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30)
“…재능이 없다는 거야.”
“재능? 진심으로 그리 말하는 것이냐…?”
‘힘이나 보물을 제외한다면, 휴의 재능이 셰이보다 못하지는 않아 보이는데…?’
다행스럽게도 회귀자는 티르의 의혹을 해결해주었다.
“배우는 재능이 아니라, 기력이라는 것을 몸에 붙이는 육체적인 재능 말이야. 장님이 색을 모르고 귀머거리가 말을 못 하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기를 쌓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자기가 원래 가진 기운 말고는 전혀 못 끌어내는 것처럼 보여.”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부귀영화를 누리지는 못했을 망정 못 먹고 자라지는 않았거든요. 영 기력이 붙질 않더니.”
금기가 금기인 이유. 탐식과 같은 방식은 나에게 통하지 않겠지. 점점 분명해진다.
“끙. 아쉽네…. 재능은 확실히 있어 보였는데.”
“이제 아셨죠? 다음부터는 저에게 수련이랍시고 썰매에 매달지 마세요. 괜히 힘만 빼는 짓입니다.”
“지금 그게 중요해? 이대로면 더 강해질 수 없다고!”
“아니면 뭐, 불운한 제 운명을 비관해서 엉엉 울기라도 할까요? 해봐야 셰이 씨가 제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거 말고 뭐가 있어요? 의미가 없죠.”
“네가 울더라도 어깨를 토닥거리진 않을 거거든!”
‘영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칫, 이러면 짐덩이라서 매번 데리고 다닐 수가 없어. 이번 회차면 모르지만, 다음 회차는….’
어? 나쁘지 않을 수도? 회귀자가 다음 회차에 나만 구해주고는 두고 다닌다면, 오히려 나는 매 회차 서로 다른 방법을 시도할 수 있겠네.
물론, 짐덩어리가 되어 끌려다니는 지금의 나에게는 하등 쓸모없겠지만 말이지.
“영약 하나 땅에 버린 셈이 되었네요. 아쉬워라. 됐으니까 이만 자죠? 내일부터는 지옥의 행군이 될 테니까.”
“잠깐만. 하나 해볼 게 있어.”
‘운명안으로 저 녀석의 운명을 보자. 수명은 아깝지만… 뭐, 내가 천수를 누릴 것도 아니고. 이 녀석의 운명을 지켜보는 건 그만한 가치는 있겠지.’
회귀자는 머리를 쓸어내리는 척, 손가락 사이로 칠색안을 전부 떴다. 일곱빛깔 눈동자가 차례로 반짝이다 하나의 작은 원을 그렸다. 눈동자 속에 밝게 빛나는 눈동자가 보인다.
‘전륜천안. 저 녀석의 운명을 보자…. 이게 맞나 싶지만.’
운명안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이유로 뜨였다.
회귀자의 눈에 내 모습이 비친다. 과거, 현재, 미래를 거쳐서 앞으로 이어질 나의 운명 중, 내가 도달하는 경지를 본다.
운명을 보는 눈은 수명을 깎아먹는다고 한다. 이유는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인간이 평생토록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으며, 한 인간의 운명 같은 쓸데없이 큰 정보를 단기간에 뇌에 때려 박으면 자연스레 건강이 나빠진다. 그걸 수명이 줄어든다고 표현한 셈이다.
그럴 가치가 있나 싶지만, 회귀자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내 운명을 관측했다.
혹시, 저 눈이면 알지도 모른다. 나도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회귀자의 생각을 읽었다.
그렇게 내 운명을 엿본 결과는….
‘…변하지 않아? 앞으로도? 이게, 휴즈라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극점이라고…?’
단정해버리네. 그렇지? 역시 그럴 것 같더라. 이제는 실망스럽지도 않아.
그때 회귀자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드물게 보여주는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저런, 힘내….”
안 한다며. 어깨 안 토닥거릴 거라며!
상상 이상으로 기분이 나쁘네, 이거.
놀랍게도, 밤중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승냥이들은 우리 캐터프랙트를 털거나 도둑질한다는 발상을 떠올리기만 했지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다. 그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피에 굶주린 육장성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니까.
힐데가 불만스럽게 투정 부렸다.
“아쉬워요. 밤중에 도둑질이라도 시도했다면 정당방위로 죽여줄 수 있었는데~.”
“휴전 협정하러 왔으면서 무슨 소리야? 빌미가 될 행동은 하지 마.”
