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68)
EP.68 꼭두각시 시조와 불쾌한 인형극 – 5
“으르르릉.”
낮은 저주파음이 무저갱에 맴돌았다.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스쳐 지나가자 근육이 공포에 질려 잠시간 경련했다. 그건 나도, 회귀자도, 핀레이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인간의 편을 들어, 인간과 가장 가까이 지내왔던 개의 왕. 인간끼리 다툴 때는 눈을 감고 코를 막아서라도 끼어들지 않지만.
피로 빚어낸 괴물에겐 단 한 줌의 애정도 신뢰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과 흡혈귀와 싸울 때. 아지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아군이었다.
“으르르.”
한때 인간이었던 것들을 향해 아지는 진정한 의미로 이를 드러냈다.
“마, 막아!”
핀레이가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땅에서 수백, 수천의 흑기사가 솟아났다. 새카만 갑주를 입고 다양한 장비로 무장한 흑기사단이 핀레이와 흡혈귀를 지키며 섰다.
쿵.
어둠으로 덧칠한 타워실드를 든 흑기사들이 전열을 막고, 그 사이사이 뾰족한 랜스가 솟아난다. 단단한 갑주를 입은 흑기사들이 숨을 죽인 채 짐승의 접근을 신중히 기다렸다.
섣불리 다가오면 포위하여 사냥할 작정으로.
“컹—!!”
그러나.
창, 방패, 랜스, 갑주, 혹은 흑기사.
그중 무엇도 개의 왕을 막을 수 없었다.
커다란 울부짖음과 함께 아지가 뛰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느새 아지의 신형은 흑기사단 한복판에 있었다.
회귀자도 잠깐 아지의 모습을 놓쳤고, 바람조차 아지를 뒤쫓지 못하고 한 박자 늦게 불었다.
콱. 아지가 고개를 쳐들었다. 한 흑기사의 머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피 대신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가 새카맣다.
개의 왕은 흑기사의 피로 학살의 신호를 알렸다.
방패를 든 선봉이 몸을 돌리고, 창을 든 기사가 창대의 방향을 바꾸려고 했다. 검을 든 기사가 칼날을 들이밀고 철퇴를 든 기사가 양손을 높이 든다.
그러나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지가 발을 구를 때마다 갑옷이 부서지고 무기가 부러지며 검은 몸체가 갈가리 찢겼으니.
“아우우우—!!”
압도적인 짐승의 폭력이 휘몰아쳤다. 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이자, 시체로 장난질을 치는 혈귀들의 재앙이었다.
인간의 피. 개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인간의 피 냄새는 개의 왕인 아지를 흥분시켰다. 시조야 극에 이른 혈조술로 혈향까지 갈무리하였으나 핀레이는 그렇지 못한 탓이다. 아지는 불쾌해했으며, 그것은 파괴욕구로 이어졌다.
발톱에 걸린 흑기사가 연기처럼 부스러진다. 하나를 깨부수었다면 어느새 다음. 하나의 모가지를 물어뜯었으면 그 다음.
단순하게 보자면, 일격에 하나씩 차근차근 무찌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치우는 속도가 워낙 빨라 꼭 들불이 번지는 듯했다. 아지가 떨어진 곳에서 파문이 퍼져나가듯 흑기사들이 분쇄되었으며, 그럴 때마다 검은 연기와 붉은 핏물이 흩날렸다.
초 단위로 갈려나가는 흑기사를 보고 핀레이는 공포를 느꼈다.
“시조시여! 저 짐승을!”
핀레이의 외침에, 흡혈귀가 느릿하게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흩어진 어둠과 피가 다시 솟아나더니 거대한 형상을 이루었다. 체고만 5m, 갑옷의 두께만 1m는 될 법한 거대한 흑기사가 핏물로 다져진 거대한 메이스를 들고 섰다.
마침 아지가 남아있는 흑기사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넣었을 때, 거대 흑기사가 철퇴를 내리쳤다. 크기에 맞지 않은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둔중한 메이스가 아지의 머리를 강타하며, 그 여파만으로 콘크리트가 사방팔방으로 깨져나갔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리가 들려왔다.
폭풍 후의 고요. 충격 이후 소리가 멎었다. 삐-하고 이명만이 소란스러운 청각 속,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잔해뿐.
“끝장내!”
거대 흑기사는 그 와중에도 메이스를 반 바퀴 비틀어 찔렀다.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짧고 강하게.
그리고 거대 흑기사가 팔을 들었을 때,
메이스는 중간 부분부터 잘려나가 있었다.
“크릉.”
