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22)
“휴즈가 네 아버님이 되려면 휴즈는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낳았어야 했어! 그게 말이 돼?”
당연히 말이 안 되지.
어쨌든, 돌고 돌아서 이제야 이 인과 역전을 알아차렸구나. 티르보다 회귀자가 더 먼저 알아차릴 줄은 몰랐는걸….
‘불가능하지는 않다. 만일, 휴가 바로 그 존재라면.’
어라?
이상하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읽고 있는 거지.
‘모든 게 설명이 된다. 그 신비한 힘도,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나의 심장을 되찾아 준 것도. 먼 옛날 멎었던 심장의 박동. 그건 이 시대 오로지 나밖에 모르는 일이나… 휴가 인간의 왕이라면, 모든 인간을 대변한다면. 알아낼 수도 있을 터.’
티르는 묘하게 사람 말을 잘 믿는다. 그건 멍청하거나 순진해서가 아니라, 오래 된 집이 새로운 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문턱을 한껏 낮춘 탓이다. 그래서 무저갱에서도 내 잡소리를 다 믿었고, 회귀자가 말하는 지식도 일단 수긍하고 보았다. 하물며 나를 보고 아버님이라 부르는 힐데의 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분명 그때, 피에서 쇳녹 냄새가 나는 괴인이 휴를 향해 말했지. 네가 인간의 왕이냐고.’
그래서일까. 티르가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막시밀리앵이 나를 보고 인간의 왕이라 불렀던 일도 그대로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지금 쓰기 위해서.
좋아. 나는 인간의 왕이니까, 지금은 티르의 지혜가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저 아이가 휴를 아버님이라 부르는 것도, 이러면 이치에 맞는다! 태어나기 전에 낳은 아이라면, 전대 인간의 왕이 낳은 아이겠지!’
왜 그런 방식으로 납득하는 거야!
‘아무렴. 저토록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가 난데없이 휴를 아버님이라 부를 리 있겠느냐. 필시 전대 인간의 왕의 자식일 터.’
오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잖아!
지금까지는 홀로 삽질하는 모습이 우스워서 마음이나 읽으며 지켜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슬슬 오해를 풀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어. 더 꼬이기 전에 오해를 풀어야….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기이한 능력. 차이는 있지만 그 힘은 휴와 닮지 않았느냐. 휴가 나의 심장을 되돌릴 때, 분명 그때… 휴는 내가 되었다. 저 아이처럼 겉모습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다.’
티르의 생각을 읽은 나는, 불현듯 떠오른 영감에 멈칫했다.
…흐음. 잠깐.
나는 인간의 생각을 읽는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는 없다. 인간의 생각은 이리저리 충돌하고 반발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가능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예언자가 될 수 없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지켜보기만 할 뿐.
티르가 찾아낸 가능성은 지켜볼 가치가 있다.
좋아. 일단 오해하게 두자.
“자자. 쓸데없는 나이 논쟁은 그만합시다. 적으면 어떻고 많으면 어때요? 어차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셰이 씨는 위아래도 예의도 없이 반말 찍찍하고 다니는데요.”
“뭐, 이 자식아?”
“봐봐요. 솔직히 이 자식 저 자식으로 불리는 것보다는 아버님이 나아요. 최소한 존중이라도 있잖아요.”
“맞아요! ‘저’는 존중과 경의를 담아 아버님이라 부르고 있다고요!”
회귀자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존중과 경의야…. 뭐, 됐어. 둘이 그렇게 놀겠다면야 뭐. 내 알 바 아니지.”
“끼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세요, 셰이 씨. 자식은 두 명 정도 있어도 괜찮으니까요.”
“‘제’가 특별히 셰이 오빠라고 불러줄게요!”
“닥쳐! 너희들 노는데 나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마!”
그렇게 회귀자를 놀리며 놀고 있는데 티르의 생각이 들려왔다.
‘셰이가 아들, 힐데가 딸이라면… 후훗. 남은 자리는 하나밖에 없구나.’
헛기침하며 끼어든 티르가 회귀자를 나무랐다.
“셰이. 너무 벽을 치지 말거라. 꽤 오래 얼굴 보고 지낼 사이인데 잘 어울려야 하지 않겠느냐.”
“저딴 식으로 어울릴 바에야 얼굴 안 보고 살지!”
“…그러더냐? 아쉽구나.”
“하나도 안 아쉬워!”
