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65)
EP.265 얼굴 없는 인간
히스토리아와 지크흐룬드는 서로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빗나간 정권에 맞은 제어판이 튀어 오르고, 발로 날려 보낸 의자가 빙글빙글 돌며 히스토리아의 머리를 노린다. 히스토리아는 기공을 두른 이마로 그것을 받아낸 뒤, 의자 그림자 아래 주먹을 숨기고 내질렀다.
지크흐룬드는 팔다리를 기묘하게 휘저으며 부드럽게 그 팔을 잡아챘지만, 히스토리아의 손에 들린 리볼버가 차가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지크흐룬드는 히스토리아가 진정 숨고자 한 게 주먹이 아닌 권총이라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폭발하기 직전의 기공이 거칠게 진동했다.
타아앙. 폭음과 함께 총구에서 기공의 시퍼런 빛이 뿜어졌다. 거의 동시에 지크흐룬드는 다급히 허리를 젖혔다.
종이 한 장 차이. 기공으로 쏘아진 총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지크흐룬드를 맞혔다. 튄 핏자국이 탄의 궤적을 그렸다. 튕겨난 총탄이 벽을 깨부수고, 지크흐룬드의 피부에는 얇게 저민 듯한 상처가 생겼다.
그러나 그도 잠시, 지크흐룬드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히스토리아가 멈칫거렸다.
“재생…?”
어떻게 보면 재생이라 볼 수 있겠지만, 불사종족이나 흡혈귀가 가진 재생력과는 조금 다르다. 경지에 이른 감기공으로 혈액을 붙잡고 피부 조직을 억지로 이어 새로운 얼굴을 만든 거니까.
물론, 그 역시도 경악스럽긴 하다. 자기 몸조차도 억지로 꿰매어 전투를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대단한 능력이네요.”
이야. 육장성 쪽은 진짜… 장성급까지는 어떻게 시간이라도 벌겠는데. 육장성급이면 그냥 감당이 안 되는구나. 히스토리아가 없었다면 한 호흡만에 순살로 발라졌을 거다.
경탄에 잠긴 나는 순순히 그의 강함을 인정했다.
“가짜 삶이 이룩한 것 치고는 말이죠!”
“휴이! 너 입 다물고 있어!”
더욱 격렬해지는 공격에 히스토리아가 비명을 질렀지만, 툭 건드리면 터지는 사람이라서 놀리는 맛이 있다는 말이야. 그리고 지금은 네 공격보다는 내 말이 더 효과가 좋다고.
지크흐룬드는 다시 히스토리아를 제치고 나를 노렸다. 1:1로 싸울 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위치 바꾸기. 그러나 뒤쪽에 내가 있는 이상, 히스토리아는 어떤 수를 그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그 수단이 있었다.
한껏 응축된 기공이 폭발한다. 총성이 세상을 찢었으나, 이번에 지크흐룬드는 찢기지 않았다. 총격을 예상한 그는 발사되는 순간 기민하게 피해냈다.
총격은 허무하게 빗나갔으나, 어쨌든 그 틈에 히스토리아는 다시 그를 따라잡았다.
‘총탄을 소모하기를 노리고 있어. 벌써 두 발. 남은 건 한 발뿐인데…. 한 발. 한 발만 더 있었으면…!’
격분하여 나를 노리는 와중에 이성은 차분하다. 그게 군국 육장성, 영궤 지크흐룬드니까.
자아가 위협받는 와중에도 냉철하단 말이지. 육장성이 다 그렇긴 하지만, 끔찍할 정도로 위험하고 강하다. 만일 히스토리아가 나를 노린다면… 나는 총격에 맞고 비명횡사 했겠지. 쟤가 내 편이라 다행이다.
그걸로 끝낼 수는 없지. 히스토리아가 나를 보호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업혀서 살아남을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약하고 평범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신공격뿐이지.
“지크흐룬드의 삶이 그렇게 매력적이에요? 당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큼? 그러지는 않을 거야. 지크흐룬드라는 인생도 당신이 하던 일의 연장일 뿐이니까. 남의 얼굴을 훔쳐서 남의 인생에 숨어 들어가, 그들의 부정을 폭로하고 처단하는. 타인이 되는 걸 전제로 한 인생인데?”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지크흐룬드의 공격은 더욱 격해졌다. 열심히 막아내던 히스토리아는 내심 나를 욕하면서 그를 막았다. 이제는 서로 주먹을 뻗을 때마다 포탄 터지는 소리가 난다.
