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6)
EP.6 나쁜 보호자만 있을 뿐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짐승이며, 손재주와 재료를 가지고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능력을 타고났다.
아지에게 가기 전, 나는 갈가리 찢겨진 옷가지를 발견하고는 대강 꿰매 공으로 만들어두었다. 시합에서는 도저히 못 써먹을 조잡한 공이지만 개 따위랑 놀아주기에는 차고 넘치는 완성도이다. 나는 공을 던졌다 놓았다 하면서 걸어갔고, 아지는 내 주위를 공전하며 따라왔다.
공을 던질 때마다 몸이 들썩거린다. 아지의 반짝이는 눈이 공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나는 공으로 아지의 시선을 끌며 넓은 마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암흑의 장막으로 몸을 감춘 채,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살펴 봐주겠어.’
그 뒤를 이상한 게 하나 뒤따라오고 있었다. 뒤를 힐끔거리고 싶은 기분을 참으며, 나는 천천히 마당으로 향했다.
곤란하네. 자기 할 일 안 하고 왜 내 뒤를 따라다니는 거지? 내가 뭘 했다고 그래?
나는 그저, 공과 간식으로 개의 왕을 조련하려고 했을 뿐이다. 채찍으로 살살 때려가면서.
본디 짐승을 조련할 때에는 당근과 채찍이라고 했다. 나는 내 행동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하지만 지금, 회귀자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이상 취할 수단에는 한계가 있다.
‘개의 왕은 짐승의 왕 중 몇 안 되는 인간의 아군이야. 저번 회차에서처럼 개의 왕까지 인간을 적대하게 된다면 훗날 있을 전투에 크게 불리해져. 혹 이 녀석이 아지에게 무언가 허튼짓이라도 한다면…. 사생결단을 내야지. 이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맞서 싸워야 해.’
생각을 읽은 뒤, 감옥 어딘가에서 주워 온 군국 제식 채찍을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무래도 채찍질이 그 허튼짓의 범주에 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디 조련이란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번갈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 말을 잘 듣거나 기특한 행동을 하면 +1, 고집을 부리거나 내 마음에 안 들면 –1. 특정한 행동에 피드백을 가하며 전체적인 행동을 서서히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학습시켜야 한다.
공놀이와 고깃조각을 당근으로, 채찍으로는 이것을 쓰려고 했지만.
‘혹여나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목줄이라도 채웠다간…. 그걸로 끝이야. 전력을 다하겠어.’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오늘 채찍질은 봉인해야 할 것 같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없다면 효율은 반 이하로 떨어지지만, 내 목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오늘은 당근만 주도록 하자.
이윽고 마당에 도착한 나는 공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자!”
“멍!”
당장이라도 공 던지는 자세를 취하자, 아지는 손과 발을 땅바닥에 착 붙이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는 와중에도 꼬리는 프로펠러처럼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가죽공을 데구르르 굴린다. 그러자 쏜살같이 달려나간 아지는 달려가면서 공을 낚아채고는, 부드럽게 커브를 그리며 곧장 내게로 달려온다. 팔다리는 인간의 것인데 사족보행이 어지간한 짐승 못지않다.
순식간에 다가온 아지를 보고 호들갑을 떨어주었다.
“잘했어! 아지야, 손!”
“멍!”
“좋아. 왼손!”
“멍?”
오케이. 이건 아직 안 되는구나. 괜찮아. 실망한 티 내지 말고. 개가 왼쪽 오른쪽을 구태여 구분할 필요는 없으니.
나는 아까 잘라둔 고깃조각을 꺼내며 외쳤다.
“나이스! 손발도 구분할 줄 아는구나. 역시 넌 최고야, 아지야!”
“멍! 나, 최고야! 멍멍!”
“최고인 강아지에게는 상이 필요하지. 여기 간식!”
자른 고기를 주먹 속에 감추고는 내밀었다. 아지는 내 손에 코를 들이대며 손을 정신없이 파헤쳤다. 꼭 보물을 채굴하는 듯, 손가락 속에 숨겨진 고기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잡힐 듯 안 잡힐 듯, 살짝살짝 애를 태우면서 손가락을 벌렸다 오므린다. 슬슬 아지가 짜증을 내며 내 손가락을 치워버리려는 때. 나는 손을 활짝 펼치고는 고기를 노출했다. 기회를 포착한 아지가 냉큼 고기를 낚아챘다.
충분한 방해와 뚜렷한 보상. 이것도 일종의 놀이로 인식한 모양인지, 아지는 만족스럽게 갸르릉거리며 내 손에다가 턱을 비볐다.
‘보아하니, 일단 평범하게 놀아주는 것 같기는 한데….’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목가적이라는 단어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동물과 인간의 교감. 자연의 상징인 짐승의 왕이 문명에서 온 한 인간과 교류하고 있다.
