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52)
EP.252 강철의 나라와 얼굴 없는 인간들 – 1
다행스럽게도, 협력자 이야기의 결말은 숨어든 협력자가 사실 잡혀서 착취당하고 있다는 해학적인 종류가 아니었다. 공주는 손발을 내저으며 그 협력자는 진짜로 레지스탕스의 임무를 받고 잠입한 것이며, 군국에 대한 복수심이 투철하고, 심지어 자기도 직접 얼굴을 본 적도 있다고 장담했다.
못 미덥긴 마찬가지지만 어쨌건 목적지는 정해졌다.
연금강 제련소. 강철과 인간의 비명이 동시에 들리는 곳.
우리는 그곳에 도착했다.
깡-. 깡-.
마르고 달궈진 소리가 울려 퍼진다. 녹은 연금강을 주괴로 정련하는 소리다.
군국에는 통신병이 있으니, 우리의 공격은 군국 전역에 알려졌을 것이다. 다른 곳은 나름 비상이랍시고 병력을 빼내거나 문을 잠갔지만, 이곳만은 외딴 섬 같았다. 고요하다는 게 아니라, 바깥이 어떻게 되든 무관계하며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공장 입구에 미등록 자동마차가 도착했음에도 경비병은커녕 노역자조차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약간 서운할 정도다.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강철의 비명소리만이 이곳이 어디인지 주장할 뿐이었다.
“…칫. 이곳은 언제 와도 을씨년스럽네. 그냥 지나가는 편이 좋을 텐데.”
회귀자가 질린 기색으로 중얼거리다가 문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명백히 수상한 그 그림자는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검을 치켜든 회귀자는, 적의나 경계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대의 모습에 다시 검을 내렸다.
“저 앞에 누가 오는데? 적은 아닌 것 같아. 레지스탕스 쪽 협력자인가?”
그 대답은 시아티가 대신했다.
시아티가 드물게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군국을 망가뜨리는 것만 신경 쓰던 그녀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존재인 모양이다. 그녀는 성치 않은 몸으로도 반가움을 표현하며 그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둘이 마주치기 세 걸음 전.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예전의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시아티는 미리 나누어두었던 암호를 확인했다.
“우리는 어디에 있지?”
사내도 똑같이 걸음을 멈추고는 그에 화답했다.
“여전히, 그 강바닥 아래.”
“무사했네, 캐러팔드.”
“너도, 시아티.”
서로를 확신한 둘은 짧게 어깨를 맞대 인사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접촉에는 죽음을 함께 한 자만이 가진 친애가 느껴졌다.
최소한, 시아티에 한해 그 감정은 매우 확고했다.
짧은 인사 뒤, 캐러팔드라 불린 사내는 곧이어 시아티의 뒤를 따라온 이들의 면면을 보았다.
“레지스탕스…가 아닌 쪽 사람도 많이 보이는군. 우리 협력자인가?”
“달라. 우리가 협력자 쪽.”
“뭐?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잠깐. 저들은?”
나와 히스토리아의 얼굴을 본 사내가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모범적일 정도로 말끔한 인상의 사내였다. 좋게 말하면 준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특색이 없다고 할까.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면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법한, 인상이 흐릿한 남자가 백지 같은 얼굴에 표정을 그렸다.
남자는, 시아티와 처음부터 아는 사이였던 것처럼 인사를 끝마치고는, 눈을 굴리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히스토리아? 휴이? 진짜, 너희야? 둘이 어떻게 여기까지…!”
놀라운 일은 연이어 일어났다.
뜻밖의 만남에 꽤나 반가워하는 그의 태도와는 달리, 히스토리아는 마뜩잖은 얼굴을 보였다.
‘강 밑바닥에서 간신히 살려놨더니, 이런 사지에 숨어들어왔을 줄은. 다들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거야? 왜 자꾸….’
히스토리아에게 살리지 못한 이들은 회한이며, 살린 이들은 그녀가 간신히 이룩한 성과다. 그러니 성과가 회한이 되기 위해 날뛰는 모습이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입가를 일그러뜨린 히스토리아는 시선을 피하며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사내는 어설프게 내민 손을 회수하며 히스토리아를 노려보았다.
“진짜 변한 게 없군. 히스토리아는 아직도 우리를 존재하지 않는 척, 보지 못한 척한단 말이지. 잘났군, 정말.”
…마치 히스토리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는 투덜거렸다. 나는 말도 안하고 떠난 히스토리아 대신 그녀를 변호했다.
“보지 못한 척이 아니라, 봐주고 있는 거지. 리아 입장에서 레지스탕스는 잡아야 할 대상이니까.”
“그렇더라도! 저 애매한 태도는 뭐야! 군국 편인지, 우리 편인지 확실하게 해야 할 거 아니야!”
사내가 씩씩거렸다.
‘캐러팔드’다운, 참으로 적절한 태도다. 유치한 이분법을 갖고 상대를 구분하는 편협함. 상대의 호의에 기대면서도 그 이상을 바라는 찌질함까지 돋보인다.
누가 봐도 악에 가득 찬 소시민으로 보이는 그런 태도를 취한 그는, 이내 나를 향해 호의적인 미소를 보여왔다.