말리는 사람이 있을 때 더 화가 난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다. 나에게 직접 화를 풀 수가 없으니까 쌓여만 가는 거지.
“자. 지크흐룬드! 저는 당신의 소원을 읽어요. 사실상,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죠! 왜냐면! 그 소원만이 당신을 당신답게 하니까!”
“헛소리는 집어치워라아아아!”
지크흐룬드는 히스토리아를 크게 후려치는 동시에, 드러난 나를 향해 품 안에 있던 날카로운 물건을 던졌다. 의복 패킷을 비수처럼 날카롭게 갈아낸 것이었다. 재질은 연금사로 만든 천이라지만, 압축된 연금물질에 기공을 실어 던진 만큼 그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흥, 하지만 생각을 읽는 나에게는 이미 궤적이 훤히 보이… 어, 잠깐. 피하기엔 좀 빠른.
타아앙.
위기의 순간, 히스토리아가 총탄으로 의복 패킷을 격추했다. 영점잡이를 쓰지 않았음에도 놀라운 정확도였다. 너, 이 실력이면 이치 그거 필요 없는 거 아니야? 그냥 맞추면 되는데, 영점잡이로 필중을 약속할 필요가 있을까? 이치 아깝게.
‘이게 마지막 총탄…! 어쩌지. 이제 더 수가 없어…!’
아, 그러고 보면 회귀자의 생각에서, 히스토리아는 미래에 다른 능력을 각성한다고 했지? 영점잡이와는 다른 이치, 총검총의라고. 엄청 강해 보이는 기술인데 어째 지금 각성해주지 않으려나?
슬슬 나도 위험하다고. 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성해줘. 업혀서 편하게 가게.
이제 히스토리아에게는 남은 총탄이 없다. 전투 연금술로 급조…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해서 여유가 없다. 명백하게 위기에 몰린 상황.
그러나 지크흐룬드는 자기가 극히 유리한 상황에서도 수비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히스토리아도 그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그는 내 능력을 알아. 영점잡이, 세 발을 쏘면 한 발에 필중을 약속하는 기술. 총알이 세 발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에겐 이 총탄이 네 번째야. 내가 이치에 닿은 총탄을 갖고 있다고 믿으니까…!’
판단을 끝마친 히스토리아는 약실을 돌렸다. 거기에 총탄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이 그렇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본능적으로 우세를 깨달은 히스토리아는 아까보다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총구를 그에게 겨누지만 쏘지 않는다. 기공만 잔뜩 머금은 채로, 언제든지 그를 쏠 수 있는 위치에 두고는 손과 발을 써서 격투를 벌였다.
좋아. 기회다. 나 역시, 히스토리아에게 총탄이 있는 척 뒤에서 훈수를 뒀다.
“리아! 저 사람은 네 다음 총탄을 피할 수 없어. 그러니까 가장 안전하게 맞을 생각일 거야! 팔다리는 맞춰도 금방 재생하겠지.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급소를 노려!”
“말 안 해도 노리고 있어!”
‘노리기만 하지, 쏠 수는 없지만!’
호흡이 척척 맞는군. 역시. 속임수도 속아본 이들이 더 잘 쓴다니까.
총구가 그의 머리 쪽을 겨냥하면 지크흐룬드는 더욱 근접하여 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근거리 격투로 몰고 가서 총을 빼앗으려…는 시도는 의미 없다. 이미 기공을 잔뜩 머금은 채 꽉 붙잡혀 있는 리볼버를 빼앗으려면 그보다 훨씬 큰 기공을 써야 하니까. 무익한 일에 힘을 빼는 대신, 팔꿈치와 상박을 쳐내면서 사선을 빗겨낸다.
그리고 히스토리아는, 총탄도 없으면서 자꾸 그를 사선에 넣으려는 척 싸운다. 즉, 지크흐룬드는 상상 속의 총탄과 싸우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총탄은 아직 쏘아지지 않은 탄이죠. 언제, 어떻게 발사될지 모르니까.”
나를 공격하기 위해 멀어졌다간 전신이 사선에 들어온다. 있지도 않은 총알 때문에 지크흐룬드가 도리어 히스토리아에게 얽매이게 된 것이다.
휴. 역시 세 발만 주길 잘했어. 하필 리볼버가 여섯 발 들이라서.
둘은 꽤 오래 공방을 이어갔다. 지크흐룬드가 근접 격투에 한해서 약간 우위였지만, 히스토리아는 총을 무기 삼아 대등, 아니, 훨씬 유리한 격투를 이어갔다.
