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40)
EP.240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히스토리아가 한창 대포를 부수던 시각, 할 일이 없던 공주는 셀피 위에 타서는 천천히 그 주위를 산책하듯 걷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적의를 받지 않는 공주는 느긋하게 히스토리아의 무위를 보며 감탄했다.
그런 공주를 노리고 누군가 다가갔다. 모두가 히스토리아에게 집중한 사이, 공주와 백마를 잊지 않고 있던 한 장교였다.
‘장수보단 말을 노리라고 했지. 저 소녀를 사로잡고 말을 빼앗으면, 적도 발이 묶일 거야.’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는 살금살금 공주와 백마에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사람은, 먼거리에서 저쪽을 살피는 회귀자와 그녀의 생각을 읽는 나뿐이었다.
하지만 회귀자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냐면.
“하압! 잡았…!”
“멍! 잡았다!”
히히힝!
불쑥 튀어나온 아지가 크게 짖었다. 덕분에 깜짝 놀란 말이 적을 발견하고는 뒷걸음질 쳤다.
적을 발견한 공주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와! 와와…! 아지 양, 고마워요!”
“나, 양 잘 쳐! 말도 잘 쳐! 으쓱!”
아지가 자랑스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역시, 개는 경비견이지. 아지는 개라서 티르나 나비처럼 짐칸에 가둬둘 수 없다. 어차피 활동이 필요한 거, 사람 지키는 데나 쓰는 게 낫다. 아지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말이야.
발각된 이상 숨을 이유가 없다. 장교는 수풀 속에서 튀어나오며 외쳤다.
“투항해라! 그렇지 않으면 말을 죽이겠다!”
굳이 말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건, 그의 적의가 이번에도 공주를 피해갔다는 반증이었다.
장교는 기다란 창을 내밀며 셀피를 향해 달려갔다. 적의는 자연스레 공주에게서 빗겨 나가 말을 노리긴 했지만, 어쨌든 꽤나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던 셀피를 향해 창이 들이밀어졌다. 기공을 두른 창날이 당장이라도 말의 목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그때.
“아앗! 셀피! 위험해요!”
공주가 고삐 줄을 휘둘렀다. 빙글빙글 돌아간 고삐 줄은 재주 좋게도 창대를 휘어잡았다.
어라. 저건 운이나 혈통으로는 불가능한 재주인데. 뭐야? 공주도 좀 세잖아?
나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장교는 잠시간 멍해졌다. 그의 창대가 붙박인 듯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주의 힘이 강해서, 는 아니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줄과 말의 힘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 기량이 더 놀라웠지만.
말과 딱 붙은 고삐. 그에 얽힌 줄. 거기다 말의 힘까지 더해지니, 창이 빠질 틈이 없다. 창대를 붙잡은 장교의 얼굴이 점차 붉으락푸르락 물드는 무렵이었다.
히힝.
백마 셀피가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순간적으로 격해진 움직임에 창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말이 창대를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물었다.
장교는 한순간 말과 힘겨루기를 하려고 했다. 악수였다. 인간은 말의 힘을 이길 수 없다.
하물며 저 말이 왕가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고귀한 백마라면 더더욱.
말이 목을 세차게 비틀었다. 그 순간 창대를 쥐고 있던 장교는 놓을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창대에 매달린 채 저 멀리 날아가 버렸으니까.
“잘했어요, 셀피! 아주 똑똑해요!”
푸히힝.
셀피는 콧구멍을 실룩거리며 날아가는 인간을 비웃었다.
일을 다 마친 히스토리아가 터덜터덜 돌아왔다. 셀피는 몸을 살짝 낮춰 히스토리아가 탈 수 있게끔 배려했다.
공주도 히스토리아를 반겼다.
“양팔이 묶인 채로도 잘 싸우시네요! 대단하세요!”
“…부끄러운데. 말 시키지 말아주겠어?”
“네? 왜요? 엄청 멋있었어요! 팔도 안 쓰고, 오직 다리로만! 하아! 몸도, 다리도 늘씬하고 길어서 얼마나 멋이 살던지!”
그만 둬. 히스토리아의 수치심은 이미 바닥이라고. 벌써 담배 태우고 싶다는 생각이 얼굴에 가득하잖아.
전투는 간단하게 끝났다. 육장성은 역시 육장성. 상대가 장성이라면 모를까, 장교급은 양팔이 묶인 채로도 상대할 수 있는 모양이다.
