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39)
EP.39 청결은 생명
무저갱이 지상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공기의 질일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바람은 하늘에서 오며, 온갖 지저분한 것을 품은 땅의 공기가 더 더럽다는 건 주지의 사실. 한데 하늘에서 가장 먼 무저갱의 공기가 왜 맑다는 말인가?
그건 바로 무저갱의 특성에 기인한다.
이곳은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은 곳이라, 그녀의 피륙인 흙과 먼지는 자연의 섭리처럼 이곳을 피해간다. 이만한 무저갱이 위치해 있음에도 황야가 침식되지 않은 게 그 탓이다. 흙먼지가 떨어지지 않기에, 이곳은 의외로 더럽지 않다.
그에 더불어, 무저갱에는 바닥이 없다. 수학자들이 좋아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아무리 아래에 있다고 한들 그보다 더 아래쪽이 존재한다는 뜻. 따라서 공기보다 무거운 것들은 더 아래로 가라앉는다.
본래 고여야 할 공기는 다 아래로 빠져나간다. 가끔 탄탈로스에서 드물게 바람이 느껴진다면, 그건 길을 잃고 무저갱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의 한 조각이다. 조난당한 바람은 먼지나 냄새처럼 바람에 녹아드는 것을 품에 안고는 무저갱 곳곳에 난 구멍을 따라 아래로 흘러간다. 그러다 보니 무저갱 내부 공기는 맑고 깨끗하기 그지없다.
삶의 질을 매길 때, 내가 어디 있냐보다 내 아래가 있는지 여부가 훨씬 중요한 지표이다. 온갖 더러운 것들은 더욱 아래로 떨어져 고이기에.
이것으로 우리는 행복이 상대적인 가치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도 바람이 드물고 공기가 무겁다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최소한 건강한 호흡은 보장해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대지모신의 저주가 무색하게, 무저갱은 빛이 없다는 점 말고는 꽤 쾌적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멍! 멍멍!”
오늘도 개 알람과 함께하는 상쾌한 아침. 나는 양손을 쭉 뻗고는, 코로 상쾌한 공기를 가득 들이 마셨.
“에에엣취!”
“머멍!”
폭탄과도 같은 재채기가 터졌다. 아침부터 예기치 않게 찾아온 손님이 내 폐부를 쥐어짰다. 아지가 놀랐는지 양팔을 가슴께에 모으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씁, 아침부터 격렬한 재채기 하면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데. 근육이 놀란단 말이야.
그보다 갑자기 재채기가 왜?
“며칠 지냈다고 생활 먼지가 많이 생겼나…?”
코를 쓱쓱 닦는 내 눈에, 공중을 날아다니는 무언가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방안을 날아다니는 그것을 노려보았다. 광량이 부족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황금색, 길쭉하고 낭창거리며 휘어지는 가느다란 건….
“털?”
“멍!”
아지가 나를 보고 짖는다. 마침 아지의 머리와 손발에 난 털이 눈에 들어온다. 갈색과 황금빛이 섞인, 아니, 원래 황금색인데 때가 묻어 지저분해진 것처럼 보이는.
그 털은, 지금 허공에 떠다니는 것과 똑같은 색을 하고 있었다. 더럽고, 먼지가 가득 쌓인 모습으로.
흠.
“아지야.”
“멍?”
“돈가스 먹으러 갈래?”
“멍! 갈래, 갈래!”
돈가스가 뭔지도 모르는 녀석이지만 일단 먹으러 간다는 아지. 나는 그런 아지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오가며 천신과 대지모신 사이에 연서를 전달하는 전령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온전히 대지모신의 것이 아닌 그 액체는 본능에 따라 낮은 곳으로 파고든다. 그곳이 무저갱이라도 개의치 않고.
그러나 무저갱은 무한한 심연. 아래쪽으로 볼록한 낙하산을 탄 채 구름에서 땅까지 단숨에 뛰어내리는 앙증맞은 공수부대도, 무저갱에서는 영원히 닿지 않는 땅을 향해 나아가다 스러져버린다. 공기 중에 녹아버린 물은 이제 또 다른 공기가 되어 떠다닌다.
군국 특제 물탱크는 이렇게 기체 상태가 된 물을 포집한다. 아쿠스 마법이 인챈트 된 거대한 포집기에 물이 맺히면 그건 필터가 달린 관을 타고 물탱크 속으로 흘러간다. 그곳에서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수도꼭지를 열 때까지 잠자코 기다린다.
