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295)
EP.295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세상 – 2
막시밀리앵은 열국에서 태어났다.
연금술로 인해 세상 만물이 거짓된 한 나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조차도 누군가 만들어낸 인공물이다. 황금경이 배회하는 땅은 그 자체로 축복이면서 저주. 인간은 황금에 짓눌려 살아간다.
대지모신이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낸 자연이 인간의 흔적으로 뒤덮이는 데에는 채 백여 년도 지나지 않았다. 탐스럽게 영근 작물도 쇠독을 품고 있는 그 나라에서는 인간마저도 재료처럼 쓰였다.
그런 열국에서 태어난 덕분에 막시밀리앵은 살아남았다.
막시밀리앵에게는 양팔이 없었다. 막시밀리앵도, 그의 부모도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지(四肢)가 왜 넷인지 모른다. 거기다 열국은 원래 셋을 낳으면 하나는 기형아가 나오는 특이한 나라였다.
열국은 부족한 게 있다면 연금술로 메운다. 그게 설사 다 자라지 않은 아이의 팔이라도 그렇다. 적당히 유능한 연금술사였던 그의 부모는 아이에게 의수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능력에 비해 과하게 의욕적으로.
열국은 셋을 낳으면 하나는 광증을 달고 나오는 나라였다. 막시밀리앵의 부모가 그런 경우였다. 어렸을 때부터 막시밀리앵은 부모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온갖 개조를 당했다.
그건 사랑일까, 집착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난제를 향해 투쟁심을 불태우는 학자의 마음가짐일까.
어쨌든 부모의 지극한 노력과 끝없는 고통을 겪은 덕분에 막시밀리앵은 연금술을 깨우쳤다. 그 지식을 가지고서 자기가 직접 의수를 만들었다.
톱니바퀴 의수를 달고 열국을 떠돌던 그는 금방 유명해졌다.
아무리 뛰어난 연금술사라도 그때그때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긴 어렵다. 그러나 톱니바퀴가 제 몸이나 마찬가지인 막시밀리앵은 질 낮은 재료로도 튼튼한 기계장치를 만들었다. 설계부터 다른 그의 작품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연금술은 정직하다.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아무리 기를 쓰고 비용을 절감하려고 해도 연금가치의 절대량을 뛰어넘을 수 없다.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는 막시밀리앵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경쟁력을 갖춘 막시밀리앵은 열국 전역에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연금가치가 곧 진리인 열국에서 돈은 곧 힘. 어마어마한 자금으로 회사를 세운 막시밀리앵은 열국의 새로운 신흥 세력으로 떠올랐다….
황금궁이 그를 거부하기 전까지는.
허가가 떨어지자 승냥이들이 달려들었다. 막시밀리앵은 뛰어난 연금술사였고 전투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열국은 연금술의 나라. 저울의 저쪽이 더 무거운데 반대로 기울어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추격전 끝에 막시밀리앵은 국경을 넘어 도망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시밀리앵의 부모가 그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질로 잡힌 게 분명했다. 무시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막시밀리앵에게 있어 부모는 스승이자 은인.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는 제 발로 열국으로 돌아갔다.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부모를 만난 막시밀리앵은 주머니에서 톱니바퀴를 꺼냈다.
열국은 셋을 낳으면 기형아가 하나, 광인이 하나, 그리고 천재가 하나 나온다고 한다.
가끔 그 셋이 한 번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막시밀리앵은 부모의 무능함과 신경질적인 성격은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실험이 실패했다고 자식에게 화풀이하는 건 막시밀리앵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 그것만 빼면 그런대로 가족을 사랑하는 편이었다.
열국에서는 부족한 게 있다면 연금술로 메운다. 부모가 막시밀리앵의 팔에 그랬던 것처럼, 막시밀리앵도 부모의 머리를 ‘고치려고’ 했다.
부모는 이제 화를 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생각을 못하면 화를 내지 못하는 법이다.
막시밀리앵은 부모와는 달리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다. 자기가 부족했다고 담담히 인정하며,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는 떠났다.
***
날카로운 톱날이 나를 찢어발기기 직전, 갈색 그림자가 유성처럼 내 곁으로 떨어졌다. 지금까지 숨어있었던 아지다. 톱니바퀴를 상대로는 마음껏 분노를 발산할 수 있는 개의 왕은 톱날을 노리고 맹렬하게 뛰어올랐다.
“멍멍!”
아지라도 날카로운 톱날에 이를 들이밀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아지의 목표는 톱날이 아닌, 톱날과 연결된 축. 단숨에 강철 딱정벌레 안쪽으로 파고든 아지는 회전축을 깨물고는 도리질을 쳤다. 축을 잡아 뜯어낼 셈이다.
“뭉! 뭉뭉뭉뭉뭉!”
그리고 매달린 채로 비명을 질렀다.
크기가 꼭 강함과 비례하지는 않지만, 강철 딱정벌레는 순수한 체급의 차이를 몸소 보여주었다. 아지는 톱날과 함께 빙글빙글 돌았다.
