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79)
EP.280 축복받은 나라, 저주받은 인간 – 3
에이비 대위는 눈을 감고 고유마도를 펼쳤다. 수십 가닥의 덩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벽과 천장을 구분하지 않고 뻗어 나간 나팔꽃 덩굴은 이윽고 통신병에게 닿았다.
통신병들은 초유의 사태에 정신을 닫아놓은 상태였으나, 에이비 대위는 끈기 있게 그들을 건드렸다. 이윽고 통신병들은 각자 고유마도를 펼쳐 에이비 대위와 동조했다.
‘통신병 아이비로부터 통신 요청.’
‘통신병 아이비는 적성존재를 이곳까지 이끈 요주의 인물입니다. 기각합니다.’
‘반론. 그녀에게 현 상황을 설명할 수단이 있다면, 본 모듈은 그것을 수집해야 합니다.’
저쪽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에이비 대위는 고유마도를 통해 강력한 의지를 전했다.
‘통신병 아이비가 요구합니다! 현 시점, 귀하를 비롯한 군국의 비상사태입니다! 속히 각자의 방으로 되돌아가서 통신에 응하십시오!’
동조 마법은 상호적이다. 어느 한쪽에 영향을 준다면, 이쪽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주관이 확실한 자는 사소한 영향에 휩쓸리지 않는다. 에이비 대위는 착실하게 통신병을 잠식했다. 통신병들은 에이비 대위의 명령에 따라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에이비!』
통신이 에이메데르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이쪽으로 달려올 듯한 기세의 에이메데르를 히스토리아가 붙잡고 늘어졌다. 타당, 두 발의 총격이 에이메데르의 얼굴을 노렸다. 날개로 얼굴을 방어하느라 에이메데르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좋아. 에이비 대위를 경계하는 모양이군.
“그러면 내가 할 일은 에이비 대위가 일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건가?”
시간 끌기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늘 그런 것뿐이지….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와중에 천사의 날개가 부자연스럽게 흔들렸다. 순간 핏, 하고 새하얀 깃털이 이쪽으로 날아오는가 싶었다.
비겁하게 원거리 공격을? 움직인 게 날개라 그런지 독심술로도 파악하지 못했어!
허를 찔린 내가 주춤거리는데, 아지가 벼락처럼 솟구쳐서 깃털을 낚아챘다. 멋지게 착지한 아지는 부드러운 깃털을 씹어 짓이기며 의기양양하게 짖었다.
“멍!”
“…잘했다, 아지야.”
저거 상대로는 못 싸우면서도 깃털은 또 잘 무네. 하긴, 얘도 짐승의 왕이니까.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칭찬했더니, 아지는 씩씩하게 외쳤다.
“나 맡겨! 가!”
“재촉하지는 마라. 섣불리 갔다간 내가 죽어.”
“멍? 죽으면 안 돼! 살아!”
“말은 잘해. 정작 너는 천사와 싸우지도 않으면서….”
“지는!”
화가 날 뻔했으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옳은 말이다. 그러게. 나도 싸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그래도 나는 달리 도움은 줄 수 있을 것 같아. 힘이 안 되면 지혜를 써서라도.
천의 여왕을 펼쳤다. 천사로부터 나를 살려준 이 귀중한 천 한가운데는 흉측한 구멍이 나 있다. 아까워서 속이 쓰리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기회로 써야 할 때다.
왼손으로 카드를 꺼내 꼬챙이로 바꾸었다. 꼬챙이를 빙글 들어 잡고 구멍을 후벼팠다. 동시에 오른손에는 마력을 담았다. 푸른 빛으로 연성진을 그려가며 극도로 축약된 연금술을 시도했다.
“세트. 리. 알케.”
구멍을 중심으로 천의 여왕을 재단한다. 네모나게 잘린 천의 여왕을 온힘을 다해 꾹꾹 눌러서 동그랗게 말았다. 마력초 말던 솜씨는 여전해서 천의 여왕은 꽤 튼튼하게 말렸다.
물질의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형태만 바꾸는, 아주아주 기초적인 연금술. 모양은 조잡하지만 그렇지만 히스토리아가 쓰기에는 이걸로도 충분하다.
“리아! 받아!”
