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76)
마침 피뢰탑 벽면에 네모난 방이 나 있었다. 지붕부터 바닥까지 철로 밀폐된 그 방은 꼭 강철 상자처럼 보였다. 밖에 천둥벼락이 치든 마차가 들이박든 멀쩡할 것 같다.나와 아지가 앞서서 걸어갔고 티르는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티르가 상자 안으로 발을 디뎠을 때, 다른 이들을 안내하던 우레회주는 그제야 우리를 살필 여유를 얻었다.
“잠깐. 그건.”
‘피뢰탑 정상으로 향하는 승강기인데.’
응? 승강기? 그게 무슨.
“멍?”
마침 들어오고 바로 안쪽에 빨간 버튼이 보였다. 유심히 그걸 지켜보던 아지는 홀린 듯 버튼을 꾹 눌렀다.그 순간 강철 문이 쾅 닫혔다. 아지가 놀라서 그대로 멈춘 사이, 강철로 된 상자는 갑자기 크게 흔들리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멍멍멍!”
“와아앗! 납치당한다!”
그렇게 나와 아지, 티르는 승강기에 담긴 채로 솟아올랐다. 지상을 저 아래에 둔 채로, 상당히 빠르게.한참을 솟구치던 상자는 쿵, 하고 어딘가에 부드럽게 부딪혔다. 승강기가 완전히 멈춘 뒤 문이 열리고, 우리는 도망치듯 그 안에서 뛰쳐나왔다.티르는 승강기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힘 쓰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 장치인가 보구나. 마법을 쓰는 것이냐? 아니면 사람이 손으로 직접?”
“아니요. 아무래도 우레방아가 돌아가는 힘을 쓴 것 같네요.”
내 말에 호응하듯, 우레방아의 첨단이 피뢰탑 최상층을 스치며 회전했다.구름 폭포에 기대어 돌아가는 커다란 우레방아에는 미세한 요철이 새겨져 있었다. 거기에는 우레방아에 비하면 훨씬 작은 톱니바퀴들이 우글거리며 이어져 있었다. 승강기 도르래를 돌리는 톱니바퀴도 그중 하나였다.
“구름폭포가 우레방아를 돌리면, 그 우레방아와 연결된 부분이 회전하면서 힘을 주나 보네요. 승강기는 물론이고 다른 부분에서도 활용되는 것 같아요.”
보아하니 톱니바퀴가 이어진 곳은 승강기뿐만이 아니었다. 우레방아가 피뢰탑을 관통하고 있는 걸 보니 저 안쪽에는 더 많은 기계장치가 있을 것 같다. 피뢰탑은 단순히 벼락을 피하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벼락을 힘으로 바꾸는 장치였던 모양이다.
“흐으음. 마치 군국에서 본 톱니바퀴 장난감과 비슷하구나.”
“군국을 설계한 막시밀리앵은 열국 출신이잖아요. 그도 여기서 모티브를 얻었겠죠.”
지름 100m가 넘는, 멈추지 않는 우레바퀴가 동력을 제공하는 도시 클라우디아. 한때 클라우디아에서 지냈을 그의 심상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는 단순히 동력을 제공하는 걸 넘어서 톱니바퀴로 모든 게 이루어지는 도시를 만들기를 바랐으리라. 인간마저도.…뭐, 그게 되었으면 굳이 군국으로 오지는 않았겠지만.
타닥타닥 발소리를 내며 걸어간 아지는 피뢰탑 최상층을 두리번거렸다. 도리질 한 번 치고, 앞발로 머리를 탁탁 때리고, 한번 폴짝 뛴 다음. 뭔가 의아한 듯 말했다.
“멍? 여기, 괜찮아.”
“그러게? 원래 높은 곳이라면 더 벼락에 취약해지는데.”
신기하네. 아까 밑바닥에 있을 때는 금방이라도 벼락이 떨어질 듯 피부가 찌릿거렸는데. 더 높은 피뢰탑에 발을 디뎠는데 그런 감각이 아예 없다. 이게 피뢰탑의 힘인가?호기심이 생긴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저편, 우레방아와 맞닿은 부분에서 어린아이 몇 명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여기 오시면 안 돼요!”
우레회주와 비슷한 복장을 한 아이들이었다. 신관복처럼 두꺼운 천으로 전신을 꽁꽁 싸맨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이곳은 우레 수련자들만 올 수 있는 곳이에요!”“우레회주 님의 허가가 없는 이들은 접근이 금지되어 있어요!”
아이들은 자못 필사적이었지만 재잘거리는 모습은 귀엽게만 보였다. 아지는 바쁘게 뛰어오는 아이들을 보고는 친근하게 짖었다.
“멍멍! 놀자!”
앞서 다가왔던 두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수인이다!”
“처음 봐! 놀까?”
“지금 그럴 때야?!”
