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24)
“뭐?”
“통신병에게 이야기를 듣는 방법도 있지만, 운전하는 데 말을 시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제’가 설명해드리죠. 큼큼. 잘 들어주세요.”
긴 이야기에 앞서 힐데는 작게 목을 풀었다. 일인극을 앞둔 배우처럼 호흡을 가다듬은 힐데는 세상 가벼운 말투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발대가 무저갱 황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국이 탄탈로스 점거를 시도하는 중이었어요!”
절창 파트락시온은 마장과 함께 무저갱 평야로 진군했다.
얼마 전까지 절창은 흡혈귀의 시조, 티르칸쟈카를 쫓아내기 위해서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절창은 그 작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흡혈귀의 시조는 국토를 활보하게 두기에는 너무 존재감이 크다. 정치적으로나 무력적으로나. 거기다 군국에는 찔리는 것도 많다.
군국은 세상 모든 체제나 기술을 분해하고 재조립하여 만든 나라. 거기에는 성황청의 방식도 포함되어 있다.
과연 시조가 그것을 마주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궁금하긴 하지만, 절대로 시험해보고 싶지는 않다.
조용히 몰아내는 편이 합리적이다. 절창은 그런 생각으로 작전에 임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건 싸워도 되는 ‘구실’이었을 뿐, 절창이 작전에 임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그가 결투광이라서 그랬지만.
그래서 절창은 무저갱으로 향하라는 명령에 불복할 뻔했다.
“나 참. 왜 갑자기 무저갱으로 가라고 하더니만.”
절창은 캐터프랙트 위에 올라탄 채 자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선이 일언반구도 없이 무저갱으로 향했다는 보고는 받았다. 탄탈로스 안에 시조와 다른 몇몇이 기거하고 있던 것도 상관하지 않고 무저갱을 해방하는 의식을 치렀다…고, 통신병으로부터 매우 정성을 들인 설명을 들었다.
그렇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아무리 전해 들은들 두 눈으로 본 것만 할까. 절창은 직접 그 결과를 마주하자 할 말을 잃었다.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구멍, 그리고 그 구멍 옆에 을씨년스럽게 뒹굴고 있는 뒤집어진 탄탈로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인 콘크리트 대지가 비스듬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마치 거인이 구멍을 막고 있던 뚜껑을 뒤집어 열고 떠난 것 같다.
눈앞의 광경만으로도 경외심이 절로 솟는다. 절창이 마장에게 말했다.
“지모신이란 게 실존하긴 하나 봐. 그렇지, 할매?”
“모든 신앙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신이 아닐지라도, 신과 비견되는 힘이라면 신과 다를 게 없다. 과거 마법도 신의 힘이라고 칭해진 적이 있다.”
“…노친네한테 마법 강의나 듣자고 한 말은 아닌데.”
“본인은 탄탈로스를 무저갱까지 옮기는 작전에 참여했다. 새로울 일도 없다.”
“진짜 새롭지 않네.”
절창은 재미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탄탈로스를 응시했다. 그러던 중 그는 탄탈로스를 배회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뭐가 있는데?”
군국의 자산인 탄탈로스 주위를 배회하는 수상한 무리들. 그들의 행색은 그 무엇도 닮지 않았다. 그래서 파트락시온은 그들이 누군지 알았다. 북부 사령관이었던 그가 가장 자주 만났던 적이었기 때문이다.
“승냥이들이 벌써 떼 지어 찾아왔어? 녀석들,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군…. 잠깐.”
탄탈로스처럼 커다란 먹잇감을 두고 승냥이들이 찾아온 거야 자연스럽다. 사방팔방 흩어져 있던 승냥이들이 가장 먼저 이상을 느꼈을 테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그냥 ‘승냥이’라고 짚고 넘길 수는 없는 거체가 있었다.
“저거너트?”
달 뒤에 가려진 태양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듯, 절창이 접근할 때마다 탄탈로스의 그림자에 가린 거대한 구조물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땅 위를 유랑하는 배였다. 동산만 한 배가 수십 개의 보조 바퀴를 매단 채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움직이는 열국에서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것. 탄탈로스보다는 작지만, 땅덩어리와 맞먹는 크기의 구조물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마장이 그 모습을 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너트라면 열국의 거물이지 않나. 본토 밖으로는 얼씬도 않는 그들이 여기 왜 있는 것이지?”
“여기를 본토로 삼으려는 수작인가 보지.”
절창이 저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느닷없이 무저갱으로 가라더니. 단순한 관광은 아닌 것 같네.”
“확실히. 고작 몇 명을 상대하기엔 모은 군단의 규모가 너무 컸다. 총사령부는 처음부터 이것을 읽은 것인가…!”
