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8)
EP.28 레지스탕스 – 3
레지스탕스 멤버들이 각자 맡은 곳으로 떠나고, 나와 아지가 멍하니 있는 동안, 홀로 남은 델타가 총을 꽉 붙잡고는 우리와 간격을 두고 섰다. 그는 손아귀에 잔뜩 힘을 준 채 나와 아지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대장께선 모든 일을 끝마치면 다시 되돌아오실 겁니다.”
“아아. 네.”
자. 다 흩어졌다. 아주 좋은 상황이다. 카니센과 감마는 관리실로 떠났고, 알파와 베타는 각자에게 예비한 지옥으로 향했다.
이제 델타만 치우면 나를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 작업을 시작하자.
낯을 바꾸고 어설픈 미소를 짓는다. 가능하면 무해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자연스럽게 델타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고. 다리가 다 후들거리네요. 대화만 나누었을 뿐인데 꼭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진이 다 빠졌어요.”
“…대장께선 강한 기세를 가지고 계시니까, 진이 다 빠지는 것도 무리도 아닙니다.”
“대단들 하십니다. 저런 분을 뒤따라가기도 쉽지 않을 텐데.”
“…해야지요. 대장께선 그래도 저희를 잘 이끌어주시는 편입니다. 이번 작전도 대장이 기지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어디 보자.
내 말에 성실하게 대답하고는 있지만, 경계심은 온통 아지에게 쏠려있다. 당연한 일이다. 별다른 장비도 없고 약해 보이는 나보다, 총탄마저 이빨로 잡아채는 아지가 더 무섭지.
그 마음가짐이 가장 큰 약점이 되겠지만.
“저기, 이제 총을 내려놓으셔도 되지 않아요? 아지가 사람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방금 봤잖아요. 총을 쏴봤자 이빨로 잡아채는 미친 능력의 소유자라니까요. 총 겨누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나는 아지를 슬쩍 가리켰다. 방금전까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신이 나 보였던 아지는, 지금은 왠지 침울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유야 모른다. 개 같은 이유겠지.
물론 그 와중에도 총에 대한 두려움은 아예 없어 보였다. 하긴, 발사해도 입으로 잡아챌 수 있는데 두려워할까. 총알을 조금 빠른 공인 줄 알고 총놀이만 안 하면 다행이다.
“저도 아지와 며칠 함께 있어서 아는데, 얘가 힘은 강한데 별로 위험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저도 무서워서 도망을 다니고는 했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졌죠. 자, 보세요.”
아까 놓아두었던 가죽 공을 집어 들었다. 그걸 높이 들고 좌우로 흔들자, 다른 것보다 먼저 아지의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 아지의 고개가 돌아갔고, 나를 멀뚱히 보다가, 고개를 휙 들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가죽 공을 냅다 던지며 외쳤다.
“자! 물어 와!”
“멍!”
아지는 공을 따라 냅다 달려갔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델타는 경악하며 반 박자 늦게 총구를 들어올렸다.
“지금 무슨 짓을!”
“멍!”
그러나 델타의 걱정도 무색하게, 아지는 공을 물고는 곧장 나에게 돌아왔다. 내 발치에 공을 떨어뜨리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나는 손을 내려 아지를 쓰다듬었다. 아지는 눈을 반만 감고 내 손길을 만끽했다.
도저히 경계심을 끌어올릴 광경이 아니었다. 제법 철두철미하고 원칙적인 델타조차도 어처구니가 없어 중얼거렸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총구가 내려갔다. 긴장이 좀 풀린 탓이다.
나는 아지를 힘차게 쓰다듬으며 최대한 무해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느 순간 이렇게 되어있더라고요.”
“아무리 개 수인이라고 해도 인간인데…. 본능이라고 해도 그렇게.”
“그렇다고 제가 힘으로 누른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제가 봉사하는 입장이죠. 공을 던지고, 주워오면 다시 던지고. 그 와중 즐거워하는 건 아지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뭐, 델타 님이랑 대장님과 비슷한 관계 아닐까 싶어요. 힘만 따지면 하늘과 땅 차이겠지만. 힘과는 관계없이 그냥 서로에게 익숙해진 거죠.”
“음.”
델타는 이제 아지를 경계한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달은 듯했다. 내 손길 하나하나에 행복해하며 갸릉거리는 모습에선 한 톨의 위기감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지를 계속 쓰다듬으며 목가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군국에게 체포당한 뒤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는 너무 겁이 나고 무서웠는데,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이곳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자칫하면 교육생들한테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말고는 평화롭거든요.”
“평화라. 탄탈로스에 어울리는 단어는 아닙니다만.”