나는 동그랗게 말린 천의 여왕을 히스토리아에게 던졌다. 마침 타이밍 좋게 에이메데르로부터 빠져나온 히스토리아는 보지도 않고 손을 뒤로 내밀어 받아냈다.
히스토리아는 손에 잡힌 것을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마력초?”
“총알이야! 쏴!”
히스토리아의 총은 규격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녀의 총은 기공을 압축해서 터뜨리기에 화약이 없어도 되며, 총구와 크기가 맞지 않아도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어서 쏠 수 있다.
『어림없다!』
에이메데르는 장전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덮쳐왔다. 네 장의 날개가 사방에서 덮쳐든다.
그러나 히스토리아의 장전도 그녀의 총격만큼이나 특별하다. 손가락으로 총탄을 튕기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공격을 피했다. 뛰어오르는 와중, 총구로 총탄을 낚아채는 묘기까지 부렸다. 총구를 거슬러 총탄이 안쪽으로 들어간다.
머스킷을 쓰던 시절에나 볼 법한 우격다짐의 장전이다. 히스토리아의 권총에는 이미 총탄 몇 발이 들어있지만 순서를 무시하고 내가 만든 탄환이 장전되었다.
『땅에서 비롯된 것이, 땅에서 발을 떼다니…! 가소롭구나!』
날개가 히스토리아를 쫓아온다.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지금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피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공중으로 뛰어오르지도 않았다.
내가 뭘 준 건지도 몰랐으면서도 히스토리아는 내 탄환을 믿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계산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너무 믿은 걸까. 처음부터 총에 기공을 잔뜩 불어넣은 채로 탄환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탄환이 생겼으니 이제 쏘기만 하면 된다. 히스토리아는 자연스럽게 총구를 겨누었다.
“쏴!”
투웅. 천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총성은 둔중했다. 동그랗게 말린 천이 천사의 날개로 빨려 들어간다. 솟구친 깃털이 총탄과 부딪힌다.
그 순간,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천의 여왕, 안쪽은 빛을 삼키고 바깥쪽은 빛을 반사하는 귀중한 천. 그것을 잘라 만든 탄환은 천사의 빛을 파헤치고 사방팔방으로 흩뿌렸다.
날개 하나를 완전히 터뜨려버린 총탄은 살짝 비켜나가서 천장에 박혔다. 이제 천사는 다섯 장의 날개뿐이었다.
성공이다. 앞으로 다섯 발만 더 만들면 돼!
내 입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질 때.
『잔재주….』
천사의 등 뒤에서 새로운 날개가 솟아났다. 나는 허탈해져서 중얼거렸다.
“내가 뭔 사기꾼이야. 저게 진짜 사기지.”
천사는 날개가 뜯긴 게 상당히 불쾌했는지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고는 으르렁거렸다.
『아무런 신비도 없는 인속의 도구 따위로…!』
“아니야, 휴이! 이 정도면 충분해! 이것만 해도…! 윽!”
필사적으로 외치던 히스토리아에게로 에이메데르가 따라붙었다. 날개로 난폭하게 벽을 부수고 바닥을 부수며 광란하듯이 공격했다.
‘빛을 잠깐 흐트러뜨리는 거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딱 세 발! 내 이치를 쓸 만큼만 있으면! 영점잡이는 무조건 맞으니까…!’
좋아. 몇 개 더 필요하다는 거지? 앞으로 세 개, 충분해!
바쁘게 손을 놀린다. 마력초 말던 솜씨 어디 안 가서, 순식간에 세 발의 탄환이 준비되었다. 나는 에이메데르와 히스토리아의 움직임을 가늠하며 히스토리아가 물러나는 방향으로 총탄을 던졌다. 생각을 읽는 내게 히스토리아의 움직임을 예측하기는 쉬운 일이었다.
그 타이밍에 맞추어 히스토리아가 몸을 빼냈다. 내가 던진 총탄을 잡기 위해 무게중심을 뒤로 두었을 때.
『얕도다. 훤히 보이는구나.』
그때 에이메데르가 날개를 넓게 펼쳤다. 천사의 몸이 공중에서 우뚝 멈추고, 급선회하여 나를 노렸다.
오, 전투부대 대신 보급부터 노린다는 건가. 역시 군국의 천사. 전략도 군국적이구나.
어라, 그러면 나. 뭐 된 건가?
