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85)
EP.286 축복받은 나라, 저주받은 인간 – 9
“이 사람의 이름은 유엘. 천통 에이메데르와 동일인물이며, 군웅 발리오란트가 데려온 세 육장성의 필두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도 이어 이 나라를 만들어낸 위인이기도 하죠. 한마디로 말해, 군국의 숨겨진 왕!”
“…왕이라고 하지 마.”
“자기는 나보고 야만이라며! 나도 마음껏 부를 거야! 어쨌든, 궁금한 게 있으면 이분에게 물어보세요! 군국의 탄생부터 이념까지 다 설명해줄 테니까요! 드디어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어줄 때네요!”
유엘은 퀭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얼굴도 마주치기 싫어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바라볼 곳이 나밖에 없다.
고개를 돌리면 한쪽에는 공주가, 다른 쪽에는 시아티가 있다. 둘 다 군국에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성녀가 군웅의 유지를 이어나가기 위해 한쪽으로 치워둔 것들이 아득바득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저 둘을 데리고 왔어?”
“아니요? 제가 예언자도 아닌데 어떻게 미래를 알겠어요? 애초에 여기 오기 전까지는 당신이 누군지도 몰랐는걸요.”
진짜 예언자란 것들이 사람 다 버려놓았어. 뭐 나한테 유리한 상황만 오면 나보고 이 모든 것을 예측했냐고 그러더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지만 미래를 알고 모르고는 상관없어요. 저 둘은 거대한 바람을 품고 있어요. 그 바람이 저들을 여기까지 몰아붙였고, 스러지지 않은 끝에 결국 당신이랑 대면하게 된 거죠. 물론, 제가 없었다면 오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너에게는 이제 인간을 따르게 할 능력 같은 건 없을 텐데.”
“그런 능력이 아니라니까. 힘이나 권능 같은 건 상관없어요. 몇 번 말해요? 저들을 여기까지 인도한 건, 저들 자신이고.”
지금 내가 손을 쓰거나 속이지 않아도, 저 둘은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딱딱한 돌바닥을 지친 걸음걸이로 걷지만 바라보는 눈빛만은 똑바르다.
“그리고 저들을 만든 당신이기도 하죠. 시아티와 공주님이 이곳에 찾아오는 건 필연이에요.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도 중요치 않죠.”
안타깝지만, 나는 대신 묻고 대답을 들을 수는 있어도 대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용건이 있던 이 둘을 데리고 온 건 참 좋은 선택이었지.
보폭이 큰 시아티가 먼저 다가왔다. 나는 비스듬히 자리를 비켜서 관찰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자. 보여줘. 이 성녀를 어떻게 할 거지?
조금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웬일인지 시아티는 유엘 대신 나를 보고 물었다.
“저기 있는 시체가 군웅이라고?”
“한때 군웅이었던 자지. 지금은 시체에 불과하지만.”
“그걸 왜 저 여자가 갖고 있어?”
“갖고 있다기보다는, 같이 묻혔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까. 여기는 신전 지하로 보이니까…. 그런데 잠깐만. 너는 왜 나한테 물어봐? 저 사람한테 물어봐.”
대신 물어보라고 데려왔더니만 왜 엉뚱한 사람 붙잡고 난리야. 나는 유엘의 생각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녀가 할 대답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독심술이 들켜버린단 말이야.
내가 내키지 않은 태도를 보이자, 시아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대놓고 수상쩍은 저 여자의 말을 어떻게 믿어?”
그것도 그렇네.
하긴, 난리를 지하로 도망친 시아티에게 뜬금없이 이 사람이 흑막이다, 이리 말해도 당황스러울 뿐이겠지.
시아티는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평범하다. 그녀는 오직 자기 앞의 일밖에 보지 못한다.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시아티의 한눈에 들어오기에는 너무 커다란 진상이다.
“내 말은 믿고?”
“비교적.”
“그거 고맙네.”
피식 웃은 시아티는 초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제 별로 상관없어. 이 나라의 진정한 흑막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꾸몄는지는. 복잡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야.”
“어?”
뭐야, 김빠지게. 군국 전역을 불사를 듯한 분노는 어디 간 거야? 아까 자기보다도 어린 통신병을 보고 좌절한 거야 알지만, 고작 그것 때문에 복수까지 포기한 건가?
“그래도 돼? 군국을 향한 복수는?”
