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01)
EP.301 톱니바퀴로 만들지 못하는 세상
막시밀리앵은 열국 출신이었다. 탄생이 곧 저주인 그 나라에서는 시시때때로 들이닥치는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다행스럽게도 양팔이 없다는 사소한 문제를 빼면 막시밀리앵의 재능은 탁월했고, 삶에 들이닥친 수많은 문제를 슬기롭게 처리했다.
특히 열국의 기득권들이 합심해서 그를 처단하러 왔을 때도 그는 이성적이었다. 고유마도를 각성한 그의 강철 바퀴 아래 두 개의 회사가 멸망했고, 막시밀리앵은 유유히 열국을 떠났다.
인생 최대의 위기를 극복했지만, 막시밀리앵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전히 그에게는 너무나도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톱니바퀴의 신이나 마찬가지인 그조차도 해결할 낌새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문제점.
막시밀리앵이 사는 이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망가진 작품이었다. 삐걱거리고 망가진 채 아슬아슬 굴러가는, 불협화음을 가득 채운 잡음의 덩어리였다.
어떤 건 개선의 여지가 있다. 비효율적인 구조는 개선하면 된다. 망가진 기계장치는 손을 보면 된다.
그러나 인간만큼은 고쳐 쓸 수가 없었다.
인간은 불합리하다. 탐욕에 눈이 멀어 톱니바퀴처럼 뛰어난 문물을 거부하고,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는가.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달리 이해하며, 심지어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공격하곤 한다. 열국의 머저리들처럼.
톱니를 들쭉날쭉하게 새긴 불량품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다. 그들이 있기에 막시밀리앵과 같은 ‘자격 있는 이들’은 쓸데없는 마찰을 일으키면서 살아가야 한다.
고쳐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문제의식은 있고, 해결 방법도 있다. 그러나 수단이 없다.
이상을 실현하려면 나라 혹은 도시에 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열국에서 도망친 떠돌이에게는 그만한 규모의 일을 해낼 기반이 없었다.
막시밀리앵의 고민이 깊어질 무렵이었다.
난데없이 하늘이 열리고 천사가 강림했다. 그를 계속 지켜봤다고 말을 꺼낸 천사는 막시밀리앵을 향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나라를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막시밀리앵은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은 그에게 맞잡을 양손을 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천사는 신이 아니다. 세속에 물들어 전락해버린 성황청의 병기일 뿐.
신은 믿지 않지만, 병기는 믿을 수 있다. 막시밀리앵은 천사의 손을 잡았다.
천통은 군주였다.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보고, 평가하며, 명령을 내렸다.
영궤는 처형자였다. 천통과 가장 가까웠던 그녀는 천통의 칼날이었으며, 군국을 필요한 만큼 솎아내는 비정한 정원사였다.
그리고 과병은 설계자였다.
군국의 각종 시설, 발명품, 정책 등등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직접 설계한 자동마차부터 대규모 연금강 제련소까지 그의 손이 안 닿은 것이 없다. 군국의 걸작이라고 칭송받는 메타컨베이어 벨트조차도 막시밀리앵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원안은 대지술이 아니라 수천만 개의 톱니바퀴로 군국을 한 바퀴 둘러싸는 것이었고, 그게 현실성이 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업적은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바깥에서 온 세 육장성 중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막시밀리앵이었다. 부지런함의 문제가 아니라, 막시밀리앵이 순수하게 일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군국은 가장 커다랗고 정교한 장난감이자, 그의 이상을 펼칠 실험장이기도 했다. 막시밀리앵은 갓 건국된 나라 특유의 혼란기를 틈타 다소 과격한 일까지 강행했다.
왕국에 대한 증오, 증오가 불사른 땅에서 피어난 희망, 군웅이라는 걸출한 지도자와 그가 데리고 온 세 명. 기적과도 같은 기연 속에서 군국은 크게 부흥했다. 몇몇 이들은 버림받았지만, 다시 끼워 넣을 톱니바퀴는 얼마든지 있었다. 막시밀리앵에게 있어서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분명, 막시밀리앵은 성공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실패했다.
인간을 부품처럼 쓰려고 했는데, 정작 부품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억지로 누르면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려고 하며, 벗어나면 폐기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음에도 온갖 기행을 저질렀다. 아무리 공들여 연마해보았자 불량품이 삐죽빼죽한 날을 숨기고 기계 안에 숨어들었다가 치명적인 오작동을 일으키니 손해가 막심했다.
막시밀리앵은 손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한 손실이 있는 한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기계장치는 만들어질 수 없다.
‘인간’을 고치지 않는 한.
“축하해요, 막시밀리앵. 당신은 훌륭하게 저를 찾아냈어요. 무저갱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땅을 만들고, 거기에 개의 왕을 넣어둘 생각을 하다니. 완벽하게 낚여버렸네요.”
어후. 드디어 이 사람이 주마등을 다 보네. 오래 걸렸다.
표현은 좀 이상하지만, 막시밀리앵은 히스토리아의 총탄에 ‘꿰이고’ 나가떨어졌다. 말 그대로 죽기 일보직전이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고, 그는 손가락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나를 죽일 수 있는 실력자.
빨리 가서 확인사살해야 하는데. 히스토리아는 탈진해서 쓰러졌다.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
강철 딱정벌레의 가장자리에서 땅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강철 딱정벌레의 체고는 4m.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즐비한 저 아래 그냥 뛰어내리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
만전인 상태면 아이템이랑 낙법을 총동원해서 멋지게 착지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 역시 만신창이였다.