어때, 회귀자. 트집 잡을 곳 없는 완벽한 장면이지?
‘뭔가…. 진짜 개를 조련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아니, 이것도 거부감이 들면 어쩌라는 거야.
‘개의 왕이지만, 겉모습은 그냥 귀여운 개 수인이야. 외형이 사람인데 완전히 개 취급…. 역시 평범하지 않아. 주의해야겠어.’
생각을 읽은 이후 이토록 억울한 적이 또 없었다. 제대로 해도 뭐라고 그러네.
개를 개처럼 대하는 건 정상이다. 개를 사람처럼 대하는 게 비정상이고, 사람을 개처럼 대하면 변태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우습게 본다. 내 경험담이다.
따라서 세상에 옳은 유일한 진리는 개를 개처럼 대하는 일밖에 없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후로도 몇 번 공을 던지고 고깃조각을 던져주었다. 그러는 동안 회귀자는 숨을 죽인 채 내가 하는 행동을 계속 지켜보았다.
반복된 루틴은 타성을 부르는 법. 아지도 훈련보다는 공을 주워오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슬슬 채찍을 써야 하건만, 회귀자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지켜보려나. 볼 만큼 봤다면 이제 슬슬 돌아가 줬으면 하는데. 너무 좋은 반응만 해주면 개의 왕도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를 수 있단 말이지.
아니다.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언제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하는 법. 기약없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리는 건 너무 수동적이다. 내가 회귀자를 직접 쫓아내자.
물론 힘으로 쫓아낼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다시 한 번 공을 흔들었다. 질리지도 않는지, 내 신호를 알아챈 아지가 몸을 펄쩍 뒤집고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가자!”
“멍!”
아지가 신나게 대답하고는 뒤로 펄쩍 뛰었다. 나는 공을 몇 번 던졌다가 받은 뒤, 어딘가를 향해 냅다 던졌다.
회귀자가 서 있는 곳을 향해.
‘윽?!’
위치는 보이지도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은신술인지, 저쪽 언저리에 있다는 게 읽히는 데도 내 눈에는 저 너머의 감옥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독심술은 저 위치 어딘가에 회귀자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뭐, 대충 방향만 정하고 던지면.
“물어 와!”
“멍멍!”
‘피…할 필요는 없어. 빗나갔어. 하지만….’
상대방을 긴장시킬 수 있지.
은신술 같은 잡기술을 쓰는 녀석들은 다 관음종자들이다. 이런 관음종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수면 밖으로 나오는 일.
너만 마음 편하게 장막 속에서 지켜보겠다고? 어림도 없지. 너도 긴장감을 한번 느껴보라고.
“아지야! 물어 와!”
“멍!”
“잘했어. 한번 더!”
“멍, 멍!”
“야호!”
“아우우우!”
공을 던질 때마다 아지는 행복하게 울부짖으며 달려나갔다. 그럴 때마다 회귀자는 불안감에 움찔거렸다.
천방지축 요란하게 뛰어가는 아지는 말 그대로 날뛰는 짐승이라 도저히 예상할 수 없어서, 회귀자는 아지가 뛰쳐나갈 때마다 부딪힐까 봐 몸을 사렸다. 이제는 나와 아지를 감시하겠다는 생각도 뒷전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쭙잖게 머리 굴리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었다.
“가즈아아아아!”
“멍!”
이번에는 공이 회귀자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회귀자는 자신의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안 돼! 여기서 급하게 움직였다간 암흑의 장막이 풀려!’
격렬한 움직임은 은신술을 깨뜨린다. 회귀자는 이를 악물고는, 몸을 웅크리고 재빨리 바닥을 굴렀다. 공이 아슬아슬하게 위를 스쳐지나가고, 그 뒤로 아지가 펄쩍 뛰어서 쫓는다. 회귀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십년감수했어…. 하지만 이 이상은 위험해.’
좋아. 작전 성공이다. 회귀자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큭. 일단 물러나야겠어. 여기 있는 것을 들켰다가는 역으로 나를 경계하게 될 수 있으니….’
여전히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회귀자의 생각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서 충분히 멀어졌다는 뜻이다.
휴. 드디어 방해받지 않고 제대로 조련할 수 있겠구나.
‘아쉽지만 괜찮아. 들키는 것보다는 나아. 들키지만 않는다면 나중에 또 관찰할 기회가 있을 테니까.’
멀어지는 회귀자에게서 이상한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나중에 또 관음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회귀 동안 관음하는 법만 배웠나.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내가 네 은신술을 간파했노라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싶지만. 일단은 참자. 굳이 내 능력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렇게 회귀자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사라졌다. 그녀 나름대로 할 일이 있던 터라, 다시 되돌아오지는 않을 터.
