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48)
“멍? 똑같아?”
“뭐가?”
아지와 ‘아지’는 나란히 고개를 갸웃했다. 아차. 맞네. 그 생각을 못했다. 아지는 개니까 거울도 잘 안 보고, 거기 비친 자기 외모를 의식하지도 않겠지. 심지어 냄새부터 다를 거고. 지금 아지에게 ‘아지’는 자기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인간에 불과하다.
“자. 아지들아. 나는 이제부터 둘 중에 누가 진짜 아지인지 구분하기 위해서 간단한 테스트를 할 거야.”
“멍? 토스트?”
“밥?”
에휴. 개에게 존엄성이랑 유일성에 대한 인식을 기대하는 건 어렵겠지. 말로 하지 말고 빨리 끝내자.
회귀자가 꺼낸 음식 중에는 말린 과일도 있었다. 나는 곶감을 가져와서는 한 점 찢었다. 회귀자의 음식답게 고급스러운 향이 나는 큼직한 곶감은 아지의 눈길을 끌었다. 좌우로 흔들자 아지와 ‘아지’의 눈이 손을 따라왔다.
내가 외쳤다.
“아지야. 앉아!”
“멍!”
“서!”
“멍!”
“잘했어! 자, 먹어!”
“멍멍멍!”
내가 곶감 조각을 위로 던지자, 아지와 ‘아지’가 폴짝 뛰어올랐다. 공중 경합 끝에 곶감을 쟁취한 쪽은 아지였다.
챱챱챱 소리를 내며 곶감을 맛본 아지는 눈을 크게 뜨고는 입맛을 다셨다. 순식간에 곶감을 목구멍으로 넘긴 아지는 눈을 빛내며 펄쩍펄쩍 뛰었다.
“맛있어! 달아! 맛있어!”
“맛있지? 곶감이야. 한 번 맛보면 내 몫이 없어질까 봐 숨겨뒀었지.”
이제는 과일 먹을 때마다 아지에게 빼앗기겠군. 슬픈 사실을 되뇐 나는 이제 ‘아지’를 보았다.
‘끄응. 개의 왕은 순수하게 난이도가 높아요. 저걸 어떻게 빼앗아. 이거, 너무 쉽게 들키겠는데요~.’
개의 왕이 아무리 만만해도 왕이다. 민첩성에서는 따라오기 힘들지. 어쨌든 밑밥은 깔았다. 지금부터는 힐데를 구분해내도 이상하지 않다.
“줄까? 어디. 먹을 테면 먹어 봐.”
곶감을 작게 찢어서 양쪽 손에 감추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살짝 벌려 틈을 낸 뒤에 둘을 향해 내밀었다.
“멍멍! 멍멍멍! 고깜!”
“곶감이라니까.”
아지는 한 점의 거리낌도 없이 내 손가락 틈으로 주둥이를 집어넣었다. 틈이 작아서 입이 다 안 들어가자, 혀를 내밀어서 곶감을 가져오려고 했다. 그마저도 여의치않으니 혀만 내밀어 곶감을 핥았다.
‘…으음. 못 따라 할 건 아니지만요.’
눈앞에 원본이 보여주는 모범답안이 있다. 자. 힐데. 따라 해야겠지?
약간의 주저함은 있었지만, 힐데는 큰 차이 없이 내 손 안으로 혀를 내밀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르겠지만,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촉감이 확실하게 다르다. 아지는 거침이 없지만 힐데의 혀놀림에는 약간의 주저가 담겨있었다.
‘연기자로서는 있어선 안 되는 감정이지만… 조금은, 부끄러울지도요?’
생각해보면 참 유별나긴 하지. 같은 짐승이지만 인간은 부끄러움이란 이상한 감정을 느끼니까.
“…너도 진짜 악취미네.”
회귀자의 중얼거림은 무시하자. 보기 싫으면 네가 눈을 감으라고.
그렇게 내 양손이 침으로 젖어드는 도중, 아지가 이제는 약이 오르는지 이를 딱딱거렸다. 겁이 난 나는 손을 펼쳐서 곶감 조각을 드러냈다. 아지와 ‘아지’는 게눈감추듯 곶감을 먹었다.
