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6)
EP.36 지저의 성 탄탈로스
두 교육생과 한 마리를 이끌고 4층에 있는 교육실에 도착한 나는 즉시 강의를 시작했다.
“자, 조용조용. 다들 정숙! 오늘의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지는 언제나처럼 척수반사로 하품을 하고는, 관리실 뒤편으로 가서 배를 깔고 엎드렸다. 아무렴 그래도 그렇지, 이해하기는커녕 그럴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구나. 언어에 담긴 지혜와 지성의 차이가 이토록 확연할진대, 정녕 개에게 들리는 사람소리는 사람에게 들리는 개소리와 동등하게 받아들여진다는 말인가.
허나 군자란 무례한 이들을 보고도 배울 점을 찾는 이들. 개가 예의를 모를지언정 인간이 똑같이 전락할 수는 없지. 나는 가능한 품위 있는 태도로 교육생들에게 말했다.
“오늘 개쩌는 이야기를 들려드릴 테니 감탄할 준비나 하고 계세요. 열렬한 박수를 보낼 준비도 미리 해주시고요.”
“대단치 않은 내용이면 박수 대신에 비수가 날아갈 거야. 해 봐.”
끌려온 게 여전히 마뜩찮은지 회귀자가 날카롭게 응수했다. 농담도 제대로 못하겠네. 이거 회귀자 무서워서 설명이나 하겠나.
땅에 떨어지다 못해 무저갱에 처박힌 교권을 한탄하며, 한 명의 인간과 한 구의 시체를 앞에 두고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분의 집중력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은 적극적 참여형 수업으로 변경하겠습니다. 무저갱.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 있나요? 네, 티르칸쟈카 교육생?”
양산을 살짝 들어 올린 흡혈귀가 느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대지모신교에서 지옥과 비슷한 의미로 쓰는 말 아니더냐.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아, 지모신의 지지를 잃어버린 땅의 말로.”
“정답입니다! 티르칸쟈카 교육생에게 10점을 드리겠습니다! 이 점수는 나중에 제 마음 속 랭킹에 반영되니까 잘 모아두세요!”
공수표로 대답에 대한 보상을 지불한 나는 이어서 소리쳤다.
“맞습니다. 무저갱은 뭇 종교들이 흔히들 묘사하는 지옥, 그중 대지모신교의 지옥입니다. 죄인을 벌하기 위한 가장 끔찍한 공간을 묘사할 때, 대지모신교의 마마보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개념이죠. 마마보이답게 어머니가 안 계시는 공간이 곧 지옥이래요. 어머, 꼴사나워서.”
유황이 불타오르는 연옥보다, 영겁토록 고통받아야 하는 저승보다.
대지모신교를 믿는 이들은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공포를 멀리서 찾지 않았다. 추락,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 느끼는 아찔함,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끔찍한 참상. 그것이 지모신교도들의 지옥이었다.
“그런데 말이죠, 지모신교도의 교리에 존재해야만 할 그 땅이. 애써 떠올린 지옥치고는 너무 심플해서 임팩트가 없었던 지옥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현실에 나타났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이곳, 무저갱 탄탈로스입니다.”
나는 발로 바닥을 톡톡 두들겼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땅, 이 전체가 무저갱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나름 메이저 종교의 지옥인 무저갱을 고작 감옥으로 쓰겠다는 군국의 계획이 수립된 이후, 탄탈로스는 중범죄자를 가두는 감옥 비슷하게 여겨졌습니다만. 어쨌건 본질은 감옥이 아닙니다. 발을 디딜 수 없는 땅. 영원히 떨어지며 시간도 공간도 없이 고독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심연. 그게 무저갱이죠.”
그러나.
여기서 이상한 점을 느껴야 한다. 위화감을 깨닫고 내 말에 지적해야 한다.
어째서, 무저갱 속에 있는 우리는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지를.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건 진짜 교육이 아니다. 배움을 받는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추론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교육자의 의무.
화두를 던진 나는 교육생들의 생각을 읽었다.
‘오오. 흥미롭구나.’
