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66)
EP.66 꼭두각시 시조와 불쾌한 인형극 – 3
빛이 닿지 않는 탄탈로스의 외곽. 하늘도, 땅도 저버린 그곳에서, 신 앞에 감히 서지 못하는 불길하고 사악한 것이 움찔거린다. 분명 무언가 있으나, 어둠의 장막은 그들의 죄악은 물론 모습까지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그렇기에 핀레이는 감히 시조를 조종하는 대죄를 저질렀음에도 나다닐 수 있었다. 만일 이곳이 무저갱이 아니었다면, 그의 죄를 발견할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는 곧장 참살당했을 것이다.
‘괜찮아. 이 죄는 나중에, 내 목숨으로 갚으면 된다. 일단 공국까지만 모신다면, 시조께선 우리를 이해하실 것이다.’
핀레이는 피에 각인된 죄책감을 느끼며 흡혈귀를 바라보았다.
흡혈귀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관 위에 앉아있었다. 언제나 걸쳤던 양산도 없이, 양팔을 힘없이 늘어뜨린 그녀는 평소보다도 더 생기 없어 보였다.
그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피부 때문일 수도.
아니면 주변을 불길하게 감싼 어둠 때문일 수도.
혹은 가슴팍에 난 커다란 균열 때문일 수도 있었다.
흡혈귀의 가슴에는 커다란 흉터가 나 있었다. 그 틈으로 시뻘건 기운이 울컥거리고 있었는데, 그건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기도, 혹은 바깥으로 빠져나오려는 것 같기도 했다.
“시조시여, 제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핀레이는 그 틈으로 흘러나온 혈기를 손에 감았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 다 울리도록 크게 외치며, 동시에 혈기를 힘차게 움켜쥐었다.
“시조시여! 혈마가 제 뜻에 따르도록 해주십시오!”
두근.
핀레이의 혈조술이 흡혈귀의 심장을 쥐어짰다. 피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흡혈귀의 경동맥이 울컥 튀어 오르며, 힘을 받은 혈액이 머리로 흘러 들어간다.
그 이후, 흐릿한 초점이 잠시 번쩍인다. 채 이어지지 않은 이성이 단편적으로 주어진 명령을 수행한다.
그러나.
[푸히히힝.]정작 명령을 들어야 할 대상인 혈마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핀레이는 허탈하게 팔을 내렸다. 현재 시조가 가진 최강의 전력, 혈마 랄리온은 핀레이가 시조를 지배하였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핀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들어줄 수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내 명령을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인가? 후우….”
그리 중얼거리며 혈기를 손에서 놓은 순간, 핀레이는 순간적으로 죽음을 느꼈다.
혈마의 발굽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수많은 인간을 육편으로 만들어 온 핏빛 발굽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순식간에 짓쳐들어왔다.
후웅.
바람이라 하기에, 그건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저 풍압만으로도 핀레이는 두 무릎을 꿇고 땅에 처박혀야 했다. 집채만 한 혈마의 거대한 발은 핀레이의 전신을 뒤덮을 정도로 컸으며, 피를 제련해 만든 혈철 편자에는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50cm만 더 내린다면, 핀레이는 한 줌의 핏자국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면 재생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요행. 그동안 정신을 차린 시조가 핀레이의 삶을 멈추고 피를 회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크, 크윽. 그렇구나. 이미, 시조의 명령이 제대로 전해졌군….”
핀레이는 죽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랄리온이 발굽을 끝까지 내리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다란 발굽 아래, 그리고 단단한 콘크리트 위. 그 아슬아슬한 틈에서 무릎 꿇은 핀레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히 시조를 지배한 나를 죽여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그러나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왜냐면, 그게 비록 시조의 본의가 아니더라도, 시조의 명령이기에!”
[푸히히힝.]“좋아!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시조를 지배하는 이상, 너는 결과적으로 내 명령을 듣게 될 테니! 크하하하!”
랄리온이 불쾌하다는 듯 투레질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이 광경을 더는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말발굽 소리가 어둠으로 저물어들었다. 소리가 멎고 나서야 핀레이는 자기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혈마의 어마어마한 힘을 목도한 핀레이는, 새삼스레 자기가 얼마나 무모한 일을 저질렀는지 되새겼다.
압도적인 크기, 무게, 힘. 혼자서도 군대를 무찌를 수 있는, 핏빛 발자국의 혈마 랄리온. 그토록 강력한 혈마조차도 몸과 마음을 다해 시조에게 복종한다.
