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71)
EP.271 강철의 나라와 얼굴 없는 인간들 – 12
뒤따라 들어온 공주는 내부 모습을 보고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자그마한 골렘이 자기 크기에 맞는 기구를 갖고 씨름하는 모습이 그녀의 아기자기한 감성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골렘들이 다루는 게 무수한 서류라는 것을 발견했다. 공주의 안색이 달라졌다. 나름 레지스탕스를 이끄는 자로서 그 서류가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게, 사령부의 정체인가요? 수많은 골렘들이 사령부의 본모습…?”
“그럴 리가. 당연히 골렘을 다스리는 자가 있겠죠.”
시아티에게는 동화적인 광경을 보고 감탄할 만한 감성은 없다. 대신 날카롭게 벼려낸 적의만 있을 뿐.
“그리고 그자가… 진정한 흑막이지. 나를, 이 군국을 이렇게 만든.”
시아티의 목소리가 떨린다. 한참 찾아 헤매던 보물, 혹은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전율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시아티에게 위기감을 느낀 공주가 조심스레 지적했다.
“저, 시아티. 우리는 살육전을 벌이러 온 것도 아니고, 일단 휴이 님 협상하는 데 따라온 거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이 기회가 어떤 기회인데. 더, 더 캐묻지 않고 이대로 가시게요?”
시아티는 맨손으로 멈추어 있던 골렘 하나를 붙잡았다. 당장이라도 쥐어뜯고 싶다는 듯 힘을 잔뜩 줬지만, 손가락이 부러진 채로는 강철로 된 골렘의 손가락 하나조차 부러뜨릴 수 없다.
그러나 시아티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아직 엄지가 남아있었으니까.
상대가 누구라도 일단 꺾을 수는 있는 흑마술의 손가락이.
“사령부도 고통을 알아야 해. 신이라도 된 듯이 군국의 모든 걸 정하던 너희들도, 버림받고 죽어가는 이들의 아픔을 알아야 해!”
“시아티….”
“저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요. 반드시, 그들에게도 나와 똑같은 아픔을 느끼게 해줄 거야. 그러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
공주의 만류도 뿌리친 시아티는 본부 내 소리가 다 울리도록 소리쳤다.
“불렀으면 나와! 대화하고 싶다며?! 설마 골렘을 통해서 대화 하겠다고 우리를 부른 건 아니겠지!”
놀랍게도, 한평생 부름에 응한 적 없던 군국은 시아티의 부름에 응했다.
문이 열렸다. 두 번째 문이었다. 앞에 쌓인 서류가 유난히 적은, 누군가 자주 드나든 것 같은 문에서 그녀가 걸어 나왔다.
시아티가 눈을 희번덕 뜨며 물었다.
“드디어 납셨어. 네가 군국의 사령관이야?”
『부정. 본관은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문을 열고 걸어나온다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나타난 그녀의 대답은 직업에 아무런 열정도 없는 사무원처럼 사무적이었다.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듯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했다.
시아티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령관이 아니라. 어떻게 불러드릴까? 총통? 대장군? 아니면, 통령?”
『부정. 군국에는 그러한 직책이 없으며, 본관 역시 그런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너는 뭔데….”
시아티는 말을 흐렸다.
군국에는 계급 체계가 있다. 모든 군인은 맡은 바 임무에 따라 그 지위를 부여받는다. 더 높은 계급을 가진 이들은 모두에게 자신의 계급을 알리고, 격하의 이들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을 얻는다.
눈앞의 존재 역시 군국의 체계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대위의 견장을 달고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단, 그 제복은 장성이나 입는 고코스트의 제복이 아닌… 평범한 제복이었다.
상대의 지위를 확인한 시아티가 어처구니없어서 되물었다.
“대위?”
낮은 계급은 아니다. 그 정도면 어떤 도시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거들먹거릴 정도는 된다.
그러나 딱 그 정도. 대위라는 계급은 이 나라를 움직이는 사령부의 일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다.
전국의 대위만 모아도 마을 하나는 채울 수 있을 텐데, 그들 모두가 나라를 이끄는 사령부의 일원이라면 군국이라는 나라는 사방팔방으로 찢겨 거열형을 당했을 것이다.
“고작 대위라고?”
고작 대위에 불과한 그녀가 사령부의 일원이냐고, 시아티는 그런 의미를 담아 물었지만. 눈앞의 대위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긍정. 군국 통신병 아이비 대위입니다. 귀하들께 말을 전하기 위해 본신으로 귀하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위와 눈이 마주쳤다. 상대방의 얼굴과 생각을 확인한 뒤, 나는 묘한 기분에 턱을 긁적였다.