회귀자는 질 나쁜 농담으로 치부했지만, 나는 그게 진심이라는 걸 읽고 몸을 떨었다. 저 사람도 약간 이상해.
힐데가 살의를 발휘하기 전에 한발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채비를 끝내고 캐터프랙트에 올라탄 우리는 운전수를 불렀다.
“디지. 깨어 있어요?”
연락을 받은 골렘은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국 통신… 위입니다…. 한계… 양….]지직거리는 목소리가 힘없이 울렸다. 골렘은 삐걱거리는 팔로 운전대를 잡으려다가, 힘이 빠진 것처럼 고개를 픽 숙였다.
힐데가 골렘을 톡톡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쯧. 통신거리에 한계가 온 것 같네요~. 아쉬워라.”
“군국 영토를 벗어났는데 여기까지 도달한 게 기적이죠. 디지, 임무 종료입니다. 이제 이 기체를 운송할 필요 없어요. 알아들었으면 꺼요.”
골렘에게서 미약한 반응이 흘러나오다가, 이내 완전히 마력을 잃고는 정지했다.
통신병의 지원은 여기까지다. 이제 온전히 우리의 힘으로 길을 찾아가야 한다. 힐데는 골렘을 대충 접어서 뒷자리에 던져놓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하아. 어쩔 수 없죠. 여기서부터는 ‘제’가 운전할게요. 혹시라도 지루해졌다간 큰일이니, 아버님은 옆에서 ‘제’ 입에 간식거리를 넣어주세요!”
“군국에 간식거리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우리 보급 다 통조림으로 받았잖아요.”
“쳇! 망할 나라!”
힐데의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캐터프랙트가 머나먼 황야로 출발했다.
아침 해가 뜨기 약간 전, 새벽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동안 캐터프랙트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황야를 나아갔다. 무게를 덜기 위해 지붕을 날려버린 터라, 캐터프랙트는 그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은 짐수레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드러난 지붕으로 바람이, 빛이, 흙먼지가 아무런 여과 없이 나를 때린다. 넓적한 바퀴는 굴곡진 땅의 오르골을 자처하며 대지의 노래를 그대로 전한다. 하늘이나 땅이나 인간을 못살게 구는 데 도가 텄다.
그렇지만 사소한 불편함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증거겠지.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려고 불편을 느끼는 법이니. 시원한 바람을 뒤로 스쳐 보내며 계속 나아갔다….
다만, 반쯤 죽은 한 명은 태양빛에 크나큰 불만을 드러냈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자 티르는 불만스레 신음을 흘리며 양산을 기울였다.
“내 살며 이리 밝은 여행길은 처음이다. 어디 그늘 한 점 보이지 않는구나.”
“잠시만요. 천막을 좀 칠게요.”
“되었다. 나풀거리는 천 따위는 없느니만 못하니.”
“딱히 티르를 위해서 치는 건 아니거든요? 비 내릴 때를 대비해서라도 치긴 해야 해요.”
이게 생색이라는 거지. 별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기 불편한 티르를 달래주기 위해서 천막을 세워 임시로 그늘을 만들었다.
‘흐음. 정성이 있으니 선의는 받으마.’
필요 없다고 말한 것치고 티르는 순순히 천막 아래 들어가 앉았다. 여전히 양산을 어깨에 걸친 채였지만, 아까보다는 한껏 누그러진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멀고 바쁜 여행길이라 하지 않았느냐. 헌데 어째서 밤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냐? 하루의 절반 가까이 낭비하다니 도무지 시간이 촉박한 이들로 보이지 않는구나.”
“왜 이리 급해요? 티르는 관 속에 있으면 하루랑 한 달을 구분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면서 고작 하룻밤 갖고는.”
“그건 내가 어둠 속에 머무를 때의 이야기다. 태양이 저 뻔뻔한 낯짝을 비춘다면 알기 싫어도 하루가 지났음을 알지 않느냐.”
“저도 가끔 일어나기 싫을 때 태양이 안 떴으면 하고 바라는 날도 있지만, 여기서는 어쩔 수 없어요. 앞에 무엇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가야 하니까요.”
티르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무엇이 나오든, 기껏해야 바위나 울타리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내가 보고 부수거나 피하면 그만이지.”
부순다는 말이 피한다는 말보다 먼저 나오는 게 이상하지만. 세상에는 힘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다.
“그건 안 될 걸요?”
