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70)
EP.70 꼭두각시 시조와 불쾌한 인형극 – 7
회귀자가 잠시 멈칫했다.
“…내구도?”
“네에. 불사자의 살이 흡혈귀의 피에 독인 것처럼, 흡혈귀의 피도 불사자에게 저주거든요. 보세요. 살점이 시커멓게 굳었잖아요.”
“야! 그게 안 괜찮은 거잖아!”
“괜찮아요. 이럴 땐 굳은살을 작은 꼬챙이로 벗겨내면 돼요. 그러면 더러워진 껍질이 사라지고 안쪽 살이 드러나니까요. 점점 길이가 짧아진다는 문제가 있지만.”
“네가 괜찮은 걸 묻지 않았어! 그! 불사자가 안 괜찮을 거 아니야!”
‘불사자가 어떻게 저주받았나 했더니만! 네가 한 거였냐!’
그러게. 상황이 이렇게 되었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불만이 많아. 그러면 뭐, 이거 쓰지 말아요?”
“…내 말은, 그 팔이 다 닳기 전에 빨리 끝내자는 뜻이야!”
“오케이. 접수. 이제 갑니다. 길 확실하게 뚫어주세요.”
“빨리 꺼져! 파초선, 용오름!”
이번에는 세로로 그었다. 천앵이 이끌어낸 바람이 한순간 세상을 뒤집었다. 폭풍에 흑기사들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피웅덩이도, 그림자와도 연결이 끊긴 그들의 위로, 회귀자의 마법이 작렬했다.
“천검기, 천둥새!”
지릿, 샛노란 벼락이 허공에 주름처럼 새겨진다. 거미줄처럼 생긴 얇은 실이 흑기사들의 몸에 닿았다. 어느 순간 그것은 한 줄기로 합쳐지더니 거대한 폭포로 바뀌었다.
벼락이 핏물을 태운다. 흡혈귀의 본신이면 몰라도, 만들어낸 사역마가 그 충격을 버틸 수는 없다.
그림자 없는 허공에서 타오른 흑기사는 그대로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주변은 제대로 청소해달라고요!”
“아직도 안 갔어?!”
회귀자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휘몰아친 바람이 앞을 쓸어내린다. 하늘에서의 지원사격은 꽤 정확하고 정교해서, 내 코앞에 있는 적 말고는 다 날아가거나 몸을 수그리고 견뎌내야 했다. 나는 무주공산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회귀자의 보조마법, 순풍이 나를 가호한다. 바람이 내 등을 떠미니 발끝을 땅에 대는 것만으로도 몸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몸을 감싼 바람 덕분에 회귀자가 만든 폭풍 속에서도 자유로웠다.
버프 죽이네. 고작 바람이 부는 정도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가 초인이 된 듯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이거면 내 단거리 달리기 신기록을 갱신할 수도.
“빨리 달려! 뭐 그리 여유만만이야!”
뒤에서 재촉이 들려온다.
나에게는 주체못할 속도도, 누군가에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보였나 보다. 이게 내 최고 속도인 걸 어쩌라고.
“컹컹!”
[히히히히힝!]그때 내 눈앞으로 날아온 아지가 랄리온을 땅에 힘차게 메다꽂았다. 뭉개진 살점에서 피가 튄다. 우위를 점한 아지는 때리면 퍽퍽 터져나가는 말랑말랑한 살점 대신, 단단한 혈철 편자를 입에 물고는 열심히 잡아 뜯었다. 랄리온이 반항하듯 몸을 비틀었으나 그건 아지의 이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뚝, 편자가 떨어졌다. 아지는 몇 번 더 도리질을 치다 떨어진 편자를 발견하곤, 고개를 홱 돌려 던져버렸다. 육중한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울려퍼졌다.
그러다 나와 아지의 눈이 마주쳤다.
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멍?”
“좋아. 일 잘하고 있구만.”