여자아이 하나가 화 난 얼굴로 다른 아이들을 타박했다. 두 아이는 물론, 아지마저도 주눅이 들어서 귀를 늘어뜨렸다. 한숨을 내쉰 여자아이는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우레방아는 클라우디아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에요. 뇌신이 가장 먼저 공격하는 곳이고요! 그러니까 일반인은 접근하면 안 돼요!”
“우리는 일반인 아닌데? 우레회주가 직접 불렀어.”
“정말요…?”
“응. 우리가 침입자라면, 저 아래 있는 우레회주가 가만히 두고 보았겠어? 그토록 강력하고 위대한 우레회주가 말이야.”
딱히 허락 맡고 올라온 건 아니다만, 우레회주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상관없겠지. 내 말에 여자아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맞아요! 우레회주 님은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강력해요!”
“가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강해 보이긴 하더라.”
“신님을 빼면, 우레회주님께 대적할 상대가 없어요!”
“어이, 조심해. 함부로 신님을 부르면 안 된다고.”
아이들은 뇌신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지만, 그런 발언 조심해. 여기는 천신을 향한 증오로 불타는 흡혈귀의 시조가 있다고….아, 이미 늦었나.
무언가를 발견한 티르는 찬찬히 눈을 가라앉혔다. 신관복처럼 껴입은 아이들 손목에는… 철로 만들어진 로자리오가 반짝이고 있었으니까.끙. 이거 위험한데. 일단.
“위대하고 강력하신 우레회주님은 뇌신이랑 싸우곤 하니?”
vs대결만큼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주제도 없지. 내가 시동을 걸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대답했다.
“네!”
“누가 이겨?”
“이기기는 우레회주 님이 이기는데, 우레회주 님은 뇌신 님이 그냥 물러나는 것뿐이라면서 긴장을 풀지 말라고 해요!”
“구름 폭포 너머로 사라진 뒤에 다시 돌아온다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더 수련해서, 나중에 우레회주 님이 늙으면 대신 상대해야 한대요!”
“우레회주 님은 늙지 않으시지만요!”
아는 이야기 나왔다고 재잘대곤 있지만, 이 녀석들은 모르겠지. 지금 자기 목숨이 경각에 처한 사실을 말이야.나는 이야기가 끝나기 전, 얼른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뇌신은 왜 이곳을 공격하는 거니? 우레회주처럼 강한 인간이 있으면 그것도 쉽지 않을 텐데.”
뜬금없는 물음에 여자아이가 나를 약간 무시하는 투로 물었다.
“아저씨는 번개 도둑 이야기도 몰라요?”
“대충은 알아. 먼 옛날, 번개 도둑이 구름의 폭포를 타고 올라, 하늘의 궁전에서 벼락을 훔쳐 도망쳤다는 이야기지?”
워낙 유명한 이야기고 독심술로 읽을 수도 있지만, 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너희 입에서 신성모독을 끌어내야 너희가 산다고.
“하지만 잘못한 건 번개 도둑이잖아? 너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너희한테 지랄이니?”
“왜냐니요? 번개 도둑이 번개를 숨긴 곳이 클라우디아니까요.”
“초대 우레회주 님이 번개를 되돌려 드렸지만, 한 번 번개가 깃든 땅에는 그 힘이 머물렀어요. 그걸 괘씸하게 여긴 천신님께서 뇌신을 보내 이 땅을 벌하려는 거예요!”
큰일이네. 그 신은 꺼내면 안 되는데. 일단 지르자.
“천신도 참 속이 좁구나. 번개를 되돌려줬는데도 벌을 내리네.”
티르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와는 별개로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서 입가에 손을 댔다.
“쉬잇!”
“천신 님 듣겠어요!”
“천벌이 내려와요!”
시끄러워. 여기는 시조가 듣고 있다고.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나를 언제 죽일지 모르는 천신보단 당장 나를 죽일 수 있는 시조가 더 무서운 법이야.
“들으면 어때? 사실인데.”
“그치만!”
“그리고 너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로, 그것도 되돌려 줬는데도 아득바득 찾아와? 악질 일수꾼도 정도가 있지.”
“아, 아닌데. 우리는….”
뇌신을 직접 보아 온 아이들은 쉽게 대답 못하고 어물거렸다.그래도 이곳의 신앙은 성황청처럼 맹목적이진 않다. 옆에 흡혈귀의 나라가 있고, 앞마당에는 황금경이 배회하는 땅이다. 신전은 있을 수 없고 신관도 섣불리 방문하지 못하는 이 땅에서, 손익계산에 밝은 열국인이라면.
“애초에, 너희 위대하신 우레회주 님이 왜 뇌신과 싸우겠어? 뇌신이 나쁜 놈이니까 싸우는 거 아니야?”
우레회주에 대한 믿음과 저울질하게 해보니, 아이들은 의외로 쉽게 수긍했다.
“…맞아요. 뇌신은 나빠요. 우레회주 님을 괴롭히고.”
“하지만 우레회주 님도 말씀하시던걸요. 신은 인간과 다르다고. 황금경도, 뇌신도 항거할 수 없는 존재이니 언제나 경외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고.”
