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45)
그렇지만 회귀자는 그만 두는 대신 더욱 오기를 부렸다.
‘안 돼. ‘모른다’로 끝냈다간, 다음 회차에서 영궤를 알아차릴 수 없어. 몇 번의 회귀에 걸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영궤야. 어차피 매번 꼬박꼬박 군국을 들려야 할 텐데, 지금 차이를 밝혀내는 건 도움이 될 거야.’
그렇지. 대놓고 차이점을 알아내라며 변신해주는 건 지금밖에 없을 테니까.
회귀자는 손으로 이마를 짚는 척, 손가락 틈으로 눈을 빛냈다. 온갖 종류의 빛을 보는 칠색안이다. 비겁하게 맞출 자신 없으니까 권능에 의존하는 거다. 뭐, 사소한 일에도 진심으로 매달리니 재미있는 거겠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냉큼 고개를 내밀며 일러바쳤다.
“셰이 씨. 설마 지금 칠색안으로 보시는 건가요?”
“뭐, 왜! 이것도 능력이라고!”
그러나 문제가 있다.
온도를 보는 적안부터 힘을 보는 자안까지. 모든 눈으로 봐도 정체를 가려낼 수가 없다. 혈조술이든 기공이든 모종의 힘으로 들어찬 몸을 꿰뚫어 보는 건 불가능하니까 드러나는 기운을 보아야 한다. 회귀자는 온갖 관점으로 기운을 보았다.
‘칠색안으로 보니 다르긴 해. 차이가 분명히 있어!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진짜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회귀자라고 티르의 모든 정보를 머리에 담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
거기다 애초에 티르는 성황청과 오랜 시간 싸우며 어둠을 얻었다. 빛을 보는 칠색안과는 상성이 나쁘다. 빛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쯧쯧. 그러니까 경고했는데.
“저는 그냥 걱정스러워서. 이 악물고 칠색안이라는 기술을 썼는데도 못 맞히면 어쩌려고요? 차라리 그냥 감으로 때려맞히고 틀리는 게 명예로운 것 아닐까요?”
“시, 시끄러! 거의 다 알았으니까!”
“너무 강하게 말하지 마세요. 틀렸을 때 어쩌려고.”
“잘난 듯이 말하는데, 그러는 너는!”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저는 뒤집힌 카드 뒷면도 알아맞힌다고요. 당연히 알죠.”
“그건 사기잖아!”
“사기도 엄연한 기술이라고요. 그러고 남 말할 처지에요? 솔직히 이야기해서 칠색안보다는 밑장빼기가 훨씬 정직한 기술이라고요.”
사실 독심술이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니까. 드러나지 않은 사기는 합법이나 마찬가지지.
그리고 인간 마음밖에 못 읽는 독심술보다 모든 관점을 바라보는 기술이 더 사기 아니야? 칠색안이냐 독심술이냐 하나 고르자면 칠색안 고를 텐데?
‘저 녀석이라면 진짜 알 것 같아. 그렇다면 단서가 있다는 뜻인데….’
한참 머리를 굴리던 회귀자는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제안했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
“호오. 질문 하나로 나를 찾아내겠다는 것이냐?”
“이제야 좀 흥미진진하구나. 어디 해보아라.”
이제 좀 퀴즈다워지자 티르가 흥미를 보였다. 회귀자는 둘을 응시하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티르칸쟈카는 무저갱에서 그토록 바라던 심장을 되찾았어. 무저갱 안쪽은 성녀조차도 엿볼 수 없는 땅이니, 아마 그 사실은 영궤도 모를 거야. 그걸 아는 쪽이 진짜 티르칸쟈카겠지.’
“티르칸쟈카의 소원이 뭔지 알아?”
제법 머리를 굴린 질문이다. 그러나 미소를 지은 ‘티르’가 되물었다.
“누구에게 물어본 것이냐? 확실하게 지목해주거라. 뒤이어 대답하는 이가 너무 유리하지 않겠느냐.”
“그쪽! 그쪽이 이야기해봐!”
회귀자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쪽이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소원은 이제 없다. 이미 이루었으니.”
진짜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자연스러운 대사. 차분하게 말하던 중, 어느 순간 표정을 싹 굳히며 말을 이었다.
“하나, 아직 해야 할 일은 있지. 성황청을 멸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제련된 감정이 흘러나왔다. 티르의 얼굴을 한 이가 무표정한 표정 속에 분노를 담아서 말했다.
“그건 소원이 아니라 의무다. ‘내’ 힘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미뤄두었으나, 단지 미루었을 뿐 언젠가 필히 이룰 과업. 천신을 끌어내리고 그 우상을 전부 모욕할 것이다. 결코 잊지 않으리라.”
