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23)
EP.223 포로포로포로
독심술 이야기는 대부분 숨기고, 나머지는 적당히 각색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거나, 나중에 따로 전해 들었다는 식으로 바꾸어 말했다.
물 흐르는 듯 이어진 이야기는 하멜른 강의 흐르는 물까지 언급하고서야 끝이 났다.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객관적인 위치에서 듣고 있던 회귀자가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군국이 금기를 쓰는 실험을 하려고 했고, 너는 그 실험 대상이었지만 저항했고, 학생들과 힘을 모아 장교를 처치했지만 뒤따른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 하멜른 사태를 일으켰다는 거지.”
음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회귀자는 주먹을 꽉 쥐며 냅다 외쳤다.
“저번에 했던 말, 다 거짓말이잖아! 아이들이 반란을 일으키고는 너를 제물로 삼아서 저주했다며!”
“비슷하지 않나요?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진실이긴 했는데.”
“틀리지! 너는 네가 완전한 피해자인 것처럼 말했잖아! 듣고 보니, 다 네가 조장한 거네!”
“아니, 그러면 네가 범인이지, 라고 말 들었을 때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보는 바보가 어딨어요? 진상을 말한 것만으로도 저는 제 의무를 다했다고 봐요.”
당당하게 대꾸했다. 놀랍게도 회귀자는 내 변명에 일단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뭐, 적절한 대처였어.”
“오? 이걸 이해해줘? 웬일이에요?”
“웬일이냐니. 나는 처음부터 객관적인 입장이었거든.”
가볍게 쏘아붙인 회귀자는 팔짱을 끼고는 내 행동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최선의 판단이었어. 신비에 취약한 군국은 그런 기괴하고 갑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보도관제를 걸지. 역으로 사건을 크게 일으키고 저쪽이 진상조사에 조심스러울 때가 가장 허점이 생기는 시간. 좋은 방법이야.”
군국을 한 번 멸망시켜 본 이다운 발언이었다. 똑같은 존재를 싫어한다는 동질감 때문일까. 회귀자는 군국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한 나를 향해 우호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이야기였어. 나는 처음에 네가 통신병이나 공안처럼 군국이 특수하게 키워낸 특무부 요원이라고 생각했지 뭐야. 알고 보니 꽤 괜찮은 녀석이었잖아.”
“하하하. 지선의 팔까지 자른 대범죄자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어색하네요.”
“끝까지 이죽거리긴.”
하하하. 미소가 오고 가는 즐거운 대화. 이게 진짜 대화지.
지금까지 너무 날 서고 목적성 있는 대화만 해왔어. 누구를 가르치고, 알려주고, 화내고, 싸우고.
꼭 언어를 정보교환의 형태로 쓸 필요는 없잖아. 이렇게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말의 순기능 중 하나.
‘예전 회차. 레지스탕스와 협력했을 때에, 하멜른의 사건 덕분에 내부 지지자를 꽤 모을 수 있었어. 뭐,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주로 내가 게릴라전을 벌이며 만물의 영장을 폭주시켜서 가능했던 거지만, 내부 민심도 무시할 순 없지… 뭐야. 우리, 동료였잖아?’
회귀자가 나에게 이토록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일이 또 있었을까. 화기애애. 그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우리는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너를 지금껏 크게 오해한 것 같아.”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어요. 원래 인간은 배워가는 생물이잖아요?”
“말은. 어쨌든, 신세를 졌어.”
‘어디까지나 이전 회차 한정해서 말이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레지스탕스와 협력하지 않기로 했으니 별 쓸모는 없겠네…. 아니, 잠깐만. 하멜른, 진상. 자살…. 영향력.’
뭐지? 생각이 팽팽 돌아가고 있는데, 내용이 휙휙 건너뛰어서 잘 모르겠다.
그때였다. 팔이 꽁꽁 묶인 채 이야기만 듣고 있던 히스토리아가 담배를 더욱 악물었다. 짓누른 듯한 소리가 났다.
