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05)
맛없어서 쥐도 욕지거리한다는 키메라 콩이지만, 거기 안에 담긴 영양분은 가정과 군대를 책임질 만큼 풍부하다. 군국에서 무기 이상으로 취급에 신경을 쓰는 게 군량이었고, 군국 전역에서 수확된 키메라 콩은 사령부에 잔뜩 모여 있었다….
그 영양분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영양분이라 불리는 성분은 녹색 화약이다. 인간은 뱃속에 그 땔감을 넣은 뒤, 천천히 불태워서 걸어 다니는 느린 아궁이다. 식과 생을 고귀한 행위로 치장하고 있으나, 그 본질은 다른 짐승, 기어 다니는 벌레, 혹은 그보다 훨씬 작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들과 똑같다.
누구의 뱃속에 있든, 같은 장작을 같은 불꽃으로 태운다. 거기에는 규모를 제외한 그 어떠한 차이도 없으니.
네 근원을 알라.
고유마도, 근원수(根源樹).
생명과 탄생의 근원을 품은 근원의 나무.
누군가에게는 배덕의 나무라 불리는… 어떤 드루이드의 고유마도.
신을 이름 지었음에도, 아직 살아있기에 모두의 것이 되지 못했다. 위대한 근원은 오직 그를 통해서만 귀를 기울이니.
곳곳에서 비명과 함께 녹색 폭발이 일어났다. 영양분이 될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새로이 축을 만들어서 다시 뻗어나간다. 토룡이 곳곳에서 솟아 나서는 새끼를 치는 것만 같다.
고작 한 수로 재난에 준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네비다는 손을 털고 막시밀리앵을 챙겼다. 결정한 이상 미련은 없다. 네비다는 성큼성큼 걸어 크게 열린 옹이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옹이 구멍이 닫히기 전, 네비다는 나를 향해 작게 인사했다.
“그럼, 안녕히.”
회귀자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머리 위로 천앵을 흔들며 약이 바짝 오른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쳤다.
“도망치지 마!”
‘빨리 꺼져!’
다행스럽게도 네비다는 회귀자의 속마음 쪽을 들어주었다. 나무가 닫힌 뒤, 네비다는 땅 속 깊숙이 사라졌다.
‘갔나? 갔냐? 진짜 갔지? 어디, 녹안!’
회귀자는 칠색안 중 녹색, 꿰뚫어 보는 녹안으로 주위를 살폈다. 땅부터 하늘까지 샅샅이 확인하는 걸 보니 꽤 겁을 먹은 모양이다.
몇 번이고 확인한 회귀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아…! 일단 다행이야…!”
그때였다.
펑, 하고 폭발음이 들렸다. 화약만큼 날카롭진 않지만, 식물로부터 비롯되었다기에는 너무 강렬한 소음이었다.
다행이라고 하기엔 소리부터 이상하지 않냐, 회귀자.
“뭐가 다행이에요? 지금 난리가 났는데!”
“아, 괜찮아. 저건 콩깍지 폭탄이야. 귀찮긴 하지만 네비다 본인이 없다면 금방 처리할 수 있어. 근원의 나무는 근원수(根源獸)가 맺히지만 않으면 되니까.”
“근원수?”
“나무로 만들어진 짐승이야. 배덕의 나무가 맺은 열매에서는 짐승이 태어나기도 해. 하지만 이번에는 거기까진 못 만들었나 봐. 다행스럽게도….”
회귀자가 그리 중얼거리는 도중이었다.
[캬아아아아아악!]저 멀리서 나무 줄기를 몸통으로 갖는 거대한 뱀이 몸을 뒤틀었다.
폭발이 잇달아 일어났다. 불티를 내며 튀어 오른 콩알이 밝아오는 하늘을 수놓는다. 그렇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키메라 콩이 내 옆에 쾅하고 떨어진다.
잠시간 회귀자와 나는 말을 잊었다. 그 침묵을 비집고 사방팔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무로 된… 뱀?”
“뭘 보고만 있나! 공격해!”