네 발을 땅에 박아넣은 아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 입에는 자기 몸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메이스가 가운데서 끊어진 채로 매달려있었다.
저 정도의 무게, 저 정도의 강도라면 이빨이 짓이겨지고 잇몸 힘이 풀리는 게 정상이나, 아지는 장난감이라도 문 것처럼 가볍게 턱을 들어 올리고는 좌우로 도리질을 쳤다.
쿵, 쾅, 콰직, 콱.
묵직한 중량감을 가진 거대한 메이스가 비현실적으로 진동한다. 물을 털어대는 것처럼 도리질을 치면, 아지의 왼쪽으로 1m부터 5m 반경의 모든 게 먼지와 연기로 바뀐다.
남아있던 흑기사도, 커다란 흑기사의 다리도, 콘크리트 바닥도 아지의 힘 앞에서는 공평했다.
분쇄. 그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파괴가 휘몰아쳤다.
뚝. 메이스가 중간부터 부러졌다. 아지가 휘두르는 힘을 버티지 못한 탓이다. 그것도 모르고 몇 번 더 휘젓던 아지는, 막대기만 남은 메이스를 퉤 뱉고는 핀레이와 흡혈귀를 노려보았다.
흉폭한 야성이 그를 향하자, 핀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겁을 집어먹었다. 그리고 자기가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소리쳤다.
“소용없어!! 시조의 힘은 이게 다가 아니다!”
시조를 향한 광신, 그것이 만들어낸 광기가 넘실거린다. 핀레이는 자기 능력을 사용해 흡혈귀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울컥거리는 심장에 시조의 몸이 잠시 움찔한다. 흐릿한 눈동자에 한순간 붉은 기운이 돌아왔으나, 그것은 찰나.
혈조술로 시조의 심장을 잠시나마 손에 넣은 핀레이는, 시조의 몸에 흐르는 피를 억지로 움직였다.
“시조시여! 저 짐승에게 당신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흑기사대. 흡혈귀가 아무런 준비나 리스크 없이 불러낼 수 있는 최강의 전력. 비록 개의 왕 앞에서는 한순간도 버티지 못했으나, 흑기사대의 진수는 거기에 있지 않다.
흩어진 어둠 속에서 응달이 응어리진다. 동그랗게 뭉친 어둠 구덩이, 그곳에서 새카만 팔이 불쑥 솟아나더니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건 무저갱에 존재하는 모든 그늘에서 이루어졌다.
아지의 발톱과 이빨 아래 쓰러졌던 불사의 흑기사들이 하나둘 일어선다. 몇 초 지나지 않아 흑기사대는 전멸하기 전 숫자를 복구했다.
부활한 흑기사대는 갑주 속에서 붉은 안광을 빛내며 개의 왕과 대치했다.
“흑기사대는 무한히 솟아난다! 네가 무찌른 건 당장이라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허수아비!!”
핀레이가 광분해서 소리치며 아지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흑기사대는 그 명령에 따라 일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한 존재를 향한 진군. 비록 그들이 다수라고 하나, 감히 짐승의 왕을 향해 두려움 없이 진군하는 흑기사대의 모습은 경외심이 들기 충분했다.
“혈해에 휩쓸려 죽거라, 짐승!!”
입에서 피를 튀기며 핀레이가 외쳤다. 무한한 흑기사대와 싸우면서 서서히 지쳐갈 개의 왕이 결국 쓰러질 것을 기대하며.
“으르르르.”
그러나 아지는 지능이 낮을지언정 멍청하지는 않다.
본능적으로 혈향이 이끌리는 곳을 노려본 아지는 크게 으르렁거리며 앞발로 땅을 짚고 자세를 낮추었다.
뒷발의 발톱이 콘크리트를 파고 들어가고, 앞발이 땅을 그러쥔다. 네 발로 납작 엎드린, 도약을 준비하는 맹수의 자세.
핀레이가 불길함을 느낄 즈음,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멍-!”
짧게 짖은 아지가 그쪽으로 도약했다. 목표는 관 위에 앉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흡혈귀.
발을 뗀 순간, 이미 아지의 신형은 이미 흡혈귀를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어둠을 가르며 날카로운 발톱이 쇄도한다. 쭉 내뻗은 손은 이미 지척이다. 흡혈귀의 작고 연약한 몸을 향해 짐승의 왕이라는 압도적인 폭력이 다가온다. 그 기세는 자못 흉폭하여, 단번에 흡혈귀를 터뜨려버릴 것 같다.
핀레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안…돼…!”
그러나 핀레이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 없다. 심지어는 감지하지조차 못했다. 그저 불길함을 느끼며 뒤늦게 경악하는 것만이 가능했을 뿐.
