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23)
“그래서 절반의 정답이라고 했던 것이로구나!”
티르가 솔직하게 감탄했다. 지루함을 달래주는 퀴즈에 대단히 만족했던 티르지만, 정작 이 퀴즈를 낸 힐데는 불만스러워했다.
“에엣, 너무해요! 퀴즈를 낸 건 ‘저’인데 아버님이 다 알려주시면 어떻게 해요! 비겁해!”
“그러니까 아는 척을 먼저 하는 사람이 승자랍니다. 재미 그만 보고 슬슬 풀어줬어야죠.”
“인생의 교훈이네요…. 하나 배워갈게요.”
힐데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는 사이,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티르가 물었다.
“해자를 만든 건 우리 흡혈귀를 막기 위함이다.”
“꼭 그렇진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약간 피해의식 아닌가요 그거.”
“어찌 되었든, 해자는 적이 있어야 쓸모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군국의 ‘적’은 무엇이냐? 흐르는 땅이 필요하며, 다리를 만들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경계해야 할 적이?”
아아, 그거. 말할 필요도 없지.
티르는 오래 잠들어 있었으니 모를 법도 하지만….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여기와 일어날 수밖에 없어.
“그건, 바로….”
내가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비상! 조금 전 들어온 통신을 확인! 통신병 디지 대위가 캐터프랙트의 탑승자 전원에게 경고합니다!]캐터프랙트의 안쪽에서 골렘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군의 적을 확인! 습격을 대비하십시오!]“쳇. 설명할 시간도 안 주네요. 재미없게.”
내 중얼거림을 배경으로 통신병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국의 기동부대, 승냥이들입니다!]골렘의 경고 이후, 반사적으로 뛰쳐나온 회귀자는 캐터프랙트 위에 서서 칠색안을 떴다. 여섯 번째 눈동자, 멀리 보는 람안(藍眼)으로 능선을 살펴보던 회귀자가 중얼거렸다.
“…안 보이는데.”
말마따나, 캐터프랙트의 동선 그 어디에서도 적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해서는 통신용 골렘 디지가 대답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알아. 안 보이니까. 내 눈으로도 안 보이는데, 뭔 습격을 대비해? 아니, 그보다 습격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타 통신병으로부터 해당하는 경고가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습격이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보고가 허위일 것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게 통신병의 네트워크니까. 의심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투명성이 통신병의 특징이자 강점이었다.
단, 골렘은 핸들을 잡은 채 작게 투덜거렸다.
[다만, 교전수칙에 의거하여 경고한 것치고는 너무 일렀습니다. 경고에 의하면 지금쯤은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는데…. 아까 가교도 그렇고, 도착 예상 시간을 도무지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군요. 에이비, 운전에는 영 젬병인가 봅니다.]와중에 에이비를 향해 투덜거리기까지 하네. 통신에 사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건 에이비의 영향일까….
아니, 원래 그럴 능력은 있었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어쨌든 긍정적이다. 대수롭지 않게 대꾸해주었다.
“뭐, 착오가 생길 수도 있죠.”
[이토록 쉬운 것에 왜 착오가 생기는 것인지… 힘들지만,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잠깐, 경보 수신! 옵니다!]이번에는 회귀자도 발견했다. 언덕 너머에서 피어 오르는 갈색 흙먼지가 점차 짙어졌다.
기다림은 오래지 않았다. 먼저 들리는 건 땅을 두들기는 말발굽 소리. 그리고 이어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하-! 찾았다!”
그들의 행색은 매우 독특했다.
전부 하나같이 기워 붙인 옷을 입고 있다. 거기에 조형미라는 개념은 전혀 없는데다 패턴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때그때 덧붙이거나 때워서 만든 게 분명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일성이라는 것이 없는 채였다.
단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전부 무언가를 타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뭐랬어! 후속 보급부대가 올 거라고 했지! 그걸 기다리고 있다가 빼앗아버리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다니까!”
큼직한 이륜차를 탄 인간이 외쳤다. 바퀴가 앞뒤로 두 개 뿐이라 매우 불안정해 보였으나, 옆으로 길게 뻗은 철봉으로 용케 균형을 잡으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말을 탄 인간이 박차를 가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돈이 잘 포장되어 떨어져 있네! 주워가기만 하면 되겠구나!”
