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67)
EP.67 꼭두각시 시조와 불쾌한 인형극 – 4
내 도발에, 핀레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너 이 자식!!”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운 채로, 피를 토할 듯 격렬하게 외쳤다. 어둠이 그의 분노를 따라 일렁거렸다. 빛이 닿는 저 너머, 수천수만의 군세가 들썩거리며 움직였다.
“밤의 귀족이 왜 밤의 귀족이라 불리는지, 똑똑히 알려주겠–!”
그때였다. 회귀자가 들고 있던 구슬을 힘껏 던졌다. 대지의 불꽃을 담은 붉은 구슬, 용암 눈물이 탄탈로스의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직 닫혀있음에도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에 모든 존재가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다. 용암 눈물이 충분히 높이 올라갔을 때, 회귀자는 다리를 크게 벌리고는 어깨를 당겨 천앵을 겨누었다.
목표는 용암 눈물, 땅 저 아래의 불꽃을 담은 보물을 향해. 회귀자는 검을 쏘아냈다.
“천검기. 사일(射日).”
훅.
마치 입바람을 부는 듯한 가볍고 짧은 소리가 탄탈로스를 관통했다. 깔끔한 궤적이 비스듬히 허공을 가른다.
보이지 않은 검이 사선으로 솟구쳐, 허공으로 떠오른 용암눈물의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어둠 속에서 검흔이 붉게 빛났다.
순간, 어마어마한 기운이 응축된 붉은 구슬의 틈으로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별을 지피는 불꽃.
태양보다는 어둡지만, 이 좁은 대지를 비추기엔 충분히 강렬한 홍염이었다.
회귀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무저갱이 좀 어둡지?”
마력을 불어넣으면 터지는 폭탄, 용암눈물. 하지만 마력을 특정 패턴으로 불어넣으면 지연된 폭발을 흘려보낸다.
이게 무슨 뜻이냐.
“그래서 유사 태양을 하나 만들어봤어. 군국이 흉내를 낸 저 인조등이 아닌, 세상을 비추는 진짜 불꽃을!”
그 순간, 작은 태양이 무저갱에 떠올랐다. 탄생 이래 언제나 어두웠던 무저갱에 빛이 있었다.
대지를 내리쬐는 붉은 빛에 닿자, 흡혈귀의 피가 채도를 잃었다. 허공에 떠오른 붉은 빛은 색은 오직 빛만이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듯 검붉은 혈기를 전부 태웠다.
별의 불꽃, 그것은 흡혈귀의 천적.
자기 아래에서 감히 붉게 빛나는 것을 용납지 못한다.
“끄아아아아악–!”
그건 핀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부가 들썩이며 멍이 든 것처럼 점차 어둡게 물든다. 그가 시조의 근처에 있지 않았다면 검은 잿가루가 되어 부스러졌을 것이다.
시조는 본능적으로 어둠을 그러모아 빛을 막아냈지만, 그것만으로도 전황이 유리해진다. 사방을 둘러싼 어둠이 사라지고 사방이 밝아졌으니까.
밤의 귀족은, 이제 귀족이 아니게 되었다.
회귀자가 붉게 물든 천앵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티르칸쟈카가 패배한 건, 인류가 강해져서도 있지만…. 아무래도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략되었기 때문인 게 제일 크지. 그녀는 언제나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인세의 재앙이었으니까.”
“크으으윽! 이런 비겁한!”
“비겁? 흥, 남이 잠시 약해진 틈을 타 그 심장을 지배하려는 추악한 놈보다는 낫지.”
궁지에 몰린 핀레이는 검은 안개 뒤편에서 외쳤다.
“시조시여! 저 구슬을!”
핀레이의 말에 따라, 흡혈귀는 손을 뻗었다. 피와 어둠이 한데 모여 커다란 손을 만들어냈다. 흡혈귀가 손을 뻗자, 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그 연장선이라도 되는 양 내밀어졌다.
손끝이 작은 태양에 닿자, 흡혈귀가 손을 쥐었다. 핏빛 손아귀가 작은 태양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치익, 불타오르며 가닥가닥 끊어졌다.
“소용없어. 티르칸쟈카라도 태양을 완전히 극복해내지는 못했는데, 너의 허접한 지배력으로는 티르칸쟈카에게서 그만한 힘을 짜내는 건 무리야.”
어쩔 수 없었다. 핀레이는 필사적으로 어둠을 그러모아 그의 몸을 숨겼다. 간신히 한숨 돌린 그가 고통에 헐떡였다.
“끄윽, 너, 진혈을 가진 주제에! 시조께 은총을 입은 주제에, 그분을 배신하려는 거냐아아아!”