“저거너트 상대라면 일개 부대로는 어림도 없을 테니까.”
점차 커지는 적의 모습을 앞두고 절창의 어깨가 조금씩 떨렸다. 마장은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파트락시온.”
“왜, 할매?”
“지금 웃고 있나?”
절창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저거너트 쪽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땅에 내려앉은 네발짐승은 땅을 두들기며 범상치 않은 속도로 다가왔다.
말에 탄 기수가 절창과 마장이 탄 캐터프랙트 앞에서 멈췄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선 기수는 마장에게 외쳤다.
“군국이 편하긴 하네. 한눈에 봐도 대장이 누군지 확연히 보이니까. 거기, 그쪽이 대장인가?”
“군국의 프렐비요르 대장이다.”
마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기수도 육장성의 이름은 아는지 놀란 체를 했다.
“호오! 이름 높은 육장성 님이시잖아! 이거 거물이 오셨군!”
“그대는 저거너트의 사자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보다, 군국의 군단이 국경 근처에는 무엇을 하려고 왔지?”
마장이 팔짱을 낀 채로 답했다.
“…도리어 이쪽이 물어야 할 사안이다. 저거너트가 군국의 영토에는 무슨 일로 접근했나?”
“하하핫! 우리 같은 승냥이들이 왜 왔겠어. 난리가 났다고 하니 뭐 주울 게 없나 확인하러 왔지!”
“저거너트와 함께?”
“주울 게 넘쳐 보이니까! 양손에 다 못 드는 짐을 옮기려면 짐수레가 필요하고, 짐수레로 다 못 담는 짐은 더 큰 수레가 필요한 법! 아무래도 승냥이의 작은 입으로는 다 베어 물지도 못할 것 같아 저거너트와 함께했지! 그런데… 잠깐.”
기수가 표정을 싹 바꾸며 말했다.
“그보다, 이상하지 않나? 우리야 원래 그런 놈들이라지만,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군국은 왜 그 느림보 같은 군단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거지?”
마장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곳은 군국의 영토다. 군국의 병력은 군국의 영토에 올 수 있다.”
“아니, 이곳은 국경이지. 아무도 살지 못하는 무저갱 평야가 언제부터 영토였다고?”
“왕국 시절부터 이곳은 왕국의 관리 아래 있었다.”
“푸하하! 웃기는 소리. 너희는 왕국이 아니라 군국이잖아? 그런데 왜 왕국을 들먹여? 드디어 군국도 새로운 왕을 모시기로 했나? 제 손으로 죽여놓고는?”
왕국 시절부터 살아왔던 이들에게 왕이란 언제나 불편한 소재였다. 왕에게 충성했던 이들은 왕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이들은 왕을 제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아무리 폭정을 했다고 한들 왕은 왕이었던 탓이다.
마장의 경우, 어느 쪽이냐를 고르자면 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경우였다. 그렇지만 육장성인 그녀마저도 왕이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쿠데타의 참가한 대다수가 그랬듯, 마장도 왕을 인질로 잡고 나라를 바꿀 생각이었다. 전부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을 고치는 편이 편하니까.
그렇지만 왕은 사고로 죽었다. 분노한 군중에 휩쓸렸다가 밟혀 죽었다. 누구가 의도하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죽일 수 없는 왕은 죽어버렸다. 누구도 적의를 품을 수 없는 왕의 최후는 허망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마장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기수는 실실 웃으며 더욱 자극했다.
“그때도 너희 영토는 아니었어. 하물며 위대한 왕을 제 손으로 죽인 반역자 따위가 왕국의 국경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푸하하하하! 이거 가관이로군!”
“궤변은 멈추어라! 탄탈로스는 군국의 자산이다. 무저갱을 공략한 것은 군국. 무슨 이유가 있든, 그대들이 저거너트와 함께 탄탈로스를 약탈할 정당성은 없다! 고지도 없이 침략하다니 전쟁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침략?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 이 땅이 진정으로 너희 영토라면 너희가 군단을 이끌고 오지도 않았겠지! 자기 땅에 군단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놈들이 어디 있어? 너희도 찔리는 게 있으니까 군단을 데려온 거 아니야!”
기수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추궁했다.
“도리어 의심스럽군. 저거너트야 원래 움직이니 빠르게 이곳에 올 수 있었어. 그런데 어째서, 군국은 그와 거의 비슷하게 군단을 모아 여기까지 온 거지? 그쪽이야말로 처음부터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겠지!”
“이젠 숫제 망상이로군.”
“망상? 우리가 도착한 건 고작 한 시간 전이야! 그마저도 원래 움직이는 저거너트가 하나, 고작 한 기가 다다랐을 뿐이다! 그에 비해 너희는 평소라면 움직이지도 않을 군단을 저만큼이나 모아왔다고! 병력이 우리의 갑절은 많은데, 과연 누가 침략자지?”
