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5)
EP.5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대감옥 탄탈로스는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나, 평범한 시설로는 결코 가둬둘 수 없는 강력한 존재를 수용하고 격리한 곳. 사람이 끊임없이 들어가지만 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전해지는, 사실상 무덤이라고 여겨지는 장소다.
거기서 멀쩡히 살아나온 사람이 없다 보니, 탄탈로스에 대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눈덩이 굴러가듯 몸을 불렸다.
군국이 죄수들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하며 최종병기를 만들고 있다던지.
신화 속에서 나오는 괴물들이 지저를 활보하고 있다던지.
말이 교육대지, 사실 그냥 죽으라고 밀어 넣는 장소라던지.
나는 오늘 홀로 탄탈로스를 거닐며 그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탄탈로스는 소문이 무색하지 않게 대단한 장소이기는 했다.
무저갱.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은 밑바닥 없는 구멍. 그 아래쪽에 지어져 자력으로는 탈출하기 불가능한 심연.
그 안에는 개의 왕, 흡혈귀의 시조, 회귀자 등 신화적인, 역사적인, 초월적인 존재가 기거하고 있다.
골렘의 말에 따르면 탈출 사건이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의문이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이 모순의 심연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난리가 일어났다는 말은 사실인 듯, 감옥의 시설 대부분은 흉측하게 망가져 있었다. 철창은 엿가락처럼 구부러져 있었고 돌로 된 격벽 이곳저곳이 깨져서 건물의 철골이 흉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규모 폭력 사태가 일어난 흔적이 여실했다.
다만 피는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흡혈귀의 시조, 티르칸쟈카.
탄탈로스 지하에 잠들어 있는 가장 오래된 흡혈귀는 피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유혈사태가 일어나도, 거기서 흘러나온 유혈은 모두 그녀가 회수했으리라.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피가 저절로 그녀를 향했겠지. 마치 사과가 중력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유혈이 사라진 감옥에는 사태만이 남았을 뿐.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쩌면 여기 남은 놈들이 더 무서운 거 아닐까?”
조금 무서운 일이다. 이게 평범한 감옥이었다면 탈옥할 용기도 없는 나부랭이들을 향해 코웃음을 쳤겠지만…. 이곳에 남은 자들은 궤를 달리하는 괴물들.
시조 티르칸쟈카면 그 강대한 성황청과도 맞서 싸운 역사적인 괴물이며, 개의 왕은 짐승의 왕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존재.
그나마 둘 다 인간에게 적의가 없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발을 디딘 순간 살해당했을 거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그것도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해야 할 일은 하나네.”
인간에게 적의가 없었기에 탈출하지도 않았고 나를 죽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이들의 호감을 쌓아야 한다.
혹여나 후일 조금 기분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혹 내가 위험해지는 일이 생겨도… 내 편을 들도록.
결심을 마친 나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탄탈로스에 남아 있는 세 죄수.
개의 왕, 강아지.
흡혈귀의 시조, 티르칸쟈카.
회귀자, 셰이.
이 셋 중 누가 제일 안전하며, 호의를 얻기 쉬운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하게도 개의 왕 아지다.
태초부터 이어진 역사 이전의 시기. 그 시기부터 개와 인간은 친구였다.
태생부터 인간에게 충성스러운 개. 그 종족의 대표자인 아지는 살아있는 모든 인간에게 충성스럽다. 고작 군국 따위가 자유로운 짐승의 왕을 탄탈로스에 가둘 수 있던 것도 그 덕분일 터다. 아지는 인간이 시킨다면 우리 속에서도 얌전히 숨을 죽이고 기다릴 아이니까.
만일 다른 짐승의 왕… 늑대의 왕이나 사자의 왕이었다면 우리째로 찢겨나갔겠지. 그들이 아지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아지와는 달리 야성이 있기에, 그런 구속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군국이 왜 아지를 가두었는지는 수뇌부의 생각을 읽지 않는 이상 모른다. 하지만 대강 예상이 간다.
개의 왕은 모든 인간에게 충성스럽다.
군국의 편은 물론, 군국의 적에게도.
군국에게는 적이 많다. 내부의 적인 레지스탕스나 이웃한 연방의 손에 들어가면 곤란해지지 않을까 생각했겠지. 그래서 언제고 꺼내 쓸 수 있는 탄탈로스에 가둬둔 것이고.