‘땅’은 가장 큰 자석이다. 그것을 활용해서 클로버 6의 자성을 극대화시켰다. 날아오는 강철의 궤도를 꺾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강철에 자성을 부여해서 끌어당길 순 있지만, 밀어낼 수는 없다.
달리 말해 저 날붙이가 다 내가 쥔 카드를 향해 날아왔다는 거다. 천의 여왕으로 팔을 꽁꽁 감쌌음에도 수십 개의 날붙이가 스치고 지나간 내 팔은 천의 여왕과 함께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태반이 원호를 그리며 빗나가서 망정이지. 창 같은 게 직격했다면 막시밀리앵한테 의수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야 할 뻔.
아무래도 당분간 왼손은 쓰지 못할 것 같다. 천의 여왕을 꽉 매어 지혈한 뒤, 계단처럼 난 톱니바퀴를 조심조심 디디며 내려갔다.
“그래서 더욱 아쉬워요. 당신의 바람은 강렬하고 흥미롭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없어요. 저는 인간의 왕. 모든 인간의 대변자…였다고는 해도, 지금은 힘도 없고 대표하지도 못하죠. 이제 제게 남은 건, 눈앞의 한 사람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뿐.”
막시밀리앵이 눈을 깜빡였다. 그의 상태는 처참했다.
가슴에는 큼직한 구멍이 나 있다. 피부 안쪽에 조심스레 채워놓은, 피에 젖은 톱니바퀴가 흉물스럽게 모습을 비춘다. 톱니바퀴는 이 와중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는데, 대부분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으며 어떤 건 찌그러져서 돌 때마다 그의 살을 파내고 있었다.
“그에 비해 당신의 바람은 인간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죠? 하지만 모든 인간을 설득할 수는 없으니, 인간의 왕이라는 하나의 존재를 설득하려고. 그래서 제가 필요했던 거죠?”
아무리 명령해도 근육은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그의 전신에 퍼진 톱니바퀴만이 그의 의지에 따랐다. 달칵. 그의 의수가 망가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피가 제 궤도를 멋대로 이탈해도 신경 쓰지 않고서, 우악스럽게.
“아무래도 무능한 저보다는 인간의 왕에 가까우신 분이네요.저 대신 왕 할래요?”
막시밀리앵이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 거품 섞인 피를 한 덩이 쏟아낸 뒤 힘겹게 말했다.
“…줄 수 있다면, 쿨럭, 달게 받겠네.”
“하하. 농담이에요. 당신은 왕 못해요. 못 주는 건 차치하고, 당신이 되려는 건 왕이 아니라 신이니까. 인간이라는 종을 제멋대로 변화시키려는 신 말이죠.”
“기만이로군…. 조금 전 자네가 쓴 건… 분명 마신의 힘. 자네야말로, 쿨럭. 신이 아닌가.”
“아니요. 이건 대지모신교의 고유마도에요.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타인의 고유마도를 훔쳐 쓸 수 있다고.”
“그게 곧… 신이 아닌가.”
“아니라니까.”
천으로 둘둘 말린 팔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격한 움직임에 피가 배어나온다. 부상을 생각하면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지만, 뭐 어떤가. 눈앞의 막시밀리앵은 저 꼴인데도 억지로 일어났다. 나도 성의를 좀 보여야지.
“어떤 고유마도는 신에 닿아요.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신에게 경외하는 이름을 붙이고 현실에 묶어두죠. 이름이 지어진 신은 이 세상을 굽어살피고, 인간은 그 은총을 누려요. 그래서 그건 고유마도이면서, 동시에 마신이라 불려요. 그건 진정으로 신이죠. 모든 인간에게 비가역적인 변화를 야기하니까.”
무저갱의 밑바닥. 빛은 물론, 논리마저도 닿지 않는 땅 속에서 나는 성황청이 봉인해둔 대종사의 기억을 발견했다.
대종사 이전 지모신은 민간 신앙의 한 갈래였을 뿐이나, 대종사가 이후에는 인간의 부름을 듣는 신이 되었다. 성황청이 이 비밀을 봉인한 탓에 대지술은 오직 지모신도만이 쓸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의 기술이었다. 대지술이 있음으로 인간의 삶은 달라졌다.
“그게 당신이 평범한 이유에요. 막시밀리앵. 당신의 톱니바퀴는 인간을 바꾸지 못해요.”
그렇지만 톱니바퀴는?
분명 유용하다. 설계에 따라 몇 배나 되는 힘을 내거나, 몇 배나 정밀한 움직임을 취한다. 힘을 회전으로 바꾸고, 그 반대로도 할 수도 있다.
유용하다. 그뿐이다.
“당신의 의수는 인간의 팔을 대신하고, 강철 딱정벌레는 이름따라 벌레를 본땄죠. 투창기로 창을 쏘아내던 것도, 권양기로 활을 당기던 것도. 다 인간이 먼저 찾아냈던 기능들. 흉내내기. 그게 당신 능력의 본질이에요.”
나는 자비 없이 그의 아픈 곳을 찔렀다.
“조그만 톱니바퀴를 조립해서 어마어마한 것을 만드는 당신의 능력은 탁월해요. 감탄할 정도야. 그렇지만 톱니바퀴는 당신이 만들어낸 게 아니야. 원래 있던 것이지. 톱니바퀴의 원리가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도 아니야. 그저 당신이 가장 잘 다루는 것일 뿐이지.”
그는 거인의 어깨를 딛고 선 거인이다. 크고, 강하며, 누구보다도 멀리 볼 것이다.
다만 결코 신에 닿지 않는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그가 뼈저리게 잘 알겠지.
둘 모두가 빤히 아는 사실이어도 솔직하게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였다.
“당신은 거인이지, 신이 될 수 없어. 주제를 알아요, 짐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