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09)
군국 이너서클 사령부, 합동본부.
사령부 정중앙에 우뚝 솟은 이 건물은 그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수수했다. 그나마 특징이 있다면 연금강으로 외벽을 둘러쌌다는 것이었으며, 덕분에 나무로 된 뱀이 난동을 부리는 와중에도 멀쩡했다.
내가 들어가기도 전, 안쪽에서 날카로운 언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전대미문이오! 조금 전까지 사령부를 유린한 적과 회담이라니! 싸워보기도 전에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 같지 않소이까!”
나이 지긋한 대장 하나가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기공을 담은 중후한 외침에는 강철로 덮어쓴 건물을 쩌렁쩌렁 울리는 힘이 있었으나, 정작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가볍게 흘려넘겼다.
“나도 전대미문이야. 회담이라길래 또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나 했는데, 사람 앉혀놓고 소리만 지르고 있고.”
“네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명령만 아니었다면 당장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었을 것이다!”
“해보시지? 나한테도 그편이 편한데.”
장성 몇몇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오늘도 회귀자는 갈등을 빚고 있었다. 너는 부싯돌이냐. 어디 부딪힐 때마다 불꽃을 일으키게.
한숨을 내쉰 나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
“자자. 장군님들. 어린 꼬마 하나를 둘러싸고 인상 험악하게 노려보지 마세요. 꼰대질에 텃세 같아서 보기 안 좋다고요.”
“너는 또 뭐냐!”
그 순간 맹렬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속이 답답해진다. 흐음, 장성, 그것도 대장급의 기백은 건강에 안 좋네. 연약한 나는 무언의 압력을 피해 슬쩍 히스토리아의 뒤로 몸을 숨겼다.
“…라고 히스토리아가 이야기하더라고요.”
“히스토리아! 군국의 배신자!”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군국을 저버렸나!”
바로 적의의 방향이 히스토리아로 바뀌었다.
원래 이런 유치한 수법에 잘 안 넘어가긴 하는데, 하필 상대가 히스토리아라 그런가. 장성들은 원수를 보는 것처럼 노려보고 있다. 아니면, 놈팡이에게 속아 집을 나간 딸을 향해 원망의 시선을 보내던가.
히스토리아는 나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따돌림당하는 게 맞네.”
히스토리아는 장성을 향해 의무적으로 경례한 뒤, 나를 뒤에 붙인 채 회귀자의 쪽으로 향했다.
홀로 외롭게 앉아있던 회귀자는 나와 히스토리아를 보고는 아는 체를 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나 혼자 이 아저씨들이랑 부닥거리고 있었잖아. 칫, 차라리 싸웠다면 편했는데. 말로 하는 건 귀찮고 피곤해.”
“힘 말고 말로 해결할 생각 좀 해봐요. 대화만 잘해도 대부분의 일을 순탄히 끝낼 수 있다고요.”
옆의 의자를 끌어 앉으니, 회귀자가 나를 흘겨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천검기, 전음.’
그러자 회귀자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왔다.
[…자기 자신을 영궤라고 칭한 그 괴생명체처럼?]“괴생명체라니요. 같은 인간이에요. 우리의 갈등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전폭적으로 협조해주신 분이라고요.”
[흥. 티르칸쟈카에게는 심장을 되찾아주고, 그 괴생명체에게는 자신을 되찾아줬다고? 도대체 넌 뭐야? 분실물이라도 찾아주는 심부름꾼이야?]“비슷해요. 간간이 말씀드렸지만, 저는 마술사라고요. 상대의 심리를 읽고 흔드는 쪽으로는 탁월하죠.”
[말은 잘하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어디 이번에도 실력 좀 발휘해보지 그래?]오케이, 접수.
“알겠어요. 그 전에, 셰이 씨. 남자끼리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거 조금 남사스러운데 그만해주시면 안 돼요? 저도 귓속말의 중요성은 알지만, 귀에 입을 딱 갖다 댄 것처럼 들려오니 간지러워서 좀.”
“뭐, 뭐?”
“저도 남자끼리 이런 생각 안 하는데, 하필 셰이 씨에 대해 묘한 인상이 남아서, 저도 얼굴이 절로 붉어진달까요.”
“아니거든! 나도 관심 없거든! 태연한 얼굴로 개소리 지껄이지 마!”