회귀자가 히스토리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릴 배신할 것 같진 않은데. 슬슬 천잠사를 풀어줄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적의 구속을 풀어준다고? 네가 언제 처음부터 그리 말랑말랑한 성격이었냐?
애초에 히스토리아의 목적은 우리와는 다르다.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사령부를 급습하려고 하지만, 히스토리아는 어디까지나 나와 시아티의-.
아이, 이걸 어떻게 설명해. 나는 설명하기 귀찮아 말했다.
“묶어두는 게 재밌잖아요? 그림이 살기도 하고. 계속 묶어두죠?”
“너, 정말 악취미야…. 야! 앞이나 보라고!”
회귀자가 냅다 소리치고 나서야 앞쪽에 무언가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알아차렸다. 내 머리 위쪽에서, 정확히 나를 노리고 뭔가가 떨어졌다.
아니, 내가 전방주시 안 하면 너라도 해야지! 왜 조수석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칫!”
회귀자가 급히 천앵을 들었다. 나를 지켜주려는 마음은 고맙다…! 역시 아군일 때 가장 든든한 존재…!
어? 잠깐만! 저건!
떨어지는 물건의 정체를 알아챈 내가 오른팔로 회귀자의 몸을 콱 붙잡았다. 칼을 휘두르려던 회귀자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어딜 만지는 거야?!”
“기다려 봐요, 셰이 씨! 저건!”
회귀자를 제지한 덕에 벌어진 내 품. 그 안으로 툭, 떨어진 건 팔과 다리를 가진 싱크로 타입 마도골렘이었다. 무저갱에서는 질리도록 본 그 사양이었다.
착지 지점은 잘 골랐다. 내 품이 아니었다면 호되게 튕겨 나갔겠지. 내 품 안에 떨어진 골렘은 안기자마자 다급히 말했다.
『군국 통신병 아이비 대위입니다. 본 기체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십시오. 본관은 귀하를 비롯한 불온 집단에 대화를 요구합니다.』
회귀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대화?”
‘대놓고 대화하자고 요구하는 건 이번 회차가 처음이네. 이것들에게도 대화란 개념이 있던 걸까?’
골렘의 몸이어도 회귀자의 적의는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골렘은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듯 격하게 방방 뛰며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 본관은 중간 연락책이며, 귀하의 의견은 본관을 통해 사령부에 직접 전달됩니다. 상기 사항을 이해하셨다면 협상에 응해주십시오.』
그러나 우리 반골 회귀자는 누군가의 이야기 듣는 일을 극도로 싫어한다. 회귀를 거듭하며 많이 속아보기라도 한 걸까, 믿음이 없는 존재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성격이다.
군국의 대언자인 골렘 역시 회귀자에겐 미심쩍은 존재였다. 회귀자는 별다른 고민도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너랑은 할 말 없-.”
“성질도 급해라. 잠깐 기다려 봐요, 셰이 씨.”
“옷깃 좀 서슴없이 잡지 마! 그리고 너는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니까! 아까부터 앞쪽만 빼고 다 보고 있잖아!”
“사고 안 났으면 됐죠, 뭐. 그나저나 이유 없는 골렘 혐오는 좀 그만 해요. 이야기를 듣는데 뭐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예전에 골렘에게 손이라도 덴 적 있어요?”
‘당연하지! 통신병 이 녀석들은 매 회차 어떻게 정체도 한 번 안 드러내고 맨날 골렘으로만 말하잖아! 어찌저찌 의심스러운 녀석을 찾아내도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뭘 알 수가 없다고! 매번 짜증 날 정도로 비밀을 고수하는 녀석들을 어떻게 좋아해?’
못마땅한 생각은 여전했지만, 대화를 해서 나쁠 건 없다. 어쨌든 회귀자는 내 말에 수긍하고는 투덜거렸다.
“…빨리 끝내. 저쪽이 이쪽을 계속 관찰하게 두면 곤란하니까.”
“알았으니까 골렘을 들어서 제 귓가에 대주세요. 저 앞쪽을 보고 운전해야 해서.”
“이제는 숫제 종 취급이야?!”
『시간이 촉박하니 용건부터 말하겠습니다.』
골렘이 우리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회귀자는 더욱 투덜거리며 골렘을 들어 쭉 내밀었다.
회귀자의 손 안에서 자세를 잡은 골렘은 또박또박 말을 걸었다.
『귀하는 북쪽으로 향해 열국으로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귀하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며, 동시에 안전한 경로. 사령부는 그렇게 예측하였고, 귀하들도 중반까진 그렇게 판단하였을 터.』
“칫. 봐봐. 역시 유인작전이었잖아.”
