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29)
“왜 그리 번거로운 짓을 하느냐? 그냥 군사를 모아 쳐들어오면 될 것 아니냐.”
“군국이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열국에게는 그런 뚜렷한 명령체계가 없거든요. 열국은 황금궁을 중심으로 모든 게 떠돌아다녀요. 덕분에 소식은 빨리 퍼지지만, 힘은 그럴 수 없죠. 승냥이를 강제하기에는 다들 사방팔방 흩어져 있으니까.”
‘즉, 결집할 중심이 없다는 의미렷다. 땅에 연연하지 않다니 신기한 나라로구나.’
티르는 이해가 빨라서 좋다니까. 아니, 수용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
열국이 ‘왜’ 떠돌아다니는지, 땅에 연연하지 않는지 의심하지 않고 일단 내가 말한 건 사실로써 믿으니까 설명하기 편하다. 이 부분은 차차 설명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그래서 황금궁이 떠돌이들을 움직이기 위해 쓰는 게 바로 이권이에요. 군국을 향한 약탈을 장려하고, 거기서 나온 약탈물을 일괄적으로 구매하겠다고 보장하는 거죠. 그러면 떠돌이들은 맛있는 냄새에 이끌리는 짐승처럼 전부 그쪽으로 움직여요. 약탈하든, 약탈한 승냥이를 다시 약탈하든, 혹은 그 약탈로부터 보호하든.”
“호오라. 군사를 모으는 건 아니나,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내겠구나.”
“맞아요. 잘 아시네요.”
마법으로 물을 만들어 따르던 힐데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덕분에 죽어 나가는 건 통신병이랑 군국민이지만요~. 아아, 짜증 나는데, 밤중에 다 암살해버릴까.”
무슨 무서운 말을 하는 건가…싶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군국의 공포였던 육장성 영궤다. 암살 같은 건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실제로 해본 적도 있다.
나는 소극적으로 힐데를 말렸다.
“휴전을 제의하러 가는 사자가 할 행동은 아니잖아요.”
“뭐 어때요! 아무도 모른다면 없던 일이 되는데!”
“이미 우리는 다 알아버렸는데요?”
내 지적에 힐데가 샐쭉 웃으며 손가락을 입에 댔다. 무서운 미소 속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헷, 입, 다물어주실 거죠?”
“안 다물면 영영 못 열게 만들어줄 것 같은 기분이….”
뭐, 나만 안 죽이면 되겠지. 알아서 하라고.
적신 천으로 손발을 닦고,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깊게 호흡을 내쉬었다. 팔다리가 좀 쑤실 뿐 몸은 멀쩡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준비를 끝마친 나는 목함에서 영약을 꺼내 들었다. 영약이라. 크게 기대는 안 되지만…. 보양식 먹는 느낌으로.
“자, 이제 먹습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영약을 먹고 다시 태어날 아버님을 기대할게요!”
“제가 힘을 되찾는다면 믿고 따라주신 여러분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영약을 먹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시죠? 어지간해선 건드리지 말고 말도 걸지 말아주세요.”
걸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이지. 저 영약이 내 몸에 잘 받을 수도 있잖아.
티르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건드려서는 안 되고, 말도 걸어선 안 되는 것이냐?”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급한 일 있다면, 예를 들어 천막에 불이 나면 냅다 도망쳐야죠. 그렇지만 기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선 가만히 두는 게 좋아요.”
“음. 신기하구나. 알겠다.”
티르는 관을 움직여 내 곁에 내려놓았다. 그 위에 앉은 채 가만히 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소화가 끝날 때까지 지켜볼 예정인 것 같았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지켜보는 것뿐이라면야 뭐.
“자. 먹을게요.”
영약을 들어 올렸다. 알싸한 향기가 풍긴다. 맛있어 보이진 않지만, 눈을 꾹 감고 영약을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크고 오래 사는 생물은 기력을 갖추게 되어있다. 비단 인간뿐만 아니다. 존재하며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짐승이라면 모두 기력을 얻는다. 또한 본능적으로 쌓인 기력을 활용하기까지 한다.
물론, 그중에서 기력을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건 오직 인간뿐이지만.