“응?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지. 너 같은 기생충을 쳐 죽이는 방식으로.”
그를 한계까지 몰아넣은 회귀자가 앞으로 나아갔다. 태양빛을 피해 어둠 속에 숨은 두 흡혈귀를 향해.
“진혈! 진혈을 지닌 게, 감히 태양을… 진혈?”
“자. 빨리 끝내줄게. 아주 잠깐이면 될 거야….”
당당하게 어둠으로 물든 영역에 발을 디뎠을 때.
“하하! 그래, 너, 진혈을 몸 안에 품었지?!”
어둠의 뒤편에서, 모습을 가린 핀레이로부터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까까지 고통에 신음하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통쾌한 목소리가.
회귀자는 그 반응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저항할 수단이 없을 텐데? 진혈이 뭐 어때서?’
“진혈을 가졌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나 본데, 꼬마.”
핀레이가 기괴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 피는 거대한 힘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족쇄! 강한 힘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법. 너는 힘을 얻기 위해 그 피를 받아들였지만. 그게 네 목을 조르는 결과가 될 거다!”
“아차!”
‘진혈, 그건 아직 내 몸속에 있어! 그리고 그 피는…!’
무언가를 깨달은 회귀자가 급히 천앵으로 자기 손가락을 베어냈다. 동시에 혈조술을 극한으로 운용하여 몸에 남아있는 진혈을 전부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진혈은 이미 회귀자 몸 구석구석에 퍼진 상태. 그것만을 골라 뽑아내기엔, 회귀자는 아직 혈조술에 능숙하지 않았다.
혈조술만으로는 핀레이가 훨씬 빨랐다. 핀레이는 시조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시조시여, 저자의 심장을 멈추어주십시오!”
다시, 흡혈귀의 상체가 힘없이 흔들거린다. 이후 흡혈귀가 손을 뻗는다. 회귀자의 표정이 다급해진다.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불어났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진혈이 흘러나오기 직전.
흡혈귀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내 곁에서 무언가 쥐어짜이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회귀자의 가슴이 기이할 정도로 움푹 들어갔다가 되돌아왔다. 입가로 피가 튀어나오고, 가느다란 몸이 크게 휘청였다….
어라, 잠깐만. 회귀자? 너 없으면 나 망하는데?
나는 다급히 뛰어가 회귀자를 부축했다.
“어? 잠깐! 셰이 교육생! 쓰러지면 안 돼요!”
“크, 흐윽. 이, 게…!”
“나 대신 티르칸쟈카 교육생을 혼내줘야죠! 저는 상성상 불리하단 말이에요!”
“지금, 이 꼴이 난 사람에게… 할 말이야…?!”
다행히도, 회귀자는 죽지 않았다. 본인의 혈조술과 기공으로 심장을 보호한 덕분이다.
궁극의 방어기공, 천반경은 신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상적인 작동을 담보한다. 잠깐 심장이 멈추었으나 회귀자의 전신은 평소대로 움직였고, 심장 역시 그 흐름을 따라왔다.
“버텼어…! 하지만.”
회귀자가 헐떡이며 몸을 바로 세웠다. 두 눈은 투지를 잃지 않았지만, 몸이 언제나 마음을 따라가는 건 아니었다. 다시금 비틀거린 회귀자가 가슴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 당장…. 진혈을 빼내는 건… 무리야…!”
“네? 그러면 티르칸쟈카 교육생은 어떻게 하고요.”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 봐…! 3분, 3분이면 되니까…!”
“제가요?”
아니, 3분이고 뭐고, 흡혈귀는 마음만 먹으면 3초 안에 나를 요리해 먹을 수도 있다고.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핀레이에게 조종당하느라 기민한 반응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 자아가 흐릿하다 보니 나와 회귀자를 향한 적의가 옅다는 점일까. 지금 흡혈귀는 전력의 1할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일 것이다.
물론….
“크윽…!”
그건 핀레이가 무능해서.
흡혈귀의 힘은 내가 잴 수 없으나, 핀레이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혈조술로 시조를 지배했다지만 그건 마리오네트를 조종하기보다도 훨씬 어렵다. 멈춘 심장을 혈조술로 움직여 강제로 피를 공급하고, 흐릿한 이성을 조금만 깨워 명령을 내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마저도 흡혈귀가 자기 권능을 내려놓고 난 뒤에야 간신히 가능했던 것.
“권속의 몸으로… 진혈을 다스리는 건… 시조를 지배하는 지금 상태에서도 불가능한가…!”
진혈을 다스리려고 했던 여파로 심장이 터질 뻔한 핀레이는 회귀자와 비슷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회귀자와 달리 핀레이는 흡혈귀. 고통과는 별개로, 심장이 터진다고 죽지 않는다.