시조의 힘, 그것은 지배력. 사방에 피를 퍼뜨리고 닿은 것을 조종하며, 강력한 사역마를 빚어내는 힘.
그토록 거대한 권능을 핀레이가 고삐를 쥐고 이끄는 것이다.
분에 넘치는 힘. 이것을 쥔 자의 반응은 둘 중 하나.
두려워하던가.
환희하던가.
핀레이는 후자였다.
“크흐흐. 크하하하! 나는, 나는 신의 힘을 손에 넣었다!”
전신의 피를 옭아매는 듯한 시조의 권능도, 지금은 조용히 잠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시조 스스로 거둔 탓. 그 상태에서 시조의 심장을 혈조술로 조종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핀레이가 시조의 힘을 가진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시조께선 분명 나를 인정하신 거다. 내 뜻에 찬동하신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시조의 힘을 쓸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압도적인 전능함에 취해서 환희하는 동안.
흡혈귀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제풀에 놀란 핀레이가 헛숨을 내뱉었다. 혹여나 시조가 정신을 차렸을까. 핀레이는 잔뜩 긴장한 채 흡혈귀를 불렀다.
“시, 시조시여?”
흡혈귀의 눈이 어느 곳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안하게 떨리던 핀레이의 시선이 흡혈귀의 것을 따라갔다.
그리고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경고했거늘, 정녕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거냐?”
그곳에 당당하게 서 있는 건, 한 손에 붉은 구체를 들고 있는 회귀자와.
등 뒤로 커다란 보따리를 메고 있는 나였다.
정신을 집중하니 생각은 선명히 들린다. 물론 핀레이의 것만. 흡혈귀는 반쯤 잠든 것과 비슷한 상태라 명료하게 읽히지 않는다.
의식이 없다면 생각도 없다. 기억도 없다.
캄캄한 조명 속에서 책을 읽는 듯한 기분. 누군가 들려준 이야기만 흐릿하게 되뇌는 상태. 아무래도 직접 닿지 않고서야 잠에서 깨우기는 요원해보였다.
좋아. 생각 읽기는 끝이다.
내 한 뼘 아래에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저쪽을 바라보는 회귀자에게 물었다.
“보셨어요?”
“응.”
칠색안 중 일색, 열을 보는 눈 적안(赤眼).
칠색안 중 육색, 멀리 보는 눈 람안(藍眼).
왼쪽 눈과 오른쪽 눈, 서로 다른 눈으로 어둠을 꿰뚫어 본 회귀자가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저 자식, 티르칸쟈카의 흑기사대를 그림자 속에 숨겨두고 있어….”
“다행스럽게도 랄리온은 핀레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렇더라도 우리 편은 아니겠지. 믿지 않는 게 좋아.”
말을 끝맺기 무섭게 회귀자의 눈에서 귀화가 사라졌다. 다시 새까만 눈동자로 돌아온 회귀자는 피곤한 듯 눈을 잠시 꾹 눌렀다.
“괜찮아요?”
“문제없어. 잠깐만 누르면.”
다시 손을 치웠을 때, 회귀자의 눈동자는 예전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작전대로?”
“작전대로.”
나와 회귀자는, 주간등이 비치는 빛의 영역에서 어둠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어둠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저 불길한 어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물이었으며, 모든 흡혈귀를 가호하는 밤의 안개였다.
그 한가운데. 맨눈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핀레이가 양팔을 크게 벌린 채 우리를 맞이했다.
“분명히 오지 말라고 전했거늘. 귓구멍이 막힌 거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거냐?”
회귀자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 너겠지. 미친 거 아니야?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어떻게 시조를 지배할 생각을 해?”
“지배가 아니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시조를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리는 것뿐이다.”
“참나. 자기 뜻도 묻지 않고 억지로 움직이는 게 지배 아니야?”
“네놈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
핀레이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조울증이라도 가진 듯 격변하는 태도에 회귀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조께서는 이러길 원하셨다!”
“뭔 개소리야?”
“만일 시조께서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분의 심장을 손에 넣게 되는 날이 왔을까! 내가 이 힘을 얻게 된 것부터, 시조의 뜻을 잠시 대행하게 된 것까지! 전부 그분의 뜻이나 마찬가지!”