와중에 덜컹, 하고 캐터프랙트가 급정거했다. 캐터프랙트의 지붕에 올라가 있던 아지가 놀라서 ‘왕!’하고 짖었다. 캐터프랙트의 안쪽에서는 바깥쪽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운전석을 향해 물었다.
“디지?”
대답은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골렘은, 아니, 대강 골렘의 형태만 본뜬 어떤 구조물은 반응도 없이 운전을 계속하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통신병을 불렀다.
“통신병 디지 대위.”
말하며 톡톡 두들기자 이제야 반응이 왔다. 지직거리는 목소리가 거친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직, 지직… 군국 통신병 디지입니다아…. 부르셨습니까아….]“왜 멈춘 거예요?”
[확인 중. 지직… 현재, 본 기체는 정지 중.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가로지르기 위한 가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아….]“아아. 그렇다면 드디어 이너서클을 벗어났다는 뜻이겠네요.”
강처럼 흐르는 땅,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군국을 한 바퀴 휘감고 흘러간다. 강과 마찬가지로 그 흐름에 따라 움직일 때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주지만, 거스르거나 건너기에는 상당히 까다롭다. 특히 차량 같은 경우 그냥 건너가려면 십중팔구 전복되기 마련이다.
캐터프랙트를 운전하던 특수목적용 골렘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아…. 도착 예정시간보다 2분 일찍 도달한 탓에, 외람되나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아….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알겠어요. 어디 바깥 좀 살펴볼까요.”
캐터프랙트의 뚜껑을 열려는데 뭔가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지가 뚜껑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탓이다. 나는 뚜껑을 콩콩 두들기며 말했다.
“아지야! 비켜봐!”
“멍멍?”
무게감이 사라졌다. 나는 뚜껑을 벌컥 젖히고는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보았다.
널따란 땅을 배경으로 흐르는 메타컨베이어 벨트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땅이 물결치며 흐르는 모습은 여전히 장관이다. 흙색 지류 위에 큼직한 컨테이너가 표류물처럼 떠서 흐르고 있다. 캐터프랙트가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쏜살같이 지나가는 컨테이너를 맞고 무사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뭐, 저 위에 올라타면 갖다 박지 않는 한 부딪힐 일은 없겠지만.
벽면에 걸터앉아 멍하니 풍경을 보고 있는데, 새까만 양산이 통로를 따라 불쑥 솟아났다. 내가 자리를 비켜주자, 양산을 걸친 티르도 나와 내 곁에 앉아서는 흐르는 강을 보았다.
“흐음. 확실히, 이 둔한 마차로는 건너기 힘들어 보이는구나. 어디, 내가 들고 움직이도록 할까?”
무게가 톤 단위인 캐터프랙트를 들고 움직인다니. 역시 상식 밖의 힘이 있다면 작전이나 장치도 필요 없다는 건가.
하지만 달리 말해, 작전이나 장치가 있다면 상식 밖의 힘도 필요 없다. 나는 손가락으로 저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저기 가교가 도착하고 있거든요.”
“가교가 도착해…? 다리가 움직인다는 말이더냐?”
백문이 불여일견. 나는 시야 저편에서 나란히 다가오는 다섯 개의 컨테이너와 그 위에 놓인 강철 판자를 바라보았다. 티르도 호기심을 갖고 유심히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다가오기 전까지 컨테이너는 그저 네모난 표류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앞에 가까워지자 변화가 생겼다.
골렘 몇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직후 컨테이너의 구조가 변했다. 철컥, 철컥. 컨테이너의 옆면이 벌어지고 분리되더니 아치형의 금속 가교로 변신했다. 컨테이너 끄트머리가 메타컨베이어 벨트에서 벗어나 정지된 땅에 고정된다.
구구궁. 마치 철로 된 새가 날개를 펴는 것처럼, 가교는 순식간에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가로질러 세워졌다.
가교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골렘이 경례를 올려붙이며 말했다.
[메타컨베이어 벨트 담당, 피젯 대위임다! 현 시간부로 가교 설치 완료했슴다!] [지직…. 군국 통신병 디지 대위입니다. 가교 설치 확인했습니다! 야호! 곧장 출발합니다! 다들 꽉 잡아주십시오!]쿠르르릉. 캐터프랙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 톤이 넘는 거체가 기민하게 가교 위로 움직인다. 가교는 급조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내구성으로 캐터프랙트를 지탱했다.