대화하지 않겠다더니, 회귀자는 혼잣말로 골렘의 추측을 완전히 긍정해버렸다. 뭐 서로 예상한 부분이라 상관은 없지만… 사실 너, 가장 대화가 필요한 사람 아니냐?
『한데, 귀하들은 갑자기 방향을 돌려 군국에 위협행위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합리적인 돌발행동입니다. 귀하들은 어째서 사령부를 향해 진격하는 것입니까?』
“왜일 것 같아요?”
『본관은 그 점을 묻고 있습니다. 만일, 귀하들이 이곳을 향하는 이유를 알아낸다면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이기에.』
“협상이라면, 우리를 열국 쪽으로 보내버리는 거? 그걸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대가를 줄 수 있다는 뜻인가요?”
『긍정.』
놀라운 일이다. 군국은 갖은 협박에 대해 일관된 무반응으로 대응했다. 그런 군국에서 테러리스트나 다름없는 우리의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니? 이 전례를 감수하고 싶을 정도로 우리 행보가 위협적이라는 뜻인가?
하지만 불온한 무리와 협상하지 않는 건 우리 회귀자도 마찬가지다. 단호한 태도로 골렘을 향해 윽박질렀다.
“우리가 이대로 열국으로 빠져나가면, 그것을 구실로 삼아서 열국을 쳐들어갈 생각이었지? 어차피 열국과는 무저갱 황야를 두고 싸울 테니까!”
『긍정. 다만, 그것이 귀하들과 무슨 상관입니까?』
골렘은 의아한 듯 대꾸했다.
『전쟁은 귀하들과 무관합니다. 군국은 전쟁을 앞두고 위험요소인 귀하들을 배제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제 군국은 억지력이 필요치 않기에. 귀하들 역시도 군국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떠날 이유도 없지.”
『수용. 따라서, 사령부는 그 떠날 이유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금전? 재물? 상식적인 선에서 그것을 제공할 함의가 있습니다.』
골렘의 어조는 무미건조했지만, 군국에서 이 정도면 호소다. 군국도 얼마나 난감했다면 군국이 돈을 준다며 이러한 부탁을 하는 것일까.
물론, 회귀자의 알 바는 아니었지만.
“무장을 해제해.”
『…그 뜻은?』
“우리를 잡으려고 모았던 군대. 그것들을 해산시켜. 그것뿐이야.”
군국에게 무장을 해제하라는, 사실상 사상적 국가적으로 자살하라는 명령. 당연히 사령부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골렘이 딱딱하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군국을 적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이제 알았어? 눈치가 느리네.”
드디어 회귀자의 본의를 깨달은 골렘이 한층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그러지 않기를 권장합니다.』
‘차라리 오지 않았다면. 이곳은 위험하니까요.’
어?
잠깐만. 이건…독심술?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나는 원래 가까이 있는 존재의 생각밖에 읽을 수 없는데.
지금까지는 골렘의 생각 따위 들린 적 없다. 에이비 대위만 하더라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 그건….
“협박이야? 어쨌든, 이제 할 말은 끝났겠네?”
『…결렬이로군요. 군국과 척을 지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각오하시길 바랍니다.』
“자, 그러면. 잘 가.”
회귀자는 단숨에 골렘을 갈랐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골렘이 단숨에 반으로 잘렸다. 파직거리는 기계음이 들리고 골렘은 완전히 침묵했다.
그 전에, 희미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인 기분이 들었다. 아직 꽃이 필 계절이 아닌데.
아, 그래서 골렘이 처음부터 내쪽으로 떨어진 거구나. 들키면 죽을 수도 있다면서.
“저쪽도 쫄리나 봐?”
“그러게요.”
저쪽, 상상으로도 쉬이 짚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에서. 말간 향기가 풍겨온다. 햇빛 아래 오래 말린 건조한 풀잎 냄새는 희미하지만 다른 무엇으로 착각할 수도 없다.
그리고 방금 들린 그 생각으로 생각하자면.
“셰이 씨. 준비해요.”
“뭘?”
“각오하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각오해야죠.”
나는 페달을 더욱 밟으며 운전대를 더 꽉 쥐었다. 한계에 달한 자동마차가 거친 비명을 토했다. 회귀자조차 흠칫하며 손잡이를 잡던 그때였다.
어마어마한 굉음이 일었다. 백마가 놀라서 날뛰고, 너나 할 것 없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흩어지는 흙먼지 속에서 나는 적이 해낸 참상을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도로가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