“아지야. 저건 네 힘으로도 안 돼.”
인간은 강하지 않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다른 짐승에 비해 육체적으로는 하등 나은 구석이 없다. 가죽은 얇고, 발톱은 둥그렇고, 뼈는 연약하다. 당최 어떻게 살아남았나 싶다.
하지만 인간의 진정한 힘은 다른 곳에서 강함을 가져오는 능력이다.
다른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내 몸을 감싼다. 돌을 쪼개고 뿔을 뽑아서 발톱으로 삼는다. 나무를 자르고 새끼를 꼬아 뼈대를 대신한다. 그렇게 가져온 강함은 자기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 도구는 부서져도 다시 만들면 그만이기에.
인간은 도구를 씀으로써 지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축바퀴의 원리를 욕심껏 사용한 강철 딱정벌레는 힘을 산술적으로 몇천, 몇백 배 곱한다. 숫자의 폭력 앞에서는 짐승의 왕일지라도 버틸 수 없다.
아, 물론 인간의 왕을 제외하고.
나는 아지를 매달고 떨어지는 톱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단번에 찢어버릴 톱날 옆면을 내 손이 덮었다.
순리대로라면 내 손이 다 찢어지겠지만.
턱.
톱날과 나의 만남은 고요한 소리로 끝을 맺었다. 성난 폭풍처럼 날뛰던 톱날은 손에 닿은 그 순간 정물이 되었다.
“무우웅….”
철봉을 문 채로 대롱대롱 매달린 아지의 멍청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막시밀리앵은 고요 속에서 입을 열었다.
“…근거 없는 도발은 아니었군. 강철 딱정벌레마저 다루다니.”
“당신이 할 수 있다면 저도 할 수 있어요.”
우레바퀴를 동력으로 쓰는 자동마차와는 달리, 강철 딱정벌레는 오직 막시밀리앵의 능력으로만 움직인다. 굴러가는 바퀴, 회전하는 톱날, 톱니바퀴를 이어주는 관절부까지 전부 그의 권능 아래 있다.
그래서 같은 힘을 쓰는 나도 같은 수준의 지배력을 행사한다.
막시밀리앵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손톱으로 허공을 긁는 것 같은 동작, 그때마다 강철 딱정벌레가 꿈틀거린다. 내 손을 벗어나 진짜 주인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잡고 있는 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정확하게 막시밀리앵의 반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길항한다. 제어권을 완전히 빼앗지는 못해. 그 정도인가… 승산은 있군.’
쳇. 알아차리는 게 빠르네.
도발을 이만큼 했으면 이성을 잃어도 괜찮은데, 자기 머리에 톱니바퀴를 박아넣어서 그런가. 감정이랑 이성이 별개로 움직인다.
“정곡을 찔려놓고 화를 내는 건 너무 추하지 않나요?”
“화가 나지는 않았다네. 자네는 나에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지.”
거짓말하지 마. 화났잖아. 단지 머리의 생각톱니를 열심히 돌려서 이성만 붙들고 있는 거지!
“저를 말도 없이 공격해놓고서는 화가 안 난다니. 영 신뢰가 가지 않네요.”
“어쩔 수 없지 않나. 자네는 나를 따라올 의지가 없네. 하지만 나는 자네가 필요하다네. 서로의 의견이 맞물리지 않으니, 서로 더 강한 의견을 가릴 수밖에.”
“저를 끌고 가봤자 협조하지 않으면 그만인데요.”
“자네는 협조하지 않을지도 모르네. 다만, 인간의 왕은 어떨까?”
그것도 곤란하긴 하지.
나는 인간의 왕이고, 내가 힘을 되찾는다고 해도 인격이 뒤틀리고 성격이 바뀌지는 않을 거다.
그렇지만 내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 제 손으로 왕을 쫓아낸 전적이 있는 데다가….
“어쩌면, 죄악의 왕은 더 협조적일지도 모르지.”
아무리 생각해도, 회귀자가 미래에서 봤다는 죄악의 왕은 분명 인간의 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다. 짐승이다. 짐승은 세상을 멸망시킬 짓은 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하다. 짐승도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자살을 해야 하는데, 자살하면 세상을 멸망시키지 못한다. 이 무슨 모순인가.
그런데 해냈단다. 대단하다, 인간 놈들.
“나도 만물의 영장이 가진 속내는 잘 모른다네. 사실 알 필요도 없었지. 나의 목적은 인간의 왕을 만나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으니. 그러나… 자네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네!”
막시밀리앵이 오른팔을 들었다.
어딘가에서 기어나온 톱니바퀴가 그의 몸을 타고 데굴데굴 굴러간다. 조립할 필요도 없이 톱니바퀴는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서 움직였다. 강철이 묵직하게 맞물린다. 순식간에 완성된 거대한 강철의 팔.
막시밀리앵은 나를 노리고 강철 팔을 휘둘렀다.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데려간다며!”
“걱정하지 말게. 팔다리가 망가져도 고쳐주겠네.”
“필요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