“크크. 괜찮다. 너희를 죽일 방법은 차고 넘치니까. 너희들, 시조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느냐?”
핀레이가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빛이 닿지 않는 범위에서 차례차례 무언가가 기어나왔다.
그건 새카만 갑옷을 입고 어둠으로 된 무기를 든 무수한 흑기사들이었다.
“기사살해자. 시조께 가장 먼저 붙었던 별명. 그들이 아무리 뛰어나고 명성이 높다고 한들 기껏해야 칼잡이. 시조를 찾아온 이들은 전부 시조의 혈해에 휩쓸려 죽었다.”
저벅저벅저벅저벅.
저벅저벅저벅저벅.
흑기사들의 숫자는 끝이 없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수의 흑기사가 나타난 걸까, 혹여나 허공에서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궁금할 정도의 수.
전신이 새카매서 마치 형틀에 찍어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다르다. 무기를 쥔 손도, 손에 든 무기도, 키와 체형도, 그리고 보폭과 발걸음도.
전부 절도있게 오와 열을 맞추어 나오고 있으나, 모두 각기 다른 존재였다.
“왜냐면, 시조께선 홀로 군단이기 때문이지.”
핀레이는 그의 앞에 도열한 흑기사들을 가리켰다. 비록 하늘에서 비추는 용암 눈물 때문에 혈기는 사용하지 못하나, 피를 태우는 붉은 생명력 없어도 이 숫자면 어지간한 도시는 쉽게 멸망시킬 수 있다.
핀레이가 이 힘이 마치 제 것인 양 거들먹거렸다.
“어디, 칼잡이. 너는 군단과 싸워 이길 수 있나?”
불가능하지.
핀레이는 승리를 확신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수천에 이르는 흑기사들이 이쪽을 향해 한걸음 내디뎠다.
그에 비해, 이곳에는 힘 빠진 회귀자와 원래부터 힘이 없었던 나뿐.
“크윽…! 저 숫자는…!”
회귀자의 눈에 곤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아직 날뛰는 기운을 다 제어하지 못한 회귀자는 비척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잠깐 앉아 계세요.”
“꺄악?!”
오금을 걷어차서 다시 주저앉게 만든 뒤,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그때 발밑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못, 이겨….”
“확실히, 나는 못 이기겠지. 그러니까.”
흑기사대는 무슨. 저 흑기사 중 셋만 나서도 나는 끝장이다. 그런데 저만한 수를 상대로 이기라고? 애초에 논외다.
그렇기에, 내가 취할 수단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나는 회귀자를 돌아보며 통보했다.
“부를게요?”
“…그래.”
흡혈귀의 육신이 아예 박살이 날지도 몰라, 회귀자는 혹여나 하는 문제 때문에 이걸 쓰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내 몸이 부서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든 게 몇 없는 주머니에서 원하는 걸 찾기는 너무나도 쉬웠다.
“자아. 이거 보여? 이게, 너를 죽여버릴 거야.”
나는 주머니에서 종을 꺼내 들었다.
작은 차임벨이었다. 아지에게 밥을 먹일 때 쓰던 그 종. 한 손으로 종을 높이 들고는 양옆으로 흔들었다.
딸랑딸랑. 맑고 작은 종소리가 연약하게 흘러나오다, 머지않아 이어진 핀레이의 광소에 파묻혔다.
“하하하! 종을 쳐서 무엇을 하려고? 그게 신종(神鐘)이라도 되나? 어림도 없다!”
핀레이는 나를 비웃으며 외쳤다.
“마늘장아찌라고 했던가? 어디,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네 몸은 거꾸로 매달아 놓은 뒤 피를 빼낼 것이다! 그 종을 포함하여, 네놈을 당장 박살….”
“으르르르.”
핀레이의 목소리가 뚝하고 끊겼다. 그는 마치 죽음이라도 목도한 것처럼, 뻣뻣한 목을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자. 아지야. 저 나쁜 놈이 우리를 괴롭힌다.”
사방을 뒤덮은 어둠과, 찰박거리는 피. 불길하게 떨리는 공간 속에서 들리는 차임벨 소리는 미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개의 왕이 듣기엔 충분히 컸다.
“으르르르르.”
씰룩이던 볼은 이제 완전히 벌어져 온 이를 다 드러내고 있다. 전신에 가시를 세우듯, 털이고 꼬리고 솟아나지 않은 게 없다. 온화하고 해맑았던 얼굴에는 오직 적의만이 가득 담겨 흡혈귀를 쏘아보고 있었다.
개의 왕, 강아지는 지금 완연한 적의를 내뱉으며 나의 앞으로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