소강 상태지? 이제 슬슬 작전을 계속하자.
“지크흐룬드라는 탄환도 마찬가지. 당신도 이미 쓰였어요. 당신이 역용술로 변신하고 다닌다는 건 이미 알려졌고, 한 번 알려진 건 이제 무기가 될 수 없죠. 당신의 이용가치는 여기서 다했어요! 더는 지크흐룬드로 있을 수 없어!”
“너, 너만 없으면 돼…!”
“하하. 저는 없어질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것도 기회겠다. 당신의 다음 삶은 제가 정해드리죠. 당신의 소망 그대로. 진짜 당신이 될 수 있는 이름, 얼굴, 신분으로! 어때요? 매력적이죠?”
“필요 없다! 그런 건 내가 정할 수 있어!”
“해보시든가! 내가 평가해 줄 테니까!”
히스토리아와 싸우는 와중에도 지크흐룬드의 얼굴이 제멋대로 바뀌었다. 백지 같은 얼굴이 이리저리 변한다. 나는 히스토리아의 어깨 너머로 그 얼굴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그건 티르의 얼굴이잖아요. 좋은 모델 찾아서 신난 마음은 이해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흡혈귀와 성황청 둘을 동시에 신성모독하는 셈인데?”
말을 끝내자마자 또 이리저리 바뀐다. 와중에도 귀는 열려 있구나. 나는 냉정하게 평가를 계속했다.
“시아티? 오른팔이 멀쩡하니까 훨씬 보기 좋네요. 그래도 제 친구 얼굴은 빼주시죠? 인간관계가 꼬여서 어색해지잖아요?”
다음은 공주의 얼굴이었다. 새삼 순진한 얼굴의 공주가 히스토리아와 대등하게 격투하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난다.
“진짜 공주였다면, 애초에 히스토리아가 공격하는 것부터 불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이어진 얼굴은…. 상당히 늠름한 버전의 회귀자였다. 나는 키득거리며 비웃었다.
“아하하. 너무 남자다운데? 미안하지만, 셰이 씨는 그렇게 남자답지 않아요. 가장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요!”
남장은 오직 여자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어쩌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꽤 괜찮을지도?
그 다음은… 나였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탓에 히스토리아의 손발이 잠깐 멈췄고, 두 번의 타격을 그대로 허용했다. 그러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는지 히스토리아는 곧장 자세를 다잡았다.
“제 얼굴을 한 존재가 리아를 몰아넣으니까 은근 기분은 좋네요. 이게 대리만족일까요?”
갑자기 히스토리아가 냅다 내 뺨, 아니, 내 얼굴을 한 인간의 뺨을 때렸다. 거센 타격감에 나는 흠칫 놀라서 내 오른뺨을 만지작거렸다. 어휴, 심장이야. 내가 맞은 줄 알았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얼굴은…. 창백하고, 음울하며,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한 여자의 얼굴.
옳지. 너였구나. 찾았다.
군국을 만든 녀석.
좋아. 확인했어.
“괜찮은데, 저는 조금 다른 쪽을 권장하고 싶네요.”
아주 어릴 적, 그는 기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특정하기 힘든 기녀의 자식 역시 기녀로 자라게 되며, 익힌 재주가 많을수록 높은 대우를 받는다. 어머니의 성화에 그 역시도 온갖 기예를 익혔다.
기루에는 재주꾼이 많았고, 그 역시도 온갖 잡기술을 배웠다. 재능이 있던 그는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모든 재주를 흡수했다. 점차 두각을 드러낼 무렵, 마침 방문한 극단이 그를 데려가기를 원했다.
장차 벌이를 책임질 재주꾼을 팔 기루는 세상에 없지만, 마침 그때 제국에는 연극이 유행이었다. 극의 질에 따라 제후국의 위상이 달라졌으니 자연스레 극단의 입김도 강했으니, 나라의 묵인 아래 운영되는 일개 기루가 저항할 수 있을 리 없다.
유일한 문제점이라면 그의 의지. 그가 어린 시절 함께 한 기루에 대한 애착뿐.
하지만 극단주의 한마디가 그를 바꾸었다.
기루에 있으면 기녀밖에 되지 못하지만, 무대 위에서 너는 뭐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때, 그는 원래 있던 신분을 버리고 배우가 되었다. 새로운 이름을 예명으로 삼고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아마 그 당시에는 색다른 희망으로 가득 찼을 테지만. 결과는 안 좋았지.
“자. 제가 정해주는 대로 바꿔보세요.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 정할 수 없는 댁보다는 제가 정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