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31)
그런데 지금까지는 자신이 있었단 말이야? 네가 제대로 설명한 내용은 거의 없거든?
“크, 크흠. 네가 하지 그래? 너도 잘 아는 것 같은데.”
“오랜만의 수업 시간이네요. 셰이 교육생, 잘 배우도록 하세요.”
“나, 나도 알거든! 설명만 대신하라고!”
“자기 입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아는 게 아니라는 격언도 있죠. 아, 이, 셰이 씨.”
“야 이!”
“셰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끙, 알았어.”
원래 칠판이랑 지시봉이 있어야 하는데 이 위에서는 마땅치가 않네. 아쉽지만 말로만 해야 겠다. 등을 대고 앉은 채로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하게 말할게요. 황금경의 능력은 연금술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며 광범위한, 마치 창조와도 같은 연금술이죠.”
“너희가 철 쪼가리를 갖고 장난치던 그 능력 말이더냐?”
“우리 연금술은 황금경에 비하면 장난이에요. 저 성, 중간에 끊어져 있죠? 당연히 얼핏 볼 때 커다란 성이 있고, 파괴력을 가진 무언가가 성을 부수고 지나간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정반대에요.”
열국의 인간들이 각자 탈것을 타고 다니는 이유. 연금술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모두가 유목생활을 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
“원래 아무것도 없던 황야 위에, 황금경이 지나가며 성을 ‘연금’한 거예요.”
한 나라의 영토를 만드는 황금경의 권능 때문이다.
황금경은 세상 만물을 뒤집어 엎는다. 아니, 그러다 못해 새로운 무언가로 창조한다. 창조는 원래 있던 질서의 파괴. 따라서 그 파괴의 행차를 피하기 위해 열국인들은 떠돌이가 되었다.
잠시 침을 삼키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하잖아요? 왜 장성이 언덕 아래에 지어져 있죠? 이만한 규모의 성이면서 왜 아무런 맥락도 없이 끊겼죠? 그 의문점을 연금술이 설명해줘요. 언덕 아래에 지어진 건 여기 있는 흙과 바위를 재료로 썼기에. 성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중간에 끊어진 건… 무언가가 부순 게 아니라, 단지 거기까지밖에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열국에서는 어떤 지형지물이 등장해도, 어떤 구조물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황금경이 만들었기에, 그것은 존재한다. 이하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300년 전에서 지식이 멈춘 티르는 의문을 표했다.
“황금경이라 불리는 이는 어째서 성을 만들다 말았느냐?”
“그건 황금경을 제외한 그 누구도 몰라요. 성벽 무용론이 등장한 지 언젠데 아직도 장성같은 걸 만드는지. 황금경이 왜 열국을 떠돌아다니며 빈 땅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지. 그저 추측만 무성하죠.”
“괴이한 이로구나.”
“뭐, 티르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수상할 정도로 잠이 많은 흡혈귀였으니까요. 황금경도 직접 만나지 않으면 모르죠. 지금 저는 들은 내용만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대답할 수 있다. 이웃나라의 역사 정도는 대강 알고 있잖아? 그게 가상 적국이라면 더더욱.
‘들은 내용치고는 이해가 상당히 깊잖아…. 이 녀석 군국민이라고 하지 않았냐? 꼭 열국에 살아본 것처럼 말하네.’
간접체험이라는 거다. 회귀자가 마음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무언가를 떠올린 티르가 손을 말아 탁 쳤다.
“아아, 기억난다. 휴, 네가 무저갱에서 말하였지. 누군가 연금술로 금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낸 탓에 나라가 무너졌다고. 혹, 그가 황금경이더냐?”
“오, 이걸 기억해 내시다니. 제 교육이 헛되지 않았네요.”
“후후. 기본 아니겠느냐. 네가 한 말은 전부 깊이 담아두었다.”
“맞아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던 금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멸망시킨 장본인이 바로 황금경 데모크리아스에요.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금국의 모든 황금과 무기들은 가치를 잃었고, 진짜보다도 찬란한 가짜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금국민들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었죠.
신뢰가 무너졌고, 경제가 망가졌어요. 부를 지닌 이는 몰락하고 가난한 이는 전락했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혼란 속에서 모든 원망은 황금경과 그의 가르침을 받은 연금술사를 향했어요. 금국의 왕은 모든 연금술사를 처형하려고 했는데….”