“큭큭. 멍청이들.”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적이 쓸까 두려워서 창고 깊숙이 처박아 두고 방치하는 꼴이라니.
내가 알려주마.
모두가 쓸 수 있는 무기는, 꽁꽁 감춰두는 게 아니라는 것을.
램프를 들고 창고의 문을 박찼다. 두꺼운 먼지가 눈처럼 흩날리고, 안에서는 오래 묵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몇 개 남아 있는 백골을 적당히 치우고는 장대 몇 개와 쇠그물, 장작더미를 챙겨 나왔다.
나와서 보니 쇠그물은 테두리의 철사가 무언가 거대한 짐승을 잡다가 실패했는지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다. 뒷면에는 날카롭게 연마된 갈고리 같은 게 달려 있고 거기에 살점과 털조각이 진득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어떻게 사용하다가 망가진 건지는, 음. 잘 모르는 거로 하자.
나무 장대는 끄트머리에 날카로운 갈고리가 매달린 특제품이었다.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했길래 이런 흉악한 무기가 당연하다는 듯이 있는 건가.
어쨌든 장비를 대충 챙겨서 마당으로 나왔다. 살점과 털조각을 기름 먹인 천으로 닦아내고, 갈고리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 장작더미 위에 석쇠처럼 얹어놓았다. 준비를 마친 뒤 램프를 장작더미 비스듬히 대고는, 심지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튕겼다.
“볼트.”
오직 실용성만을 추구하며 만든 군국 제식마법이 불길을 당겼다. 손가락에서 전류가 튀고, 마력을 듬뿍 마신 램프가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작더미로 불꽃이 옮겨붙는 모습을 보며 통조림을 깠다. 뚜껑을 따자 새까만 덩어리가 단단히 굳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꺼내 물에 담그니, 덩어리 사이사이로 물기가 스며들더니 곧 원래 부피의 열 배는 될 법한 커다란 고깃덩이로 변했다. 솜이 물을 빨아들여도 이만큼 극적이진 않을 것이다.
군국의 7대 발명품 중 하나, 군용 압축 통조림이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여 음식 저장량을 20배 이상 끌어올렸다는 최첨단 압축 식량. 보존 마법으로 가공되어, 물만 부으면 순식간에 원래 부피로 되돌아오며 맛도 향도 원래 그대로! 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과대광고가 다 그렇듯 진짜 생고기에 비하면 식감이나 향에 손색이 있지만, 그래도 개 먹이로는 차고 넘친다. 나는 원래의 크기를 되찾은 고깃덩이를 석쇠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두꺼운 고기는 익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리지만, 내가 먹을 게 아니었기에 별 상관없었다. 그리고 아마 이걸 먹을 당사자도 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구울 때 나는 냄새.
나는 고기를 석쇠 위에 올려 둔 채 챙겨 온 종을 꺼내 흔들었다.
딸랑딸랑.
한 번 세차게 종을 울린 뒤, 다시 집어넣고는 불을 키워 고기를 구웠다. 붉은 고기는 더욱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에게 색을 빼앗기는 것처럼 칙칙하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배어 나온 육즙이 장작 위로 떨어지고, 연기와 그을음이 되어 위로 날아갔다. 그렇게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슬슬 시간이다. 다시 한번 종을 들고 흔들었다. 직후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맛있는 냄새! 밥이다! 밥!”
분명히 이어 말하고 있거늘 한 음절 한 음절이 들리는 위치가 달랐다. 달려오는 속도가 음속과 비견될 정도였다. 아지가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고, 팔에 힘을 준 뒤, 생각을 대충 읽고 타이밍을 맞춰서 그물을 당겼다.
직후 장작더미가 폭발했다. 재와 연기, 그리고 미처 타지 못한 나무조각이 가닥가닥 부러져 비산하는 가운데, 아직 시들지 않은 열기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단숨에 타올랐다. 화염이 잔해를 삼키며 퍼졌다. 고기를 노리고 장작더미 위로 뛰어내렸던 아지가 불꽃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멍! 뜨거! 뜨거워!”
말없이 망토를 들어 아지를 후려쳤다. 불똥을 다 날려 보내고 난 뒤, 털이 그을린 아지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픔도 잠시, 곧 내 손에 들린 고깃덩이를 보고는 눈을 빛냈다.
어림도 없지. 손바닥을 내밀며 외쳤다.
“기다려!”