육장성인 마장이었지만 무어라 대답하기는 힘들었다. 실제로 마장은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이곳의 상황을 몰랐으니까. 마장은 총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움직였을 뿐이다.
이쯤 되면,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병력을 취합한 총사령부가 감탄스러울 정도다. 아마 단순한 예측은 아니고, 통신병들의 보고를 통해 정보를 취합하여 판단한 결과겠지만.
“왜 대답이 없어? 뭐, 미래라도 보셨나? 성녀라도 돼? 나중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대응하기 위해 지금부터 전쟁을 준비한다, 그런 거야?”
그렇다고 사령부에 관련된 군국의 기밀을 적에게 밝힐 수는 없다. 마장이 대답하기 곤란해 하던 때였다.
“자자. 둘 다 그만하자고.”
캐터프랙트 끝자락에 걸터앉은 절창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을 아무리 꾸민들, 결론은 그거 아니야. 이제 이 땅은 지모신의 저주가 풀렸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저갱도 사라졌겠다, 다시 비옥해지겠지. 당연히 이쪽도, 저쪽도 그걸 양보할 생각이 없고.”
군국은 직접 지선과 교섭하여 탄탈로스를 건설하고는 무저갱에 빠뜨렸다. 비록 지선이 메타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준 대가로 요구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건 상당한 지분을 가진 것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열국은 정주할 수 있는 땅을 원한다.
무저갱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구멍. 무게가 곧 가치인 열국에서 무저갱에 뭔가를 빠뜨린다는 것은 영구적인 손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포에 사로잡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으나… 그게 사라진 지금 이곳을 교두보로 삼지 않으면 더는 뻗어나갈 수 없다.
양보할 수 없는 땅. 그것을 노리는 두 나라.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잖아.”
절창이 창을 어깨에 걸치며, 섣불리 입에 꺼내기 힘들었던 말을 대신했다.
“-전쟁이지.”
말이란 묘한 힘이 있다. 분명 모두가 머리로는 떠올렸지만 명확한 상은 그리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절창이 그 단어를 꺼내자, 무언가가 쏟아진 것처럼 결정되어버렸다.
먼저 반응한 쪽은 기수였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 너희가 먼저 시작했다!”
마장의 뒤쪽으로 모래 먼지가 솟구쳤다.
마장이 탄 캐터프랙트는 기수와 대화하느라 약간 돌출되어 있었고, 따라서 뒤따르는 이들은 그 접근을 알아채지도 저지하지도 못했다. 그 사이 땅에서 솟아난 세 명의 습격자가 단숨에 마장에게로 날아들었다.
기수가 희열에 차서 외쳤다.
“군국은 알기 쉬워서 좋아! 대장이 누구인지 훤히 보이니까!”
열국은 연금술의 나라. 닿은 물질을 제 뜻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기본 소양이다. 땅을 파고든 전투 연금술사들이 간이 연금술로 터널을 뚫고 접근한 것이다.
그야말로 땅 밑에서 벌어진 예상치 못한 기습. 그러나.
“어리석군.”
그들이 캐터프랙트에 올라타기도 전, 습격자의 가슴에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뒤쪽으로 붉은 안개가 퍼졌다. 피에 젖은 모래가 엉겨 붙어 떨어진다. 나름 추려서 온 전사였고, 열국답게 꽤 튼튼한 무장을 했지만. 한 수도 버티지 못하고 흙으로 되돌아갔다.
누가 그랬는지는 뻔했다. 당사자는 앉은 채 창을 내뻗고 있었으므로.
“그래. 이거야. 오래 잊고 있었지만… 이거였어.”
“창이라니, 설마….”
절창은 외투도 걸치지 않고 계급장도 달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장 곁에 선 창의 달인은 다른 누구라고 오해하기도 힘들었다.
기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파트락시온? 반역의 기사?”
당연한 사실을 굳이 긍정하지 않았다. 대신 절창은 창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당황한 기수와 그 너머에 있는 저거너트를 동시에 겨누며, 절창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미소를 지었다.
“역시 결투에는 상대가 필요해. 자기 몸과 영혼을 걸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상대가. 시조는… 손맛은 좋았지만, 영혼의 울림이 부족했지. 싸울 생각이 없는 상대를 억지로 붙들고 늘어지는 것보단 이편이 훨씬 즐거워.”
전쟁이란 두 글자에는 수많은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두렵고 슬프기에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공포에 질려 몸을 떤다.
그렇지만 절창은 웃고 있었다. 그의 떨림에는 오직 희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