여기서부터는 말해 뭐하냐. 이미 눈앞에 결과로 펼쳐졌는데.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금국이 멸망하고 열국이 이 꼬라지가 된 걸 보니 실패한 모양이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가 황금경을 만나면 그때부터 알 수 있겠지만, 아직 직접 대면한 적은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알 수 있겠지.
다섯 군주 중 하나였던 금국의 왕. 이해의 괴물이라고 불리던, 인간의 기술을 전부 이해하고 분석하는 권능을 가진 강철의 왕이… 어째서 고작 일개 인간에게 ‘먹혔’는지. 왕을 죽인 그는 왜 황금경을 자처하고 있는지.
알아갈 기회다.
“그래서 열국에선 아주 축복받은 땅이 아니면 농사를 짓지 못한대요. 원래도 농사짓기 좋은 땅은 아니지만, 그만한 기반을 마련한다고 해도 황금경이 한 번 지나가면… 애써 가꾼 황금빛 밭은 양탄자 덮인 왕궁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게 열국에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다. 먹을 것, 탈 것, 입을 것.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만들거나, 여의치않을 경우 빼앗아 충당한다. 거기에는 생존 그 이외의 논리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도구와 함께하지만, 삶의 방식은 야생과 가장 가까운 땅.
캐터프랙트는 미완의 장성을 지나쳐 나아갔다. 장성은 제 역할을 못하고는 방랑자에게 안쪽을 보여주었다.
장성을 기점으로 보이는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인공적인 구조물이 드문드문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변이 점차 복잡해진다 싶더니, 어느덧 캐터프랙트는 도시 한가운데 있었다.
시야 한쪽에는 아담한 벽돌집이 줄지었다. 저 멀리에서 4층짜리 누각이 세상을 내려다본다. 길게 뻗은 길에는 반들반들한 돌이 잔뜩 깔려 있었다. 벽돌 하나조차 계획하여 만든 융성한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 역시 황금경의 작품. 도시는 있으나 그 안에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시 안에는 도시를 굴릴 인력도, 식량도 없었으니까.
“대단하구나. 일개 인간이면서 홀로 도시를 만들어 내다니….”
티르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300년 전에 잠든 흡혈귀에게는 유령 도시라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사실 꼭 티르만 그런 건 아니다. 나 역시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티르와는 방향이 좀 다르지만.
“저기, 셰이 씨.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건데요.”
“뭔데, 새삼스럽게.”
“휴전협정서, 황금경에게 전하는 거죠?”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런데 휴전이 될까요? 황금경의 능력, 실제로 보니 더 어마어마한데요?”
황금경의 권능, 지극히 창조에 가까운 연금술. 거대한 규모의 성과 도시를 뚝딱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며, 벽돌의 모양이 다 다를 정도로 정교하다. 그야말로 천지창조의 연금술사.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회귀자는 군국이 열국을 상대로 승리한다고 했다. 아마 황금경을 상대로.
군국은 어떻게 강국이 되었나? 고작 군대가지고?
“만일 황금경이 휴전 협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건방지다며 우리를 모두 금으로 만들어버린 다음에 위풍당당 진격해서 군국을 공격하면요?”
이건 중요한 문제다.
회귀자는 열국이 휴전을 받아들일 거라고 자신만만해했다. 회귀자의 기억을 읽은 나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서 냅다 이 여정에 동참했다.
그렇지만 황금경의 권능을 내 눈으로 확인하니 약간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아무리 봐도 겁나 세잖아. 내 머리 위에 성을 만들고 무너뜨리면 바로 짓이겨지는 벌레꼴이 된다고.
“역사가 짧은 군국이야 자국을 수호하는 신비가 없었지만… 열국은 연금술과 황금경이 있어요. 셰이 씨, 황금경 이길 수 있어요?”
“…뭐, 전력을 다하면.”
회귀자의 태도가 영 미적지근하다. 어디, 생각이나 읽어볼까.
‘황금경은 이기고 지고 할 존재가 아닌데. 그건 티르칸쟈카 이상으로 이질적이라. 하지만 나는 설명할 자신이 없고, 괜히 말했다가 겁먹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봐봐. 너도 자신 없잖아!
티르나 리아의 경우에도 알 수 있듯이, 나는 대적할 수 없는 힘을 상대할 때는 같은 편으로 두는 걸 선호한다.
17 대 1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내가 17명 중 한 명이 되는 거다. 혼자 17명을 어떻게 이겨.
