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51)
EP.251 마음의 백도어
지금은 아무도 이 노역자들을 묶고 있지 않다. 이들을 묶어놓은 건 군국이 만들어낸 규칙, 혹은 공포다. 달리 말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말이에요. 군국 사령부로 쳐들어가고 있어요. 군국의 자산을 부수는 동시에 군국의 발을 묶어둬야 한단 말이에요?”
나는 천천히 걸으며 격납고에 있는 자동마차 중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톡 두들겼다.
“여러분들이 자동마차를 갖고 달아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여러분들이 피땀 흘려 만든 이 귀중한 자동마차를 하나하나 부숴야 하거든요?”
당황스러운 감정이 퍼져나갔다. 너희가 자동마차를 부수는 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다. 긍정적인 반응이다.
마음의 빗장은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성문이 수십 개 달린 철옹성에 가깝다. 한쪽 문을 꼭꼭 닫아둔다고 해도 뒷문을 슬쩍 열면 전부 빠져나갈 수 있다.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건, 이곳은 빗장이 달려있지 않은 문이라는 뜻.
“다르게 말하죠. 자동마차를 보전하고 싶다면 냉큼 이것을 타고 안전한 곳까지 옮기세요.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딱, 내가 손가락을 튀긴 순간, 자동마차의 차체가 형편없이 찌그러졌다.
“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만큼 끔찍한 꼴이었다. 자동마차를 두른 어둠이 뱀처럼 차체를 감싸더니, 점차 조여들어가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았다.
부러진 톱니바퀴가 내장처럼 흩뿌려진다. 연금강철이 주괴였던 시절로 회귀하는 듯했다.
“제가 일일이 부수어야 한단 말이에요. 저도 여러분과 같은 노동자라, 가능하면 일을 줄이고 싶은데.”
당연히 내가 한 게 아니다. 티르의 힘을 잠깐 빌렸을 뿐이다. 그러나 저들의 눈에는 내가 이 어둠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겠지.
“너, 너무해요! 공들여 만든 자동마차가!”
“여기 혹시, 이 모든 걸 일일이 부수어야 하는 제 노고를 덜어주실 착한 분들이 계실까요?”
내가 손을 쥐고 흔들자, 그것을 본 티르가 어둠으로 똑같은 행위를 따라했다. 자동마차가 앞뒤로 흔들리며 한층 격렬하게 부품을 토해냈다.
“아니면, 제가 부수고 여러분이 나은 부품을 그러모아 새로 만드는, 한쪽에서는 부수고 한쪽에서는 고치는 비합리적인 노동을 할까요?”
이들은 탈출할 수 없다. 군국이 마음을 묶었기 때문이다. 멋대로 근무지를 이탈하면 더 끔찍한 형벌을 가하겠다며, 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넣었다.
그러니까 내가 만드는 백도어는 근무지 이탈이 아니다.
업무를 줄여주는 거지.
“자! 우리, 노동조합을 만들죠! 서로서로 일하기 싫은 노역자잖아요! 저는 안 부수고, 여러분은 안 만들기로 해서 타협을 보죠! 자동마차를 안전한 곳까지 옮기세요! 저희는 북쪽으로 오면서 어지간한 기지는 전부 초토화했으니, 그 자리는 비어 있겠네요! 거기 잠깐 주차해두면 되겠어요!”
머리에 보자기를 쓴 누군가가 가장 먼저 벌떡 일어서서 자동마차를 향해 달려나갔다. 덜컹, 그녀가 가장 먼저 자동마차에 올라타고 우레바퀴를 돌리자, 철컥거리며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자동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수게 둘 순 없지.”
“그래. 만일 다시 만들어야 한다면. 차라리….”
처음 한 번이 어렵지, 한 번 봇물이 터지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흐른다. 서로를 바라보던 노역자들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내가 마련한 백도어를 통해 마음을 내보냈다.
마음을 따라 몸도 밖으로 나갔다. 그들을 옭아맨 사슬은 어디까지나 마음만 묶어두었을 뿐이기에.
“어? 뭐야?”
덜컹덜컹.
노역자들은 수많은 자동마차가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광경은 꽤 장관이었다.
나라가 휘청일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군국의 입장에서도 무시하기는 힘든 손해일 것이다. 그 군국의 세금을 도둑질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마침 공장을 다 부수고 돌아온 회귀자가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격납고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기에 있던 자동마차는?”
나는 마지막 남은 한 대를 탕탕 치며 말했다.