조금 전까지 야성에 휩싸여 혈마를 때려눕힌 아지다. 그런 아지가 입가에 새빨간 피를 묻힌 채로 쳐다보니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를 보자마자 해맑게 웃는 걸 보고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지가 턱을 살짝 들고 짖었다.
“멍!”
“잘했어! 아지야, 그 빨간 말을 여기서 멀리 치워버려! 가능한 나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피지컬적으로 너무 강하기도 하고, 말이라서 생각도 못 읽겠고. 나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니까.
아지가 랄리온만 어떻게 처리해주면 나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
“멍멍!”
아지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짖었고.
마침 그 뒤로 랄리온의 남은 발굽이 날아왔다.
발굽에 직격당한 아지의 몸이 공처럼 날아간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혈마는 짧게 투레질을 하더니, 나에게는 시선조차 주지도 않고 아지를 뒤쫓았다. 콘크리트를 깨부수는 발굽 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홀로 남겨진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렇게 치워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어쨌건 당장 랄리온이 나를 노리지는 않을 것 같으니 다행이지. 나는 다시 나아갔다.
한쪽에선 집채만 한 말과 인간 모습을 한 개가 싸우고, 끊임없이 나타나는 검은 기사를 회귀자의 바람이 날려버리고 있다. 평범하고는 백만 년 정도 떨어진 듯한 초월적인 전투였다.
그 전투 한가운데에서, 나는 빈틈을 간신히 비집으며 달려갔다.
내 눈앞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흑기사를 바라보며, 내가 품은 생각은 하나였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내가 있을 깜냥이 못 되는데.
죽지도 않고 부활하는 흑기사에, 혈마, 개의 왕, 회귀자, 시조 흡혈귀까지. 그런 전장에 있기에 나는 너무 평범하다고.
그때 핀레이가 나를 가리키며 포효했다.
“네노오오오오옴!!”
그러자 흐릿한 눈동자를 한 흡혈귀가 손을 치켜든다. 사방에서 흑기사가 솟아나더니, 내 경로를 가로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저 새끼도 있는데 나라고 없을 이유가 없네.”
아무래도 내가 핀레이보다는 낫지. 음음.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꼬챙이를 꺼내 불사자의 팔 단면을 긁었다. 딱딱하게 굳은 살점 틈으로 뾰족한 날이 파고들었다. 쩌적 갈라지는 살점. 꼬챙이로 갈라진 살을 긁으며 튕겼다.
“임모탈 익스플로전!”
새카맣게 변색된 살점이 파편화되어 흑기사들을 휩쓴다. 적당히 굳은 살점은 좋은 탄환이 된다. 파편에 직격당한 흑기사는 저주의 여파에 허우적거렸다.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팔이 상당히 짧아졌다. 조금 아껴써야겠다고 생각하며 냅다 달렸다.
“쯧. 노인네에게 최신식 유희를 알려준 내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암. 늦바람에 패가망신하는 노인네가 한둘이 아닌데 말이야.”
나는 평범하다.
고유마도는 무슨. 나는 평범한 사람답게 오직 보편마법만 사용할 수 있다. 기공처럼 거창한 것도 없다. 카드를 완벽하게 섞는 손재주 정도만 있을 뿐.
즉,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
조금 줄을 대보겠다고, 호감 좀 사보겠다고 심장을 만지작거린 대가인가. 쯧쯧. 이래서 사람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거늘. 무저갱에 있다고 내 분수를 잊은 죄다.
“나 같은 건 결국 쉬이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지. 내가 한 행동도, 내가 하는 말도. 건네는 친절까지도 결국 흔하기 그지없어.”
새삼 초라한 내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꾸준히 달리니 어느덧 핀레이와 흡혈귀가 지척이다. 나는 불사자의 오른팔을 단단히 붙잡고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도, 일단 살고는 봐야겠지. 평범한 사람조차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
다가갈수록 생각이 명료하게 읽혔다. 나를 향한 핀레이의 적의, 그리고 흐리멍덩한 흡혈귀의 자아. 둘 사이에 이어진 피의 연결까지.