신기하네.
보통 말을 하는 사람은 머릿속으로 미리 생각해두기 마련이다. 입은 어디까지나 전달하는 수단이고, 의지는 생각에서 다 이루어지니까.
하지만 눈앞의 사람은 둘이 달랐다.
‘오랜만이에요. 떨어져 있던 며칠간 잘 지내셨는지. 통신병이라 이야기는 모두 전해 들었습니다. 저 못지않게 바쁘셨나 보군요.’
도대체 에이비 대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본심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거짓말을 하려는 이들은 강렬하게 진실을 되새기니, 진실과 거짓은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다.
그에 비해 눈앞의 그녀는 달랐다. 하고픈 말이랑,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완전히 다르다. 누가 자기 몸을 쥐고 억지로 움직이는 것처럼.
이건… 사람이라기보다는 골렘과 가까운데.
“아니. 상대가 누구인지, 혹은 뭐라 불리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처음부터 내가 묻고 싶었던 건 오직 하나뿐이었어.”
내가 잠깐 혼란에 빠진 사이, 시아티는 자신을 다잡고는 주변을 살폈다. 흩어진 서류, 거기서 옹기종기 모여앉은 골렘. 그 서류에 적힌 내용, 통신병이 명령을 전한다는 이야기까지. 시아티의 안쪽에서 차곡차곡 정보가 결합되었다.
타고난 감 때문일까, 아니면 날카롭게 벼려낸 공격성 때문일까. 시아티는 순식간에 정답을 도출해냈다.
“군국에서, 사령부가 내리는 모든 명령은 통신병을 통해서 전달돼. 그렇지?”
에이비 대위는 시아티를 앞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
“이 통신본부에서 다루는 건, 군국 각지의 기밀이 담긴 정보들이고.”
『긍정. 현 본부에서 처리하는 정보에는 내용에 따라 각기 다른 보안 레벨이 걸려있습니다.』
“거기에는 금기에 대한 정보도 있겠지?”
『긍정.』
“그래. 그러겠지.”
담담하게 중얼거린 시아티는 불길하게 의수를 쳐들었다. 철컥. 의수에 내장된 장치를 세게 돌리며, 시아티는 에이비 대위를 노려보았다.
“하멜른에서 있었던 사건. 기억하고 있니?”
정상적인 추궁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낙인을 내리찍기 위한 마지막 관문. 부정해야 할 타이밍이나, 에이비 대위는 미련하리만치 솔직하게 대답했다.
『긍정. 통신병은 군국의 크고 작은 정보를 기억, 혹은 기록해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겠네. 니콜라스에게 금기를 쓰도록 허락한 거. 너희지?”
『부정.』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던 시아티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금기의 사용 여부는 해당 담당자의 직권입니다. 통신병은 그에 해당하는 정보만 건넸을 뿐입니다.』
“하!”
잠깐 주저하던 감정이 이제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갔다. 한껏 비웃은 시아티는 다시 대위를 노려보았다.
“그래. 그랬겠지. 니콜라스가 직접 알아내지 않았을 거야. 대신 누군가 그 정보를 주고, 그 정보를 자의로 판단하여 쓸 권한까지 쥐여주고, 예상 밖의 사태가 터지자 정보를 통제하고 모든 기록을 삭제했겠지.”
대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아티도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입술을 뒤틀며 웃었을 뿐.
“그래. 통신병들. 너희구나.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파악하고, 수많은 군인들에게 단번에 명령을 내리는 사령부. 그건 사실 통신병이었던 거야. 아니야?”
『…그건.』
“대답하지 마. 아니라도 상관없어. 어쨌든, 너희가 군국의 가장 핵심인 건 분명하니까!”
“시아티!”
공주가 말릴 틈도 없이, 시아티는 의수 안에 자기 왼손을 숨긴 채로 돌격했다. 상대가 저항한다면 손가락을 꺾어 무력화시키고 빈 가슴에 칼날을 박을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에이비 대위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온몸에 나팔꽃 줄기를 잔뜩 감싼 채,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시아티의 증오를 그대로 받아내기 직전이었다.
“멈춰!”
물론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 나는 멋들어진 태클로 시아티의 다리를 걸었다.
시아티는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서류뭉치가 가득한 덕분에 주르르 미끄러지기만 했지 다치지는 않았다. 대신 악에 받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휴이!”
“멈추라니까.”
“또 궤변을 늘어놓을 생각이야?! 얼마나 참아야 하는데!”
“참지 마. 나도 참는 건 싫어해. 하지만 마지막 손가락을 쓰기 전에,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라고.”