인간은 나무와 바위, 철과 마력마저도 기술적으로 쓴다. 자기 몸 속에 있는 기력을 기술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고작 60년 남짓 살아가는 인간이 기공이라는 복잡한 기술을 쓰다 보면 만성적인 기력 부족을 겪는다. 그럴 때 인간은 언제나 자기 몸 바깥에서 결핍을 해소할 무언가를 찾곤 했다.
그건 바로 다른 짐승의 기력. 지금은 영약이라고 불리는 생물의 정수다. 인간은 짐승을 사냥하며 배를 채우는 동시에 부족한 기력도 채우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 인간은 알까. 짐승의 기력과 인간의 기력은 사실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그리고 아직 인간이 짐승이던 시절, 가장 찾기 쉬운 짐승이 바로 인간이었음을.
1종 금기, 탐식. 인간이 같은 인간을 먹어 치워 마력과 기력을 취하는 금기….
모든 인간은 그걸 금기로 여기고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조차 죄악으로 여기나, 사실 그 금기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내 뱃속에서.
하아. 역시 안 되나. 아무리 해도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영약은 분명 내 뱃속에 있지만 그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낌새가 보이지 않아.
솔직히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짐승의 왕이라고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내 몸은 무언가 고정… 아니, 규정된 느낌이다. 이러면 영약을 몇 개나 먹든, 탐식으로 몇백 명을 잡아먹든 별 차이는 없을 거다.
이 귀중한 영약으로 얻을 수 있는 기력은 티끌. 그조차도 언젠가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태산이 되기 위해선 이런 티끌도 모아야 하는 법.
쥐뿔만 한 기운이라도 아득바득 긁어모으고 있는데 귓가로 목소리가 들렸다.
“…영약은 위험하다고 들었다. 부작용은 없는 것이냐?”
“위험해질 일은 거의 없어요~. 보통 부작용 때문에 영약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부작용은 바깥 기운에 자극 받은 몸 안의 기력이 폭주해서 생기는 거라서요! 알레르기처럼!”
“그게 위험한 것이잖느냐!”
“하지만, 우리 아버님이 가진 기력은 그야말로 쥐꼬리! 쥐꼬리가 아무리 세차게 때려봐야 간지러운 수준! 따라서 아버님께 부작용이 생겨 봐야 전신 간지럼 정도! 안심하세요! ‘저’도 그 정도는 이미 고려했어요!”
쥐꼬리? 사실이라도 비유가 너무하잖아.
두고 보자. 내가 혹시 강해지면 가장 먼저 머리를 한 대 때려주마.
힐데의 장담에도 티르는 여전히 우려를 표했다.
“하나, 셰이는 영약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멈춰야 한다고 했다.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면 왜 그랬느냐?”
“그건 먹은 이후를 위해서죠. 기력을 흡수했는데 몸에 잘 정착하지 않으면 그게 더 문제니까요. 완전히 소화되지 않고 몸 안을 겉도는 기력은 나중에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욱 높아요!”
“아하. 그렇다면, 몸을 건드리지 말고 정신 집중을 해치지 말라는 말뜻은….”
“기력을 취하는 와중 몸을 움직이면 감기공에, 정신을 어지럽히면 리기공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알려졌거든요! 뭐, ‘저’도 경험한 적 없이 전해 들은 지식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그렇다고 한다. 소화하지 못한 이상 나에게는 쓸데없는 훈수였지만 말이다. 기운이 없다면, 기운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느낄 일도 없지.
“참고로, 건기공을 해치지 않기 위해선 몸에 닿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해요!”
“몸에 닿는 것, 이라….”
무심하게 나를 살피던 티르가 퍼뜩 되물었다.
“잠깐! 휴는 옷을 입고 있지 않느냐! 몸에 잔뜩 닿는 천을!”
…아니, 뭐. 옷 정도는 상관없는데. 옷은 어차피 매일 입고 있고, 없으면 오히려 바람이나 먼지에 닿아서 문제가 생기잖아.
뭐, 힐데가 알아서 정정해주겠지.
‘흐음? 사람 따라 벗는 경우도 있다지만, 옷은 별로 상관없는데요~. 하지만, 재미있어 보이니 부추겨 볼까요!’