그 사이를 겨누며,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죽여줄게.”
“내가 쉽게 죽어줄 것 같나!!”
핀레이는 다시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핏줄이 들썩거린다. 목, 이마, 팔, 가슴. 미처 제어하지 못한 피가 요동치며, 피부 아래에서 흉측하게 꿀렁거렸다. 시조를 조종하느라 자기 피를 미처 제어하지 못한 탓이다.
그에 비해, 흡혈귀는 핏줄이 조금 튀어나온 것 말고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무표정으로, 초점 없는 눈으로 모두를 내려보고 있을 뿐.
핀레이는 눈앞까지 다가온 나를 향해 외쳤다.
“너, 이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짓이겨주마!”
“거기서 기다려라, 마늘장아찌. 드럼통에 콘크리트와 함께 담가줄게.”
마늘콘크리트에 파묻어 바다에 굴리면 아주 볼만하겠지. 죽을 때까지 행복할 거다.
슬슬 불사자의 오른팔도 한계다. 이제는 시간 싸움. 전체적으로 거뭇하게 바뀐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바닥에서, 허공에서, 피웅덩이에서 끊임없이 재생성되는 흑기사대. 그러나 무력하다. 권능으로 대강 만들어낸 무기로는 불사자의 오른팔을 막을 수 없다. 혈기가 있으면 모르나, 붉은 기운은 태양 앞에서 빛을 잃는다.
혈기는 몸에서 빼낸 생기. 그게 없는 그림자는 인형이나 다름없다. 힘이 순환하지 않기 때문에 불사자의 저주에 버틸 수 없다.
퍼석.
한때 유망한 기사였을 메아리가 단숨에 흐트러진다. 진짜 무기나 갑옷을 입고 있었다면 나와 좋은 승부를 냈겠지만, 아쉽게도 권능으로 급조한 무기를 가진 상태. 그 메아리는 누군가의 오른팔에 방패가 부서지고 가슴이 뚫리는 방식으로 종말을 맞이했다.
“그게 다냐, 핀레이?”
이제 나와 흡혈귀 사이 남은 거리는 약 열 걸음. 순풍을 탄 지금이라면 세 번만 뛰기만 해도 닿을 거리다.
핀레이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태양이 떠있는 이상, 흑기사를 강화시키는 혈기를 쓸 수 없다! 혈기 없는 흑기사대로는 막지 못해. 하지만!’
“시조시여!! 저에게 힘을 빌려주십시오!!”
핀레이가 혈조술을 끌어올렸다. 권속만 빌려 쓰던 그때완 달리, 혈기를 넘겨받은 뒤 그가 직접 사용하는 방식.
한순간 그가 원래 다루던 것의 백 배는 되는 혈기가 핀레이의 몸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전신의 핏줄이 터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외쳤다.
“이게 시조의 힘이다! 받아라, 천민!”
허공에 수십 개의 붉은 창이 떠올랐다. 겨누는 곳은 어깨와 배, 그리고 다리. 다른 대부분은 견제용.
맞으면 치명적이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궤적. 당연히.
‘그건 속임수! 진짜는 등 뒤로 몰래 보낸 채찍이다!!’
뻔하다. 생각을 읽기도 전에 예측이 가네.
차라리 창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쏟았으면 내가 못 피했을 텐데, 괜히 노림수를 써서는.
사각에서 새빨간 채찍이 다가온다. 동시에 붉은 창이 내 몸을 노리고 쏘아졌다.
대처하기는 쉽다. 불사자의 오른팔로 붉은 창을 걷어내고, 채찍은 몸만 비틀어 피한다. 집중해야 할 건 등 뒤의 채찍뿐.
채찍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이걸 보지도 않고 피해? 그렇다면!’
붉은 기운을 손에 가득 쥔 핀레이가 팔을 아래쪽으로 내밀었다. 그림자가 확 넓어졌다.