내가 주춤하는 사이, 에이메데르는 날개로 땅을 닥치는 대로 헤집으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돌진했다. 아지의 털이 곤두섰다.
“휴이!”
그것을 깨달은 히스토리아는 총탄을 쥐고는 급히 천사의 꽁무니를 추격했다. 하지만 히스토리아에게는 날개가 없고, 천사는 점차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기에, 히스토리아는 장전을 마친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날개…뿐이야.’
천사의 날개는 등 뒤에서 뻗어나온다. 하물며 가장 위쪽 날개는 히스토리아를 경계해서인지 자기 등을 덮고 있다. 히스토리아의 사선에는 날개밖에 없다.
‘쏘아서는… 안 돼. 날개 한 장을 부수는 게 전부야.’
히스토리아의 생각이 빠르게 흘러간다. 멀어지는 적. 보이는 등. 손에 쥔 총. 지켜야 할 상대. 위기의 상황에서, 히스토리아의 집중력은 절호에 달했다.
그러나….
‘수가 없어.’
생각의 추가 점차 절망으로 기운다. 내뻗은 손이 부질없다. 적은 움직이는데, 히스토리아의 손은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래도 쏘아야 해. 쏘지 않으면 휴이가 죽어. 그런데, 어떻게?’
답이 없다. 절망적이다. 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흔들리는 총끝이 그녀의 시야에 비쳤다.
‘…쏘지 않을 때 더 강해. 적이 내 탄환을 경계하니까.’
쏘지 않는다. 히스토리아는 영궤를 상대할 때는 그 작전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영궤는 히스토리아의 사선에 오길 피했고, 그 덕분에 히스토리아는 꼭 칼날이 보이지 않는 검을 들고 있는 것처럼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쏘아야 해. 결국, 내 총탄도 언젠가 쏘아지기 때문에 경계하는 거니까.’
쏘지 않는 게 더 강하다. 하지만 쏘아야 한다.
모순.
이치로는 불가능한 일.
그러나 건곤감리 중 마지막. 리(離)는 이치에 닿는다. 세상의 이치를 뒤틀어서라도 그 모순을 이루어낸다.
고유마도와는 다르다. 자기 심상만의 새로운 규칙으로 세계를 덧씌우는 고유마도는 말하자면 세계를 향한 선언이다. 새로운 규칙을 공표하며 모두를 그 지배 아래 넣는다.
그러나 리(離)는 비유하자면 억지. 세상을 향해 떼를 써서, 모든 상리에서 벗어난 단 한 가지 예외를 만들어내는… 지독히 유치한 정념이다.
모순 속에서 히스토리아의 뇌리에 하나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회귀자. 셰이. 보이지 않는 검을 들고, 공간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던 절대 강자. 검의 길이를 마음껏 늘이고 줄이며, 총처럼 검기를 쏘아내던.
‘그의 보이지 않는 검….’
절체절명의 순간 히스토리아가 떠올린 건 천검(天劍) 천앵의 이미지였다.
히스토리아는 총을 살짝 고쳐 들었다. 총구는 천사를 향하지 않았다. 그보다 살짝 위, 천사의 오른쪽 어깨 위를 노리고 있다.
이대로 쏘면 빗나간다. 그러나, 묘한 고양감에 사로잡힌 히스토리아는 그곳을 향해 쏘았다.
탄환은 ‘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히스토리아는 분명히 ‘쏘았다’.
모순 속에서 이치가 뒤틀린다. 허공에 균열이 생긴다. 탄환은 날아가지 않았으나, 탄환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결과는 이루어낸다.
히스토리아는 육감의 촉감을 느꼈다. 지금 그녀의 총탄은 어딘가에 분명 ‘닿았다’. 히스토리아는 이를 까득 물며 권총을 휘둘렀다. 비교적 가벼운 권총에서 묵직한 저항감이 느껴진다. 칼날이 100m는 되는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무겁다.
하나, 휘두른다.
히스토리아가 박아넣은 총은, 아니, 검은. 모순 속에서 닿은 불가해의 그것은 그대로 이치를 베었다.
총검총의(銃劍總意).
히스토리아가 느끼는 아득한 고양감을 읽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른쪽 날개 셋이 통째로 뜯겨나간 천사가 빙글빙글 돌며 벽에 처박힌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