탈옥 사건이 일어난 탓에 사용량이 크게 줄어든 물탱크에는 물이 잔뜩 찰랑거리고 있었다. 인간이 사라지니 풍족이 도래했다.
물의 양을 확인한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정도면 저 똥개 씻기에는 충분하겠지.”
물탱크를 잠시 잠그고 대신 파이프에 호스를 연결했다. 시험 삼아 호스를 여니 물이 어디 막힌 듯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높이 차가 얼마 없어서인지 수압이 시원찮다. 씻기 전에 미리 받아두는 편이 좋겠네.
나는 호스와 욕조를 들고 배수구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는 아지를 불렀다.
“자. 아지야….”
그러나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아지는 어느새 저 멀리까지 달음박질친 터였다. 아지는 내가 쥔 호스가 총이라도 되는 것처럼 네모난 상자 뒤에 숨어서 짖었다.
“멍.”
“아지야. 이리 와. 씻어야지.”
“멍.”
“싫기는 뭐가. 네 손발을 봐.”
아지는 내 말대로 자기 손발을 들어서 보았다. 폭신한 털장갑을 낀 듯 풍성한 털뭉치 사이사이에 온갖 먼지와 때가 숨어있었다.
더러워 보이지만, 저 정도면 그나마 양호한 것이다. 만일 무저갱이 아니라 지상이었다면 저 자율주행하는 네 발 달린 먼지털이개가 온갖 먼지를 휩쓸고 탄탈로스를 활보했을 테니.
“자, 봤지? 더럽지?”
“아니, 깨끗해!”
“뭔 소리야. 그게 깨끗하다고?”
“멍! 나, 털 가끔 핥는걸! 깨끗해!”
그러고 나서 손에다가 혀를 갖다대는 아지. 저 질병의 온상에 혀를 댈 셈이다.
하하. 저게 미쳤나.
“멈춰!”
“멍!”
아지는 혀를 갖다 대려는 그대로 멈춰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한숨을 쉰 나는 호스를 놓고 아지를 향해 다가갔다.
“네가 고양이냐? 평소에는 핥지도 않다가 신경 쓰이니까 이제 핥으려고 해? 아서라. 더럽다.”
“멍! 나, 안 더러워!”
“더러워. 먼지도 많잖아. 냄새도 나고, 털도 많이 빠진다고.”
“멍! 너도 털 많이 빠져!”
“네 털이랑 내 털이랑 비교하지 마! 같은 탈 자, 모 자를 써도 장르가 다르다고!”
씩씩거리며 아지에게로 다가가, 겨드랑이 뒤로 손을 넣어서 질질 끌었다. 아지는 내키지는 않는 듯 몸을 뒤틀었지만 그래도 냅다 뿌리치고 달려가지는 않았다.
그러다 호스에 점점 가까워지자, 아지의 발이 꼿꼿이 서더니 발톱이 땅을 파고들었다. 아지의 몸이 못 박힌 듯, 아니, 그냥 콘크리트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 이거 참. 이걸 그냥 끌고 갈 수도 없고….”
상대는 짐승의 왕.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북풍과 태양의 고사이다. 몸을 어찌할 수 없다면 마음을 돌리는 수밖에. 나는 아지의 머리 위로 얼굴을 내밀고는 말했다.
“아지야. 이리 와. 일단 씻자.”
“멍.”
“다 씻으면 맛있는 거 해줄게.”
“멍….”
맛있는 거라는 말에 아지는 잠깐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얘는 왜 꼭 향응을 받아야만 움직이려고 하냐고. 내가 군국 관료들 구워삶았을 때도 이렇게는 안 했다. 개가 뭔 정승보다 더하냐.
그래도 어쩌냐. 약한 놈이 참아야지. 이 개는 웬만한 정승보다 세니까.
나는 아지의 귓가에다 대고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저번에 햄버그 기억나지? 고기를 굽고 그 기름으로 팬을 달구어, 돼지기름의 온도가 충분히 올라오면, 콩과 함께 갈아서 만든 패티를 굽는 그 음식 말이야.”
“머엉….”