‘발바닥에 구멍을 뚫어주마!’
오, 이건 참신하네.
내디디려는 발을 엇박자로 꼰다. 그대로 걸었다면 내 발이 닿았을 곳으로 그림자의 칼날이 솟구쳤다.
숨겨진 칼날을 피한 나는 술에 취한 것처럼 보폭과 박자를 어긋나게 했고, 그럴 때마다 핀레이가 만들어낸 칼날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이걸 어떻게! 그렇다면, 땅 전체를!’
수천 수만 개의 칼날이 핀레이의 손 아래에서 솟구친다. 땅 전체를 칼날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어림도 없지. 상체를 살짝 숙이며 불사자의 오른팔로 땅을 긁었다. 투둑. 단면이 땅을 긁을 때마다 딱딱하게 굳은 살점이 길게 늘어지며 그림자를 잠식했다. 칼날이 나에게 닿기도 전, 그림자의 영역 자체가 부스러졌다.
이제 거리는 지척. 궁지에 몰린 핀레이는 다급히 피로 벽을 만들었다. 이제는 작전도 없다. 그냥 나를 막아야겠다는 생각뿐.
“어째서! 어째서 맞지 않는 거지?!”
붉은 파도가 나를 덮치지만 그런 건 오히려 자기 시야만 가릴 뿐이다.
불사자의 오른팔로 파도를 베었다. 만일 저게 물이었고 내 손에 들린 게 검이었다면, 나는 그대로 휩쓸려 뒤로 밀려났을 것이다.
하지만 흡혈귀가 다루는 건 피, 하필 내 손에 들린 건 토인의 팔.
토인의 팔에 닿은 핏물은 순식간에 새까맣게 굳었고, 나는 어깨로 변색된 파도를 헤치고 나타났다. 내 몸에 들러붙으려는 핏방울은 순풍에 휩쓸려 날아갔다.
핀레이가 경악했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한 채 뛰어나갔다.
“왜 맞지 않는지 궁금해?”
알면 실망할 텐데.
그러니까 말해줘야지.
나는 불사자의 오른팔을 크게 당기며 정답을 가르쳐주었다.
“네가 직접 공격하니까! 더럽게 뻔해서 맞을 수가 없더라고!”
“이… 자식… 이…!”
“하하! 능력도, 인성도 귀족답지 않구나! 모기도 너보단 그릇이 클 거다!”
“죽여주겠…!”
바보, 내 말에 반응한 것부터 시간을 낭비한 거다.
“임모탈 피니쉬!!”
순풍으로 성큼 걸어간 나는 불사자의 오른팔을 크게 휘둘러 핀레이를 후려쳤다. 불사자의 자랑인 상완 이두근이 핀레이의 얼굴과 거세게 충돌했다. 서로 닿은 부분이 시커멓게 물들고, 그 충격에 핀레이의 몸이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입에서 이빨 두어 개가 튀어나온다.
그러니 핀레이를 쓰러뜨린다고 끝이 아니다. 이 사단이 난 건 다 흡혈귀 때문. 그녀를 깨워야 했다.
나는 쓰러진 핀레이를 뒤로한 채 흡혈귀로 향해 뛰었다.
그 뒤로 절망에 찬 핀레이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막아!!!”
핀레이가 양팔을 휘저었다. 손에서 흐르는 혈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핀레이가 방어를 도외시하면서까지 짜낸 권능이, 질리지도 않고 나의 앞을 가로막는다.
새로 솟아나는 흑기사들, 피의 채찍, 붉게 물든 낙인, 어둠에서 솟아난 가시. 세상을 가득 메우는 안개까지.
그 모든 게, 나와 불사자의 오른팔로 향한다. 혈귀의 피를 더럽히는 토인의 살점을 막기 위해.
‘저것만 떼어내면! 불사의 군세를 결코 막을 수 없다! 토인의 오른팔만 없다면 한낱 칼잡이 따위는!!’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는 못할 것이다.