“…우리 귀염둥이. 생각보다 잔인한 사람이었네. 못났다곤 해도 나와 휴이의 동기들인데, 그들이 다 죽어 나간 일을 보고 괜찮다니.”
“어?”
고개를 돌려보니, 히스토리아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무섭게 회귀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난데없는 적의와 마주한 회귀자는 얼떨떨한 얼굴이 되었다.
“왜? 신비인 척 관제 걸어놓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하멜른 학생들을 빼낸 거 아니야?”
순진하게 되묻는 회귀자.
회귀자가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깨달은 히스토리아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등을 컨테이너 벽에 기대었다. 입에서 담배연기를 풀풀 뿜으며, 히스토리아가 순진한 아이를 보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야? 아까 말 취소할게. 여전히, 사고방식이 귀엽네.”
“또 왜 시비야? 적당히 눈속임하고 빼내면 되잖아?”
“중등군사학교 학생들이 그만한 사람들을, 그리고 뒤따라온 구조선에 탄 교관의 눈을 어떻게 속이니? 참, 순진하고 어려. 어쩌다 너 같은 아이가 휴이랑 같이 다니게 되었을까?”
“엥? 잠깐만. 네 말대로라면.”
‘확실히, 제식마법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흐르는 물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탈출하는 건 힘들겠네. 그러면, 정말 그들은 스스로….’
한순간 물에 젖은 것처럼 소름이 쫙 올라온다. 내 감정이 아니라 회귀자의 것이다.
잠깐 몸을 떤 회귀자는 흠칫거리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정말, 다 죽였다고? 자기 동기들을…?’
“아, 어. 이게 설명하긴 좀 그런데. 꼭 제가 죽인 것처럼 들려서 저 자신을 변호하자면. 죽은 아이들끼리는 서로 합의를 봤어요.”
“합의를 봤다고? 무슨 합의. 다 같이 죽자는 합의?”
설마, 그런 의미 없는 합의를 하려고.
“비슷하지만 달라요. 모두가 살아나갈 수는 없다는 합의요.”
“뭐?”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 테니까. 최소한 살아남을 이들을 위해서… 죽더라도 체념한 채로 조용히 죽도록.”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생존한 게 아닐까 의심받는다. 그렇다면 그저 그런 도주극으로 남을 뿐이다. 목이 찢어지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노를 저은 보람이 없어진다.
“방법은 모두에게 일러두었어요. 생체 단말에 바람 마법을 세트해두고, 강 밑을 걸어서 빠져나가는 거예요.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면, 제식 마법으로 물속에서도 3분 정도는 숨 쉴 수 있으니까. 물길에 휩쓸려 죽든, 숨이 차서 죽든. 물고기 밥이 되어 죽든. 전부 감수하고 강 밑바닥을 걸어서 나가자…. 전부 다 살지 못할 테니, 살고자 하는 이들은 살 수 있도록.”
“잠깐.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물속에서 바람 마법을 쓰려면 어지간한 집중력으로는 불가능해. 설사 한다고 해도, 숨이 차면 본능적으로 발버둥 칠 거라고.”
“그것을 참아냈는걸요. 하멜른의 졸업실습에 참가한 그 아이들 중, 살려달라며 허우적거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묵묵히 걷다 죽거나, 아니면 간신히 살아서 강둑에 닿거나.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질 만큼 확실하게 했죠.”
그렇기에 하멜른은 군국의 치부이며,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 되었다.
저주란 특별한 게 아니다. 강한 증오와 울분을 가진 사람이, 충분한 사색과 고민을 거듭하고는, 충격적이고 기발한 방법으로 표출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새긴다면… 그것이 곧 저주가 된다.
그 저주에 당한 사람은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직접 본 증인도 마침 여기 있네요.”
히스토리아가 바로 그 증인이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 중 하나로서, 우리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 중 한 명.