나에게 되돌아온 것은 공을 물고 온 아지뿐이었다.
“멍! 멍!”
내가 공을 던지지 않자 안달이 난 아지가 공을 내 발치로 굴린다. 쉬지 말고 던지라고 재촉하는 거다. 허리를 숙여 공을 주워든 나는, 한층 차가운 시선으로 아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놀아주니까 좋냐?”
“멍! 멍! 좋아! 좋아!”
그래? 나는 슬슬 어깨가 아플 지경인데. 너는 책임없는 쾌락만 즐기고 있다 이거지?
이제는 보이지 않는 주시자도 없다. 우리 사이에 남은 건 자연의 비정한 법칙뿐.
나는 인간이고, 아지는 개. 우리 둘 사이에는 완벽한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마치 기름이 물 위에 떠오르듯,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듯. 휘젓는 힘이 없다면 분명하게 위와 아래로 나뉘게 된다.
그것이 서열이라고 한다.
호주머니에서 채찍을 거칠게 뽑아 들며 말했다.
“놀이는 여기까지다, 똥개.”
“멍?”
공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러자 아지가 눈을 크게 뜨며, 눈앞에서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아지의 흥을 끊은 나는 비정하게 선언했다.
“잔치는 끝났다. 너 줄 고기도 이제 없어. 네 개집으로 돌아가라, 된장 바르기 전에.”
“왈! 왈! 왈!”
장난치지 말라고, 계속 놀아달라고. 불만스럽게 짖으면서 보챈다. 나는 저 울부짖음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짜증을 놓치지 않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개라는 녀석들은 정도를 몰라서, 자기 좋은 일은 영원히 계속하고 싶어 한다. 말로는 설득할 수가 없다.
그 탓에 인간은 채찍이라는 것을 이용했지. 나는 허공에 채찍을 흩뿌렸다. 펑, 하고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쓰읍. 말 들어. 내가 온종일 너랑 놀아줘야 하냐?”
“응!”
“어쭈. 아주 맡아놓은 것처럼 말하는데.”
채찍을 위로 높게 든다. 오늘 개의 왕을 제대로 조련할 시간이다.
“그 생각, 고쳐먹는 게 좋을 거다.”
그 직후, 나는 아지의 등 쪽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이 채찍만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군국 국방부가 감수하고 낸 제식 채찍이다.
안 좋은 것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한 군국이지만, 그렇기에 채찍의 성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공한 가죽에다가 치밀하게 연금한 철편을 덧대어 만든, 실제 무기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고급품이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공포를, 철편의 충격은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잘만 다루면 내상은 없이 고통만 줄 수 있으니 짐승을 다룰 때 딱이지.
상처와 함께 몸에 새기도록 해라. 인간의 위대함을….
“컹!”
그때, 아지가 움직였다.
아지의 고개가 채찍의 끄트머리와 비슷한 속도로 돌아갔다. 내 눈에는 필름을 잘라낸 영화처럼 뚝뚝 끊어져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지는 날아드는 철편을 완벽하게 눈을 담고는, 채찍이 그녀를 때리려는 순간 그대로 물어뜯었다. 그리고는 이빨로 채찍을 끊어버렸다.
콰직.
가공한 가죽에다가 치밀하게 연금한 철편을 덧대어 만든, 살상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군국의 무기를.
아지는 껌처럼 질겅질겅 씹다가, 퉤 하고 뱉었다.
“으르르. 맛없어.”
나는 끄트머리가 끊어진 채찍을 바라보았다.
채찍은 몸으로 막는 게 아니다. 튕기는 채찍의 끝은 음속을 돌파할 정도. 뭣도 모르고 채찍을 낚아채겠다고 설치다간 살갗이 뜯겨나간다.
그런데.
개의 왕은 아주 정확히, 등을 노리는 채찍의 끝부분만 씹어서 ‘뜯어’ 버렸다.
가공한 가죽에 철편까지 덧댄 것을… 고개를 비트는 것으로 끊어버릴 정도라면.
“으르르르르르.”
아, 그러네.
개이기는 한데, 개의 왕이었지?
음.
나는 조심스레 채찍을 집어넣고는 다시 공을 들었다.
“…본래라면 여기서 그만두어야겠지만, 오늘이 첫날이기도 하니. 조금만 더 놀까?”
“으르르….”
“자, 물어 와!”
“…르르. 멍! 멍!”
아지는 또 좋다꾸나 하고 공을 따라 달려나갔다.
좋아. 서열정리는 조금 나중에 하는 거로 결정. 지금은 아지가 만족할 때까지만 놀아주자.
나는 패배한 게 아니다. 단지 개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좀 더 이어가기로 했을 뿐.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 개와 놀아주는 거다.
아아. 즐겁다. 나는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