‘여기까지 아는 이야기. 탄탈로스의 구조에 대해서는 언제 말하려나.’
“멍….”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이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맞추려는 의욕이 전혀 없어!
심지어 마지막은 생각도 아니야! 진짜 짖고 있어!
“여러분,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런 무저갱에 어떻게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하구나. 설명해보아라.”
이 향상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놈들 같으니. 둥지에서 악을 쓰는 아기새도 아니고 입 안으로 떠먹이기까지 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흰 분필을 잡고 칠판으로 향했다. 녹색 칠판 한가운데에 두 줄의 세로선을 길게 그었다. 무저갱이다.
“자, 보세요. 무저갱은 기본적으로 바닥이 없는 땅, 그렇기에 영원히 떨어지는 깊은 구덩이입니다. 따라서 만일 누군가가 무저갱에 떨어진다면.”
분필을 빙글 돌려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팔꿈치에서부터 마력을 끌어올려 가공한다. 분필 끝에 희미한 연금광, 신비를 담았다는 증거가 허공에 녹아내리듯 반짝인다. 인챈트한 분필로 세로선 사이에 기호화된 사람 한 명을 그렸다.
사람 그림은 팔다리를 쭉 벌렸다가, 아래쪽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정면을 보고는. 철 지난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떨어졌다.
“밑바닥에 닿을 일이 없으니, 계속, 계속 떨어지겠지요. 충돌보다 죽음이 먼저 찾아오는 희귀한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마치 진짜 무저갱이라도 온 듯, 사람 그림은 팔다리를 휘저으며 칠판 아래쪽 모서리까지 떨어졌다가… 그 아래로 사라졌다.
분필에 해둔 간단한 인챈트를 통해, 이 분필로 그린 그림은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드는 마력도 얼마 안 되어 나 같은 마력 버러지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군국의 칠판은 양면. 칠판 뒤쪽으로 돌아간 사람 그림은 이젠 거꾸로 칠판을 기어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칠판 꼭대기에서 다시 나타난 사람 그림은 아까와 똑같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자, 어때. 내 테크닉.
‘요즘은 움직이는 그림이 흔한가 보구나. 신기하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는 것을 보니 그리 대단한 건 아니겠지.’
‘마력을 운용하는 섬세함이 제법이네. 흥, 그래.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거지?’
1타 강사나 할 법한 기교를 부렸는데도 반응이 영 시원찮네. 들인 공에 비해 나오는 게 없구나. 변덕스럽기 비할 바 없다는 주식도 너희들보다는 정직하겠다.
쳇. 이제 재주 부리지 말고 설명이나 하자.
“하지만 무저갱에는 바닥이 없다뿐이지 벽이 없는 건 아니죠. 발 디딜 곳은 없지만 사방을 둘러싼 절벽은 있잖아요? 그리고 만일, 이 벽 어딘가에 조그만 턱이라도 있다면. 혹은 턱을 만든다면.”
세로로 된 선에다 분필로 툭 튀어나온 요철을 그렸다. 그동안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던 사람 그림이 마침 나타난 요철에 통 부딪혀서 튀어 올랐다. 머리에 비해 짧은 팔을 허우적거리던 사람 그림은 간신히 요철 위에 발을 디디고 섰다.
“이렇게, 잠깐이나마 붙잡고 설 수 있겠죠? 비록 이곳이 무저갱이라지만 떨어지는 일은 없어질 겁니다.”
물론 먹고 자고 살기에는 부족한 땅이다. 인간의 삶이란 최소한의 공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러나 시체라서 관 누울 공간만 있으면 되는 흡혈귀는 그림을 보고 의아해했다.
“응? 저 정도라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더냐?”
흡혈귀의 의문에 고개를 저었다.
“대지모신의 저주는 그렇게 말랑말랑하지 않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편법이에요. 디딜 수 있는 흙이라면 그 역시 땅. 무저갱에서는 그러한 땅 역시 언젠가는 침식하여 저 아래로 사라지고 말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필로 그려진 요철이 녹아내리듯 아래로 서서히 흘러내렸고, 그 위에 서 있던 사람 그림이 불안한 듯이 폴짝거리며 벽에 바짝 붙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무저갱은 저주받은 땅. 만인의 어머니는 이곳에 한해서 발 디디고 서는 것을 허락지 않으니.
