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38)
EP.238 암흑지대
메타컨베이어 벨트의 안쪽은 다른 말로 암흑지대라고 불린다. 안개 공국과는 달리, 그 이름은 온전히 상징적인 의미에서 지어진 것이다. 암흑 지대는 전혀 껌껌하지 않다.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훨씬 밝은 편이다.
밤에도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조명.
도망치는 사람을 추적하는 탐조등.
높게 선 첨탑에서 노역자를 감시하는 등대.
밤에도 앞이 환할 정도이나, 역설적으로 이 땅은 암흑지대다. 이너서클의 사람들은 형기를 끝마치기 전까진 벨트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따라서 이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벨트 바깥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암흑지대. 정보의 부재가 만들어낸 공백.
목가적인 벨트 바깥과는 달리, 안쪽은 규칙 위반 혹은 범법 행위로 인해 끌려온 노역자의 땅. 최소한의 자유조차 구가하지 못한 채 형벌로서의 노역을 계속하는 이들이 가득하다.
“허억, 허억.”
공동 농장에는 군국 7대 발명품 중 하나, 키메라 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씨알이 굵은 콩은 대단히 탐스러워서 이걸 기른 농부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하지만 노역자는 농부가 아니었고, 밭을 일궈 농작물을 수확하는 일에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했다. 이 밭은 그의 것도 아니고, 갖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떠맡겼기에.
키메라 콩은 성장속도가 빠르고 수확량이 많지만, 대량의 수분과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정기적으로 잔가지를 잘라주지 않으면 덩굴이 제멋대로 나아가다가 제 무게에 못 이겨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성히 자란 콩을 노리는 새나 벌레를 쫓아내는 건 그의 업무.
죄수이자 노역자인 그는 지친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키메라 콩의 가지를 꺾었다. 단순 노동을 하며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상기했다.
티끌만 한 권력을 가지고 뇌물을 요구하던 감독관을 두들겨 팼다. 혈기 넘치는 그는 그 모습을 참지 않았다. 단단한 주먹이 감독관의 턱주가리를 후려칠 때도 한 점의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매순간 그날을 후회했다.
차라리 그때 손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꼴은 겪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그에겐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온 분노라는 감정의 조각조차 찾을 수 없다.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이 고된 노역이 더 빨리 끝나길 하는 바람뿐.
차라리 도망,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공포가 엄습한다. 탈출은 머리에 떠올려서도 안 된다. 사방을 감시하는 저 탐조등을 차치하고서라도, 명령에 불응하던 이들이 더욱 안쪽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몇 번이고 봐왔기 때문이다.
더욱 안쪽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건…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 그게 더욱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나마 한 가지 위로라면… 그가 두들겨 팼던, 군국에서 감히 뇌물을 취한 감독관은 저 깊숙이 끌려가 사라졌다는 점. 그것만이 소소한 위안일 뿐.
군국에서 누군가를 착취할 수 있는 건 오직 군국이다. 그는 흐린 정신으로 그리 생각하며 뭉툭한 낫으로 수풀을 끊어냈다.
그때였다.
『군국 통신병 이오가 모든 노역자에게 알립니다. 모든 노역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 숙소로 복귀하십시오. 반복합니다. 현재 노역 중인 모든 노역자들은 당장 숙소로 복귀하십시오. 이것은 명령입니다. 이상.』
그는 귀를 의심했다. 군국 노역자에게는 노역의 조기 종료란 신이랑 비슷한 것이다. 늘 찾지만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데 갑자기 신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밝았다. 작업 종료 시각까지는 한참 더 있어야 했다.
감독관이 악을 썼다. 당장 쉬러 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외치는 모습은 평범한 노역자에게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는 도구를 챙긴 채 전력을 다해 휴식을 취하러 움직였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정말, 아주 우연히 찾아온 뜻밖의 행운. 고작 그것뿐인데, 그는 왠지 한층 더 살만하다고 느꼈다.
총사가 없는 총병은 무력하다. 적에 대한 견제조차 되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총탄이 자동마차 외벽을 두들겼지만, 그렇지 않아도 뚫기 힘든 차체는 현재 티르의 지배 하에 있는 상태였다. 사이한 마력으로 강화된 연금강을 두들긴 총탄은 헛되이 튕겨 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운전대를 잡고 앞으로 달려가던 나는 전방 도로를 가로막은 장애물을 발견했다. 격자로 된 연금철 마름쇠와 커다란 바리케이트였다.
나는 즉각 외쳤다.
“셰이 씨! 도로가 끊겨있어요!”
“나도 알아.”
회귀자는 곧장 좌석을 박차고는 뛰어올라 자동마차 앞쪽 보닛에 발을 붙이고 섰다. 지잔을 옆으로 뻗은 그녀는, 자동마차가 바리케이드에 충분히 가까워지자 팔을 길게 뻗어 지잔을 던졌다.