“괜찮아요. 여기 마지막 하나는 남겨놨으니까요. 가장 좋은 거로요.”
“노역자들은? 공장이 불에 타면 같이 불에 탈 것처럼 굴더니만. 탈출시킨 거야?”
“탈출이라니요! 경을 칠 소리를. 저들은 군국의 자산인 자동마차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 대피 행위에 가담했을 뿐이에요.”
“뭐야. 같은 말이잖아.”
“다르죠.”
내가 뒷문을 열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사슬은 남아있다. 어떤 노역자는 간만에 되찾은 자유를 즐기다가 냉큼 도망치겠지만, 몇몇은 사령부를 벗어나지 않고는 근처에서 알짱거릴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쪽이 더 위험하다. 그들 자신에게도, 군국에게도.
“군국 입장에서는, 아예 도망치는 노역자보다는 괜히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녀석이 더 싫겠죠. 저들에게 도망칠 마음이 희박했던 탓에 군국에 더 큰 혼란을 일으킬 거예요!”
지금까지 자동마차를 타고 온 우리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겠지. 자동마차 하나하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내용물을 확인하려고 다 잡아볼 것이다.
이른바 군국을 상대로 한 알러지 작전.
‘이 많은 사람을 미끼로 썼다는 말이잖아? 멋대로 도망친 노역자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고….’
그것까지 내가 신경 써줘야 해? 그건 저쪽 사정이지.
결정한 건 저들이고 괴롭히는 건 군국이다. 양자 관계에 내가 왜 끼어들어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회귀자가 떠나는 자동마차의 뒤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 꽤 가차없구나.”
“아니. 군국의 전력을 깎아먹고 싶다면서요.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는데 왜 나무라는 거예요?”
“딱히 나무라는 건 아니야.”
“나무라는 게 아니라 칭찬을 해야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잘했다.’나, ‘고맙다.’ 라고 말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사교성이 안 좋은 사람은 입에 발린 말을 하면 알러지라도 생기는 줄 안다. 회귀자가 딱 그쪽이었다. 칭찬을 비롯한 사교 활동을 기어코 피하려는 타입.
“뭘 새삼스럽게….”
“와, 사람 써먹는 게 군국이랑 다를 게 없네.”
내가 투덜거리듯 한마디 흘리자 회귀자가 발끈했다.
“그건 아니지! 내가 아무리 그래도 군국만큼은 아니잖아! 칭찬, 해주면 될 거 아니야!”
“자, 어디 해봐요. 엎드려 받는 절인 만큼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 할 거예요.”
“치잇….”
씩씩거리던 회귀자는 나를 흘겨보며 툭 내뱉었다.
“제법이야. 잘했어.”
“부족해요.”
“…솔직하게 잘했다고 했잖아. 뭐가 더 필요해?”
“오, 방금 건 좀 진정성이 있어서 좋았어요.”
“아니, 이건 너를 칭찬하려고 한 말이…. 에잇, 됐어. 그래, 너 잘났다.”
회귀자가 핀잔을 줄 무렵이었다.
첫 번째 자동마차에서 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보자기로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던 공주였다.
“저, 휴이 님? 연극은 다 끝나셨나요?”
아차. 아직 끝났다는 이야기를 안 했구나. 눈치껏 알아챌 줄 알았는데, 계속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가.
나는 공주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네! 공주님, 좋은 연기였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갑자기 연기를 하라시길래 잔뜩 긴장했는데.”
공주는 땀 난 손바닥을 몇 번 쥐었다 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톱니바퀴에 머리카락이 끼어들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 노역자는 머리를 짧게 깎거나 보자기로 감싸곤 한다.
덕분에 공주는 그 독특한 연분홍빛 머리카락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 틈에 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집단의 평화를 이루는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자동마차로 달려가게끔 했다.
아무렴. 역시 바람잡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되지. 원래 호구가 잡힌 판도 까는 것부터가 일인데.
“티르도 고생하셨어요! 역시 명불허전, 압도적인 연출이었네요! 올해 최고의 그랜드 매지션 걸이 될지도!”
[이쯤이야. 연극을 보는 이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니.]어둠으로 몸을 가리고 있던 티르가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회귀자가 진상을 알아채고 중얼거렸다.
“뭐야. 선동이었잖아. 너야말로 군국이랑 뭐가 달라?”
“다르죠! 저는 최소한 말을 안듣는다고 즉결처분하거나 안쪽 ‘연구소’로 보내지는 않는다고요! 제가 선물한 건 자유에요!”