“그런데 사실 그 햄버그는 미완성이야. 찰기가 부족해서 조직이 다 부서졌거든. 그냥 팬에 굽는 고기 페이스트나 다름이 없었지. 하지만 이번엔 달라. 보급품에 계란도 있었고, 버터도 있었지. 치사하게 한 판도 다 안 줬지만…. 어쨌든. 이번에는 완벽한, 하나처럼 딱 달라붙어서, 충분한 기름 위에서 익는 햄버그를 만들 수 있어.”
“멍….”
상대의 공감각을 자극한다. 아지의 전신에서 힘이 빠진다. 다시 당겨 보니 발톱도 쑥 하고 빠져나왔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지를 배수구 근처까지 끌고 갔다.
“그래. 착하지, 착하지….”
자. 일단 옷을 벗기고. 그 다음 욕조에 던져넣고 물을 끼얹자. 전신을 빡빡 닦은 뒤 아지가 몸을 말릴 동안 벗긴 옷을 빠는 거야. 갈아입을 옷이 있으면 좋겠지만 여기 남은 옷들은 죄다 의복 패킷. 아지의 몸에는 생체 단말이 없으니 입을 수 없다. 흠. 말리는 동안은 그냥 기다리라고 할 수밖에.
계획은 다 세웠다. 나는 아지를 잠시 놓고, 물을 조금 받아둘 요량으로 호스를 열었다. 졸졸 흐르는 물이 욕조 대용으로 마련한 작은 상자에 떨어졌다. 상자를 두들기는 물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고.
“멍.”
휘릭.
그리고 이 똥개는 내가 끌고 온 것도 무색하게 저 멀리 달아나고 말았다. 자기도 좀 찔리는지, 짧게 짖으며.
“멍.”
나는 얼굴을 짚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뭐 왕도 아니고. 수발을 들어주며 씻겨준다는데 그것마저 거부해?
아니, 왕은 맞구나. 그래도 내 왕은 아니잖아. 기껏해야 개들의 왕이지.
화가 난다. 내가 지금까지는 귀여운 개 키우는 기분으로 장단을 맞춰주기는 했는데, 이 정도로 제멋대로면 더 감당할 이유가 없다.
“멍…?”
아지가 나를 보고 조심스럽게 짖었다. 내 화난 기색을 알아차린 듯, 힐끔힐끔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 기분을 알았음에도 당장 이곳으로 오지 않는 게 심히 괘씸하다.
잔뜩 화가 난 나는 곧장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 강아지.”
이름을 부르자 아지가 움찔한다. 나는 꼰 다리로 앉아 몸을 닫은 채, 감정을 담아서 말했다.
“너, 정말 이럴 거야? 아까 나 재채기하는 꼴 보고도 그래?”
쾅쾅. 준비해온 바가지로 바닥을 세게 두들겼다. 그러자 아지가 흠칫 놀라면서 죄 지은 표정을 했다.
떨리는 목소리, 일그러진 표정, 거칠어진 숨.
명백한 분노의 징조.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이며, 인간의 감정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람보다도 훨씬 더 잘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인간은 ‘예의’라는 이름 아래 다른 사람에게 자기 감정 숨기는 법을 배우지만, 개에게는 예의를 차리지 않으니까. 그래서 개를 사랑하는 거고.
어쨌건. 나는 화가 났고, 그 기색을 숨길 생각도 없다. 내 의도대로 아지는 내 기분을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나는 너를 위해 밥도 해주고, 공놀이도 하고, 같이 산책도 다녀! 맨날 밥 먹을 때마다 너 부르고 매일같이 그 더러운 털도 쓰다듬지!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많이 해주는데! 너는 왜 씻는 것조차도 안 하려고 해!”
“낑….”
겁에 질린 아지가 꼬리를 만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스스로 내게 다가올 정도는 되어야 혼내는 분위기를 풀 작정이었다.
안 오면?
그걸로 끝이다. 저 똥개와의 질긴 인연은 이것으로 끝. 내 마음 속에서 유기해버릴 작정이다.
“네가 마당에서만 산다면 상관없어.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오잖아! 가끔은 내 침대에 올라오기도 하잖아! 그러면 내 보금자리가 다 더러워진다고! 내가 괜히 매일 씻는 줄 알아? 너랑은 달리 나에게는 청결이 필요해!”
“끼잉, 낑.”
“이 정도도 참지 못한다면 너는 내가 아는 강아지 아니다. 앞으로 너를 보면 발길질부터 나갈 거야. 알았어?”