어쨌든. 내가 황금경에게 볼일은 있지만, 굳이 회귀자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휴전협정서는 필연적으로 싸움의 불씨를 품고 있다. 불쾌해진 황금경과 싸웠다가 머리 위에서 성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능력을 발휘할 틈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주세요. 각오는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회귀자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 당당하게 나설 리 없으니까.
내가 캐묻자, 회귀자는 마음을 고쳐 먹고는 말했다.
‘그래. 이 녀석이 입으로만 징징거리지 정작 아무렇지도 않게 지뢰밭에 발을 들이미는 녀석이야. 자신 없다고 도망치진 않을 거야.’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 회귀자는 이전 회차의 황금경을 떠올리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마 못 이길 거야. 황금경의 권능은 이질적이다 못해 기괴해. 지잔이 있더라도 그의 몸에 닿지도 못할걸.”
“그렇군요.”
예상했지만 역시 그렇군. 이길 자신은 없었구나.
충분히 오래 고개를 끄덕인 나는 힐데에게 주문했다.
“힐데, 차 좀 돌려주세요. 돌아갈래요.”
“네!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야호! 바로 전쟁이다아!!”
“아니, 안 되지! 기다려!”
회귀자는 급히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야! 각오가 되어 있다며!”
“도망칠 각오가 되어 있다고요! 하찮은 명예를 내던지고 숭고한 목숨을 구할 각오가!”
“각오는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야! 거기다 지금 돌아가서 뭐 하려고?”
“제가 할 말입니다! 이길 자신도 없이 가서 뭘 하려고요?! 죽기밖에 더 해!”
나는 잡힌 양팔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너무 세서 뿌리칠 수가 없다. 결국 약간 앙탈을 부리는 모양새가 되어 외쳤다.
“지금 군국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껏 기고만장해지신 거 같은데, 사실 군국은 나라 같지도 않은 유사 국가에요! 나라를 지키는 신비도 없고 권능을 가진 왕도 없이, 쓸데없이 복잡하고 연약한 구조를 가진 기형적인 국가요! 우리가 군국을 탈탈 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죠!”
“헤에~. 사실이지만 듣는 군국민 기분이 이상하네요~.”
사실 군국이 망하지 않은 것도 다 성녀가 가호하고 있던 덕분에….
아, 가호라는 표현은 집어치우자. 가식이라면 모를까, 가호는 너무 성스럽게 들린다.
어쨌건, 성녀가 미래에서 본 ‘군국이 멸망할 가능성’을 전부 찾아 부정하고 있기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을 뿐이다.
군국은 언제 어떻게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성녀조차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통신병이라는 대체제를 만들 정도였으니. 누가 작정하고 손을 쓴다면 순식간에 무너졌을 것이다.
실제로 고작 세 명이 작당하니 멸망할 뻔했잖아.
그렇지만 열국은 다르다. 나라의 크기나 규모는 그렇다고 쳐도, 열국을 이루는 뿌리는 확고하다.
황금경 데모크리아스. 그는 곧 열국이며, 열국이 곧 그이니. 만일 열국의 모든 인간을 죽여도 황금경만 있다면 언젠가 다시 똑같은 나라가 세워지리라.
그리고 황금경을 이길 수 없는 한, 휴전협정서를 그의 앞에 들이미는 건 곧 내 목숨을 그의 손에 맡기는 것과 같다. 혹여나 황금경이 휴전을 거부했다간 그냥 그 자리에서 해체당할 것이다.
“안 싸워! 나 갈 거야! 죽고 싶진 않아!”
“말은 끝까지 들어! 황금경과 직접 싸울 일은 없어!”
“아, 그래요? 다시 착석.”
나 참. 그것부터 말해줬어야지. 역시 믿고 있었다고, 회귀자!
“지조 없이 태도가 너무 쉽게 변하잖아!”
“유연한 대응이라고 불러주시겠어요?”
당연한 거 아니야? 상황이 바뀌면 태도도 바뀌어야지.
그래도 회귀자가 생각이 있구나. 난 또 황금경이랑 싸워야하는 줄 알고. 아무리 회귀한다고 하더라도 계획 없이 머리를 들이박진 않겠지.
“싸울 일 없다는 이유는요? 황금경이 휴전협정서에 냉큼 사인하시는 분인가요?”
회귀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지못해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니, 황금경은 우리에게 협조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공격하지도 않을 거야. 아마… 무관심하겠지.”
‘예전의 나는 세상의 멸망을 앞두고 열국에 찾아갔을 때… 황금경과는 대화조차도 나누지 못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