지곤류, 흙낫.
빙글빙글 날아간 지잔이 바리케이드와 충돌했다.
그 순간 바리케이드며 마름쇠가 쇳소리를 내며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갔다. 오직 인정받은 이에게만 가벼운 그 검은 다른 존재에게는 커다란 자동마차 이상의 무게로 느껴진다. 그게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오면?
바리케이드고 뭐고, 회전하는 지잔의 앞에서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땅이 만들어낸 가장 무거운 탈곡기가 맹렬하게 강철 작물을 수확한다.
굉음과 폭음, 그리고 흩날리는 강철 파편. 그 처참한 파괴의 현장 속에서 나는 더욱 페달을 밟았다.
“돌파합니다! 다들 마음의 준비를… 꾸엑!”
차량이 크게 덜컹거리는 바람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회귀자가 저렇게 치워냈음에도 잔해가 남아 있던 탓이다.
조그만 요철조차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듯한 충격만 주는 이건… 사람이 타라고 만든 물건인가? 아니, 애초에 군국은 군국민을 사람으로 안 보지.
“이놈의 자동마차는…! 셰이 씨! 이깟 싸구려 자동마차 말고, 더 좋은 이동수단 같은 거 없어요? 이 모두를 싣고 달려갈 기똥찬 거!”
“그딴 게 있겠어?”
회귀자는 자동마차 옆면에 발을 디디고 서서는, 몸을 쭉 뻗어 땅에 널브러진 지잔을 낚아챘다. 묘기와도 같은 재주였다.
지잔을 회수한 회귀자는 다시 조수석으로 돌아왔다.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투덜거렸다.
“아니면 하늘을 나는 도구나! 아까 보니까 바람을 타고 잘 날아가더니만!”
“지금은 사람이 많잖아. 무거울수록 바람을 타기 힘들어.”
“더 힘을 내면 되잖아요!”
“자기 힘 아니라고 막 쓰라고 하긴….”
코웃음을 치던 회귀자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곧장 팔을 뻗어 내 몸을 젖혔다.
“위험해!”
나를 사선에서 치운 회귀자는 그 틈으로 천앵을 쭉 내뻗었다.
천검기, 사일.
천앵에서 쏘아진 무형의 검기가 내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릿해지고, 저 멀리에서 거센 폭발음이 들렸다. 우리 쪽을 향해 날아온 포탄이 허공에서 폭발한 것이다. 잠깐 왼쪽 뺨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저 자식들, 바리케이드로 발을 묶고 저격하려던 모양이었나 봐! 흥, 어림도 없지! 저딴 것 누가 맞아 준다고!”
코웃음 치며 당당하게 말하는 회귀자는 오늘따라 조금 멋있었다.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셰이 씨, 조금 멋있네요. 반해버릴 것 같아요.”
“으응?! 이, 이런 위험한 순간까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운전에나 집중해!”
운전에나 집중하라는 말에 슬쩍 시선을 돌리니, 자동마차 위에 대포를 탑재한 이동형 대포가 이쪽을 향해 포신을 겨눈 모습이 보였다. 회귀자 말마따나 도로에서 우리를 고립시킨 뒤 포탄을 일방적으로 쏠 작전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페달을 더욱 밟았다.
“저쪽은 길 위에 있는 게 아니에요. 멀리 따라오지는 못할 것 같은데. 지금처럼 계속 요격하면서 벗어나는 건 어때요?”
“그건 좀 꺼려지는데.”
“못해요? 방금 해낸 건 우연이었어요?”
“아니거든! 착의 묘리야. 너도 설명해봤으니까 알지? 착의 묘리를 쓰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맞추긴 어렵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도 요격당할까 봐 하늘을 날아갈 수 없는 거지만….”
회귀자는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요격당할 위험만 없다면 하늘을 날아갔을 거였구나. 구두쇠는 아니었네. 내가 너를 오해하고 있었나 봐.
“하지만 기력이랑 집중력을 소모하니까 하나하나 쳐내고 싶진 않아. 어때, 티르칸쟈카를 믿고 몸으로 버텨낼까?”
“제 몸이요?”
“나는 차 몸을 말한 거지만, 네 몸에도 버틸 능력이 있다면 더 좋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는 나약한 생물이거든요. 포탄에 맞으면 못 버티고, 설사 차에 맞아도 그 충격으로 운전이 흐트러져요! 소중히 여기시라고요!”
“쯧, 역시 안 되나.”
“당연한 말을! 빨리 가서 처리하고 오세요!”
내 재촉을 들은 회귀자는 그러고 싶은 듯했지만, 뭐가 마음에 걸리는지 걱정스레 앞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내가 여기서 자리를 비우면.”