불사자의 오른팔을 종횡무진 휘두르며 흑기사를 ‘오염’시킨 내 모습. 본래라면 다시 일어나야 할 불사의 군단이 힘을 잃고 스러지니 위기감을 느꼈겠지.
분명 불사자의 팔은 흡혈귀라는 존재에게 있어 치명적인 독이다. 따라서 핀레이는 그 무기가 가장 위험한 동시에, 이것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떨쳐내!”
저주로 피를 오염시키는 불사자의 팔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보다 그 양. 거대한 무게로 짓누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핀레이는 억지로 혈기를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아 나를, 정확히는 불사자의 오른팔을 밀어내려고 했다.
모든 힘을 다해.
“짜잔.”
역시, 강조한 보람이 있었다.
덕분에 왼손에 있는 카드 한 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잖아.
선혈의 파도가 나를, 정확히는 나의 무기인 토인의 오른팔을 휩쓸었다. 불사자의 오른팔이 하늘 높게 튕겨 올랐다.
내 일생일대의 미스디렉션. 날아오르는 오른팔에 시선을 빼앗긴 이들은, 나의 존재를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아차! 교관은?!’
핀레이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이미 그것을 던져버리고, 카드 한 장을 꼬나쥔 채 흡혈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걸 본 핀레이의 눈에.
승리감이 깃돌았다.
‘멍청이! 내가 시조를 아무런 대비 없이 방치했을 것 같으냐!’
내 카드가 팔목을 스쳐지나가며 꼬챙이로 변한다. 불길한 빛을 띠는 소드 스틱이 흡혈귀의 가슴으로 향한다. 검붉은 기운을 줄기줄기 흘려내는 그 균열로.
‘그건 혈조술의 폭풍! 내 힘이 아니라, 폭주한 시조의 권능이니! 단순한 무기로는 접근도 못…!’
그때, 핀레이는 보았다. 내 꼬챙이 끝이, 뭔가 낯익은 핏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진혈?’
피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분이 철이다. 또한,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철이다. 둘은 철기 시대가 찾아온 이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오죽하면 철혈이라 한 데 묶여 불리기도 했을 정도니.
둘의 관계성은 역사를 지날수록 더해갔다. 주술적인 의미로 철로 만든 무기에 피를 먹이곤 했으며, 피가 부족한 이들을 위해 녹슨 철을 핥게끔 시키는 의원도 있었다. 피비린내와 쇳비린내는 함께 오고 함께 가는 바람이었다.
그렇기에 피와 철을 섞는 연금술은, 연금술의 기초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나는 기초 연금술을 조금 귀중한 재료로 해보았고.
“언젠가 몰래 빼돌리려고 카드 속에 숨겨뒀는데.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열린 가슴, 지배력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여전히 틈을 보이는 가슴팍으로.
진혈을 머금은 꼬챙이를 찔렀다.
저항감이 느껴진다. 세차게 흐르는 혈기가 내 손을 밀어내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수십 번도 더 해본 일.
지도라도 있는 것처럼 능숙하게 흡혈귀의 가슴 속을 파헤쳤다. 내 꼬챙이는,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심장에 닿았다.
두근.
손아귀에 쥔 꼬챙이에서 인위적인 떨림이 전해져 온다.
이건 핀레이가 억지로 이끌어낸 심장의 박동. 질 낮은 매트로놈처럼 기분 나쁘게 규칙적이다. 억지로 흉내 낸 심박이자, 발칙하게도 자신의 혈주를 지배하려고 만들어낸 저주.
“티르칸쟈카 교육생. 잠꼬대가 좀 심했습니다. 꿈은 충분히 꾸었으니 이제 깰 시간입니다.”
나는 저주의 한복판에 꼬챙이를 박아넣고는, 전신에서 마력을 피워올렸다. 지금껏 무저갱에서 썼던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마력을 짜내며 외쳤다.
“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