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79)
EP.79 설명서는 꼼꼼히
티르칸쟈카의 입술이 벌어지다 멈췄다. 골렘은, 물론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 기대하는 듯 티르칸쟈카의 반응을 기다렸다.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던 티르칸쟈카가 느릿하게 되물었다.
“…무어라고?”
『그는 아무런 자격도 없는 범죄자이며, 이곳에 들어온 것은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함입니다. 아미텐그라드에서 사기와 도박 혐의로 체포되었고, 군정판사의 공정하고도 신속한 언도 하에 탄탈로스 노역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귀하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그는 군국의 교관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의 행동은… 너희 나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냐?”
『긍정. 그가 본관의 눈을 가리고 무슨 짓을 벌였든, 그것은 군국의 진의가 아닙니다. 일개 미친 범죄자가 돌발행동한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했던가. 제복이 꽤 어울리는 인상이었는데.
정말 의외인 사실을 전해들었으나, 티르칸쟈카는 그에 아무런 유감도 갖지 않았다. 정작 티르칸쟈카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죄인 이상의 무언가였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속여왔다는 말을 듣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냥, 기뻤다.
“정말이렷다.”
『긍정.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교육생이라고 불렀던 건.”
『군국을 사칭하여 생존확률을 조금이나마 올려보려는 수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아무런 의무도 없이 이곳에 강제로 내던져졌다, 이 말이냐?”
『노역할 의무는 있었습니다만. 그런 범죄자가 자기 먹을 식사 만드는 것 말고 노역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로군요.』
헐뜯는 말을 들어도 마찬가지. 티르칸쟈카는 점점 들뜨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냥.
순수하게.
호의로.
목숨을 걸어가며, 심장을 되찾아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후훗.”
가슴을 죄는 듯 미안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기쁨이 혈관을 따라 질주한다. 심장부터 허파까지 한 바퀴 돌아서 기쁨의 탄성을 만들고는, 울컥거리는 목을 따라 머리에 닿았다.
잠시 얼굴이 따뜻해진다. 온기는 활기이고, 활기는 움직임이다. 예전에는 영 뻣뻣하던 입꼬리가 부드럽게 늘어졌다.
“후후, 아하하.”
『…무엇이 그리 우스운 겁니까?』
티르칸쟈카는 즐거이 미소를 짓다, 한꺼번에 거두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사라져도 군국이라는 나라에는 아무런 문제도, 아쉬움도 없겠구나.”
『긍정.』
“좋다. 내가 그를 거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
『긍정…?』
“그게 군국의 덕이 아니었구나. 하물며 그는 고아라 하였으니 무엇에도 매이지 않은 몸. 내가 따로 몸값을 치를 이유도 없지.”
『…?』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골렘이 의문을 표할 때. 티르칸쟈카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헌데, 의문이 하나 있다.”
한껏 여유로운 얼굴로, 우아하게 턱을 괸 티르칸쟈카는 골렘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핀레이가 떨어졌을 때만 하더라도 둘은 같이 있지 않았느냐. 마치 오누이라도 된 것마냥 정겹게 업힌 채로.”
『오누이라니오! 부정, 절대부정합니다! 본관은 그딴 녀석을 오빠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발작적인 반박에 티르칸쟈카는 눈을 끔뻑였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어찌하였건 너도 그의 등에 신세를 지지 않았느냐. 그러할진대 그가 갑자기 왜 너를 묶어놓았던 것이냐?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터.”
『…그건.』
골렘이 대답을 회피하려고 하자, 티르칸쟈카는 집요하게 그를 추궁했다.
“그에게 물어보면 끝날 문제이다. 솔직하게 털어놓거라. 이러한 물음마저 대답하지 않는다면 무얼 믿고 문답을 나누겠느냐?”
정작 그는 백치가 되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겠지만, 따라서 이 물음에 답할 존재는 골렘밖에 없지만. 이곳에 묶인 채 갇혀있던 골렘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티르칸쟈카의 주장에 골렘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는 본관으로부터 무저갱의 탈출 방법을 캐내려고 시도했습니다.』
“호오.”
저번에 핀레이를 내보내준다는 말은 허풍이었던 모양이다. 티르칸쟈카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더 기억에 넣었다.
『본관은 그러한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였으나, 그는 그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역행위를 저질렀습니다. 본 기체의 스피커를 파손하고는, 본관이 탄탈로스 내부를 감시하지 못하도록 이곳에 구속했습니다.』
“그게 전부이냐? 단지 불만을 품었다고 지금껏 잘 지내던 너를 묶어두느냐?”
느긋한 추궁. 골렘은 망설이는 기색이었으나, 곧 의미 없음을 깨닫고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군국은 모든 부분에 대해 늘 대체품을 준비합니다.』
“대체품이라. 꼭 물건만을 말하는 건 아닌가 보구나.”
