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72)
EP.273 강철의 나라와 얼굴 없는 인간들 – 14
시아티를 내버려 두고 일어선 나는 저 너머의 통신병에게 말을 걸었다.
“에이비 대위가 저와 구면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텐데, 왜 대위를 앞세운 거예요? 인질? 아니면, 사람이랑 직접 만난 기억이 너무 오래되어서 대타를 두지 않으면 대화하지 못할 정도로 낯가리기라도 해요?”
통신병 IA는 아지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끌어낸 동요는 아주 잠깐뿐. 상황을 충분히 파악한 통신병은 다시 고유마도를 펼쳤다.
고유마도, 거미집.
그녀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얇고 가느다란 실이 뻗어 나갔다. 그 실은 근처에 있던 수많은 통신병에 닿고는 서로를 엮었다.
가느다란 실을 거슬러 기억과 감각, 정보가 흘러들어온다. 에이비 대위의 나팔꽃만큼 유효 사정거리가 길지는 않지만, 가까운 거리에서는 누구보다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타입의 고유마도.
이 모듈의 모든 통신병과 하나로 연결된 IA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다릅니다. 이것은 저희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몇 년 만에 나오는 것임에도, IA는 살짝 눈가를 찌푸리는 것으로 감상을 끝냈다. IA는 에이비 대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 시점, 본 모듈에서는 군국의 기밀 유지 비용보다 귀하의 테러 활동에 대한 복구 비용이 압도적으로 커졌다고 판단한바. 귀하와의 대화를 위해 정체를 드러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좀 실망인데요. 제가 아는 군국이라면 때려죽여도 비밀을 지킬 줄 알았는데.”
“물론, 간단하게 결정된 내용은 아닙니다. 계산 과정에서 의견충돌이 있었습니다. 본래라면, 동조하는 통신병 간에는 결코 의견충돌이 일어나지 않으나….”
IA로부터 뻗어 나온 실에 에이비 대위의 꽃봉오리가 닿았다. 나비가 꿀을 빨 듯, 거기서 정보와 감정을 취한 IA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통신병 아이비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본 모듈에서는 귀하를 이곳으로 인도하는 데 만장일치로 찬성했습니다.”
“오, 에이비 대위가 힘을 써준 모양이네요. 서열이 높은가 보죠?”
“통신병 간에는 서열이 없습니다. 모두가 동조하며, 동등하기에. 단, 개체마다 능력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IA는 자신의 실로 에이비 대위의 꽃봉오리 중 하나를 건드렸다. 고유마도는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을 터나, 통신병끼리는 타인보다 훨씬 가까운 관계인 모양이다. 꽃봉오리는 IA를 바라보며 억지로 꽃을 피웠다.
“에이비. 최초의 A에 가장 가까운 그녀는 강력한 통신병 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고유마도는 침식형 광범위 동조. 근거리, 원거리, 범위, 동조 개체 수. 그 어떤 것도 평균을 상회하는 능력치를 갖고 있습니다.”
“오. 그 능력으로 저를 받아들이라고 설득한 건가요?”
이래서 사람은 끈을 하나 정도는 대놓아야 해. 역시, 이건 에이비 대위를 먼저 발견하고는 안면을 터 둔 나의 정치적 승리….
“다릅니다. 통신병은 여럿이서 하나이며, 하나이자 여럿. 그녀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동조 마법에는 강함의 의미가 없습니다. 도리어 특성상 강할수록 패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길 수 없는 저항을 했습니다.”
아닌가? 소용이 없었나?
“혹시 에이비 대위가 저런 모습이 된 게….”
“그녀는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른 통신병 전원에게 대항하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개 통신병이 모듈에 저항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능력이 강력하다면 더더욱. 그녀는 끈질긴 저항 끝에 에이비의 자리를 빼앗기고, 이너서클 모듈의 공석에 배속되어 업무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배속이라니. 저건 사실상 꼭두각시나 마찬가지잖아.
왠지 나팔꽃 덩굴이 대위 몸을 억지로 움직이고 있더니. 동조마법의 역풍을 맞아서 자기가 묶여버린 거였다.
지금 에이비 대위는 골렘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 즉각 처분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저런 꼴이 되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면 이상한데요. 에이비 대위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면 저는 왜 부른 거죠?”
“…그래서입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 귀하가 어떤 수를 써서 그녀의 정신을 오염시켰는지는 모르나, 만일 그녀가 정신오염이 되었다면 귀하를 향한 기밀 엄수는 무의미해집니다.”
“사람을 무슨 질병 취급을 하고 있어.”
투덜거림과는 별개로 나는 IA의 말을 이해했다. 내가 이미 통신병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기밀을 엄수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귀하는 군국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에, 당장 귀하의 적대 행위 중단을 요구합니다.”
“흐음. 뭐, 그렇다고 치고. 일단 이게 협상이라면 그쪽도 무언가 제공할 게 있는 거죠? 그쪽이 제공할 건 뭐죠?”
“먼저, 원활한 협상을 위해 귀하들의 요구사항을 분명히 알고 싶습니다.”
“고작 대위 따위가 저희 요구사항을 들어준다고요? 됐고, 더 높은 사람 불러오세요.”
캬. 대위를 고작이라고 부르는 날이 오다니. 나 많이 컸네. 하지만 그렇지, 군국을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인간을 앞에 두고 고작 대위가 전면에 나서는 건 좀 그렇지?
“구체적으로는?
“글쎄. 최소한 군국 최고위 지휘자. 사령부의 일원 정도를 불러오시면 그제야 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사령부? 그것으로 충분합니까?”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나는 진상 손님처럼 무작정 뻗대면서 책임자를 부르라고 요구했다. 오직 그들만이 나와 여기 있는 이들의 호기심을 해결해줄 수 있기에.