살짝 기분이 상한 티르는 짐짓 화난 얼굴로 대꾸했다.
“나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밤은 나의 시간이요, 어둠은 나를 비추니. 빛 한 점 없다고 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제 말은 티르의 힘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그때였다. 무언가를 발견한 힐데가 급히 핸들을 꺾으며 외쳤다.
“조심하세요!”
쾅. 동시에 캐터프랙트가 크게 흔들렸다. 앞바퀴가 무언가 딱딱한 것에 부딪혀서 들린 모양이었다. 짐이 한순간 떠오르고, 아지가 놀라 깨갱 짖었다.
다행스럽게도 캐터프랙트는 모든 지형을 돌파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군국의 걸작. 고작 그 정도로 충격을 받진 않는다. 충격은 내가 받는다.
힐데는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급히 돌렸다. 몸이 이리저리 쏠리는 탓에 난간을 잡고 버텨야 했다.
그 와중 티르가 물었다.
“…조금 전 우리는 황야 위를 달리고 있지 않았느냐?”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마치….”
티르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야트막한 언덕. 거기에는 작은 집터가 조약돌처럼 흩어져 있었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것이, 사라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했다. 마치 오래전 몰락한 것처럼.
티르가 물었다.
“…유적을 보는 듯하구나. 여기는 어떤 마을이냐?”
어, 열국에서 가장 무의미한 질문이다. 내가 뭐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회귀자가 대답했다.
“몰라. 이 마을이 옛 금국의 마을이었는지, 아니면 열국에서 만들었다가 부숴 먹은 건지. 아니면, 엊그제 이 모습 그대로 생겨난 건지는 그 누구도 몰라. 열국이니까.”
“모른다니?”
“이거뿐만 아니야. 모래사장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돌무더기가 보일 때도 있고. 마을 한가운데 갑자기 낭떠러지가 나올 때도 있어.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왜냐면, 만들어지는 데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이야.”
말을 하다 말고 회귀자는 앞쪽을 바라보았다.
집터를 이리저리 헤집어가며 간신히 언덕 꼭대기에 도착한 캐터프랙트는 다시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그 덕분에 언덕에 가려졌던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다.
회귀자는 저 내리막 끝에 지어진 거대한 구조물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저것도 마찬가지겠지.”
멀리서 보았기에 더욱 웅장한 장성(長城)이었다. 지평선을 따라 길게 장식을 해놓은 것처럼, 커다란 성이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내리막 뒤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한쪽 끝이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다만, 다른 한쪽으로는 더 이어져 있지 않았다. 무너지거나 쓰러진 게 아니라, 그냥 거기서 건설을 멈춘 것처럼 딱 끝나 있었다. 덕분에 장성은 땅과 땅을 분리한다는 제 역할을 못할 것 같았다.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말이지. 힐데가 성벽이 없는 쪽으로 캐터프랙트를 몰았다.
가까워질수록 장성의 위용은 더해갔다. 잘 다져진 땅 위에 수직으로 우뚝 솟은 성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전투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전투로는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성벽이 튼튼한 것일까. 쓸모가 없던 건지 너무 유능했던 건지 모를 성벽을 향해 티르가 연신 감탄을 표했다.
“대단한 규모로구나. 내 저리 크고 웅장한 성은 처음 본다. 높이도 아득하지만, 끝없이 이어진 성벽에는 감탄이 나오는구나. 중간이 끊어지지만 않았어도 역사에 길이 남을 장성이었을 것이다. 저만 한 규모의 성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을지….”
회귀자는 티르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하루일걸.”
“음? 셰이, 하루라 하였느냐?”
“응. 저 성을 지은 사람은 단 한 명. 짓는 데 걸린 시간은 하루야.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해.”
회귀자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도 황금경과 직접 마주하지는 않아서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난 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셰이 씨. 수박 겉핥기식 설명은 그만하고 이제 슬슬 제대로 설명해주죠? 저걸 누가 만들었는지, 그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물론 말로 설명하기 어렵긴 해. 그렇지만 이제 슬슬 말해줘야지. 언제까지 간접적으로만 나타낼 거야?
회귀자는 난처한 듯 말을 끌었다.
“어….”
‘설명할 자신 없는데. 황금경의 능력은 너무 이질적이라…. 사실 그 원리를 잘 모르기도 하고.’
와, 정말 파격적인 인간이네. 설명할 수 없는 건 그럴 수 있어. 황금경의 권능은 그만큼 이질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