부추기지 마.
“어머, 어쩌죠! 맨날 입는 것이라 깜빡해버렸어요! 얼른 벗겨 드려야겠다!”
벗기지 마.
“잠깐! 기다려라! 어찌, 외간남자의 옷을 벗길 수 있다는 말이더냐…!”
“어라? 그쪽이 문제일까요?”
“당연하잖느냐! 그러한 건 평생 함께 하기로 약조한 사이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제’ 아버님인걸요? 효심 지극하게 모시려는 건데 그래도 안 되나요?”
“윽, 그건…. 아니! 진짜 부녀관계가 아니잖느냐! 안 된다! 오히려 더더욱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이대로 가다간 옷이 몸에 달라 붙은 채 기력이 붙어버리면! 평생 옷도 못 벗는 몸이 된다고요!”
그럴 리가 없잖아.
“어, 어찌 그런 끔찍한 일이…. 진퇴양난이구나.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느냐….”
“벗길 수밖에 없어요!”
“하나….”
“답은 정해져 있고, 필요한 건 오직 각오 뿐! 티르칸쟈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는 각오를 하세요!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각오를!”
‘가, 각오? 그렇다는 건…. 평생 함께 할….’
티르는 없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보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향해, 티르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새하얀 손이 내 옷을 향한다.
그러나 티르는 곧 무언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옷에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다만. 단추나 끈은 어디 있느냐?”
“아차. 저거 의복 패킷이라서, 생체 단말에다 마력을 넣어 줘야 하는데.”
“나는 마력을 다룰 수 없다!”
“아니면 찢어야 해요. 찢으시겠어요?”
“어찌 그런 망측한… 아니! 힘으로 찢으면 본말전도 아니더냐! 옷이 당겨져서 몸이 움직일 터이니!”
“에헷. 그러네요!”
“큰일이다…! 이걸 어찌 해야!”
‘어라라라.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네요~. 어쩌죠? 여기서 장난이었다고 말하면 미움 받을지도?’
그냥 미움 좀 받아라. 거짓말 했으면 미움 받을 용기는 내라고.
그때였다. 회귀자가 상당히 개운한 표정으로 천막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왔다. 정보를 알아낸 자신이 꽤 자랑스러웠던 걸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슨 정보를 알아냈는지 다 말했다.
“정보는 다 얻었어. 여기서부터 하루 거리에 규모가 큰 캠프가 있대. 다음 목표는 거기….”
“셰이! 마침 잘 와주었다. 이리 와서 휴의 옷을 좀 벗기거라!”
“어째서?!”
이제는 영약이 아니라 그냥 뭘 먹어도 얹히겠구만. 나는 표정을 구기며 일어섰다.
“헛소리는 거기까지입니다. 다들 그만.”
“휴! 일어나면 안 된다!”
난데없이 외간남자의 옷을 벗길 뻔했던 회귀자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 왜? 쟤가 왜 일어나면 안 되는데?”
“영약을 삼켰다! 움직였다간 위험해!”
“엥? 영약을 벌써 먹었어? 말도 없이… 잠깐만!”
회귀자는 칠색안을 떠서 나를 보았다. 칠색안 중 칠색, 힘을 보는 자안. 힘의 총량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보랏빛 눈으로 내 몸을 살피던 회귀자는 의아해했다.
“…기력이 전혀 안 늘었는데? 뭐야. 먹는 척하고 어디 숨긴 거 아니야?”
“기력이 안 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도둑놈 취급까지 하나요?”
“아니, 영약을 먹었다며! 그러면 네 기력은 누구한테 도둑맞은 건데?”
“찾으면 제발 알려주세요. 손모가지 잘라버릴 테니까.”
회귀자는 일곱 빛깔 눈으로 나를 차례로 살폈다. 내가 영약을 숨겼을까 확인하는 목적이 더 컸지만, 온갖 시야로 확인한 결과 내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잠깐만. 이건….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데.”
무언가를 떠올린 회귀자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어지간해서는 말을 기다리는 티르지만, 지금은 조급했는지 대답을 재촉했다.
“그게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