인지를 꿰뚫고 날아간 아지가 흡혈귀의 가슴에 손을 박아넣으려는 그 순간.
아지의 위로 붉은 발굽이 떨어졌다.
날아갈 때보다 빠르게 아지의 신형이 되튕겨나왔다. 땅을 반쯤 부수고 들어갔다가 튕겨나온 아지의 신형이 허공에 낮게 떠올랐고, 그 위로 혈마가 몸을 반 바퀴 돌리며 뛰어올랐다. 사람 몸통만 한 거대한 말발굽이 아지를 가격했다.
퍽.
살과 발굽이 닿는 소리는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 아지는 작은 공이라도 된 것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내가 던지는 공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직후 벽돌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감옥 3층 벽이 통째로 먼지구름으로 바뀌었다. 아지의 신형이 그 속으로 사라졌다.
[푸르릉.]그 뒤로 말이 투레질했다.
혈마 랄리온. 오직 시조의 명령만 듣는 첫 번째 사역마가 시조의 위기를 앞두고 참전한 것이다.
지옥에 굴러떨어졌다 한가닥 희망을 부여잡은 핀레이가 애처롭게 웃었다.
“하하! 랄리온! 그래! 드디어 내 명령을 듣는…!”
[푸히이이잉.]랄리온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콧김을 내뿜었다.
혈마의 날숨은 폭풍과도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핀레이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는 땅에 몇 번 튀기며 땅 위를 굴렀다가, 간신히 몸을 뒤집어 일어났다.
“너 이 자식! 나는 지금 시조를 조종하고 있다. 나는 섭정이란 말이다! 너도 시조의 권속이라면, 내 명을 들어야…!”
당연하게도 혈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차게 투레질을 하며, 아지가 사라진 방향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
핀레이는 여전히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는 랄리온을 보고 당황했다.
“뭐? 거기는 왜.”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핀레이는 몸을 덜컥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으르르르르르르르르….”
땅이 요동친다. 분노한 짐승이 세상을 떨게 하고 있다. 저 멀리 있는, 3층의 어느 곳에서부터.
핀레이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설, 마. 그 정도 타격을 받고도 멀쩡하다니.”
개의 왕. 인간의 가장 훌륭한 친구이자, 언제나 충성스러운 짐승.
그리고 적을 사냥하는 타고난 사냥꾼.
핀레이는 무언가를 착각했다.
개의 왕이 흡혈귀를 싫어하는 건, 그들이 인간의 시체이기 때문이다. 인간마저 한때 인간이었던 시체를 꺼리는데, 냄새에 민감한 개가 친구의 피 냄새를 풍기며 걸어 다니는 인간의 육신을 어찌 반길까.
그러나 그건, 적을 죽이겠다는 필살의 의지와는 거리가 먼, 단순히 꺼리는 마음의 발로이다.
즉, 짐승을 짐승답게 만드는 흉포한 공격성은, 흡혈귀에게 향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니, 개의 왕. 아직까지 전력이 아니었다고?”
상대가 짐승이라면, 개의 왕은 사냥꾼으로 변모한다.
흐릿한 신형이 솟구친다. 뒤따라온 바람이 흙먼지로 흔적만 남긴다. 어찌나 빠른지, 먼지구름이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소용돌이쳤다.
“멍.”
랄리온을 이루는 핏물이 한 움큼 터져나갔다. 갈기 휘날리는 목이 절반쯤 사라졌다. 핏물이 땅 위로 찰박거린다.
그 뒤로, 사뿐히 내려앉은 아지가 붉게 물든 살점을 퉤 뱉었다. 뜯겨나간 살점이 땅 위로 떨어졌다.
[푸히힝.]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랄리온은 크게 휘청거렸으나, 그건 잠시였다.
땅에 떨어진 붉은 살점은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다시 랄리온의 그림자 속으로 슥 사라졌다. 그 직후, 한 움큼 뜯겨나간 목이 재생되었다.
시조의 힘을 받아 재생한 랄리온. 그것은 조금 전 목이 뜯겨났음에도, 여전히 투지를 불태우며 아지를 노려보았다. 앞발로 땅을 긁을 때마다 콘크리트가 뒤집힌다.
“으르릉.”
아지 역시도 목이 뜯겨나가고도 멀쩡히 서 있는 랄리온을 향해 불만스럽게 짖었다. 꼿꼿이 선 발톱이 땅을 파고들었다.
두 짐승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
[푸히히히히힝!]그 소리만 남긴 채, 두 짐승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