그러자 문밖에서 스탠바이 중이던 아지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멍?”
“너 부른 거 아니야!”
아지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씩씩거리는 회귀자를 향해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주었다.
“어떠신가요? 저는 고작 몇 마디 말로 이 정도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답니다.”
그제야 자기가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회귀자가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나한테 하지 말라고! 저쪽에다가 해!”
“저쪽은 나이 지긋한 군인들이잖아요. 놀릴 구석이 없는걸요.”
“나한테는 있다는 말이냐?!”
회귀자가 내 멱살을 부여잡으려는 그 순간, 누군가 문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런 특색도 없어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을 듯한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새까만 제복에 훈장 하나 달지 않은 채, 단추마저 먹을 칠한 ‘지크흐룬드’가 무표정으로 말했다.
“소란스럽군. 그토록 밀담을 나누고 싶다면 밖에서 해라…. 아, 이런.”
뭐야, 저 사람. 중간에 갑자기 옆길로 샌다 싶더니. 언제 변장을 끝마친 거야? ‘지크흐룬드’로 모습을 바꾼 힐데는 회귀자를 보고 중얼거렸다.
“사내들끼리라면 밖에서는 하지 못하겠군.”
“야!”
“아, 정정하겠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하면 안 되는 죄악이지.”
“그러니까, 아니라고!”
발끈하는 회귀자와는 달리 장성들은 그를 보고는 반가워했다.
“지크흐룬드 대장. 기다렸소!”
“기다리게 했군. 정보를 취합하고 총사령부의 의견을 듣느라 조금 걸렸다. 귀관들도 충분히 납득할 내용을 들고 왔으니, 이 회담은 맡기도록.”
‘지크흐룬드’는 그리 말하고는 상석으로 향했다. 와중 약이 바짝 오른 회귀자는 ‘지크흐룬드’를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남 말 하시네! 너는 왜 그 모습인데?! 아까까지만 해도 키 작은 여자 모습이었잖아!”
회귀자 나름의 회심의 반격이었지만 지크흐룬드는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남색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자기 이상형을 나에게 대입하지 마라. 아니, 이상형이 아니라 정체성이던가?”
“아니, 너는 분명 변장을….”
그러나 그 누구도 회귀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장성들은 분노도 잠시 잊은 채 회귀자를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영궤가 소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머리에 부작용을 주는 타입의 기공인가? 어쩐지. 저 정도는 그 나이에 이루기 힘든 성취더군.”
진실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정신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 부당한 처사가 억울했던 회귀자는 이제 일말의 기대를 담고 나를 보았다.
‘솜씨 좀 발휘해 봐! 네가 활약할 기회잖아!’
나는 그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셰이 씨. 음해할 때는 진실보단 재미가 중요해요. 만일 그딴 진실이 있다고 해도 저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뜬금없고 재미도 없어서 반응이 없을 수밖에. 이왕이면 저처럼 해보세요.”
“너도 네가 나한테 하는 게 음해라는 걸 아는 거지!”
와중 내 옆자리에 앉은 히스토리아는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귀염둥이를 봐도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네.”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말랬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도 그의 본모습을 알아. 네 상황은 이해하고 있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 없어.”
“어, 어, 그래…?”
‘그럼, 동지인가…?’
그 정도로 감동하지 말라고. 마음의 발화점이 얼마나 낮은 거야.
와중 논란의 한복판에 선 ‘지크흐룬드’는 서류를 탁탁 정리하며 말했다.
“총사령부는 처음부터 이들과 필요 이상의 갈등을 빚고자 하지 않았다. 싸우면 손해가 막심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 싸웠을 때 얻을 이득이 마땅치 않다. 위협하여 내쫓거나, 최소한의 첩보작전으로 해결해 보려고 시도했지. 모두 실패했지만.”
“으득…! 도대체 이딴 만행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지?”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더군.”
쾅. 장성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쳤다. 지름이 3m는 될법한 원탁이 기우뚱거리며 뒤집히려는 찰나, 회귀자는 슬쩍 지잔을 모퉁이에 갖다 댔다. 들썩거리던 원탁이 지잔에 짓눌려 부르르 떨다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기싸움에서 패배한 장성은 조금 자존심이 상한 채로 외쳤다.
“웃기는 소리! 여기까지 와서도 연막이냐? 설마 한 나라의 중대사를 고작 어린아이 장난처럼 취소하라고 할 리 없고, 진짜 목적을 말하라!”
