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50)
자신감이 과하게 넘치는 대답이었으나 헥토는 크게 웃어넘겼다.
“하하하! 호쾌하군! 물론 이 도시에 함정이 없진 않지만, 자네들에게 쓰지는 않겠네! 자, 가지! 내가 앞장서겠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회귀자가 무작정 갖다 박아도 저렇게 정상적인 사람과는 이야기가 잘 흘러가는구나. 아니면 저 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회귀자에게 맞춰준 것일 수도 있지.
‘사납게 대했는데도 적대적이진 않네. 기억해두는 게 좋겠어.’
혹여나 전투를 대비했던 회귀자는 천앵을 집어넣었다. 피스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헥토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열폭회주, 잔녹회주, 그리고 억압회주. 아무리 열국의 세대교체가 빠르다지만, 이 회주들의 이름은 들어본 적 없는데. 내가 아는 건 클라우디아의 우레회주뿐이야.’
헥토의 모습은 매우 특징적이었다. 피스톤으로 다리를 만들어서 걷다 보니 바람 빠지는 소리와 삐걱거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온다. 시각적으로든 청각적으로든 한 번 보면 잊기 힘들다.
꼭 헥토에 한정된 건 아니다. 열폭회주 로우켓도 마찬가지. 강철을 분해해버리기에 저거너트가 아니면 말을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페루가 그나마 평범한 축에 속한다.
그렇지만 회귀자는 그들 중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과거 회차의 기억은 못 읽어서 모르지만, 아마 이전 회차에서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 때문에 다 죽었던 건가. 아니면… 전쟁 전에?’
아직 한낮이다. 티르는 햇빛을 싫어했고, 아지는 복잡한 이야기를 들어도 개소리밖에 안 한다. 수인 비하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좋은 저거너트 두고 도시에서 머물 이유는 없었기에 힐데와 회귀자랑만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두 실무자가 있으니 나까지 갈 필요는 없었지만, 생각을 읽으면 또 좋잖아.
부하 몇몇이 달려왔지만, 헥토가 간단한 명령을 내리자 순식간에 흩어졌다. 상당히 일사불란한 이들이었다. 군국보다야 덜하지만 모든 건 상대적인 법. 승냥이를 지휘할 수 있다는 것부터 그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대로를 걸은 헥토는 우리를 광장 한가운데로 인도했다. 흰 돌이 깔린 광장에는 가운데 있는 석상 주변에 등받이 없는 벤치가 몇 개 놓여 있었다. 헥토는 지친 듯이 거기 앉고는 피스톤으로 길이를 맞추었다.
회귀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여기도 정치적인 의견을 나누기 좋아 보이지는 않는걸?”
“당연히 이걸로 끝날 리 없지. 가만히 있어 보게.”
헥토는 손가락을 들어 석상을 가리켰다.
근엄한 얼굴을 한 중년의 석상이었다. 묘사가 대단히 사실적이었으나, 머리에 모자 대신 음식용 둥근 강철 덮개를 쓴 것이 현실감을 박탈하고 있었다. 혼자 재질이 다른 걸 보니 석상이 만들어진 이후 올려놓은 물건인 듯했다.
헥토는 그 덮개를 향해서 고유마도를 발동했다.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드려 펴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금술이 탄생한 이후에도 형태를 잡기 위해 철을 두드리는 과정은 흔히들 나타나 왔다.
억압회주의 고유마도는 강철을 두들기는 이미지와 함께 나타났다.
억압회주의 고유마도는 강철에 압력을 가한다. 형태나 모습은 관계없다. 그게 강철이라면 무조건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압력을 가하는 방향이 비틀어진다면 움직이기 어렵겠지만, 피스톤과 같은 형태로 만들면 고유마도에서 비롯된 거대한 힘을 한 방향으로 제어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피스톤은 열이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작동한다. 저거너트를 들어올렸던 것도 그 덕분이다.
헥토는 그 능력을 강철 덮개에 적용했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덮개가 점차 커졌다. 연성과 전성이 뛰어난 연금강은 헥토의 능력에 의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보통 어느 정도 커지면 금속이라도 찢어지기 마련이지만, 상대방은 연금술사와 고유마도가 합일된 열국의 회주다. 절묘하게 조절된 연금강은 찢어지거나 망가지지도 못한 채 점차 몸을 키웠다.
어느 순간 덮개가 바닥에 닿았다. 석상보다도 커진 탓이다. 그러고도 모잘라, 더욱 커진 강철 덮개는 광장을 뒤덮었다.