“이미 충분해! 통신병 역시 내가 복수해야 할 대상이야! 네가 막겠다면!”
시아티가 기습적으로 땅을 박차며 나에게 주먹을 휘둘러왔다. 단련은 꾸준히 했는지 상당히 날카로운 공격이다. 레지스탕스라고 뻗댈 정도는 되겠다.
하지만 생각을 읽는 능력은 이런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처하게 해준다.
연금변환. 다이아몬드 2. 다용도 갈고리.
시아티가 중얼거리는 동안 이미 변환은 끝내 놓았다. 손끝으로 카드를 던졌다. 갈고리가 종이를 파고듦과 동시에 발끝을 걸고 옆으로 치운다. 갈고리에 꿰인 종이가 주르륵 당겨지며 마침 달려오던 시아티의 발을 미끄러뜨렸다.
시아티가 균형을 잃음과 동시에 나는 의수의 바깥쪽으로 파고들어 시아티를 넘어뜨렸다. 땅에 엎어진 그녀의 뒤통수를 꽉 부여잡아 제압하고는, 연달아 들썩거리는 그녀의 등에다 대고 말했다.
“흑마술은 시야에 닿아있어야 쓸 수 있지? 안 보이면 못 쓰고. 그러니까, 내가 뒤통수를 눌러도 좀 용서해주라.”
“너, 어어…!”
“미안. 하지만 네 진정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가만히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걸.”
“네 동료도 말했잖아! 이곳을 가장 먼저 때려 부숴야 한다고! 여기 있는 게 통신병이라면, 통신병을 부수어야 하잖아!”
아, 회귀자가 그랬지. 이곳이 군국의 핵심 시설 중 하나라고. 그 난리가 있던 와중에도 시아티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구나.
“맞아.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 방식으로 부수어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어.”
나는 담담하게 설명하며 대위를 보았다. 대위는 무표정으로 나와 시아티의 전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구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지금의 저는 반쯤 버림받은 존재… 이대로 쓰이다가 사라질 처지니까요.’
나팔꽃 줄기에 칭칭 감긴 채로.
고유마도는 심상의 구현이다. 종류에 따라서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대위의 고유마도는, 물리적인 현상을 수반하지 않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종류였다.
대위의 몸은 나팔꽃 줄기가 감싸고 있었다. 그건 몸을 묶은 밧줄 같기도, 혹은 그녀의 몸을 움직이는 힘줄 같기도 했다. 어쨌든 발치에서부터 자라난 나팔꽃 줄기는 그녀를 한 바퀴 크게 휘감고는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피워냈다.
거기 매달린 꽃봉오리는… 총 스물다섯. 그리고 꽃봉오리 하나하나가 전부 문을 가리키고 있다. 만개한 꽃잎은 저 안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정보와 의지를 전해받고 있었다.
이런 방식이구나. 나는 내심 실소하며 다른쪽 손으로 종이를 구겨 쥐어서 공처럼 말았다.
“시아티. 너는 군국에게 복수하고 싶었지? 하지만 군국이 뭔지 몰라서 헤매는 거고.”
“난 헤매지 않아!”
“헤매는 중이지. 대위를 보고 분노를 느끼기 보다는, 분노해야 할 이유를 찾고 분노했잖아. 네 바람은 그딴 방식으로 이룰 수 있는 거야? 네가 화내야 할 이유를 덕지덕지 붙인 다음에 처형하는 방식이 네가 원하는 거야?”
“그거면 됐잖아. 뭘 더 하는데!”
“정답은 이거야.”
뭉친 종이를 실로 단단히 감싸고 강하게 묶으니 간이 공이 되었다. 나는 종이 공을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외쳤다.
“아지야!”
“멍?”
“주워 와!”
“멍!”
종이 공을 냅다 던지고, 아지가 종이 위를 내달렸다. 잘라진 서류 조각이 눈안개처럼 흩어지는 와중에 맹렬하게 돌진한 아지가 입으로 공을 물었다.
문짝을 몸으로 들이받으며.
군국은 효율적이다. 에이메데르 없이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통신본부에 굳이 고레벨의 연금강철로 문을 달지는 않았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문짝이 뜯어져 나가며 아지의 신형이 사라지고, 저 안에 있는 어두컴컴한 복도가 보였다.
작은 방. 간이 침대와 식수대가 있는,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작은 방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읏…!”
시아티는 또 다른 인기척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장교?”
“여기는 통신본부야. 그런데 통신병 한 명만 있겠어?”
다 통신병이지.
‘동조’의 고유마도를 가지고, 에이비 대위를 움직이는 중인. 다른 스물다섯의 통신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