“네 말대로, 나는 군국을 몰랐어. 알아가는 와중에도 생각만 복잡해질 뿐, 명쾌하게 결론이 나질 않아. 누가 나쁜지, 나는 무엇에게 복수해야 하는지. 점차 방황하게 되더라.”
온갖 일을 겪은 시아티는 인간적으로는 성장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성장은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바람을 듣고 여기까지 안내한 나로서는 아쉬운 엔딩인데.
“저 여자도 나보다 어리지는 않겠지?”
“에이. 네가 산전수전 다 겪어서 늙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보다는 연상이지.”
“하. 그래도 별생각이 안 드네. 나도 저 여자가 누군지 몰랐는데, 오늘 처음 보는 녀석인데. 쳐 죽인다고 해도 세상 그 누가 알아주겠어?”
지금까지 미친 듯이 달려나가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허심탄회하게 중얼거리는 시아티의 모습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시아티….”
‘맞아요. 당장 눈앞에 처한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알아줬군요…!’
공주는 감동해서는 글썽거리는 눈동자로 보았으나, 정작 나는 시아티의 해탈한 모습이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시아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까 방에 숨어 들어가서 통신병을 만났어. 아이엔이었나. 나와 동갑이라더라. 하멜른에서 죽은 아이들이 자랐다면 딱 그 나이겠지. 누구와는 동갑인데, 한쪽은 물속에 빠져 죽고. 다른 한쪽은 사령부의 숨은 실세가 되었지. 그런데.”
“그런데?”
“…나에 비해 딱히 더 나아 보이지도 않더라.”
툭, 하고 시아티가 찌그러진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텅 빈 콩통조림 깡통이었다. 맛은 없지만 영양분이 풍부하고 압축률이 좋아서, 다른 것 다 떼어놓고 ‘생존’ 목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식사다.
그만큼 가장 인기 없는 식사이기도 했다.
“실세가 콩통조림이나 먹고. 어두컴컴한 방에 갇혀서 지내고. 그게 뭐가 실세야?”
통신병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기밀이지만, 이미 모듈 내부에 진입한 이들에게는 몇몇 기밀이 해금되었다. 예를 들어, 통신병의 근무상황에 관한 것. 그거야 관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정보니까.
그 결과, 시아티도 통신병이 얼마나….
“불쌍해서 욕할 마음도 안 나.”
비겁한 존재인지 깨달은 것이다.
누구보다도 고통받기에, 타인의 비난이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우니까.
나는 유엘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는 이 사람. 이 사람이 바로 통신병을 만들었는데?”
“…그런가 봐. 조금 짜증 나기는 하지만. 이 사람도 별반 다를 바는 없어 보이네.”
그 흔한 조리도구나 음식재료도 없다. 침대조차도 석관에 천을 겹쳐 놓은 것뿐이고, 그나마 따뜻해 보이는 건 시체 한 구뿐이다.
시아티는 성녀가 무엇을 먹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도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시아티는 유엘을 내려다보았다. 군국을 만든 괴물과 군국이 만든 괴물의 만남은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그냥, 이제는 화도 안 나.”
뜻밖의 반응이다. 이건 우리뿐만 아니라 유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아티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거라 예상했던 유엘은, 전혀 다른 반응에 허를 찔렸다.
“…나를 동정하는 거니?”
“그럴지도.”
통신병은 모든 것을 안다. 수십 대의 골렘으로 정보를 얻고 수백 명이나 되는 통신병으로부터 정보를 전해받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창문 없는 방에 갇혀있기 때문에.
통신병에게는 삶이 없으니 책임이 없다. 따라서 죄도 없다.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동정이나 하겠지.
이 모든 게 유엘의 안배다. 애초에 통신병은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유엘이 동정의 대상이 되자, 그녀는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고마워, 레지스탕스. 충분히 알았다면, 이제 단념하고 돌아가는 게 어떠니? 공주의 곁에 있으면 목숨은 부지할 거야. 지금까지 그랬듯이.”
“나는 목숨을 아까워한 적 없어. 지금까지도.”
시아티는 의수를 뻗었다. 강철로 된 의수 따위, 성녀의 기도를 방해할 수 없다. 성녀도 그것을 믿고는 가만히 지켜보았으나.
시아티의 의수가 향한 곳은 유엘이 아니었다.
유엘의 품안에 있던 시체가 쑥 미끄러져 나왔다. 시아티는 시체의 멱살을 잡고는 단숨에 빼냈다.