“달아!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리액션 봐. 먹이는 보람이 있네. 입에 남은 곶감을 전부 삼킨 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남은 곶감으로 향했다. 나는 어느덧 반절까지 줄어든 곶감을 들어올렸다.
“더 먹고 싶니?”
“멍! 나, 배고파!”
“배고파졌어!”
“하하. 그런데 어쩌지?”
나는 양손을 교차한 그 짧은 순간 곶감을 소매 속으로 숨겼다. 그리고 몇 번의 의미없는 손짓을 끝낸 뒤, 손바닥을 활짝 펼치며 둘에게 내보였다.
“짜잔! 곶감이 없어졌네!”
“멍?!”
아지가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아이라도 손장난인 줄 알겠지만, 개의 왕인 아지는 이런 마술에 면역이 없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거다.
그 사실을 몰라 조금 연기가 늦은 힐데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개의 왕이라면, 곶감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냄새로 알아차리겠죠. 지금까진 늦었으니 이번에는 선수를 치죠.’
‘아지’가 코를 치켜들고는 킁킁거렸다. 아지도 그 소리를 듣고는 따라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내 쪽을 보았다.
“있어! 안 없어졌어!”
“곶감 냄새!”
‘아지’는 아까 아지가 한 행동을 본받아서 곧장 내 소매 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 얼굴이 들어갈 리 없다. 대신 손을 넣어서 빼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곶감은 안쪽 깊숙이에 들어간 채였다. 소매 쪽에 불룩한 모양이 대놓고 드러난다. ‘아지’는 냄새로 찾은 척, 킁킁거리며 내 팔뚝을 따라 올라왔다. 점차 곶감에 가까워졌지만 얇은 한 장의 옷이 ‘아지’와 곶감을 가로막고 있었다.
‘너무 깊네요. 옷을 찢지 않으면 못 꺼내겠는걸요? 개의 왕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요…?’
난감해진 ‘아지’는 곁눈질로 아지를 관찰했다. 힌트라도 얻기 위해서.
아지는 지금 온전한 곶감 하나를 입에 물고는 행복하게 만찬을 즐기는 중이었다.
‘어?’
“짜잔. 사실 곶감은 두 개였거든요.”
하나는 미리 호주머니에 넣어왔지.
전제가 거짓이라면 그 이후 이어질 모든 명제가 거짓이다. 마술사의 마술은 언제나 전제부터 어그러뜨려야 하는 법. 애초에 곶감은 하나가 아니었고, 후각이 뛰어난 아지는 바로 알아냈다. ‘아지’가 정신이 팔린 동안 아지는 이미 호주머니에서 곶감을 꺼내 맛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즉, 여기서 내게 거의 안기듯이 올라타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지’가 바로 힐데라는 증거다.
‘아지’는 자기 꼴을 다시 보았다. 내게 올라타서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리던 자기 모습을.
고장이 난 것처럼 ‘아지’가 행동을 멈췄다. 나는 소매에서 다시 곶감을 꺼내며 말했다.
“힐데.”
“…멍.”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부끄럽죠?”
“…네에.”
“뭐해요. 돌아와요.”
‘아지’, 아니, 힐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충격이 좀 컸는지 귓가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힐데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목 뒤를 긁적였다.
“아하하. 완전히 당했네요~. 역시 아버님은 못당하겠다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퀴즈는 만드는 사람보다 푸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니까. 정말 강아지 같았어요.”
“그거 칭찬이죠?”
“칭찬입니다. 자, 여기 선물. 그토록 바라던 곶감입니다.”
내가 먹긴 좀 그래진 곶감을 힐데의 입에 밀어넣었다. 나를 흘겨 본 힐데는 불만스러운 듯 곶감을 맛보았다. 소매 속에 숨어있었다고 맛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힐데는 금방 기분을 풀었다.
“개의 왕이라서 쉬울 줄 알았는데요. ‘저’의 오산이었어요.”
“고개를 들어요. 저에게 들킨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못 맞췄을 거예요. 그렇죠, 셰이 씨?”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회귀자가 흠칫 대답했다.
“…아니, 나도 진작 눈치챘거든.”
‘그냥 볼 때는 헷갈리지만, 칠색안을 쓰면 확실히 보여. 칠색안, 녹안 개안.’