“흥. 그래. 너희는 안 믿겠지. 그럴 줄 알고….”
“믿을 수 있다, 는 중요하지 않다. 불신은 장성의 의무이며, 군국은 언제나 군국의 잣대로 판단한다. 이번 판단 역시 군국의 잣대로 인한 것이다.”
‘지크흐룬드’의 발성에는 묘한 울림이 있어서, 왠지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성과 회귀자의 말을 끊은 ‘지크흐룬드’는 계속 말했다.
“먼저, 이번 습격으로 인한 피해를 말하겠다. 일반병의 피해는 그다지 크진 않지만 군량으로 비축해두었던 키메라 콩이 통째로 소실되었다. 그게 나무 뱀으로 변한 탓에 재활용할 수도 없어. 전쟁수행능력에 큰 차질이 생겼다.”
“다 저 침입자들이 벌인 일 아니오!”
“아니다. 배덕의 나무를 수호하는 드루이드의 권능이다.”
‘지크흐룬드’는 장성의 항변을 딱 잘라 말했다.
“식품 개량을 담당하는 지주회사 주지육림. 그들은 명령에 따라 목숨을 걸고 배덕의 나무에 접근, 키메라 콩이라는 커다란 결실을 찾아 돌아왔지. 덕분에 군국은 식량난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 다만, 다들 알다시피 배덕의 나무에는 불탄 세계수의 수호자가 있다.”
군국 남쪽으로 펼쳐진 무성한 삼림 한가운데는 우뚝 선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세계수가 모종의 사건으로 불타 쓰러지고, 대신 그 잿더미에 뿌리를 내리고는 솟아난 배덕의 나무가 그것이다.
세상 모든 과실이 그 한 그루에서 열린다는 소문에 군국은 조사단을 파견했고, 거기서 군국 7대 발명품인 키메라 콩을 발견… 혹은 발명하여 돌아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네비다의 묵인이 있었지만, 이들은 그 사실을 모르겠지.
“드루이드 네비다…?”
“하지만, 네비다는 배덕의 숲 바깥쪽에 무엇을 심든 관심이 없다고 했소! 지금에서야 키메라 콩 때문에 찾아올 이유가 있소?”
“그것까진 모른다. 나라고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니까. 어쩌면 저들이 불러왔을지도 모르지. 단, 우리는 그 위협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잠시 상황을 관망할 이유가 있다. 그게 이 회담이 성사된 결정적인 이유다.”
장성들은 외부의 위협으로 인해 군국이 흔들리는 이 상황 자체를 마음에 안 들어 했다. 다만, 그들도 군인인지라 적국과의 양면전선은 가능해도 식량부족과의 양면전선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았다.
‘지크흐룬드’는 그들을 등지고 회귀자를 향해 선언했다.
“그래서 총사령부는 일시 휴전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의 굴복 선언이다. 장성들이 불만스럽게 헛기침했다. 동시에 회귀자는 경악 섞인 반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 정말? 군국이? 휴전한다고?”
“그쪽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것 아닌가. 무슨 문제라도? 설마 숨겨진 다른 목적이 있나?”
‘지크흐룬드’가 날카롭게 묻자, 회귀자는 반쯤 일어선 몸을 다시 되돌리며 평정을 가장했다.
“아니, 이제야 정신을 좀 차렸나 싶어서.”
‘뭐야? 이걸 진짜 해? 지금까지는 때려죽여도, 그러니까 온갖 방법으로 멸망시켜도 멈추지 않았는데!’
어쩌면 네가 때려죽이려고 드는 바람에 멈추지 못한 게 아닐까, 회귀자? 전쟁 멈추는 방법이 나라 멸망이라니. 죽으면 못 싸울 테니 싸움을 막기 위해 죽이는 거랑 뭐가 달라.
“다만, 조건이 있다.”
“그럼. 너희가 당연히 그렇겠지. 뭔데?”
‘그대로 믿지 마. 군국이야. 이상한 짓을 또 할지도 몰라! 뭐 불가능한 일을 시키려나? 일단 당장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를 떨어뜨려 놓을 수작인가?’
놀랍게도 그 무엇도 아니다. ‘지크흐룬드’는 잔뜩 경계한 회귀자를 비웃듯,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