시체는 기도하는 성녀가 아니다. 시아티의 힘으로도 빼낼 수 있다. 하필 올바른 자세로 기도 중이던 유엘은 소중한 그의 흔적을 눈 뜨고 빼앗겼다.
“아, 아?”
“그래도 한 가지 좋은 건 건졌네. 휴이, 이게 군웅이라고? 이 나라의 국부?”
“그렇대.”
아, 맞다. 저거 시체였지.
생각을 읽는 나에게 시체란 한때 인간이었던 물건일 뿐이다. 생각이 느껴지지 않으니 의식에 넣지도 못했다.
시아티는 그 시체에서 유용성을 찾아낸 모양이다. 시아티는 시체를 이리저리 살피며 나에게 물었다.
“시체치고는 상태가 좋아 보이는데. 정말 시체 맞아? 상처 하나 없는걸.”
“독살당했을 거야. 그러니 상처가 없겠지. 상태가 시체치고 좋은 건… 저 사람이 애지중지 보살펴서 그럴 거고.”
“어쨌든. 군국에서 이름 좀 날렸다 한 사람들은 이 사람 얼굴은 알아보겠지?”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여기는 이너서클 사령부니까, 계급은 높으면서 전선에 서기는 힘든 늙다리들이 꽤 많겠지. 그런 늙다리 군인들은 꽤 알아볼걸?”
“잘됐네. 이걸 쓰면, 최소한 몇 명은 주목하겠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을지도.’
시아티는 시체를 짐짝마냥 질질 끌고 가려고 했다. 그 순간, 유엘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기도를 멈췄다. 그녀는 급히 손을 뻗어서 시체가 입고 있던 옷자락을 잡았다.
“뭐, 그를 어떻게 하려고?”
“알 거 없어.”
“그는 이미 안식에 들었어! 시체를 가져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야!”
시아티는 덤덤하게 말했다.
“비록 시체라도 군웅의 목을 자르면, 꽤 충격을 받지 않을까.”
역시 시아티야. 내가 상상하지 못한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니까.
뭐, 20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군웅의 시체를 갖고 나간다고 엄청난 반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 유엘에게 그건 상상조차 힘든 끔찍한 모독이리라.
천신교는 화장을 장려하지만 모두 태우는 건 아니다. 성녀나 이름 높은 성직자라면 죽은 모습 그대로 신전에 안치하기도 하며, 성녀가 정기적으로 그들을 축복하고 관리한다.
유엘이 한 일도 그 일환이다. 사사로운 감정이 가득 담겼지만, 어쨌든 유엘은 20년 넘게 그리 해왔다.
“지금껏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에다가 화를 풀려고 했어. 그런데, 뭐야?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흑막? 웃기지도 않아. 흥, 차라리 이 세상을 만든 신을 보고 저주를 퍼붓고 말지.”
“그, 그래서… 그의 시체에다 화풀이를 하겠다고?”
“시체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하지만, 최소한 이걸 들고 가면… 최소한, 군웅의 얼굴을 아는 자는 나의 말을 듣겠지.”
그리고 시아티는 시체의 바짓자락을 붙잡고는 그대로 끌고 갔다. 시체가 짐짝처럼 질질 끌려간다. 유엘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유엘이 벌떡 일어나 시체에 매달렸다. 시아티는 시체에 걸리는 무게감에 멈칫했다.
“그거 놔! 그는 너 따위에게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살아있던 나도 재료 취급을 받았었어. 시체 따위가 뭐라고.”
캬. 저 사람은 죽어서도 여자 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당하고 있네. 천국에서 이 광경을 봤으면 흐뭇해하려나….
아니, 애초에 죽은 이유가 줄다리기 당하다가 툭 끊어진 거잖아? 그러면 그다지 반갑지는 않겠네. 오히려 괴로울지도.
후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낑낑거리며 시체를 되찾으려는 유엘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안쓰러웠다. 바짓자락을 잡아당기는 시아티에 반해, 유엘은 차마 목을 붙잡지도 못하고 양팔로 몸을 붙잡은 게 다였다. 혹시나 훼손될까 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뻔히 보였다.
한때 성녀였던 이가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까. 시아티가 중얼거렸다.
“방금 이 시체를 쓸 이유가 하나 늘었네.”
“앗!”