그러나 IA의 반응은 너무나 의외였다.
몸에서 뻗어나간 거미줄 중 하나가 떨렸다. 미세한 진동에서 정보를 읽어낸 IA에게서 아주 미세한 경악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IA는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고는 전해진 정보를 읽어들였다.
“그렇다면, 본관에게 말씀하십시오. 자격은 충분합니다.”
IA는 군국의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정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왜냐하면, 사령부는 사실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령부를 언급한 파급은 컸다. 시아티, 공주, 히스토리아까지. 모두가 뜻밖의 진실에 눈을 크게 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통신병 전원을 지휘하여 명령을 내리는 개인 혹은 단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 만일 사령부가 정보를 조합하여 군국에 득이 되는 가치 판단을 하는 존재를 지칭한다면, 그것은 통신병 이외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통신병이 곧 사령부라고, IA가 주장은 그러했다. 히스토리아조차도 뜻밖의 정보에 믿기지 않는 얼굴을 했다.
“지금껏 군국을 움직인 사령부가… 통신병이었어?”
“통신병 개인이 자의로 내리는 명령은 아닙니다. 파견된 통신병에게서 전해진 정보는 군국 곳곳에 있는 통신병을 거쳐 진위판단을 끝내고, 모듈로 전해져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미래를 찾고, 그에 해당하는 명령을 군국의 곳곳에 퍼뜨립니다. 즉, 사령부의 명령이라 불리는 그것은 500인 통신병의 총의이며, 통신병이 존재하는 의의.”
한때, 나는 통신병을 군국의 신경에 비유한 적 있었다. 골렘을 통해 군국의 구석구석으로 명령을 전달하는 존재라서 그랬지.
그 비유는 사실 조금 다른 의미로 정확했다. 군국의 수뇌부는, 인간의 두뇌처럼 수많은 신경이 얽히고설킨 집합체였으니까.
“-그렇기에. 만일 귀하들이 군국의 수뇌부를 찾는다면 한다면. 그 대상은 필연적으로 ‘우리’들입니다. 통신병이 모든 정보를 관제하고, 통제하며, 기밀 여부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나타난 적 없는 사령부. 마찬가지로,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았던 통신병. 군국의 사령부는 오직 명령으로만 나타난다. 유령, 혹은 신이나 다름없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처럼.
그러나 우리의 앞에 선 통신병의 고백으로 그 정체가 드러났다.
“군국은 이상향이었네. 모두가 누군가에게 명령받는 나라.”
내가 지금까지 군국에 살면서 살펴본바, 군국에는 무고한 이들만이 살고 있었다.
시민들은 온갖 가혹한 규칙에 시달린다. 코뚜레가 걸린 소처럼 일하며 군국을 살찌운다. 그들을 부려먹는 것처럼 보이는 군인은 사실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일할 뿐이다.
그 와중에 모두에게 명령을 내리는 당사자는 사실 통신병이었다.
“하지만, 모든 군인에게. 육장성이라는 절대적인 무력에게 명령을 내리는 통신병은 고작 대위야. 저 조그만 방 안에 갇혀서, 평생토록 골렘을 통해서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지. 어쩌지, 시아티?”
“저들의 사정 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아직 저 내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시아티는 벌컥 화를 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저들은 내 친구를 죽였어. 나는 그들을 잊지 않기로 맹세했고! 군국은 잘못을 뉘우쳐야 해. 자의가 아니라면 타의라도!”
누군가 칼을 휘둘러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해보자. 칼에는 죄가 없다. 그것을 휘두른 사람에게 얹힐 뿐.
그런데 군국은 모든 인간을 도구처럼 취급한다.
모든 인간이 도구이다.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서 일할, 아니, 기능할 뿐이다. 따라서, 군국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무고하다.
심지어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 통신병조차도….
“시아티.”
“왜!”
“그녀의 나이를 물어볼래?”
“알면, 뭐가 달라져?!”
“응. 달라질걸. 속는 셈 치고 해봐. 정말 이게 마지막이야.”
나를 노려보던 시아티는 짧게 혀를 차고는 눈앞의 장교를 바라보았다. 빳빳한 제복을 입고 무감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시아티가 증오하는 모든 군국을 체화한 듯한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그래. 죽기 전에 묘비에 적힐 나이 정도야. 나이는?”
일상에서 흔히 오갈 법한 대화. 상대의 나이를, 살아온 시간을 묻고 평가하는. 어찌 보면 연공서열이라는 구태의 악습에 조금 보태는 듯한 질문이다.
“스물하나입니다.”
그러나 고작 이 정도로도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
스물하나. 군국이 탄생하고 나서도 3년 뒤에 태어난 아이들이 통신병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통신병이라는 존재 자체가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아이들을 억압하고 교육해야만 얻을 수 있는 존재니까.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연하…?”
시아티의 타오를 듯한 분노도. 능력은 안 될지언정 분노 하나만은 군국을 집어삼킬 정도로 강해도.
그녀보다 앳되고 하얀 얼굴의 앞에서는, 방향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하멜른의 그 사건이 있던 당시, 이들 역시도 통신본부에서 혹독한 가르침을 받고 있었을 테니까.
“스물하나이면, 하멜른의 사건은?! 기억하고 있다며…?”
“전대 통신병이 남긴 정보로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전대 통신병은 어디 있는데?!”
“전대 통신병의 거취는 기밀이라 본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알 수밖에 없다. 사실상 사령부나 다를 바 없는 이 귀중한 인재가 더 못 쓸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면, 군국이 어떻게 했을까.
“죽었겠지. 자의로든, 타의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