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36)
한참 뜸을 들이던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보수는, 됐어.”
“아자. 무르기 없기. 그런데 왜요?”
“…딱히, 돈은 필요 없으니.”
“연금술사는 항상 저울 양쪽에 같은 무게를 올려둔다고 들었는데요. 대가를 받지 않으면 당신네 원칙에 어긋나는 거 아니에요?”
“…난 괜찮아.”
‘…황금경께 선택받아, 고유마도와 연금술이 하나가 된 이들은. 저울눈을 가려.’
무슨 소리야. 가리지 마. 저울눈은 사람한테 보여주라고 있는 거라고.
그보다 지금 저울눈보다도 궁금한 게 있는데. 저 사람은 열국의 회주면서 은근히 나에게 협조적이란 말이지. 딱히 전쟁을 벌일 생각도 없어 보이고.
흠, 다시 한 번 찔러볼까. 내가 그렇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천막을 걷고 들어왔다. 안에 선객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상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그는 아랑곳않고 거구를 들이밀었다.
“실례합니다, 페루 회주님. 시간 되십니까?”
이미 들어 와놓고선 뭘 실례. 내가 그에게 밀려 한구석으로 밀리는 사이, 페루는 그를 향해 담담히 물었다.
“…단장? 왜?”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단장은 나를 무시하고는 즉각 페루에게 말을 걸었다.
“캠프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나를?”
페루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의 신분은 캠프단장. 이 캠프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자 운영하는 총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캠프단장을 무엇에 빗댈 수 있을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열국인들에게는 적절하지는 않은 비유지만, 그나마 영주가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는 캠프를 꾸리고 그 안에 평화와 질서를 보장하는 대신, 방문객들로부터 소정의 입장료를 수금해간다. 일종의 세금처럼.
당연한 말이지만,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툼을 끝낼 힘이 필요하다. 캠프단장은 커다란 캠프의 지도자답게 열국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강자였다. 군국에 빗대자면 장성급 정도.
그런 그가 도대체 어떤 문제 때문에 캠프에서 생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찾아왔는지. 페루도 나도 호기심을 담고 단장의 말을 기다렸다.
“밖에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아무나 붙잡고는 황금궁의 위치를 알고 싶다며 캐묻고 있습니다. 워낙 요란하게 들쑤시는 터라 캠프 안쪽이 어수선합니다. ”
“….”
페루는 지그시 나를 쳐다봤다.
왜, 뭐.
맞아. 그거 회귀자일 거야. 행동거지가 너무 수상해서 의심을 사는 모양이네. 어쩌겠어. 태생이 그런데.
따가울 정도로 나를 응시하던 페루는 느긋하게 입을 뗐다.
“…문제라도 벌였어?”
“아닙니다. 아직까진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만, 단지 녀석이 정보료를 대가로 뿌린 돈이 어마어마해서. 연금화가 너무 많이 풀린 나머지 현물이 바닥을 보일 지경입니다. 캠프가 돈방석에 앉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대로 있다간 이 돈을 소모하기 위해서라도 캠프를 접어야 할 판입니다.”
압도적인 돈은 폭력이 되는 법이다. 캠프는 회귀자 발(發) 양적완화에 혼란스럽다 못해 붕괴될 위기까지 다다른 모양이다.
아니, 회귀자! 그럴 돈 있으면 나를 주지! 그 절반의 가격으로 여기 있는 모두의 생각을 읽고 지도 위에 대략적인 위치를 그려줄 수 있는데!
“……….”
와중에도 페루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왜, 뭐! 나도 아까워. 배가 아파서 죽을 거 같아! 상당수가 연금화이거나 현물일 텐데 그게 다 얼마냐고! 회귀자는 뭔 재물이 끝도 없이 나와?!