회귀자는 녹색 눈동자로 힐데를 보았다. 녹안은 꿰뚫어 보는 눈. 기력으로 꽉 들어찬 몸속까지는 꿰뚫어 볼 수는 없지만 회귀자는 다른 쓰임새를 찾아냈다.
‘그래. 역시 내 생각대로야. 녹안으로는 신체 내부까지 볼 수는 없지만…. 옷의 재질은 보여. 아지의 옷은 평범한 보급형 셔츠인데, 영궤의 옷은 특수한 의복 패킷이야. 영궤가 옷차림을 바꾸는 건 역시 특수 제작된 의복패킷 덕분이었어.’
하긴, 변신한다고 해도 옷까지 그럴 수는 없지. 저번에 티르로 변신했을 때는 티르가 직접 어둠으로 옷을 지어주었지만, 아지는 지가 입은 옷이 뭔지도 모른다.
아무리 힐데라도 세상 모든 종류의 옷을 갖고 다니지는 못한다. 대신, 세상 모든 종류의 옷이 될 수 있는 특수한 의복 패킷을 사용한다. 옷은 물론, 만들기에 따라 무기나 장비, 혹은 강아지 귀와 꼬리도 될 수 있는 연금장비.
장성기, 천변만화다.
내 카드의 상위호환처럼 보이지만, 기공으로 거푸집을 만들어서 쓰는 힐데가 이상한 거다. 나라면 한 번 변화시킬 때마다 기력이랑 마력이 거덜 나겠지.
‘귀랑 꼬리도 피부에 달라 붙어있어. 생체 단말까지 쓰는 것 같아. 확실히, 저 변신술은 감탄할 수밖에 없어…. 아가르타의 가면이 있는 이상 굳이 배울 이유는 없지만.’
와중에도 기연 각을 보던 회귀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왜 자꾸 같지도 않은 퀴즈를 내는 거야? 어차피 다 들키게 되잖아.”
왜 퀴즈를 내냐니. 그런 당연한 걸 모르냐?
“셰이 씨는 진짜 모르네요.”
“뭐가?”
“퀴즈를 내는 이유는 정해져 있잖아요. 맞혀달라고 내는 거죠.”
누군가 알아차려주었으면 하니까.
자기가 어떻게 변신해도. 다른 누군가를 흉내낸다고 하더라도. 맞혀주기를 바라니까 자꾸 시험하는 거라고. 이런 당연한 것까지 알려줘야 한다니 참 갈 길이 머네.
내 친절한 설명을 들은 회귀자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왜 맞춰야 하냐고.”
회귀가 감수성을 대가로 하는 거였나 보다. 설명하기 귀찮았던 나는 회귀자를 무시하고 곶감을 먹으러 갔다. 나도 맛은 봐야지.
곶감 하나의 꼭지를 따고 반으로 찢었다. 길게 찢어진 과육에서 달콤한 향이 난다. 눈과 코로 충분히 음미하고 입에 집어넣기 직전, 건너편에서 생각이 들려왔다.
‘그렇군요. ‘저’는, ‘저’를 알아주기를 바랐던 거였네요.’
힐데의 생각이었다. 힐데는 곶감을 곱씹다 말고 생각에 잠겨, 내가 했던 말을 되뇌고 있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을.’
저거너트가 급정거했다. 턱에 부딪힌 것처럼 앞머리가 솟아오른 바람에 가구가 흔들리고 물건이 땅으로 떨어졌다.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시던 나는 그만 앞섶에 찻물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물이 불을 이긴다는 고전적인 관점은 사실이었다. 뜨거운 물은 불보다도 뜨거웠으니까.
“앗 뜨거워!”
재빨리 옷자락을 털어서 찻물을 식혔다. 자연의 섭리란 신비해서, 옷자락 팔락거리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찻물은 열을 금방 잃어버렸다.
이게 마법이고 이게 자연이지. 뜨겁다고 기공이나 마법을 쓰는 게 이상한 거야.
“멍! 멍! 멍! 지진이야! 지진이야! 위험!”
“아지야. 여기 땅 아니다. 지진은 안 일어나.”
와중에 아지는 놀라서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있다. 저거너트가 지금까지 너무 편한 여행길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일까. 아예 이곳을 땅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뭐야? 무슨 일이지? 지금까지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