“식량! 군용 식량이 일제히 폭발했습니다!”
“행보관님. 콩에 맞아 다치면 공상입니까?”
“개소리 집어치우고 저 뱀부터 잡아!”
총성이 들리고, 군국의 장교와 장성들이 무기를 들고 뛰어올라 나무 뱀을 난도질했다. 그렇지만 거목만 한 몸통을 가진 나무 뱀은 잘려도, 베여도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피해를 누적시켰다.
마신의 힘은 환경을 뒤바꾼다. 비록 공격할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산과 숲이 움직이면 그 안에 사는 작은 벌레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회귀자는 울려퍼지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혀를 찼다.
“치잇. 나보고 치우라는 거야? 어차피 군국은 내 편도 아닌데!”
“아니요. 이제부터는 셰이 씨 편이 될 수 있을걸요.”
“뭐?”
“정리하고 오세요. 저는 리아를 챙기고 아지 좀 꺼내줄게요.”
그제야 다른 사람에게 시선이 닿은 회귀자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 맞다. 다른 사람들은?”
“잘 있어요.”
“알았어!”
회귀자는 천앵과 지잔을 손에 들고는 냅다 뛰었다. 바람을 두르며 허공으로 뛰어오른 회귀자가 비스듬히 든 지잔을 천앵으로 빠르게 쓸어내렸다.
“천지검곤, 부싯땅!”
마찰로 공기에 불을 붙인다. 천앵이 불길을 머금고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회귀자는 불길을 두른 천앵으로 나무 뱀을 일도양단했다. 불 붙은 나무 뱀이 거체를 뒤틀며 고통스러워했다. 불탄 가지가 사령부 곳곳으로 떨어지고, 일반병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대장님! 저건 어떻게 하죠?”
“…사령부로부터,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이…! 일단 나무부터 태운다!”
이곳저곳 옮겨붙은 불에 혼란은 더해졌지만 회귀자는 개의치 않았다.
“터지는 콩깍지나 나무 뱀보다는 불이 낫지. 너희라도 위기감은 느끼니까! 내가 불을 붙일 테니까 너희는 끄기나 해!”
잠시간 군국과의 공투가 이루어졌다. 나무 뱀은 가닥가닥 끊기고도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정리될 것 같았다.
‘규모는 큰지만 효과는 약해. 도대체 네비다는 왜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굳이 근원의 나무를 쓴 거지? 꼭 마신을 자랑하고 싶어 한 거 같잖아?’
말 그대로야, 회귀자. 네비다는 마신을 자랑하려고 쓴 거야.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 곁으로 날아온 키메라 콩이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다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커다란 새싹이 내 발치까지 도달했다.
맺을 열매에 비해 너무 연약해 보이는 줄기는 땅을 기듯이 자랐다. 나는 점차 길어지는 키메라 콩과 함께 천천히 걸어갔다.
키메라 콩으로부터 비롯된 줄기다. 거기서는 키메라 콩이 맺히는 게 섭리다.
그렇지만 마신의 섭리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강낭콩, 완두콩, 병아리콩, 팥. 콩이라는 종에 한 발 걸치는 작물이 잇달아 열린다. 유쾌한 이가 한 나무에 콩이란 콩은 다 매달아버린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내막을 보면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솟아난 칡넝쿨이 콘크리트를 휘어 감는다. 토끼풀이 작은 잎을 곧게 뻗는다. 콩을 매달지는 않았지만, 그 줄기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지나쳐 걸었다.
이것과 함께 계속 걸어간다면… 무엇이 나올까.
이게 근원의 나무의 본질. 네비다가 세상 만물에 이름을 붙인 성황청을 경멸하는 이유다.
물론,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지만.
“흠. 이건 못 써먹겠네.”
이 마신은 하필 내가 쓰기 극히 어려운 종류다. 네비다 본인이 드루이드기에 몇백 배 강력하게 사용하는 거지, 내가 해봤자 기껏해야 땅콩을 자라게 하는 게 전부겠지.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
스페이드 덱을 꺼냈다. 이것저것 고르다가, 숫자 9를 꺼내서 손가락으로 몇 번 만지작거렸다.