“수상하지 않습니까? 약탈 보장권이 전해졌으면 승냥이는 자연스럽게 군국 쪽으로 향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흐름을 거슬러 황금궁을 찾아가려고 하다니. 그것도 수상하게 돈을 많이 가진 꼬맹이가….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겠습니다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페루 님께 먼저 의견을 구해야 할 것 같아서.”
맞아. 솔직히 수상해. 독심술을 가진 나조차도 수상해서 지켜보는데 너희에겐 더하겠지.
‘…대놓고 수상하긴 하지만, 군국의 사자라면 급할지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페루는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둬. 괜찮아.”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대강은.”
“알겠습니다. 그러면 손을 쓰지 않고 그냥 두겠습니다. 쩝….”
‘간첩이라고 몰아넣고 재산을 몰수할까 생각했는데, 페루 님은 도와줄 생각이 없나 보군. 어쩌면 거물일 수도. 다른 녀석들에게 건들지 말라고 일러둬야겠어.’
와중에 괘씸한 욕심도 좀 갖고 있었네. 열국답다고 해야 하나, 그 와중에 경거망동 안 한 게 캠프단장의 그릇이라고 해야 하나.
페루는 그를 지그시 올려보며 말했다.
“…용건은, 끝?”
“아, 한 가지 더 남았습니다. 그 녀석이 돈 말고 뿌려대던 건데.”
단장은 품속에서 금속 구조체를 꺼냈다. 다양한 금속을 조합하여 만든 정이십면체 금속이었는데, 각 면의 색깔이 전부 달랐다. 그렇다고 주사위로 쓰기엔 조금 무거워 보여 용도를 쉽게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단장이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의 연금술로도 분해되지 않더군요. 혹여나 페루 님이라면 가능하실까 해서.”
“…이건.”
페루가 눈을 크게 뜨며 구조체를 낚아챘다. 평소 나무늘보처럼 나른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민첩했다.
뜬 눈으로 금속을 빼앗긴 단장은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뭐, 아시는 게 있을까 해서.”
“…이해의 금.”
“네?”
“…엘릭의 유산. 이걸, 어디서?”
“아까도 말씀드렸잖습니까. 웬 이상한 꼬마가….”
범상치 않은 기세에 당황하던 단장은 페루의 시선이 나에게 향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쳇. 왠지 돈이 미친듯이 많더라니. 옛 금국의 비밀창고라도 발견한 건가? 거기를 ‘주머니’ 삼아서 아공간을 연결해 다니는 거고? 팔자 좋다. 살면서 돈 걱정은 한 번도 안 했겠네.
그나저나, 지금 그걸 들고 있다는 건 이번 회차에서 손에 넣었다는 건데. 왜 내 독심술에는 읽히지 않았지? ‘이번 회차’의 기억이면 읽혀야 하는 거 아니야?
매 회차 반복되는 루틴이라 읽히지 않은 건가, 아니면 나도 모를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진짜 수상하단 말이야.
“…이걸, 어떻게?”
솔직히 말할게. 나도 몰라. 하지만 그 사실도 쉬이 내줄 수는 없지. 내가 모른다고 고백하면 거기서 끝이지만, 알고 있는 척을 하면 상대방을 움직이는 무기가 되니까 말이야.
눈을 살짝 뜨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글쎄요?”
“…네 동행일 텐데.”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제 동행이 아닌걸요? 제 동행과 동행 아닌 사람, 누구를 먼저 생각해야 하죠?”
“…너어.”
“네놈! 회주님께 무슨 말버릇이냐!”
단장이 냉큼 내 멱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빠르고 강력하지만, 뻔하다. 내가 독심술사가 아니었어도 피할 수는 있었을 거다.
거기다 나는 독심술사. 그보다 먼저 책상 위의 카드를 낚아챈 뒤 와이어로 바꾸었다. 그의 손이 도달할 때쯤, 이미 와이어가 한 바퀴 그의 팔목을 감싸고 있었다.
“당신이야말로. 제가 누군 줄 알고 손부터 내미는 거죠? 손버릇도 때를 가려야죠.”