“실제로 제가 그렇게 느끼는데요, 뭐. 탈옥할 사람은 다 탈옥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을 잠깐 끊고, 살짝 우수에 젖은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만일 이곳이 소문대로의 지옥이었다면, 아무리 군국이라도 저처럼 평범한 잡범을 보내지는 않았겠죠.”
잡범이라 강조한다. 무능력하다는 어필, 그러면서도 나는 대단히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태도를 슬쩍 내보인다.
걸려라. 걸려들어라.
그러자 예상대로 델타는 호기심을 보였다.
“당신은 무슨 죄목으로 잡혀오신 겁니까?”
걸렸다.
원하는 질문을 이끌어낸 나는, 일부러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는 원래 마술사였어요. 뒷골목에서 마술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게 일이었죠. 수입은 보잘것없지만 신기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나름 만족스러웠고요. 그런데.”
골똘히 생각하는 척, 한 호흡 끊었다가 말했다.
“어. 한 일주일 전인가. 갑자기 군인들이 몰려오더니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갔죠. 저도 마침 친구들과 카드 게임을 하다가 검문을 받았고….”
“그때군요. 당신도 억울하게 잡혀들어왔군요.”
말끝을 흐리니 델타가 멋대로 오해해주었다. 그 역시도 나처럼 생각에 잠겼다.
‘무고한 이를 노역자로 쓴다. 역시, 군국은 옳지 않아. 무너지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무고한 이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을 우리들 역시… 옳은가?’
괜찮은 흐름이다. 나는 애매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아하하. 그, 완전히 억울하지는 않고요. 카드 게임에서도 마술을 좀 썼거든요. 하하.”
“…저런.”
‘노름꾼이었나.’
표정이 조금 나빠진다. 태생이 착실한 타입이라 도박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기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성하는 모습 한 스푼. 탄탄한 배경에 적절하게 더해진 감성은 나를 입체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알량한 재주를 믿고 너무 까불었지요. 마술은 마술로 있을 때 제일 가치 있는 법인데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카드를 들어올렸다. 델타는 새하얀 카드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눈에 이채를 띄웠다.
“그것을 어디서 났습니까?”
“태생이 마술사라 그런가, 손 안에 숨겨둔 카드 한 장이 없으면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한 장 구했죠.”
파라락. 손가락 아래에서 카드 한 장이 춤췄다. 왼손, 오른손, 손바닥, 손등. 카드는 손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내가 어느 순간 양손을 펼치자,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실 내 눈에는 손등에 달라붙은 카드의 모습이 빤히 보이지만 뭐, 델타의 눈에 사라졌다면 사라진 거지.
델타는 진정으로 신기해했다.
“아니, 숨길 소매도 없는데 어떻게 카드가….”
“하하. 이 정도는 해야 마술사라고 할 수 있죠.”
손바닥을 뒤집으며, 손등에 붙어있던 카드를 엄지로 슬쩍 밀어 손바닥으로 옮긴다. 델타에게 손등을 보여주는 동안 손바닥에 카드를 감춘다. 다시 손바닥을 내밀면서 카드를 되돌려놓으면, 델타에게는 카드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오오.”
충분히 호기심을 끌었다. 나는 왼손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린 뒤 천천히, 오른손 등에 있는 카드를 꺼내 보여주며 싱긋 웃었다. 델타는 자기도 모르는 새 박수를 치고 있었다.
괜찮은 리액션. 나는 이 시선이 부끄러운 것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카드 게임할 때는 쓸모가 없더라고요. 제 손기술이 기막히다고 한들 사람의 의심은 막지 못하니까요.”
“감쪽같습니다. 저였다면 전혀 의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돈 몇 푼 잃으면 없던 의심도 생깁니다. 몇십 푼만 잃어도 제 손목을 잡아채죠. 그들의 눈은 분노와 의심으로 얼룩져있었습니다. 저는 잠깐 눈이 흐려진 나머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마술의 본질을 놓치고 만거죠.”
나는 카드를 챙기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그렇게 초심을 잃고 잡혀왔습니다만. 델타 님은 어쩌다가 레지스탕스가 되셨나요?”
“저는….”
내 질문은 그의 심리적인 허점을 정확히 찔러들어갔다. 델타는 별다른 의심도 없이 회상 속에 잠겼다.
“제 본명은 엘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곧잘 하곤 했죠. 부모님의 뜻에 따라 중등군사학교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계속 되뇌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게 옳은 일인지, 군국의 정책은 올바른지. 하지만 군국은 그러한 종류의 토론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질서를 위해 옳고 그름을 토론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최소한 레지스탕스에서는 나라가 나아갈 길에 대해 표현할 수는 있었으니까. 뜻이 맞는 동지들도 많이 찾을 수 있었고요. 다만….”
‘일반인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저항이 옳은지, 그건 여전히 모르겠지만.’