[임무 완수했슴다! 디지, 이후 업무는 맡김다!] [확인! 갑니다아아아아!]쿠르르릉. 캐터프랙트는 다리 위에서도 최고 속력에 가깝게 달렸다. 아래로 흐르는 ᄄᆞᆼ을 둔 채 캐터프랙트가 거칠게 내달렸다. 철판이 철컥철컥 흔들린다.
티르가 순식간에 생겨난 다리를 향해 호기심을 잔뜩 보였다.
“호오오. 정교하구나. 가교라 하니 배다리를 생각했다만, 설마 이런 식으로 다리를 만들어낼 줄이야. 저 인형들이 해낸 일이냐?”
“맞아요!”
어느새 올라온 힐데가 내 왼편에 털썩 앉아서 투덜거렸다.
“정말 엄청난 특혜라니까요? 다수의 통신병이 한 명을 이렇게까지 서포트한다니. ‘저’조차 받아본 적 없는 호사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통신병 한 명 포섭해둘걸!”
“그런데 왜 번거롭게 가교를 놓는 것이냐? 튼튼한 다리를 미리 놓아두면 편리하지 않느냐.”
“후후, 맞춰보세요!”
“호오.”
티르는 제법 이 문답에 흥미를 보였다. 자세를 다잡으며 힐데의 퀴즈에 응했다.
“다리를 미리 놓아두면 곤란한 문제가 있나 보구나. 너희는 누군가 멋대로 가로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를 두지 않은 것이냐?”
“절반의 정답이에요.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강처럼 흐른다고 해도 땅은 땅. 사람 한 명이 건너고자 마음을 먹으면 못 건너가지는 않으니까요!”
“흐음. 그렇겠구나. 아, 아래에 무언가 큼직한 것이 지나갔다가 다리와 부딪힐까 봐?”
“그것도 절반의 정답. 하지만 컨테이너 대부분이 규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리와 부딪힐 일은 없어요. 지금도 컨테이너는 가교 아래로 지나가고 있잖아요?”
“거참 깐깐하구나. 절반의 정답이 두 번이라면, 합치면 온전한 정답이 되지 않느냐.”
“이건 퀴즈인걸요. 부수적인 이득 말고, 가장 중요한 이유를 대지 않으시면 정답으로 인정해드릴 수 없어요!”
“으으음….”
티르의 신음이 길어졌다. 머리에 정답 비슷한 것도 떠오르지 않는 걸 봐서 단시간 내에 맞추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게 티르는 문제 하나를 고민하는데 열흘 정도는 쉬이 쾌척할 수 있는 인간이다. 잠도 안 자고 문제의 답을 찾아내려고 할지도 모른다.
혹여나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나는 하루 종일 티르의 궁리를 독심술로 읽어야 한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건 곤란했다.
“힌트 하나 드릴까요?”
내 제안에 티르가 반갑게 답했다.
“그래. 네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마. 내가 맞추지 못해서가 아니라, 네 호의를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강처럼 흐르는 땅이에요. 하지만 땅이라는 말에 다들 헷갈려하는데,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사실 강이 하는 역할을 하죠. 이동, 운송….”
“그래. 나도 보아 안다. 허나, 지금은 다리가 없는 이유를 묻고 있지 않느냐.”
“티르. 상상해보세요. 메타컨베이어 벨트가 강이라면, 군국을 크게 한 바퀴 감은 채 흘러가잖아요? 무엇을 닮았죠?”
고민은 짧았다. 티르도 익히 아는 답이었으니까.
“…해자?”
티르는 약간의 거부감을 담아 말했다.
“정답. 해자는 무엇을 위해 있죠?”
“우리가 성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지.”
우리라는 건 흡혈귀를 뜻하는 말이겠지. 왜 굳이 우리라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흡혈귀의 고질적인 약점 중 하나로 꼽히는 흐르는 물. 총칼에 베여도 멀쩡한 흡혈귀지만, 외부와 내부의 구분이 옅은 나머지 가끔 강물을 자기 혈류와 착각하기도 한다. 그건 단순한 작각이 아니라, 마치 몸이 녹아 흩어지는 듯한 끔찍한 기분이기에 흡혈귀는 본능적으로 흐르는 물을 기피한다.
“물론, 꼭 흡혈귀만을 위해서 마련하는 건 아니죠. 해자는 평범한 인간들도 곤란해하거든요.”
“즉, 적이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네. 물론 적도 다리를 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럴 때는 아까 티르가 말했던 것처럼 큼직한 컨테이너를 쏟아부어 쾅, 하고 무너뜨릴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