기세를 흘려내지는 않았다. 그러면 들킬 테니까. 대신 꽉 쥔 주먹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절절한 분노를 내보였다. 지금 성황청을 향한 증오를 표출하는 건, 흡혈귀의 시조인 티르칸쟈카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었다. 과연 누가 성황청을 향해 이러한 분노를 표할 수 있을까.
회귀자는 착잡해져서 생각에 잠겼다.
‘끙. 내가 딱히 성황청 소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어렵네. 죄악의 왕을 막으려면 성황청의 협력은 필수인데…. 에잇.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자.’
“알았어. 진짜 티르칸쟈카를 알았으니까 이제 장난은 그만 둬.”
“알아차린 것이냐?”
“응. 방금 말한 쪽이 진짜 아니야?”
회귀자의 말에 티르와 ‘티르’는 장난스레 미소를 지었다.
에휴. 그럼 그렇지 뭐. 네가 헛다리를 짚지 않으면 회귀자겠니?
“땡. 셰이 씨. 틀렸어요.”
“어? 뭐?”
‘무슨 소리야? 소원이 이제 없다며. 심장을 되찾았다는 뜻이잖아?’
그렇게 멋대로 착각하게 만든 거지. 심장을 되찾았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면 몰라요? 대답을 피하고 자기 아는 바에 집중했잖아요. 소원은 이제 없다고 뭉뚱그린 다음에 성황청에 대한 분노를 보였죠? 흡혈귀가 성황청을 혐오한다는 건 지나다니는 어린애도 아는 바에요. 저쪽 티르가 말한 내용은 엄청나지만, 그 거품을 걷어내면 ‘모르겠는데? 하지만 성황청이 밉대!’라는 기초상식 뿐이라고요.”
“뭔 소리야? 그러면 저쪽이 영궤라고?”
“딩~동~댕! 아이, 이번에도 아버님은 속일 수가 없었네요!”
‘티르’가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평소 진중하고 조용한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티르의 얼굴을 하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니 같은 얼굴인데도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힐데는 불만족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으음~. 셰이가 못 맞힐 건 불 보듯 뻔했는데. 아버님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감이 안 서네요~.”
“뻔하긴 뭐가 뻔해! 다음에는 무조건 맞힐 수 있어! 한번 더 해!”
“이상하다? 아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거 같은데~.”
“이젠 진짜 다르거든! 네 특징을 알았으니까!”
‘녹안과 자안으로 보면 보여! 몸을 바꾸다 보니 어색한 점이 드러나. 하필 변한 대상이 티르칸쟈카여서 헷갈렸지만, 다음부터는 무조건!’
과신이 아니네. 진짜 특징을 알았나 보구나.
그렇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네가 힐데를 파악한 만큼, 힐데도 너를 파악하고 있으니까. 뭐, 회귀하면 그만이겠지만 말이야.
“…그, 잠시만.”
한편, 한쪽 구석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페루가 입을 틀어막고는 경악하고 있었다.
“…시, 조? 시조라고?”
아, 아직 말 안 했나? 티르가 흡혈귀의 시조 티르칸쟈카라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설명해야지. 앞으로의 여행이 더 편안해질 수 있게.
“맞아요. 탄탈로스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시조 티르칸쟈카가 우리와 함께했어요! 평범한 흡혈귀가 아니라고요!”
“…꼴까닥.”
어라. 기절했다.
뭐, 많이 쓰긴 했지.
안개 산맥 너머, 언제나 구름과 안개가 자욱이 깔린 땅. 햇빛이 다른 물안개에 의해 범접하지 못하는 그 땅에는 흡혈귀가 산다.
구름조차 넘다 구슬땀 뻘뻘 흘리는 높다란 산맥으로 가로막힌 터라, 공국의 안개와 그 안에 사는 흡혈귀는 쉽사리 열국으로 넘어오지 않는다. 해흉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한 공기는 자연의 방벽에 가로막혀 고인다.
그러나 단 한 곳. 낮은 구릉이 펼쳐진 구름의 마을 클라우디아는 다르다. 산이 뽑혀 나간 그곳으로는 구름이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그 구름의 폭포를 헤치고 나아가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태고의 땅이 나타난다.
안개 평야. 지금은 안개 공국이라 이름 붙은 땅. 빛을 피해 떠난 흡혈귀들은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꽤 많은 곳에서 흡혈귀는 전설에나 등장하는 존재지만, 클라우디아와 그 부근에서 살았던 열국인들에게 흡혈귀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쑥 튀어나오는 악몽과 같았다. 어지간해서는 밖에 나오지 않지만, 한 번 나오면 클라우디아 전역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 두려움을 더욱 느낄 수밖에.