“그럴 수 있지. 나쁜 사람이라도 힘이 세고 무대포라면 일단 수그리고 따라야 하는 거야. 더러워서 피하냐? 무서우니까 피하지.”
내 옆에 있는 시조처럼 말이야. 너희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니까? 지금은 안색이 많이 풀어졌지만!
‘휴가 걱정이 깊구나. 내 앞에서 신앙을 표현하지만 않는다면 상관하지 않는데.’
티를 내면 남녀노소 누구나 죽인다는 거잖아!어쨌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선행을 베푼 나는 한결 안심해서는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나쁜 뇌신은 위대하신 우레회주 님과 우리 비밀병기가 해결할 테니….”
내가 한창 말할 때였다.우레방아가 불길하게 울부짖었다. 그와 동시에 구름 폭포의 표면에서 전류가 번쩍거렸다. 마치 우레방아의 표면을 잡아당기듯, 구름 폭포와 우레방아가 맞닿는 부분이 빛나는 벼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찌릿찌릿한 느낌. 벌레가 피부 위를 기어당기고, 전신의 털을 다 잡아당기는 듯한 기묘한 기분.
무엇보다, 벼락 감지기인 아지의 털이 한꺼번에 들뜬다. 털이 솟는 방향은 위가 아니라… 구름 폭포 쪽.
하하. 양반도 못 되네. 조금 전 뒷담화를 까고 있었는데 눈치 없이 등장하다니. 티르를 나중에 설득하고 일단 아이들 말에 찬동할 걸 그랬나.
여자 아이가 안색이 새파랗게 된 채로 외쳤다.
“뇌신이에요!”
먼 옛날부터 인간들은 벼락이 먼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뒤이어 들린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건 빛과 소리의 속도 차이 때문에 생긴 오해지, 사실 벼락의 자식인 천둥과 번개는 쌍둥이다. 번개의 빛이 천둥의 소리보다 더 빠르기에 먼저 태어났다고 여기게 되었을 뿐.
그러나 천둥번개를 눈앞에서 겪은 지금. 나는 원치 않게도 둘이 쌍둥이라는 걸 직접 실감할 수 있었다.
시야 한쪽이 벼락으로 물든다. 샛노란 빛이 망막을 단색으로 색칠한다. 아주 잠시간, 나는 뇌신의 징벌을 제외한 그 무엇도 내 눈에 비치지 않는다.동시에 세상을 찢어버릴 듯한 천둥 소리가 달팽이관을 맴돈다. 너무 큰 소리는 고통 그 자체가 되어 머리를 뒤흔들었다.
내게 독심술이 없었다면, 타인의 주관을 훔치는 힘이 없었다면 잠시간 무력화되었겠지.
“하필 지금!”
아이들이 구름 폭포 위쪽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간신히 시야를 회복한 나도 비틀거리며 폭포 위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뇌신을 보았다.
구름 폭포 꼭대기에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거린다. 뇌전과 폭풍이 응축되어 생긴 듯한 거인이 폭포 위쪽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름 위로 상반신만 내민 거인의 눈에는 벼락으로 된 안광이 번쩍거리고 있었고, 입술은 뇌운이 한층 더 응축된 것처럼 보였다.
비바람이 몰아친다. 평화롭게 땅으로 떨어지던 구름 폭포는 뇌신을 영접하고는 거세게 파도치고 있다.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고, 거센 바람이 우리 몸을 뒤흔들고 있다.
황금경 다음은 뇌신이라니? 액이 꼈나, 왜 방문하는 곳마다 이래?언제나 태평하던 티르조차도 범상치 않은 힘을 느끼곤 말했다.
“저게 뇌신이더냐?”
“저도 초면이라 잘 모르겠지만, 그런가 봐요! 저게 뇌신 아니면 누가 뇌신이겠어요?”
“구름 폭포를 몇 번 지나와도 저런 걸 본 적이 없거늘….”
“마지막으로 지나갔을 때가 언젠데요?”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삼백 년 쯤 전인가.”
“한참 전이잖아요! 강산이 서른 번쯤 변하면 뇌신도 찾아오나 보죠!”
잠깐. 티르도 처음 본다고? 먼 옛날 구름 마을을 지나서 공국을 건설한 티르가?신은 존재한다. 위대한 자연의 이치는 인간과 상관없는 곳에서부터 존립하여, 찾아내기 전까지도 오롯하게 그곳에서 기다린다.하지만… 저게 뇌신?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우레 수호자라고 자칭했던 아이가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고개를 숙이세요!”
위기를 직감하고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인 순간.
[—!]뇌신이 입을 열자 목소리 대신 천둥이 몰아쳤다. 구름과 비슷한 높이에서 내지르는 노호조차도 세상을 진동시킬 듯했다. 우레방아를 겨냥한 뇌신이 팔을 치켜들었다. 빛이 번쩍거리는 손에는 하늘에서 뽑아낸 듯한 벼락의 창이 들려있다. 저걸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천둥과 함께 벼락이 다시금 떨어졌다.
“이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