“그나저나 휴이, 정말 오랜만이야. 네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든든한데.”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처럼, 우호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다. 혹여나 내가 그를 몰라볼까 봐 친절하게 자기소개까지 덧붙여가며.
“아, 나 기억하지? 나야, 나. 캐러팔드!”
‘나는 캐러팔드. 하멜른의 마지막 생존자. 그리고 레지스탕스이며, 이들을 안내할 안내자.’
물론 나는 캐러팔드를 기억한다.
그는 하멜른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마도장교 지망생으로, 야망도 있고 재능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란카르트라는 괴물을 동기로 두고 있었다.
너무 강한 빛은 눈을 멀게 한다. 다른 방법을 추구했다면 장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좁은 시야를 가진 그는 란카르트의 거대한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낙제했다.
그래. 나는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너는 말도 없이 사라졌지. 첸토는 실망했고 시아티는 그에 분개했지만. 나만은 알았어. 네가 군국과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 너도 우리와 함께할 날이 올 거라고 확신했지. 마치 우리가 같이 니콜라스를 무찔렀던 그때처럼!”
‘역할에 몰입하라. 배역에 충실하라. 그리고 {나}를 속여넘겨라. 나는 캐러팔드다.’
…자기를 캐러팔드라고 믿는 정신병자는 모른다고.
누구냐, 너는?
자기가 자기라고 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삶이 지루해진 철학자 말고는 없다. 심지어 이 남자는 얼굴조차도 캐러팔드와 전혀 닮지 않았다.
그는 캐러팔드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캐러팔드라고 인식한다.
그와 가장 가까웠을 시아티도, 그를 강바닥 밑에서 구했던 히스토리아도.
“캐러팔드. 이럴 때가 아니에요.”
“엇? 공주님께서 친히 이곳에…?! 시아티. 어떻게 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일단 진정하고 듣기나 해. 캐러팔드.”
“진정하게 생겼어? 그리고 저들은 누군데?”
인지부조화가 찾아온다. 그를 아는 시아티와 히스토리아, 공주는 분명 그를 캐러팔드라고 인식하고 있다. 지금도 저 특색없는 얼굴에 자꾸만 그들의 시선이 덧씌워진다.
그러나 나는 안다. 헷갈릴 수조차도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기를 캐러팔드라고 주장하는 정신병자는… 역설적으로, 자기가 캐러팔드가 아님을 강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호오. 이거 봐라. 표지를 바꿔치기를 해버렸네.
솜씨가 수준급이다. 기회가 생기자 냉큼 자기를 소개하는 것부터, 자연스럽게 같이 겪었던 일을 늘어놓고는 자기를 캐러팔드로 인식시키는 것. 한두 해 솜씨가 아니다.
친밀감을 만들어내기. 내가 사기를 칠 때 자주 쓰곤 했지.
다른 게 있다면, 나는 기껏해야 흉내 낼 뿐이지만 그는 ‘변신’까지 할 수 있다는 점.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그를 캐러팔드라고 보고, 느끼고, 행동한다.
이건… 신비에 가까운 무언가.
정말로 사기적인 능력이다. 저 능력을 나에게 줬다면 사기를 칠 때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이런 부분에서 불공평함을 느낀다.
그래도 다행이야. 나에게 독심술이 있어서.
만일 내가 간파하지 못했다면, 캐러팔드를 흉내 내는 무언가에 이끌려서 함정까지 갔겠지.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하는 전설 속 세이렌처럼, 보물로 여행자를 낚는다고 하는 동화 속 미믹처럼. 친구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 이 존재를 따라갔을 게 분명하다.
자, 어떻게 할까.
“좋아. 정했다.”
“응?”
결정했다. 마음을 다스린 나는, 독심술로 마음을 읽으며 거울처럼 그를 따라했다.
그는 캐러팔드다.
그는 캐러팔드다.
그는 캐러팔드를 덮어 쓴 지크흐룬드.
아니. 거기까지 읽진 말자. 내가 알아챘다는 게 드러나니까.
그는 지크흐룬드가 아니라… 군국의 그림자이자, 공공안전부의 수장.
별이 빛나기 위해 필요한 어둠. 존재하나 드러나지 않는 흑질(黑質). 야경꾼… 영궤 지크흐룬드가 아니라.
하멜른에서 살아남아 레지스탕스가 되어, 오랜 잠입 생활을 견딘 끝에 결실을 거둔 게 기쁜.
내 친구였던 캐러팔드다.
“…시아티가 있을 때부터 대충 예상을 했지만, 정말 너였네, 캐러팔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많이 봐.”
반갑지 않다.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사람처럼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캐러팔드’를 향해 한껏 잘난 듯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군국을 부수는 명예는 내가 가장 먼저 차지하겠어.”
네가 생각하는 내 모습. 대답하리라 기대하는 그대로 흉내 내주지.
사람이 가장 방심할 때는 언제인가.
푹 자고 있을 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아니.
사냥감의 숨통을 물어 뜯기 직전. 모든 긴장이 풀리며 필연적인 성취감에 젖을 때다.
속고 속이는 사냥의 밤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