이윽고 발 디딜 공간이 사라지고, 한 뼘의 조그마한 안식처를 잃어버린 사람 그림은 다시 기약 없는 추락을 계속했다….
“자, 그래서 숱한 모험가들이 무저갱 아래쪽에서 잠들어있을 유산을 찾기 위해 몸을 던졌지만, 정작 그들의 남은 재산이 유산으로 바뀌게 되었죠. 벽에다가 못을 박고 로프로 몸을 묶었지만, 땅 전체가 아래로 침강하는 마당에 결국 그들도 무저갱의 먹이가 되었어요. 먹어봐야 독인지 음식인지 아는 멍청이들의 목숨을 딛고 사람들은 드디어 무저갱에 접근하지 않을 지혜를 얻었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군국은 무저갱의 이런 특성 역시도 사용하기로 결정했죠.”
칠판에 그린 무저갱 위에 커다란 원판을 그렸다. 그 위에 커다란 5층 건물과 높게 솟은 전등을 묘사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건물이 무엇인지는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흡혈귀가 작게 탄식했다.
“이곳이구나.”
“네. 군국은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거대하냐면, 이 무저갱을 맨홀 뚜껑처럼 뒤덮을 동그란 구조물을요.”
“맨홀?”
“천년 전 사람이라 맨홀을 모르시는구나. 그냥 우물 뚜껑이라고 생각하세요. 어쨌든.”
지휘하듯 손가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분필로 그려진 탄탈로스 그림이 천천히 무저갱 위로 떨어진다. 거대한 운석처럼 느릿하나 무거운 움직임으로.
쿵,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고작 분필 그림이 내려앉은 것이니 소리 따위 들릴 리 없지만, 둔중한 움직임 하며 분필 가루가 흩날려 떨어지는 디테일은 없던 소리마저 상상하도록 만들었다.
스스로 연출에 만족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군국 공병단에게 콘크리트란 만능의 돌. 그것으로 땅을 빚어내고 기둥을 세워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물을 무저갱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위에 죄수들을 사람들을 풀어놓았죠.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은 공간에서 감히 어딘가에 발을 디디고 있는 그들 모두 저 아래로 가라앉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땅은 가라앉을 수 있지만. 콘크리트는 그러지 않는다. 흙과 모래의 집합이 아닌, 분리된 하나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캐내고, 인간이 가공하고, 인간이 틀에 부은 뒤 철골을 뼈대 삼아 들이붓고, 인간이 하나하나 설계하여 만들어낸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비록 대지의 산물로 만들었다고 할지언정 결코 땅이 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거대한 구조물, 즉 물건이니까요. 원래 물건이라면 무저갱 아래로 떨어져야 하지만, 무저갱의 폭보다도 넓은 터라 양쪽 끄트머리가 걸쳐졌습니다. 그 결과, 이 탄탈로스는 떨어지지 않고 그저 가라앉기만 합니다. 이렇게.”
무저갱의 벽이 질척한 진흙처럼 흘러내린다. 동시에 무저갱을 뒤덮은 커다란 구조물도 점점 아래쪽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떨어지는 일은 없다. 맨홀 뚜껑은 뒤집힐지언정 아래로 빠지지 않는다. 양쪽 벽에 걸린 채 천천히 미끄러지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침강한다.
“우리는 이렇게, 가라앉는 땅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목구멍에 걸린 빵조각처럼.”
감마에게 감사하자.
만일 그가 관리실 지하를 통해 저 아래까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을 테니. 덕분에 지식이 늘었다.
당신이 남긴 최후의 지식. 잘 쓰겠습니다.
‘이 땅, 이 모든 게 인공적인 물건이라니…. 바위치고는 이질적이라 생각했다만, 놀랍구나.’
흡혈귀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칠판과 땅을 번갈아보았다. 관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는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들기기까지도 했다.
아니, 신기해하지만 말고 좀 무언가를 느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