연금술도 물질을 변형시킬 수 있지만 정교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건 어렵다. 특히 강철을 얇고 균일하게 펴는 것은 연금술보다도 시전자의 센스에 의존한다. 그러나 고유마도로 압연 공정을 할 수 있는 억압회주는 맨손으로도 종이보다 얇은 철판을 만들 수 있다.
회귀자는 그의 능력을 관찰하며 생각했다.
‘정교하네. 부풀릴 수 있다면 압축할 수도 있겠지. 여차하면 우리를 공격하겠다고 경고할 생각일까….’
“하하하! 어떤가! 이제는 좀 비밀스럽지 않나?”
아니, 그냥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아.
킬킬거리며 다리 길이를 조절한 헥토는 웃음기를 지우고는 용건을 꺼냈다.
“자. 일단. 먼저 말하겠네. 나도 딱히 전쟁을 바라지 않아.”
회귀자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지만, 회귀자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열국의 식량을 수확하고 판매한다네. 전쟁으로 여럿이 죽으면 내 잠재적인 고객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
“그거 때문이었어?”
냉철한 손익계산. 이게 열국이지. 다르더라도 뿌리가 달라지진 않는군.
“자네들을 도울 생각은 있네. 잔녹이라면 알겠지만, 황금경께서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다네. 나는 그분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지.”
“그러면 바로 안내하지, 왜 여기로 불렀어?”
“하나, 당장은 무리네. 앞으로 하루는 기다려줬으면 해.”
아직 기한은 있다. 그렇지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었기에 회귀자가 내키지 않아 하며 되물었다.
“어째서?”
“내가 딱히 사정까지 말해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자네들이 솔직하게 말해준 것의 보답으로 대답해주지. 그분은 지금 머지않은 곳에서 밭을 일구고 계시네.”
“밭? 밭이라면 여기 있잖아.”
“더, 말일세. 이것도 부족하니까.”
지금 우리가 봤던 옥수수밭도 가공할 규모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만든다니. 열국을 다 먹이고도 남겨둘 셈인가?
회귀자의 생각도 나와 비슷했다.
“호문쿨루스 밭 따위 별로 중요하지도 않잖아? 어차피 너희에게 중요한 건 클라우디아의 진짜 식량 아니야? 이 옥수수라면 벌써 충분하겠는데 왜?”
…표현은 좀 과하게 날카로웠지만.
호문쿨루스라는 열국의 비밀이 튀어나오자 헥토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는 경악하여 페루를 노려보았다.
“잔녹! 자네가 말했나!”
“…알고 있었어.”
“뭐? 이미 알고 있었다고?”
“…내가 말할 리, 없잖아….”
‘그것도 그렇다. 잔녹회주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타지인에게, 그것도 군국의 요인에게 밝힐 리 없지. 군국의 정보망… 무시해선 안 되겠군.’
흥분을 가라앉힌 헥토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말했다.
“그렇다고 이 식량이 의미 없진 않네. 아사하는 바에야 무어라도 먹는 게 나으니까. 애초에 인간 역시 그 식량을 몸속에서 나름대로 가공해 쓰기에, 호문쿨루스 식량을 먹었다고 해서 바로 그분과 공명하진 않아. 몇 주 정도 유예가 있지. 만일 발효시켜서 술로 만든다든지, 사료로 만들어 가축을 살찌운 뒤에 잡아먹는다면 종말은 몇십 배 느리게 찾아오네.”
헥토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드럼 상회의 역할이 그것일세. 호문쿨루스 식량을 가공하는 일. 내가 일한 만큼 열국에는 더 많은 식량이 풀린다네. 먹어도 크게 문제 없는 식량이! 그걸 하는 게 이 나의 일이고, 사명이며, 자랑일세!”
사명감에 넘쳐서 말하던 그는 작게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결국 돈 때문 아니야?”
“돈도 돈이지만 열국을 위해서이기도 하지. 호문클루스 식량이라도 맺히는 날은 얼마 없어. 이 대목을 놓치면 열국의 식량이 부족해지네. 그러니 하루만 유예를 달라고 한 것일세. 만일 나의 도움 없이 황금경께 가겠다고 하면 말리진 않겠네. 하나, 하루만 기다리면 내가 직접 그분께 안내하지.”
이해할 만한 사정이었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회귀자는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황금경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못 찾을 때를 대비해서 제안은 받아두자. 여차하면 무시하고 황금궁으로 가면 되잖아?’
이딴 게 정의의 사도라니. 정의가 다 울겠다. 회귀자가 시커먼 속내를 숨기고 제안을 수락하려는 때였다.
“잠깐만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다 나름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 궁금증도 좀 풀어줘야지. 생각을 읽어서 대강은 알지만, 더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직접 떠올려주는 편이 좋거든.
헥토가 말했다.
“말해보게.”