티르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디아가 구름 마을을 뜻하는 것이었구나. 그곳은 내 익히 알고 있다. 옛적, 살 곳을 찾아 헤매던 중 황야 끝에서 발견한 자그마한 마을이었지. 손수 구름 폭포를 찢었던 기억이 난다.”
“…으으.”
“왜 그리 겁을 먹은 것이냐?”
페루는 티르와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본능에 각인된 공포로 인해서 몸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은 자못 애처롭기까지 했다.
너무 겁에 질린 모습에 티르가 미심쩍어하며 말했다.
“혹 천신교도더냐? 흠, 그리 두려워할 필요 없거늘. 내 앞에서 티만 내지 않는다면 하나하나 죽이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 기분을 너무 크게 해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만.”
“…히익.”
티르는 오래 산 만큼 자기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천신을 믿는다고 다짜고짜 죽이진 않지만, 자기 앞에서 신앙을 표현한다면 가차 없이 죽인다.
그렇다고 꼭 원칙대로만 행동하는 건 아니고, 수틀리면 그냥 죽이기도 한다. 하긴, 선이라는 것도 너무 확실하게 그어 넣으면 선타기만 주구장창하는 인간이 나오는 법이거든. 융통성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
잔뜩 겁먹은 페루 대신 내가 말해줬다.
“티르. 겁은 그만 줘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흡혈귀를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당연한 일이다. 내 몸을 걸어다니는 식량창고로 보는 흡혈귀를 앞에 두고 그 어떤 인간이 침착할 수 있을까. 양이랑 늑대가 절친이 될 수 없듯, 흡혈귀와 인간도 어울리기 힘들다.
불편한 진실에 티르가 인상을 썼다.
“너는 처음부터 겁도 없이 바락바락 대들었잖느냐. 내가 흡혈귀, 그것도 시조라는 걸 알고도.”
“내 피만 안 빨면 흡혈귀가 아니거든요. 흡혈귀는 무서워도 인간은 딱히 안 무서워해서요. 같은 인간인데 뭐.”
“그래. 네가 이상한 거였지. 오랜만에 눈 떴을 때 처음 만난 인간이 너라 잠시 헷갈렸다. 이게 평범한 반응이겠지.”
티르는 눈을 흘기면서도 은근히 기분 좋은지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티르가 누군가의 피를 탐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아름다운 백은발을 지닌 소녀일 뿐이다.
그러나 페루는 여전히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였다. 고작 몇 마디 말로 뿌리박힌 공포를 없애는 건 무리겠지.
뭐, 어쩌겠어. 여론전에 신경을 못 쓴 대가지. 내친김에 페루를 좀 놀려줄까.
“자. 슬슬 밥 먹을 시간이죠? 그릇은 저, 셰이 씨. 힐데 것까지 세 개만 더 준비해주세요. 아, 그리고 티르에게는 따로 그릇은 필요없어요. 페루가 식탁 위에 올라가면 되니까요.”
“…히익.”
“짓궂구나. 그만하거라. 다른 흡혈귀와 달리 나는 따로 피를 빨아들일 필요가 없다. 나는 모든 피가 흘러 도달하는 바다. 누군가 피를 흘린다면 별다른 일 없어도 자연스레 내게 스며드니. 저 아이가 손가락 찧을 때 흘리는 피면 충분하다.”
“…흐앗.”
안심하라고 한 말인데 더욱 겁에 질리는 페루. 내친 김에 한마디 더 보탰다.
“그것도 예전 일이잖아요. 지금은 잘 못 드시잖아요? 특식 하나 필요하지 않아요? 신선한 여자의 피로?”
“…으, 음식 가져올게.”
잔뜩 겁먹은 페루는 도망치듯 창고로 향했다. 음식을 가져온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떠난 페루는 다급히 고기 종류를 찾았다. 흡혈귀에게 짐승의 피라도 먹일 생각인 모양이다. 쓸모없는 짓인데.
그때 회귀자가 페루를 불렀다.
“잔녹회주. 음식은 열국에서 난 거지?”
“…응. 그런데?”
“꺼내지 마. 내 걸 쓸 테니까.”
회귀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포켓을 열었다. 언제 보았던, 하나하나가 한 나라의 황제나 먹어야 할 법한 고급 식자재였다. 페루가 들고 오려는 싸구려 럼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포도주에, 고기에, 쌀과 밀가루까지. 호화스러운 식자재가 식탁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멍멍! 밥! 바아압!”
보기만 해도 침 섞인 감탄이 나오는 호사다. 냄새를 맡고 귀신처럼 돌아온 아지가 앞발을 식탁에 올리고 눈을 빛냈다. 꼬리가 먼지 나도록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