“바퀴를 달 필요도 없겠어! 이미 큼직한 게 달려있으니까!”
“크하하하하! 저게 다 얼마야? 역시 푼돈 주워 봐야 의미없어. 큰 거 한 방을 노려야지!”
“좀만 더 빨랐다면 내가 타고 다닐 텐데 말이야!”
내가 타고 있는 캐터프랙트는 군국의 전략병기. 무게만 수십 톤에 이르는 강철 성채다. 어떻게 공략할까는 둘째 치고 과연 갖고 돌아갈 수 있을지 의심되는 무게였으나 저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캐터프랙트의 무게야말로 저들이 원하는 것이니까.
열국에서 ‘돈’의 개념이 조금 다르다.
다섯 군주의 후예가 이끄는 축복받은 왕을 가졌으며, 기술과 야금의 나라였던 금국(金國)은 고작 한 명의 인간에 의해 무너졌다.
황금경 데모. 이해의 괴물이라 불리었던 천재.
그리고 금으로 금국을 멸망시키고 대륙을 혼란 속에 빠뜨린 절대자.
황금경이 군림하며, 열국에서는 황금이 가치를 잃었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격언은 열국에서 상식처럼 통용되었다. 교훈적인 의미가 아니라 경제적인 의미로.
그 때문일까. 대신… 열국에는 독특한 경제 체제가 생겼다.
“상당한 레벨의 연금강이다. 못해도 수십 톤은 넘어 보이는군! 저 정도면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어!”
다름 아닌 무게.
열국에서는 엄청나게 특수한 재료가 아닌 한, 대체로 무게와 가치가 비례한다. 그래서 많은 무게를 옮길 수 있는 운송 수단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체제가 열국의 특성이 합쳐져, 열국은 나라 자체가 거대한 유목 국가로 변했다.
연금술의 나라라지만, 연금 가치를 내장한 연금화도 열국에서는 빛이 바랜다.
황금경은 세계 최강의 연금술사. 연금 코스트조차도 찍어낼 수 있으니까.
“쯧. 역시, 탐욕스럽게 달려드네. 저 승냥이들….”
탈것은 각자 다르지만, 하나같이 맹렬하게 이쪽으로 달려오는 승냥이들.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한 점 망설임도 없다.
캐터프랙트가 느리지는 않지만 굶주린 승냥이를 따돌릴 정도는 아니다. 내가 말했다.
“어떻게 할 거예요? 여기까지 접근하게 둘 거예요?”
회귀자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 일단 오게 두자. 정보를 캐내야 하니까.”
“웬 정보? 저쪽은 후방교란을 위해 군국 깊숙이까지 보낸 떨거지예요. 쓸 만한 정보 같은 걸 알고 있을 리 없잖아요. 그냥 치우죠?”
“그럼 정보는?”
“셰이 씨. 당신은 이 캐터프랙트를 운전하는 게 무엇인지 까먹으셨나요? 통신용 골렘이잖아요. 언제까지 원시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얻을 거예요. 좀 고급스러운 방식을 써보자고요.”
수긍한 회귀자는 천앵을 꺼내 비스듬히 달려오는 적들을 향해 겨누었다. 전속력으로 움직이는 캐터프랙트의 위. 뒤로 스쳐 지나가던 바람이 한순간 천앵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졌다.
“천검기, 사일.”
그리고 회귀자는 천앵을 내질렀다.
두웅. 회귀자가 찌른 궤적 그대로 흐릿한 무언가가 뻗어나간다. 그건 화살이나 탄환보다는 공간의 일그러짐처럼 보였다. 땅 끝까지 도달할 것 같던 그 일그러짐이 가장 전방에 있는 승냥이에게 닿자, 그는 갈고리에 꿰인 것처럼 퉁 튀어 올랐다가 땅에 처박혔다.
아슬아슬하게 굴러오던 이륜차도 기수가 사라지니 균형을 잃었다. 그는 이륜차와 한 몸이 되어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선두가 방해물이 되어 그대로 뒤따르던 인간들을 덮쳤다. 급하게 방향을 튼 기수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방금 본 사람?”