“끼잉….”
그동안 쌓은 인연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다. 솔직히, 이대로 갔으면 짐승에게 깊은 환멸을 느꼈을 텐데. 아지는 그래도 나와 연을 끊고 싶지는 않았는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내게 다가왔다.
후, 그래. 온 게 어디냐. 나는 아지를 무릎 위에 앉히고는 팔로 감쌌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호스를 틀어 상자 안으로 물을 흘려보았다.
떨어지는 물방울과, 그것들이 수면에 연달에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탄주. 더러운 것을 쓸어내리는 시원한 소리였으나 아지에게는 악령의 진혼곡처럼 들리는 모양이었다. 아지는 소름이 끼치는 듯 눈을 꼭 감고 입을 꽉 다물고는 소리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내 팔을 풀고 도망치지는 않았다. 기특하게도 참은 것이다.
좋은 태도다. 호스를 끄고는 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잘했어.”
“멍….”
힘없는 울음소리. 나도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아지와 몇 달은 더 같이 지낼 텐데, 서로 접촉할 때마다 서로의 먼지와 병균을 교환하며 질병을 양성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진짜, 이곳이 무저갱 아니었으면 이미 나는 병에 걸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자. 그럼 옷부터 벗자. 손 들어.”
아지는 여전히 눈을 꾹 감은 채 팔을 절반 정도 들었다. 나는 아지의 옷을 벗겨내려고 하다가, 무언가 턱턱 걸리는 느낌에 아지의 옷을 다시 보았다.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셔츠를 가슴 아래쪽에서 단단히 묶어둔 상태였다. 어찌나 힘을 줘서 묶었는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옷이 벗겨지거나, 혹 누군가 벗기려는 일을 막으려고 해둔 것 같았다.
“참나. 별짓을 다 해요.”
의복 채킷은 착용자의 신체 사이즈에 딱 맞는 옷을 제공한다. 그건 가장 안쪽에 있는 보급형 셔츠도 마찬가지다. 소매며 목 둘레가 꽉 껴서, 패킷을 쓰지 않았을 때의 방식으로는 입고 벗을 수 없다. 이렇게 남는 부분도 없고.
하지만 생체 단말이 없는 아지는 의복 패킷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몇 치수 큰 사이즈의 셔츠를 입혔겠지. 그러니 옷이 흘러내리거나 쉽게 벗겨졌을 터이고, 그걸 막기 위해서 흘러내리는 부분을 묶을 필요가 있었을 테고….
“누가 개 옷을 벗기려고 한다고….”
…라고 하지만, 괜히 의식하니까 또 묘하네. 아지의 본질이야 어쨌든, 눈에 비치는 건 아무리 해도 여체니까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인간이란 결국 껍데기에 구애받는 생물인 건가?
뭐, 아무렴 어때. 쓸데없는 생각이다. 나는 정상적인 인간이다. 옷이나 마저 벗기자.
단단히 묶인 옷자락이 내 일을 방해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뒷골목의 마술사. 스스로 양손을 묶었다가 풀 수 있으며, 손가락 하나로도 매듭을 맺을 수 있는 손재주의 달인이다. 이런 것쯤이야.
저 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살살 돌리면 느슨해지겠군. 좋아. 빨리 풀고 욕조 안에 던져넣자….
그때였다. 옥상 문에서 회귀자가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수련했는지 머리카락과 옷 일부가 땀에 젖은 채로.
“여기 물이 안 나오는데, 물탱크를 잠그기라도 한 거야? 말도 없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던 회귀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순식간에 회귀자의 눈가가 내려앉으며 날카로운 시선이 나와 아지를 훑었다.
‘아지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는, 뒤에서 구속한 채 옷을 벗기려고 하고 있네. 아지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몸을 떨고 있고.’
회귀자의 생각은 참 짧았다. 그냥 순수한 의미로 말이다. 회귀자는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고는 천앵을 뽑아들었다.
‘좋아. 죽이자.’
잠깐. 논리에 뭔가 비약이 있지 않아? 그보다 ‘좋아’와 ‘죽이자’가 어떻게 같이 나오는 거야? 죽이는 건 전혀 좋지 않거든?
적의가 부풀어오른다. 나는 다급히 아지의 뒤로 숨으며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요! 이건 교육생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천검기. 천둥새….”
“멈추라고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