“아차! 다음 바리케이드를 뚫을 수 없구나! 그러면 내가 위험하네! 앞으로도 계속 제 곁에 있어 줘요! 어디로도 가면 안 돼요!”
“그, 그러니까. 말을 왜 그따위로 항상…. 칫, 어쨌건. 마력 쓰기는 싫은데 벼락이나 불러볼까….”
회귀자가 벼락을 불러내려는 그때였다. 히힝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자동마차 곁을 따라다니던 백마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저쪽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위에는 공주와 시아티가 나란히 타고 있었다.
회귀자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맞다. 레지스탕스도 있었지? 저쪽에게 맡겨보자.”
“저 둘로 될까요? 공주가 무력적으로 뭐 강해 보이진 않는데…?”
내가 못 미더운 투로 말했다.
당연하다. 시아티는 레지스탕스에 참여하면서 나름 새로운 능력을 얻은 모양이지만, 저 분홍색 머리카락을 지닌 공주는 별다른 무력도 없으면서 머리에 꽃밭이라도 든 듯 위험에 몸을 들이밀곤 했다. 못 미더워야지, 저걸 믿으면 바보다.
미심쩍어하는 나를 보고 회귀자는 재미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너도 모르는 게 있구나? 후후. 하긴, 이건 쉽게 알 수 없지. 정작 공주 본인도 모를 테니까.”
“뭔데요, 그게.”
“알려줄까? 정중하게 부탁하면 알려줄 수도 있는데?”
잘난 척하는 게 짜증 나서 그냥 생각부터 읽어버렸다.
이전 회차에서 알아낸 지식은 내 독심술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회귀자가 그 기억을 되새기는 덕분에 나도 읽을 수 있었다.
‘공주는 그란디오모르 왕가의 말예야. 그란디오모르 왕가는 인간의 왕을 몰아냈던 다섯 군주 중 한 명. 특히 마지막 남은 혈육인 공주는 인간의 적의를 피해 가는 능력을 지녔어.’
적의를 피해 가는 능력? 나는 다시금 적 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백마를 보았다.
포병대는 조금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백마를 요격할 것인가, 아니면 수령부를 향해 내달리는 자동마차를 공격할 것인가.
자동마차에는 날아오는 포탄을 허공에서 터뜨린 회귀자가 여전히 눈을 빛내고 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백마를 요격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포병대는 포구를 바꾸지 않았다. 집요하게 이쪽만 노리고 다음 한 발을 준비했다.
그 낌새를 곁눈질로 확인한 내가 말했다.
“혹시, 공격 대상이 되지 않는 능력인가요?”
“제법 비슷한데? 어떻게 알았어?”
“왜냐면, 말 탄 사람이 찾아가는데도 저 포구가 여전히 이쪽만 향하고 있으니까요!”
포병도 총병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효용성을 인정받진 못한다. 요란하고 느릿한 포탄은 상대방이 우글우글 밀집해 있을 때나 쓸모가 있으며, 그 와중에도 좀 강하다 하는 이들은 포탄을 쳐 내거나 붙잡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총병보다는 나았다. 최소한 대포는 성벽이나, 길 가던 마차를 때려 부술 위력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말이지!
“정확히는 적의를 피해 가는 능력이야. 배신을 덜 당하고, 공격받을 때도 가장 덜 위험하게 느껴지고, 모두가 그녀에게 너그러워지는 힘. 고대 왕의 계보를 잇는 자만 지닌 능력이고. 그란디오모르 왕가의 핏줄이 이토록 길게 이어올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저쪽을 피해간 적의가 이쪽을 향하고 있잖아! 우리가 위험하다니까!”
내가 그렇게 외칠 때였다.
공주의 뒤에 매달려 달려가던 시아티가 왼손의 장갑을 벗었다. 의수가 달린 오른손이 아닌, 갖은 흉터가 잡힌 왼손이 드러났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마디마디 뒤틀린 왼손의 손가락 마디였다.
먼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흉한 손가락. 모두가 그녀의 행동을 지켜볼 때.
시아티는 모두에게 보이도록 손을 치켜들고는, 왼손의 새끼손가락을 ‘위로’ 꺾었다.
그와 동시에 주포의 포신이 꺾였다. 시아티의 손가락과 매우 닮은 꼴로, 위로 뚜둑 소리를 내며.
굉음이 일어났다. 폭발의 여파를 견뎌내기 위해 강철로 주조된 포신이, 시아티의 손가락처럼 흉측하게 위로 꺾여서 하늘을 쳐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안쪽 포탄이 터졌는지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솟아났다.
시아티는 다시 장갑을 꼈다. 그녀가 무언가를 알리자, 공주는 기수를 돌려 이쪽으로 돌아왔다. 적군의 목표를 거꾸러뜨렸으나 공주의 표정은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