“안 보였어!”
자기 주제를 모르는 이들은 자기가 보지 못한 건 믿지 않으며 인정하지도 않는다. 만일 그들이 평범한 멍청이였다면 미끄러졌나 착각하고 계속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열국의 승냥이들은 조금 다르다. 기습이 일상이며 도망이 생업인 그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격을 알아차렸다.
“이 거리에서, 아무도 공격을 못 봐? 그렇다면 괴물이다!”
“떨거지가 아니었어!”
“도망쳐!”
승냥이들은 곧장 기수를 돌렸다. 바퀴가 격하게 땅을 긁고, 앞발을 치켜든 말이 그대로 몸을 돌린다. 열국의 승냥이들은 상대가 강하다는 확신을 갖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쳤다.
“아차차! 이것도 주워 가야지!”
와중에 가장 마지막에 쫓아오던 이가 쓰러진 동료를 챙겨서 떠났다. 사슬로 묶어서 질질 끌고가는 게 ‘챙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둔중한 캐터프랙트를 뒤로 하고 그들은 쏜살같이 멀어졌다.
티르는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동료를 버리지 않는구나. 외견은 저래도 전우애는 있다는 것이렷다.”
“전우애? 전혀요. 아마도 저들은 차라리 죽었기를 바랄걸요.”
“어째서냐?”
“죽지 않았다면 팔아 넘길 수 없잖아요. 제 발로 도망칠 테니까.”
저들이 동료의 잔해를 챙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캐터프랙트를 노리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강철이라고 하면 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게 탈것이라면 더더욱 가치가 있다.
자기 동료여도 예외는 없다. 동료의 잔해라고 해서 저울이 덜 기울어지는 건 아니니까.
“다들 마적마냥 탈것을 타고 있구나. 이제 알겠다. 흐르는 땅이 왜 저들을 막는 해자가 될 수 있는지.”
티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저들은 쳐들어와서 물건을 가득 담고 도망 다니는 약탈자예요. 메타컨베이어 벨트는 그런 그들에게 상당히 까다로운 장애물이죠. 올라타려고 해도 꽤 위험한 곡예를 해야 하는데, 군국은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빠르게 병력을 움직이니까요.”
“도둑질에 혈안이 된 마적들이라니. 귀찮은 이웃을 두고 있구나.”
“네. 나라 단위에서 보면 저 정도 규모의 습격대는 귀찮기만 할 뿐이지만, 후방교란은 귀찮은 수준이면 충분하겠죠.”
어쨌건, 열국의 첫 번째 습격은 허망하게 끝났다. 고작 승냥이 몇을 귀찮아하기에는 이쪽의 전력이 너무 강했다.
거기다 회귀자의 천앵은 중거리 원거리 전부를 커버할 수 있는 자유자재의 무기. 총탄이나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승냥이들조차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
다만 힐데는 저들의 모습을 보고는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하네요~. 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여기까지 내려와서 알짱거리는 걸까요?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지나지 않아 만날 정도면, 몇몇 도시는 이미 털렸겠는데요.”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그중 어떤 단어는 회귀자를 자극했다. 회귀자가 물었다.
“전쟁이 이미 일어났다고?”
힐데는 엊저녁에 먹은 간식 이야기를 하듯 일상적으로 대답했다.
“네에~ 뭐. 전쟁보다는 전투이긴 한데, 이미 일어났죠?”
“언제? 아니, 어떻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국 병력은 메타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 있었는데?”
“군국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군국의 시스템이면 채비해서 무저갱 평야까지 보내는데 이틀도 안 걸려요.”
“그래! 고작 이틀이야. 그런데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다는 거야?”
내가 유엘을 만났을 때, 이미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진다고 전해 들었다. 그때로부터 만 하루가 지났으니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회귀자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전쟁이 소꿉놀이도 아니고, 나라의 명운을 걸고 벌어지는 중대사야! 무저갱이 사라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전쟁을 일으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하지만 회귀자, 너도 알잖아. 군국이나 열국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이상한 국가인 거.
“병력을 무저갱 황야로 보낸 건 군국만이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