움찔.
아지는 내 손바닥을 쳐다보며 몸을 낮췄다. 꼬리는 다급하게 움직이고, 눈동자는 멈춘 와중에도 끊임없이 굴러 갔다. 당장 고기를 향해 달려들고 싶다는 듯 몸을 움찔거렸지만, 아지가 힘을 주려는 순간 타이밍을 맞춰 손바닥을 내밀었다. 호흡을 읽힌 아지는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내 손바닥만 보며 낑낑거렸다.
“기다려? 얼마나?”
대답하지 않고 종을 꺼내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느릿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신기하게 생긴 물건이 움직이자 아지는 깜빡 고기도 잊은 채 내 손을 보았다. 천천히, 아지가 흥미를 잃기 직전까지 그저 느릿하게 좌우로 흔들다가, 아지의 관심이 다시 고기로 향하는 순간 종을 울렸다.
딸랑딸랑.
아지가 종소리를 완벽하게 인식한 때, 나는 그때를 노려서 덜 익은 고기를 대강 잘라 던졌다. 놀라는 와중에도 아지는 입으로 날아오는 고기를 낚아챘다. 입안에 들어온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면서도 아지의 시선은 내 종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자극 제어를 통해 아지는 종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했다. 이제 보상을 주기만 하면 된다.
“좋아! 잘 기다렸어! 잘했어! 역시!”
뜬금없는 칭찬에 아지의 눈이 의아한 듯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들뜬 목소리로 아지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너는 정말 굉장한 강아지야! 종소리도 구별하고! 기다리라는 말도 듣고! 너는 진짜 대단해!”
“어? 나 잘했어?”
“그래! 너는 정말 최고의 강아지야! 너무 좋아! 사랑스러워!”
내용도 없이 감정만 담아서 칭찬을 계속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먼저 경계부터 했겠지만, 마음의 문턱이 한없이 낮은 아지는 내가 칭찬할 때마다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아지는 고기를 꼴딱 삼키고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뛰어다녔다.
“멍! 멍!”
“좋아, 아지야! 우리 공놀이할까?”
“아우우우우!”
지금, 이 순간, 개의 왕은 세상 그 어떤 개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는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아지를 향해 열렬하게 박수를 쳐주었다.
보아라, 군국.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꽁꽁 숨겨두는 게 아니야.
다른 사람보다 조금만 더 ‘잘’ 쓸 수 있으면 된다.
나는 방울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직은 부족하다. 오늘, 통조림 고기로 만든 한 번으로는 결코 닿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그동안 차분하게 방울 소리를 들려주며, 좋은 감각과 방울 소리를 연관시키면.
이 방울은 개의 왕을 지배할 수 있는 컨트롤러가 된다.
크크크. 기다려라. 너희들은 나를 가뒀지만, 동시에 나에게도 시간을 준 셈이다.
바로 개의 왕을 조교할 시간을 말이지!
“크하하하!”
“멍! 멍! 멍!”
아지는 내 웃음소리에 숨어든 불길함도 눈치채지 못하고는, 그저 기뻐서 내 주위를 돌며 맹렬하게 짖었다. 곧 있을 공놀이를 한껏 고대하는지 몸이 단 것 같았다.
오냐. 공놀이, 해주마. 내 어깨를 조금 써서 개의 왕과 친밀도를 높이면 두고두고 힘이 되겠지!
그렇게 내가 개의 왕을 데리고 조금 더 넓은 공터로 이동하려는 때였다.
‘첫날부터 무슨 행동을 하나 했더니 아지와 함께 있었어? 이 남자의 저의는 도저히 알 수가 없네.’
앗, 깜짝이야.
갑자기 생각이 들려오더니, 회귀자가 내 뒤쪽으로 바짝 붙어 따라오는 중이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인사라도 하려는 때.
‘마침 잘 되었어. 은신술로 몸을 숨기고, 몰래 뒤따라가서 관찰하자. 혹시 아지를 타락시키려는 거라면 당장이라도 벨 수 있게.’
고개를 돌렸더니,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의 기척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만은 명료하게 들려왔다. 내 오른쪽 뒤 약 3m 되는 거리에서, 양팔을 모으고 조심조심 내 뒤를 따라오는 한 남장여자의 생각이.
못 본 척 허공을 훑은 다음, 천천히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어, 그러니까.
은신술을 하고 계시다고요.
못 본 척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