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76)
EP.277 건군국이념
S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자.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라면, 제가 무슨 속임수를 썼는지 아시겠어요?”
“…본관에게는 증명의 의무가.”
“당연히 있죠! 속임수라고 주장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말뿐이고, 저는 직접 이 카드의 색을 바꾸었죠! 최소한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지적해야 당신의 주장이 의미가 있는 거죠!”
통신병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고집스럽게 시선을 피할 일도 내 질문에 대답하고야 만다.
“…연금술입니다. 귀하는 연금술로 색을 바꾼 것입니다!”
땡. 완벽한 헛다리.
너무나도 틀린 추리였기 때문에,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연금술에 비교적 더 해박한 다른 통신병 D가 지적하고 나섰다.
“부정. 연금술에는 영창과 연성진, 연금물질이 필요합니다. 조금 전에는 셋 중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카드가 특수한 종류라서 붉게 변한 것이겠지요!”
동료를 상대하면서도 D는 냉철하게 말했다.
“통신병 아이에스. 그 논리는 아까와 똑같습니다. 그런 식의 주장은 무용합니다.”
“아이디! 저것이 속임수가 아니라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신비라는 뜻입니까?”
“본관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에스의 주장에 있는 맹점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아이에스는 설명할 방도가 있다는 말입니까?”
“본관은 ‘창문’을 통해 비슷한 행위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야바위라는 것으로, 어딘가에 똑같이 생긴 물건을 숨겨두고는 원래 있던 것을 감추는 행위입니다. 필시 손, 소매, 옷자락 등 어딘가에 숨겨둔 다른 카드로 바꾼 것이겠지요.”
이쪽은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군. 정답에는 멀지만, 아주 바람직해.
나는 양팔을 넓게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증명할 기회를 드릴게요! 어디, 한 번 확인해보시겠어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카드를 주십시오! 그 카드를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S와 D를 비롯한 몇 명의 통신병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마치 나를 산 채로 해체하기라도 할 법한 시선이다.
하하. 어지간히 눈썰미가 좋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걸. 지금 하트 9를 채운 건 다름 아닌 내 피거든.
카드 끝으로 손가락을 살짝 그었다. 뛰어난 마술사는 손이 베이는 것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법. 티 나지 않게 피를 짜내서, 입김으로 부는 척하면서 안쪽으로 흘려보냈다. 좁은 틈은 액체가 스며들기 딱 좋은 환경. 내 피는 순식간에 카드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여기에는 티르의 혈조술도 아주 조금, 고작 핏방울이 굴러갈 정도로 쓰였지만… 지금 그걸 알아차릴 사람은 여기 없지.
내 아까운 피를 투자한 보람이 있다. 봐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통신병이 순수한 탐구욕을 가지고 낯선 이에게 맨몸으로 접근하잖아.
소매를 뒤적이는 D, 연금술로 내 카드를 살펴보는 S. 슬금슬금 다가와서 내 손을 만지작거리는 M. 하나같이 비밀을 파헤치기에 열중이었다.
‘멈추십시오…! 그런 방식의 접촉은, 위험합니다…!’
그리고 히스토리아에게 구속당한 IA만이, 이 위험성을 깨달았다.
‘그는 통신병 전원을 정신오염 시킬 생각입니다! 속임수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면서!’
IA는 다급히 고유마도를 펼쳤다. 거미집, 가까운 통신병을 한꺼번에 옭아매는 방식의 고유마도. 그걸로 들뜬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주려고 했다.
‘통신병 아이디! 아이에스! 그를 향한 관심을 끄고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본관의 소리를 들었으면 복창하십시오!’
그러나 거미줄이 세차게 흔들렸는데도 아무런 반향이 이어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겪는 사태에 IA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들으십시오! 본관의 목소리가 어째서 들리지 않는 것입니까…!’
왜냐면, 지금 네 능력의 대부분은 에이비 대위를 묶는 데 사용되고 있으니까.
IA도 머지않아 그 사실을 깨달았다. 놀란 IA는 다시 그녀의 고유마도를 점검했다. 그리고는 경악했다.
나팔꽃이 거미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솟아오를 수 없는 연약한 줄기가 억센 거미줄을 낚아챘다.
‘아이비! 귀관이 어떻게!’
석상처럼 서있던 에이비 대위의 얼굴이 돌아갔다. 둘은 서로를 이은 거미줄을 통해 말 한마디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에이. 귀관은 본관을 얽매기 위해서 모듈을 묶어야 할 힘까지 다했습니다. 본관은 귀관의 허락 없이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에이비 대위가 원거리 근거리까지 전부 커버할 수 있는 다용도의 고유마도라면, IA는 근거리 다수를 묶는 데 특화되어 있다. 그렇기에 모듈 I를 대표하는 에이가 되었다. 이 모듈에서 가장 강력한 동조능력자.
그렇지만 에이비 대위는 처음부터 에이였다.
‘그러나, 그 탓에 귀관의 목소리도 다른 통신병에게 닿지 못합니다. 본관이 버티고 있는 한.’
‘버티다니…! 귀관이 어떻게! 나팔꽃은 결국 기댈 데가 없으면 쓰러지기 마련인데!’
‘기댈 곳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에이비 대위는 자세를 꼿꼿하게 바로 세웠다. 그러자 IA는 정신이 빨려들어갈 듯한 충격을 느끼며 신음했다. 그래봤자, 히스토리아의 손에 막혀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나팔꽃이… 아니야! 귀관은, 아니, 너는!’