그 탓에 저런 꼴이 되었지.
“리아를 보세요. 육장성 총사. 군국의 딸이자, 패왕의 별 아래 태어난 최강의 무재. 안하무인의 천재가… 고작 동기한테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유로 일부러 묶여오는 진풍경이 펼쳐졌잖아요.”
“끙…. 그러기는 한데.”
‘총사가 신왕국의 중책이 된 것도 그 때문인가…? 도대체 이 자식은 어디까지 뻗어있는 거야?’
사람을 암중의 존재처럼 취급하지 마. 나는 개인 중의 개인이다. 조직을 짠 적도, 암중에서 암약한 적도 없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을 뿐.
회귀자를 내버려두고 히스토리아에게로 다가갔다.
마음에 새겨진 상흔은 그 자체로 저주다. 두고두고 남아서 괴롭히며, 그 상처에서 풍기는 짙은 어둠이 주변에 퍼지고 만다.
뭐, 상흔이 아니라 감명을 받은 바보 자식에게는 축복 비슷한 게 될 수 있지만. 최소한 히스토리아에겐 아니었다.
“어때, 리아. 알고 싶은 건 다 알았으려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알았어.”
“아직 뭔가 욕구불만인 모양인데. 할 말 있어?”
호기심은 해결했지만 여전히 응어리가 맺힌 표정이다. 히스토리아는 마력초 연기 너머에서 고개를 들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추궁했다.
“어째서. 너는. 아이들을 다 죽이는 방법은 떠올릴 수 있으면서… 그들을 살릴 방법을 떠올리지는 못한 거야? 너라면, 다른 방법을, 분명….”
그러나 의미 없는 한탄이라는 걸 히스토리아도 안다. 그때 나는 행동했고 히스토리아는 방관했다. 방관자인 그녀가, 더 기발한 수를 떠올리지 못했다고 나를 지탄할 자격은 없다.
말을 하다가 말고 히스토리아는 고개를 홱 돌렸다. 연기 섞인 한숨 소리만이 들려왔다.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자, 자. 어쨌든 조금 암울한 이야기였네요. 다들 지루하지 않으셨을지 모르겠어.”
[지루하기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군국이라는 나라가 너를 죽일 듯이 쫓아다니는 이유가 이것이었나 보구나….]이야기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티르칸쟈카에게는 오로지 흥미만 있을 뿐이었다. 하긴 백여 명 자살한 것 가지고는 티르칸쟈카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하겠지.
[다만… 저기, 휴. 탐식은 금기라고 할 만한 권능까진 아니다. 먹잇감을 사냥하여 그 목을 축이는 건 세상 만물의 이치이니. 비록, 군국이 쓴 수단이 사이하여 거부감이 들지만, 탐식이라는 권능 자체를 꺼려하지는….]인간을 탐식하는 흡혈귀는 필사적으로 자기 행위를 변명했다. 자신의 무해함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포식자 같은 태도였다.
뭐, 티르가 무차별살인마도 아니고.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별로 꺼린 적은 없어요. 다만 굳이, 싶어서였죠. 티르도 지나가는 사람 푹푹 찌르고 피를 내서 먹지는 않듯, 저도 불필요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아요.”
[고맙구나.]“뭘요. 저만 안 드시면 되죠.”
나를 절대 잡아먹지 않는 포식자의 존재만큼 든든한 게 또 없다. 나만 안 공격하면 우리는 종족 출신을 뛰어넘어 아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지, 암암.
“멍멍.”
“…? 너는 갑자기 왜 짖냐.”
“멍. 타이밍!”
“타이밍은 무슨 타이밍?”
어쨌건 할 말을 다 한 나는, 손뼉을 짝짝 치며 이야기를 끝냈다.
“자, 해가 졌어요. 이제 슬슬 움직이죠. 밤이어야 우리가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 전에….”