어떻게 그런 폭언을. 나를 군국 따위와 같게 보다니!
방방 뛰는 나를 두고, 회귀자는 자동마차의 문을 열었다. 안쪽에서 공주가 그녀를 반겼다.
“아, 공! 고생 많으셨어요!”
“공주도. 많이 시달렸을 텐데, 열심히 해주었어.”
너 왜 공주한테만 자연스레 칭찬이 나가는 건데? 차별하는 거냐?
“아, 아닛, 아니에요…! 이런 것밖에 도움이 안 돼서…!”
“아니. 앞으로도 더 도움이 될 거야.”
‘군국이 멸망한 뒤 다시 세워진 신왕국이 그 난장판 속에서도 명맥을 지킨 건 다 공주 능력 덕분이었으니까. 흥, 나조차도… 환멸을 느낄지언정 적의를 갖진 못했지. 그 힘이라면, 분명 더 잘 쓸 수 있어.’
확고한 의지를 담은 발언에, 심장이 쿵 떨어진 듯한 공주가 양손으로 보자기를 꼭 쥐면서 시선을 피했다.
속내가 저러면 칭찬이 아주 시기적절하게 들어가는구나. 공주, 속지 마라. 그건 정말 가시밭길이다.
이쪽은 미리 봐 둔 자동마차에 짐을 다 실어둔 상태였다. 히스토리아와 회귀자가 탄 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지금껏 우리 움직임은 군국에게 전부 포착되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 도래하고 어둠을 사방에 깔린 지금, 이 한나절 동안은 우리가 군국보다 빠르다.
히스토리아가 노린 게 바로 그것이다. 기동전.
군국 출신 장성 아니랄까 봐, 작전도 군국 같네.
“리아. 다음 목적지는 어디야?”
마지막으로 올라탄 히스토리아가 지시를 내렸다.
“연금강 제련소. 당연한 수순이지. 연금강 공급을 망가뜨리면 중장기 보급계획에 차질이 생길 테니.”
“오, 괜찮은 작전인데. 장성은 장성이라는 건가. 거리와 방향은 어떻게 돼?”
“멀지 않아. 북서쪽으로 20분 거리. 애초에, 자동마차에 쓸 자재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서로 가까이 지었으니.”
연금강 제련소, 좋지. 연금재료가 잔뜩 있는 거기라면 내가 쓴 카드를 조금 보충할 수도 있겠다.
와중에 나쁜 기억을 상기한 회귀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연금강….”
연금강 제련소. 광물과 가연금물질을 연금하여 강철로 정련하는, 군국의 살을 빚어내는 곳. 연금강으로 다른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은 많지만 연금강을 생산해내는 건 이곳이 유일하다.
연금강은 군국의 살. 따라서, 이곳을 망가뜨리면 군국은 연금강의 재고가 언제 동날지 몰라 공포에 떨어야 한다. 무기부터 건축자재, 패킷까지. 군국에 존재하는 모든 자원에 시한부 선고가 내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회귀자는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는 알고 있었기에.
“그곳은…. 사람을 때워 철을 녹이는….”
히스토리아가 회귀자의 대답을 긍정했다.
“당장 죽여도 되는 흉악범죄자만 가득 모여있는 곳이지.”
연금강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금술이 필요하다. 연금술을 쓰기 위해서는 구조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마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만들기 쉬운 마력원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즉.
연금강 제련소는, 사람을 잔뜩 쥐어짜서 연금강을 만들어내는 공장.
자동마차 조립공장의 노역자들이 죽어도 가기 싫어했던 ‘안쪽’의 일부이다.
“연금강 제련소요?”
공주가 반응했다. 그녀는 연금강 제련소가 무엇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그곳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거기에요! 거기에 저희 협력자가 숨어있어요! 거기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기회에요! 드디어, 저희도 도움이 될까 봐요…!’
공주가 천진난만하게 말했지만, 나를 비롯해 그곳의 실체를 아는 몇몇은 선뜻 잘됐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공주의 태도가 너무 밝은 탓에 차마 지적하지 못한 것이다.
“숨어있다고? 5레벨, 갱생 불가능한 범죄를 저질러 체포된 이들만 가는 가장 안쪽 노역장에?”
그러나 공주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히스토리아는 한층 냉소적인 태도로 쏘아붙였다. 뜻밖의 말에 공주가 토끼 같은 눈을 하고는 되물었다.
“네?”
“고양이집에 잠입한 생쥐 꼴이네. 숨은 게 아니라, 잡힌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