우뚝 선 해바라기 줄기가 꿋꿋이 버티고 서 있다. 고작 거미줄 따위, 태양을 바라보는 굳센 꽃을 휘게 할 수 없다.
‘본관은 홀로 설 수 있습니다. 오롯이 존재합니다. 오히려 그러는 바람에, 다른 통신병에 대한 간섭은 약해졌지만. 본관은 귀관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가장 에이에 가까운 네가… 이미 정신오염이 되었다니!’
IA는 몸을 들썩거렸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난동을 부렸지만, 에이비 대위가 정신을, 히스토리아가 육체를 꽉 잡고 있어서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IA에게 어마어마한 공포가 닥쳤다. 진정으로 혼자가 된 듯한 소외감. 그리고 사태가 자기 손 밖을 벗어나는 것만 같은 무력감.
‘이래선 안 됩니다! 이래서는, 모듈 아이를 떠맡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가 다른 통신병을 오염시키기 전에 차라리 모듈을 폐기해야 합니다…!’
궁지에 몰린 IA는 도박수를 던졌다. 에이비 대위를 묶고 있던 주박을 풀고 다른 통신병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수작이다.
‘그건 본관이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그때 물러나려던 거미줄을 무언가가 붙잡았다.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거미줄 역시, 무언가를 붙잡지 않으면 형태를 유지할 수 없는 불안정한 것.
통신병의 고유마도는 전부 그런 식이다.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지 못하면 붕괴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통신병은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 연약한 거미줄 끝을 나팔꽃의 덩굴이 붙잡았다.
‘놓으십시오, 아이비!’
‘이들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폐기당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정신오염을 당할 바에야 먼저 자결해야 합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군국을 지키기 위한!’
‘그러면 이들은 누가 지킵니까?’
IA는 발끈해서 외쳤다.
‘통신병보다는 군국이 우선입니다! 에이비! 귀관은 군국을 위험에 빠뜨릴 생각입니까!’
‘본관은 군국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만일 지킨다면, 둘 모두를 지키고자 합니다!’
‘형편 좋은 소리! 네가 언제부터 지킬 것을 결정할 수 있었지?! 그럴 권한도, 능력도 우리에겐 없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은 원칙뿐이고, 그것만으로 이 나라가 지켜지는 거야! 이거 놔, 에이비!’
아무리 외쳐보아도, 강력한 의지로 다그쳐보아도 에이비 대위는 끄떡없었다. 여전히 꿋꿋한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이지도, 눈을 감지도 않는다.
‘본관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믿음. 불확실하고 허튼 믿음! 그게 정신오염이 되었다는 뜻이야!!’
그러는 동안, 통신병들은 내가 손바닥에서 꺼낸 다른 카드를 보고는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몇몇은 애써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몇몇은 탐구욕을 이기지 못하고 이게 무엇인지 캐묻는다.
이제 딱딱하고 비인간적이었던 면모는 꽤 사라졌다. 호기심에 가득 찬 소녀들만 있을 뿐.
반드시 피하고자 했던 재앙이 턱밑까지 쳐들어왔음을 이제야 깨달은 IA는 무력감 속에서 절규했다.
‘아, 아…! 제발, 누군가 지시를! 지금 이곳을 어떻게든 해주었으면…!’
그렇지만 군국에는 신이 없다. 천사조차도 통신병을 제물로 부른 인공 신비이니, 과연 누가 그녀의 부름에 답할까….
[네 기도를 들었노라.]…하던 차.
[결국 그날이 도래했다. 명운이 걸린 운명의 날이.]IA의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그녀의 고유마도인 거미집. 본래는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아야 할 심상의 구현이… 느닷없이 IA의 몸을 칭칭 몸을 감싸더니, 이윽고 새하얀 옷처럼 IA의 몸을 둘렀다. 그 직후, IA는 움직였다.
“읏…!”
히스토리아가 뒤에서 그녀를 붙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손이 히스토리아의 손아귀를 움켜잡았다. 쩌적, 그녀의 손에서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났다. 뼈가 갈라지고 살갗이 찢어지는, 인간의 육신이 파열되는 소리가 히스토리아의 손에서 들렸다.
“무슨, 힘이…!”
강철조차도 우그러뜨리고는 다른 종류로 바꾸어버리는 히스토리아의 악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힘.
IA의 연약한 몸으로는 결코 불가능할 기적이, 지금 하얀 빛무리와 함께 이 좁은 건물 안에 현현했다. 자기가 벌인 일에도 IA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군국의 목소리…!’
『그렇다, 통신병.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믿음이 깊은 이여. 네 부름을 받고 올라왔노라.』
‘본관은 실패했습니다. 모듈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적성존재가 정신오염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현재 상황은…’
『안다.』
‘…!’
『너희는 전부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들을 받아들이라 한 것도 나의 뜻이었으니. 이제 그만 나에게 맡기고 쉬어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IA의 머리로 울려퍼진다. 나는 말하는 존재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단지, IA의 생각을 읽어 간접적으로 그 뜻만 간신히 짐작했을 뿐.
하하. 이거 봐. 산 넘어 산이네.
역시, 통신병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잖아.
‘시정하겠습니다…. 부디.’
IA는 미지의 기운이 자기 전신을 지배하려고 드는 데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IA의 의식이 장막 너머로 사라진 직후.
‘진짜’ 에이메데르가 찬란한 여섯 쌍의 날개를 펼치며 히스토리아를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