라스 총교관도 아니고, 중등학교의 교관은 주둔지 지휘관보다 계급이 낮았으니까. 또, 주둔지와는 별 관계 없는 하멜른 내부 일이기도 했다.
경례한 교관들이 하류 쪽으로 더 내려가려는 때였다.
“그런데, 또 무슨 이상한 명령이라도 했소? 그들은 노를 저으며 교가를 부르고 있던데….”
하멜른 강 하류 쪽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하멜른 강이 그리 큰 강은 아니나, 그렇기에 사람이 살기엔 좋은 지역이었다. 특히 좁은 강일수록 무서운 해흉이 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경우가 적어서 더욱 안전했다.
그런 강으로 일련의 무리가 떠내려왔다. 몇 개의 커다란 뗏목에 나눠 탄 아이들이었다.
-야트막한 동산의 배움의 전당. 오, 하멜른의 품이여.
호각 소리에 맞추어, 목이 쉰 아이들이 성대를 찢어가며 부르는 노래. 그건 그 어떤 처절한 비명보다도 끔찍한 절규였다. 시민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강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와 땀을 다 태워, 적들을 무찌르고…
구경꾼들이 불쾌함과 호기심을 가지고 강가로 몰려들었다. 악취미를 가진 교관이 이상한 명령이라도 내렸나, 그들이 생각할 때였다.
삐—익.
가장 앞쪽 뗏목에 선 소년이 호각을 불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노를 젓던 아이들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한 번 마주 보더니, 서로의 손을 꼭 잡고는 뗏목의 가장자리로 향했다. 입으로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면서.
-찬란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진격한다….
크기가 크더라도 뗏목은 뗏목이다. 위에서 걷기는커녕 균형을 잡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서로를 잡아주며, 흔들리는 뗏목 위에서 딱딱한 군화를 차분히 벗었다. 맨발이 거친 통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누군가 신음을 흘렸다.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나쁜 상상력을 잔뜩 발휘한 구경꾼 중 누군가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 상상은 너무 현실성이 없었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인원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흐린 시야 속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흘러나온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서늘했다.
-앞으로…. 앞으로….
후렴을 부르며 아이들은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뗏목의 가장자리.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딱딱한 통나무 대신 부드러운 수면이 밟힐 그 자리에까지.
그제야 무언가 불길함을 깨달은 관객들이 다급하게 뭔가를 외쳤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새벽녘, 안개에 걸러진 햇빛이 희끄무레 비치는 강물. 물살이 거칠게 흐르기에, 그들을 향하는 빛이 없기에, 수면에는 아이들의 얼굴이 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바로 옆, 고개를 돌리면 서로 닮은 얼굴이 있었으니.
그렇게, 아이들은 서로 마지막 구절을 부르며.
-군국의 미래로….
차갑고 깊은 강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제야, 노래가 멎었다.
-사령부가 하멜른 중등군사학교에 전한다. 최대한 빨리 진상을 규명하여 보고하라. 생존자를 탐색하고 심문하여 의도를 밝혀내라.
긴급. 긴급. 최대한 빠르게 전말을 파악해라. 사령부에서도 독자적으로 조사를….
….
….
….
-정정한다.
현시점부터 5레벨 정보 관제를 가동한다.
하멜른을 통제하라.
반복한다. 하멜른을 통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