그렇게 외치는 핀레이에게서는 힘에 취한 듯한 광기가 엿보였다. 그는 흡혈귀답지 않게도 격렬한 흥분에 휩싸여서는, 입에서 침 대신 피를 튀기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나의 뜻이 곧 시조의 뜻! 나는 시조께서 지상으로 향하기를 바랐고, 따라서 시조께선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너희가 방해한다면, 시조에게 반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시조의 종이라면 고개를 조아리고 배웅하라. 시조의 적이라면 항거할 수 없는 혈해에 휩쓸려 소멸하라! 결정하거라, 천민들이여!”
논리도, 이성도 없는 말이었다. 차가운 심장을 가진 흡혈귀가 보일 태도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할 정도로.
회귀자가 손가락을 자기 머리까지 올리고는 한 바퀴 빙글 돌렸다.
“저 자식, 완전히 미쳤어.”
“미쳤으니까 티르칸쟈카 교육생을 지배하려는 미친 짓을 저지르죠?”
“그건 맞지.”
“거기다 미친 짓을 저지르느라 혈조술이 이미 한계에 달해서, 정작 자기 몸을 움직이는 혈조술이 불안정해졌네요. 차가운 심장은 갖다 팔아먹은 것처럼 보여요.”
극도로 흥분한 핀레이는 우리가 듣든 말든 자기 할 말만 외치고 있었다. 청자라고는 자기 자신밖에 없건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후우. 저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간 우리가 먼저 늙어 죽을 거예요. 슬슬 시작하죠?”
회귀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어둠 속에서 핀레이의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지상으로 올라가, 간사한 성황청의 탕녀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들의 신을 모독하고 우리의 옛 영광을 되찾을 것이다! 크하하하하!”
“거, 쉬벌. 나이가 많아지면 말도 많다더니, 뭐 이리 혓바닥을 길게 놀립니까?”
후, 길게 한숨을 내쉬고 호흡 사이에 끼어들었다. 흥분한 사람의 특징처럼, 핀레이는 자기 말을 방해한 나를 향해 흉악한 살기를 뿜어내었다.
“교관! 네놈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감히!”
“거! 닥치고 있어 봐! 치매 노인 곁에 두느라 힘든 건 알겠는데, 나도 할 말 많거든?”
“치, 치매?”
다루기 쉬운 기계나 원리가 간단한 장난감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예측대로 딱딱 움직여주는 모습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 핀레이 같은 광신도는 다루기 쉬운 기계와 같았다.
발작 스위치를 톡 건드려주면 원하는 반응이 튀어나오거든.
“시, 시조께, 감히. 무엄하다!”
“티르칸쟈카? 이름도 촌스럽네! 일부러 부르기 힘들게 그렇게 정했나? 거기다 멍청하게도 자기 권속의 권속의 권속에게 속아서 지배당하기까지! 누가 가르쳤길래 저 모양이냐?”
회귀자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너잖아. 바보야.”
“아이코! 나였네! 앞으로 부끄러워서 교관질도 못 해먹겠어!”
내가 격양된 톤으로 흡혈귀를 모욕하자, 핀레이는 눈을 크게 뜨고 입만 뻐끔거렸다. 너무 커다란 충격에 잠시 말을 잊은 탓이다.
좋아. 이제 슬슬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끝났군.
“그리고 핀레이 당신, 당신도 시조만큼이나 멍청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모양인데. 무저갱에 갇힌 주제에 하늘로 날아서 탈출할 수 있다고 진짜 믿는 거야?”
거기까지 말한 나는 크게 웃었다. 온 무저갱이 떠나가라, 한참을 폭소하던 나는 한순간 웃음을 뚝 그치고는 말했다.
“그래봤자 못 가.”
내가 공을 들여 알아낸 진실. 쉽게 밝힐 내용은 아니었으나 아끼지 않기로 했다.
“무저갱은 무한히 떨어지는 땅이야. 즉, 무슨 뜻이냐. 공간의 좌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단순하게 떨어지거나 올라가는 것만으로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어, 멍청아. 단순히 기어올라가는 것만으로 지상에 닿을 수 있다면, 단순히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바닥에 닿을 수 있겠지. 하지만, 어라? 무저갱이네? 바닥에 없네? 무슨 뜻일 것 같아?”
준비가 거의 끝났다. 회귀자는 붉은 구슬에 마력을 절반쯤 불어 넣고는 간단한 마법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슬슬 말을 끝마칠 준비를 했다.
“알고 싶냐?”
내 말을 듣고 있는 핀레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은 나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잘 보이게.
“여기 들어있어.”
나는 손가락을 들어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그리고 싸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다면 꺼내 봐, 패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