“황금경과 공명한 인간은 어떻게 되죠?”
“이미 나는 충분히 많은 것을 말했네. 그 이상 말해줄 필요는 없을….”
“혹시 저 석상처럼 되나요?”
단조로운 패턴을 지닌 받침대 위에 올려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된 한 남자의 석상.
소질 없는 인간이 조각할 수 없는 그 예술 작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황금경에게 예술적인 소양은 없다. 힐데가 직접 파악한 내용이다. 가까이 와서 보니, 확실히 이 도시는 몇 개 없는 패턴을 돌려쓰고 있었다.
그에 비해 저 석상은 굉장히 정교했다. 입가의 주름부터, 미세하게 조각된 수염과 머리카락. 거기다 생동감 넘치는 표정까지. 도저히 패턴 돌려막기를 하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그대로 굳힌 것처럼.
힐데가 눈을 반짝거리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버님! 예술작품 보는 눈은 있잖아요! 하긴, 예술은 인간의 것. 인간의 왕이 모를 리 없지!’
사실 네 생각을 읽어서 안 부분도 조금은 있어.
그나저나 무섭네. 남들 다 회담 생각할 때 홀로 석상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었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야?
“…네놈들. 더는 못 참아주겠군. 충분히 선의를 가지고 대했건만….”
헥토의 몸이 분노로 떨렸다. 피스톤에서 뜨거운 공기가 격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압력이 열로 바뀌어 공기를 달구었다.
아니, 중요한 건 다 회귀자가 언급했고 나는 마무리만 했는데. 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거야? 젠가야? 마지막에 떨어뜨린 사람이 모든 책임을 다 지는 거?
문자 그대로 열이 잔뜩 오른 헥토가 손을 펼쳤다. 그의 몸속에서 십수 개의 피스톤이 솟구쳐 나오더니 일제히 나를 겨누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피스톤은 순식간에 쏘아져 내 전신을 난타할 것이다.
“협박하려는 거냐?! 이 나를!”
터부는 터부다.
아무리 열국 사람들이 하루살이처럼 산다고 해도 진짜 내일 죽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런데 열국의 식량이 기형을 일으킨다는 것도 모자라, 자신까지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퍼지면 어떻게 될까.
억압회주의 식량을 사 먹으려고 하지 않겠지. 그리고 클라우디아에서 살기 위해 애쓸 것이다.
한두 명은 괜찮다. 회주처럼 특별한 존재는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클라우디아에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사회가 무너진다.
모두가 이들이 클라우디아의 식량을 원한다면 경제가 망가진다.
열국이 최소한 형태를 갖추려면 이 터부는 반드시 숨겨야 한다. 그런데 외지인이, 그것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적국이 그 비밀까지 알아낸다니.
‘여차하면 사생결단을…! 내 힘으로 안 된다면. 황금궁의 힘을 이용해서라도!’
헥토가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말했다. 정말 충신이 아닐 수 없다.
“아니요. 혹시나 해서 그냥 묻는 겁니다. 저희가 어림짐작하다가 실수하면 안 되니까요. 이 내용으로 협박하고 싶었다면 저희가 짐작한 내용을 여러분들 면전에서 말했겠어요?”
“…”
다만, 사람이 너무 좋다. 의심 많고 성격 나쁜 사람이라면 불쾌함 때문에 내 말을 듣지도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그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는 순수하게 호기심으로 비롯된 질문이라는 걸 이해했다.
‘황금경과 마주했을 때 석상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건가…? 큭. 거기까지 짐작했다면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 뭉뚱그릴 수는 없겠군.’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헥토는 깊게 숨을 내쉬며 피스톤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공명한다고 황금이 되거나 강철로 바뀌지는 않네. 석상을 살아있는 인간으로 만든 건 아니야. 안심해도 좋아.”
“그럼요?”
“더 묻지 말게. 절대로 가르쳐줄 수 없으니. 다만, 외지인인 자네들은 안전하다고 보장하지.”
그거만 충분하다. 그 대답을 보다 명료하게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정도라면, 내 독심술로 완벽하게 읽을 수 있다.
헥토도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공명’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는 오직 황금경만 알 것이다. 대신, 오랫동안 황금경을 보필해온 그는 원리는 몰라도 무엇이 벌어지는지는 알고 있었다.
황금경과 공명한 인간은… ‘수집’된다.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도록.
좋았어. 단서를 하나 더 얻었다. 내 호기심은 다 충족시켰으니 더 미련도 없겠다, 나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기 싫다면 딱히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제가 안전하다는 것만 확인했으면 되니까.”
“…이해해줘서 고맙네.”
별로 고마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뭐, 저것도 정치적인 언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