팽팽해 보였던 대치는 싱겁게 끝났다. 시아티가 힘을 주자마자 유엘의 몸이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졌다. 레지스탕스 행동대장의 완력을 20년 넘게 처박혀 있던 성녀가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아티는 넘어진 유엘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그쪽이 싫어한다면, 더욱 그만둘 이유가 없어. 거기서 똑똑히 지켜봐. 내가 이 시체를 어떻게 써먹는지.”
“너어!”
완력으로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녀는 비겁하게도 양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성녀에게는 엄청난 권능이 있지만, 당장 눈앞의 사람을 때려눕힐 만한 알기 쉬운 힘은 없다.
대신 유엘은 삼류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천사를 부르려고 했다.
“건방진 게…!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고,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어?!”
제물은 자기 자신. 고작 시체 하나 지키려고 쓰기에는 조금 큰 대가다.
그렇지만 유엘에게 있어서 시체는 이 좁은 세상의 전부다. 어차피 죽음은 각오했던 바. 유엘은 거리낌없이 제물이 될 준비를 끝마쳤다.
“시아티! 잠시 멈춰 봐요!”
다행스럽게도 천사가 강림하기 전에 공주가 끼어들었다. 시아티는 공주의 말에 따랐고, 당장 죽일 듯이 굴던 유엘도 공주의 앞에서 잠깐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다툼을 멈추게 한 공주가 시아티를 보고 호소했다.
“시아티. 저는 아직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분의 시체는 제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잠깐 기다려주시겠어요?”
“잠깐만이야.”
시아티는 순순히 시체를 놓았다. 붙잡았던 다리가 생동감없이 툭 땅에 부딪히고, 유엘은 꼭 자기 다리를 맞은 것처럼 움찔거렸다.
사색이 된 유엘의 앞을 공주가 막아섰다. 유엘은 다른 방해꾼을 향해 말했다.
“…나에게 물을 게 있다고 했지, 그란디오모르 공주.”
“네. 저, 유엘, 이라고 했죠? 저는, 꼭 군국에게, 아니, 당신에게 묻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유엘은 빨리 물어보라는 듯이 턱짓을 했다. 공주는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그녀가 계속 품어왔던 의문을 털어놓았다.
“저는 군국을 오랫동안 봐 왔어요. 그래서 알아요. 군국이 얼마나 강하고 부유한지. 레지스탕스가 오랜 시간 상당한 물자를 훔치거나 빼앗았지만 군국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죠.”
“지금까지 훔치고 빼앗았다는 말을 당당하게도 하네.”
“아앗… 그, 그 점은 송구합니다. 저희 쪽도 숨어 사느라 쪼들려서… 어, 어쨌든! 군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였어요! 체계도 그렇고, 규모도 그렇고! 왕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어요!”
공주는 나름 귀족적인 화법으로 운을 떼었으나, 유엘은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다.
“여기까지 찾아온 레지스탕스에게 칭찬을 들을 줄은 몰랐네. 고견은 잘 들었어. 그러면 투항하지 그러니?”
“그,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는 단지, 그게 무엇을 위해서인지 궁금해서 그래요!”
군국은 합리적이며 효율적이다. 그들은 주어진 조건 아래 최대의 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인간을 착취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공주는 거기에 ‘왜’냐는 물음을 던졌다.
“무릇 나라란 백성을 살피고 베풀 줄 알아야 해요. 왕국은 그러지 못했지만, 왕국을 무너뜨리고 탄생한 군국은 그럴 수 있잖아요? 조금만 일을 줄이면, 조금만 사람을 돌보면, 조금만 덜 가혹하다면. 이 군국이라는 나라는 지상낙원에 가까워졌을 거예요.”
“….”
“하지만… 군국은 의도적으로 그걸 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왜죠? 어차피 모두가 군국민인데. 군국민에게 베풀기를 꺼리는 거죠?”
유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이 좀 모호했던 탓이라고 지레짐작한 공주는 그녀 안의 질문을 더욱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사치를 부리기 위함도 아니잖아요! 만일 그랬다면, 당신부터 더 큰 호사를 누리고 있었겠죠! 비좁은 방에서 시체와 함께 있지 않고, 으리으리한 궁전에서 보살핌을 받았겠죠! 하지만 안 그러잖아요. 무엇을 위해 인간을 지옥과도 같은 굴레에 밀어넣는 거죠?”
“…까.”
“네?”
유엘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와 내가 만든 이 축복받은 나라가, 영원토록 계속되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