엘시라는 이름을 지닌, 코드네임 델타는 생각이 많은 편이었다. 나는 그가 마음을 충분히 가라앉힐 수 있도록 기다리고는 말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인데요.”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가는 길이 옳은지, 그것이 걱정될 뿐입니다.”
“옳은 방향일 거예요. 충분히 고민을 하셨잖아요?”
“고민했다고 언제나 옳지는 않습니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옳을 가능성이 높겠죠.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니, 가능성이라도 쫓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말이라도 고맙군요.”
“말 밖에 못하는 거죠, 뭐. 길거리 마술사가 손재주 말고 자랑할 건 말밖에 없으니까요.”
델타를 다독인 나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자. 어려운 이야기는 그쯤하고. 제가 재미있는 걸 보여드릴게요. 원래는 잘 밝히지 않는 건데, 이것도 인연이겠다 특별히 공개하죠.”
회상에서 빠져나온 델타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의 카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끈 나는 마술사의 미소를 지으며 한 장의 카드를 이리저리 뒤집었다.
“이건 마술 도구에 관련한 트릭이라, 원래는 절대 밝혀서는 안 돼요.”
“돈줄이라서 그렇습니까?”
“하하. 그것도 있지만. 이걸 밝히는 순간, 사람들의 머리에는 신비보단 의심이 먼저 싹트거든요. 마술을 즐길거리가 아니라 파헤치고 분해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죠. 그때부터 마술은 마술이 아닌 야바위가 되어버려요. 그 시선에는 경의도, 즐거움도 없죠. 관객과 마술사의 치열한 대결만 남아있을 뿐.”
손가락 끝에 마력을 모은다. 마력이 손끝을 통해 카드로 스며든다.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카드 뒷면. 그 길을 따라 희미한 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비밀을 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대나무숲을 찾기 마련이죠. 마침 이곳은 무저갱이네요. 이것도 인연이겠다, 당신한테만 알려줄게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낀 카드를, 왼손 팔목에 미끄러뜨린다. 그러면서 손바닥을 펼쳐 한순간 시선을 가린다.
그 직후, 왼손 팔목과 오른손을 동시에 뒤집으며- 카드였던 ‘것’을 보였다.
분명 다이아몬드 1이었던 카드. 그게 있어야 할 곳에는- 검붉은 빛이 감도는 뾰족한 꼬챙이가 자리해있었다.
“짜잔!”
“오오!”
만들어낸 꼬챙이를 휙휙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눈속임도 환각도 아닌, 분명하게 형태를 지닌 꼬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없는 모자를 벗는 시늉을 하며 인사했다. 델타는 감탄하면서 손뼉을 짝짝 쳤다.
“그거, 혹시 연금술입니까?”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천천히 밝히려고 했는데.”
“아니, 대단히 신속하고 은밀한 연금술입니다. 저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보통 연금술이 아니기는 해요. 이 카드는 의복 패킷을 본 따 연금술로 만든 물건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생체 말단을 경유해서 마력을 넣어주면.”
다시 막대기를 생체 단말이 있는 왼손 팔목에 대고 문지른다. 그러자 꼬챙이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내가 다시 손바닥을 들자, 그곳에는 카드로 돌아온 다이아몬드 1이 있었다.
터져나오는 감탄.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카드가 되기도 하고, 막대기가 되기도 하죠. 원래는 막대기 끝에 제철 꽃을 매달아서 내밀고는 하는데, 제가 아무리 마술사여도 무저갱에서 대지모신의 편지를 구할 수는 없더라고요.”
델타는 신기한 눈으로 나의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카드 마술에 현혹된 그의 눈에는 한 점의 경계심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중얼거렸다.
“아쉽습니다. 바깥에서 보았다면 훨씬 좋았을 것을.”
“하하. 바깥에서 보았다면 비밀을 알려드리지는 않았겠죠. 아! 이런. 카드가 사라졌네요? 어디 갔을까요? 어, 잠깐. 델타 님 머리에 그게 뭐죠?”
당연히 이 역시 마술의 일부일 것이다.
일련의 흐름을 겪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델타는 경계할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었다. 델타는 내가 가까이 다가갈 동안에도 가만히 있었다.
‘또 무슨 마술일까?’
기대하는 그를 보고, 나는 싱긋 웃으며.
카드를 꼬챙이로 바꾸고는.
그의 관자놀이에 꽂아 넣었다.
그의 머리가 옆으로 툭 밀려난다. 흥미로 가득했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잘 안 움직이는 머리로 한박자 늦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는다.
자신의 관자놀이를 뚫고 날카로운 막대기가 꽃혀있다고. 손상된 머리가 필사적으로 경고를 발한다.
나는 그를 향해 양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짜잔! 사라지는 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