스페이드는 특별하다. 다이아몬드는 연금화를 소모하고, 클로버는 마력을 담아야 하고, 하트에는 거기 해당하는 약물을 보관해야 하나 스페이드는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그나마 하나 필요한 게 있다면 내 믿음 정도?
스페이드는 마신을 기리는 우상이니까.
막시밀리앵이 없기에 톱니바퀴를 움직일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강철 딱정벌레의 옆면을 잡고 힘겹게 기어 올라갔다. 고작 4미터 정도일 뿐인데 숨이 찬 걸 보니, 나도 좀 지치긴 했나 보다. 아, 마력초 땡긴다.
간신히 올라와서 보니, 히스토리아는 톱니바퀴 하나에 등을 기대고 힘겹게 앉아있었다. 퀭한 눈이 나를 향한다. 나는 살갑게 웃으며 말했다.
“리아. 땅콩 하나 먹을래?”
“땅콩이 어디….”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나와 함께 올라온 콩 줄기 끄트머리에 땅콩이 맺혔다. 나를 따라 올라오느라 힘이 다했는지, 맺은 땅콩은 하나가 고작이었다.
그렇지만 땅콩은 하날 까면 두 알이 나온다. 가운데를 톡 부러뜨려 헛웃음을 짓는 히스토리아에게 하나를 건넸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사이니까 특별히 주는 거야.”
“흥.”
히스토리아는 땅콩을 입 안에 넣고는 가볍게 씹었다. 오도독 소리가 들린다. 나도 땅콩을 까먹으며 히스토리아의 옆에 대충 걸터앉았다.
역시 땅콩이야. 요리에 곁들여도 존재감을 발휘하지만, 그 자체로도 최고지.
짧은 미식이 끝나고 히스토리아가 중얼거렸다.
“휴이… 네가 인간의 왕이야?”
“응.”
“그렇구나.”
그리고 침묵. 나는 다시 물었다.
“물어볼 건 그게 다야?”
분명 더 있을 텐데. 내가 캐묻자, 히스토리아는 입을 뻐끔거리다 말했다.
“…마력초 있어?”
“너 다 줬잖아.”
“꿍쳐둔 거.”
“쳇. 어떻게 알았담.”
혀를 차며 생체 단말에 끼워둔 마력초를 꺼냈다. 이곳에 두면 마력초를 안 피워도 약 기운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어서 좋았는데.
“네가 하는 게 그렇지.”
피식거리면서 손을 내민다. 꼭 맡아놓은 투다. 그렇지만 마력초가 아까웠던 나는 다 주는 대신 카드를 꺼내서 마력초를 자르려고 했다.
히스토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한 개비 가지고 쪼잔하게.”
“시끄러워. 돗대는 고작 한 개비가 아니야. 이 한 개비가 내 전부니까 아까운 거라고.”
히스토리아가 살짝 눈을 치켜떴다.
“…전부는 못 줘?”
“절반이나 주잖아.”
아, 잘 안 잘리네. 기력이 다해서 그런가.
내가 마력초에 자국만 새기는 동안 히스토리아가 한심하게 나를 노려보다가 손날을 세웠다.
휙. 히스토리아의 손이 마력초를 스쳐 지나갔다. 잘린 마력초가 서로 떨어지기도 전에 히스토리아는 제멋대로 더 큰 쪽을 골라 가져갔다. 혹시나 뺏을 수 없게 냉큼 입에 물고는, 이제 말도 하지 않고 끄트머리를 자연스럽게 내 앞으로 내밀었다.
‘불.’
최소한 말로 좀 해라. 나는 손가락을 들어 히스토리아의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댔다. 짧아진 마력초가 가까이 닿는다.
“세트, 리. 피렌하이트.”
히스토리아가 숨을 들이쉬고, 마력초가 흠뻑 불을 머금는다. 나는 불이 꺼지기 전에 내 마력초에도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