세계 최고의 마술사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소매치기에게 이런 전형적인 멱살잡이라니. 통하지 않는다고. 내가 이런 멱살잡이를 얼마나 극복해왔다 생각하는 거야.
‘연금술로 만든 와이어? 강철인가…! 그 짧은 시간에!’
물론 여기서 그가 힘으로 밀고 들어오면 곤란하다. 기공을 실에 실어 예기를 뿌릴… 수는 있지만, 이 미약한 기공으로 그래봤자 실금만 나겠지.
‘빌어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회주님과 독대하는 시점에서 경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되게 만들면, 상대는 나를 그렇게 여긴다. 자, 일단 진정하라고. 내가 봐주는 것처럼 살짝 놓아줄 테니까 제때 손을 빼….
그때였다.
“…내, 앞에서.”
스르르. 손에 힘이 풀린다. 와이어를 팽팽히 당기고 있던 내 두 손이 점점 멀어진다.
그와 함께 멀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내 작품을, 무기로 쓰지 마.”
강철이 부스러진다. 조금 전 만들어진 신품 와이어가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다행히, 사라진 부분은 내가 연금변환한 부분 한정이지만….
만일 저쪽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내 품 안에 있는 카드는 전부 그릇을 잃고 사라질 것이다.
제기랄. 저기를 깜빡했네.
의기양양해진 단장이 자유로워진 팔을 다시 들었다.
“멍청하긴! 잔녹의 회주 앞에서 철에 기대다니! 끝이다!”
“…멈춰.”
“그래! 당장 멈추게 해주지!”
단장이 그대로 내게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책상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그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늘어난 만큼 날카로워진 책상 모퉁이는 천막을 반쯤 찢고는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놀란 단장이 침을 삼키는 동안, 페루는 한참 느리게 말을 이었다.
“…둘 다, 말이야.”
말이 너무 느려서 행동보다 늦게 나오네. 가능하면 위력행사 전에 해줬으면 하는데.
어쨌건 의도는 성공했다. 나와 단장이 물리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멈췄다. 페루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나를 보았다.
“…어디에 쓰려고?”
흠. 아마 회귀자는 별생각 없었을 거다. 귀중한 금속이니까 뿌리면 좋아하겠지~ 하고 뿌렸겠지.
다만 회귀자가 그렇게 생각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알려줄 수는 없지. 속이자. 의도가 있던 것처럼.
“뭐. 이쪽도 맨손으로 오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보세요. 여러분도 이 금속에 반응했잖아요? 이거처럼 이게 있다면 황금경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리석은 짓. 하지 마.”
‘…엘릭 왕의 유물은… 황금경을 깨울 수 있어.’
오호라. 이건 또 새로운 정보인데. 본인 자신도 확신하고 있지 않지만, 깨울 수 있다고? 도대체 이 금속이 뭐길래?
…회귀자. 너는 도대체 태연하게 뭘 뿌려댄 거냐. 슬슬 무서워질 지경이다.
“참나. 뭐가 어리석은지 설명하지도 않고 하지 말라고 하면 퍽이나 잘 듣겠네요. 제가 당신 아들이에요? 뭣도 모르고 하지 말라고만 하면 돼요? 저울이 기울지 않게 하려면 다른 편에 뭘 올려놔야 할 거 아니에요.”
“……….”
“당신이 무슨 사기를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울은 속여도 저는 못 속여요. 어디, 제시해보시죠.”
“……………….”
아니, 그만 간 보고 말을 해. 그냥 따라온다고 하든가, 조금 더 알려주든가. 에휴, 답답해. 왜 이렇게 재는 게 많아.
“회주님!”
그때 단장이 다급히 외쳤다. 대답을 종용하거나, 또 대화 중 끼어들…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무언가, 불붙은 꼬리를 달고 날아오는 수수께끼의 비행체가 비치고 있었으니까.
어라. 저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