히스토리아는 나와 눈도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선을 홱 돌려서 옆얼굴만 보여준 채 맛있게 담배연기만 뿜어내고 있다. 아무래도 전폭적으로 협력해줄 것 같지는 않다.
이대로 놔주자니 그것대로 걱정이고, 그렇다고 군국의 온갖 어그로를 끌면서 군국의 딸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좀 그렇고.
어차피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다. 히스토리아는 저렇게 묶인 상태로도 나를 제압할 수 있으니, 결국 동행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의견을 구하자.
“어, 음. 셰이 씨, 히스토리아는 어떻게 하실래요?”
“으음. 잠깐만. 생각 좀 해보고.”
‘군국 육장성이고, 이 와중에도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어. 놔두면 두고두고 방해돼. 특히, 세 발 쏘면 한 발이 무조건 맞는 필중의 이치 말고… 총검총의(銃劍總意)를 깨우치면 그때부턴 천앵의 카운터라서 상대하기 정말정말 껄끄러운데. 으음.’
엥? 뭐야. 여기서 더 강해진다고? 총검총의, 그냥 들어도 엄청나게 세 보이는 그 기술 이름은 또 뭐야?
허 참.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는구나. 멋대로 생각을 읽는 내가 한탄하는 사이 회귀자도 난색을 표하며 의견을 구했다.
“…굳이 죽이고 싶지는 않아. 일단 살려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엉? 뭐라는 거야, 갑자기.
“저기, 셰이 씨. 당신은 살육에 미친 악마인가요? 뭘 선심쓰듯이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옵니까?”
“어? 왜? 별로 죽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아직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사이, 어처구니가 없던 건 티르칸쟈카도 마찬가지였는지 근엄하게 훈계했다.
[셰이. 네가 군국에 억하심정이 있다 한들, 휴의 벗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어이하여 동료의 벗을 죽인다고 말하는 것이냐? 목마른 흡혈귀조차도 지인의 친지는 건드리지 않는 법이다.]“어…? 잠깐만. 내가 나쁜 사람이야?”
“봐봐요. 흡혈귀 나무랄 일이 아니라니까요. 탐식만 안 하면 뭐해. 사람 오른팔을 깍둑썰기하지 않나, 친구인 거 다 빼놓고도 나름 순순히 투항한 포로인데 죽인다는 말이 왜 나와.”
일제히 비난을 받은 회귀자는 정색하며 부정했다.
“나도 죽일 생각 안 했어! 그냥 의견을 말한 거잖아!”
“분위기가 깨지잖아요. 아무도 죽일 생각 없는데 혼자서 ‘그럼 죽이지 말자’니, 누가 들으면 마치 우리가 막 죽이고 다니는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동료의 벗조차 참살한다면 누가 내 편에 서겠느냐. 실수로라도 언급하지 말거라.]“나, 나도…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티르와 나의 합동공격으로 인해 회귀자는 쭈그러들고야 말았다. 암암, 이거지. 기분 좋게 회귀자를 두드려 팬 나는, 문득 느끼는 위화감에 시선을 돌렸다.
어, 티르. 왠지 포로라 안 죽이는 게 아니라, 내 지인이라서 안 죽인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저기, 티르. 만약 붙잡힌 게 리아가 아니라 창 쓰는 아저씨였으면 어땠어요? 죽여요?”
[…? 네 지인이 아니라면 구태여 살려둘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피를 취하기 위해 생자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닐 터인데.]‘구태여 네 벗을 참살하여 반감을 만들고 싶지는 않구나.’
사고방식 자체가 인연 혈연 우선이었네…. 사고방식 자체가 옛날 시절이라 그런가 보다.
어쨌건 히스토리아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결국, 놔주거나 아니면 끌고 가거나 둘 중 하나인데. 풀어준다면 어떻게 풀어줄지, 끌고간다면 어떤 조치를 할지.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묘안이 떠오른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