『긍정. 지금까지는 무저갱이라는 특수성과, 노역자인 그의 협조적인 태도를 고려하여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에게 반동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군국의 입장에서 그는 리트머스 종이다. 안쪽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스스로 붉어져서 경고하는 일종의 시험지.
리트머스는 충분히 오래 살았다. 이제 군국은 이 무저갱에 인력을 파견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마침 리트머스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도리어 미룰 이유가 없다.
“오호라. 알겠다. 그는 낌새를 눈치채곤, 너희와 척을 지기로 한 것이로구나.”
이제 흘러가는 상황을 대강 알아차린 티르칸쟈카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골렘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자격도 없는 이가 귀하의 심기를 어지럽혔을 것이나,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자의 돌발행동은 군국의 입장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면피를 위해 둘러대는 말.
도리어 티르칸쟈카 입장에서는 기꺼운 일이었다. 얻은 건 은혜밖에 없어 군국에게도 커다란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저쪽이 알아서 치워주지 않는가.
“마음대로 하거라. 다른 무언가가 이곳에 와도 신경 쓰지 않겠다. 대신.”
오히려 노역자로 그를 보내주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티르칸쟈카는 우연히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식탁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너희가 버린 것은, 내가 꼭 주워가도록 하마.”
『…? 탄탈로스에 있는 모든 물품은 본국의 자산입니다. 양도 혹은 구매를 원하시면 관리당국에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참 까다롭구나.”
『아무래도 그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귀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리가. 나도 꽤 놀랐다. 단지 잘 모르는 이야기가 많아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 뿐.”
누군가가 범죄자라는 건 티르칸쟈카에게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혹여나 셰이라면 다른 반응을 보일지도 몰랐지만.
혹, 셰이 보고 식당에 가지 말라는 게 그 때문이었을까. 티르칸쟈카는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자꾸만 엇나가는 이야기에 골렘이 다시 흐름을 다잡았다.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본 기체가 구속된 나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브리핑해주십시오. 특히, 흡혈귀 침입자에 대해 중점적으로.』
어려울 것 없었다. 티르칸쟈카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녀가 조종당했다는,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사실은 빼고.
“핀레이는 나를 설득하려고 했고, 솔깃하여 반쯤 넘어갔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를 뜯어말리지 않느냐? 꽤 오래 고민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는데, 핀레이가 격렬하게 그들을 비난하더니 서로 싸우지 않더냐. 모든 힘을 다 쏟은 핀레이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그게 전부입니까?』
당연히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말해줄 필요도 없을 터.
티르칸쟈카가 짐짓 화난 기색을 보였다.
“입 아프다. 내가 무엇을 더 설명해야겠느냐? 내가 이곳에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느냐?”
『확인했습니다.』
골렘의 수긍은 빨랐다. 그건 티르칸쟈카의 말을 온전히 신뢰했다기보단, 현시점 그녀가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한 정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딱딱하게 원칙을 지키는 골렘이었으나, 아직 울분을 다 식히지는 못했는지 한마디 강조했다.
『순순히 협조한 귀하를 위하여 다시 한번 경고하겠습니다. 그자를 신뢰하지 마십시오. 사기와 도박을 일삼는 군국의 해충입니다.』
이미 늦었다, 는 대답이 목까지 차올랐으나, 티르칸쟈카는 간신히 그것을 삼키고는 대충 대답했다.
“내 알아 하겠다. 아,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과거는 과거. 그가 범죄자이든, 핀레이가 무얼 노렸든, 그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티르칸쟈카는 이제 조금 더 중요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어쩌면 앞으로 훨씬 커다란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질문을.
“혹, 남은 재료로 요리하는 법을 알고 있느냐?”
골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 본관은 군국 통신병이며, 콩 통조림으로 만들 수 있는 군국특선조리법 99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호오. 대단하구나.”
『부정. 평범합니다. 통신병은 고립된 공간에서 장기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잦으며, 특성상 그러한 정보와 접하기 쉬운 위치이기 때문에 아는 것일 뿐.』
그리 말하고는 있지만, 어조에는 숨기지 못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골렘은 한발 앞서 제안하기까지 했다.
『본 기체를 이 찬장에서 내려주십시오. 말로만 해선 착오가 생길 수 있으니 직접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냐.”
티르칸쟈카는 손을 휘둘렀다. 어둠이 흘러가더니 골렘의 전신을 붙잡았다.
골렘을 꺼내려던 티르칸쟈카는 문득 앉아있는 그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를 탐탁지 않아 하는 골렘이 혹여나 저 모습을 보았다간 무슨 반응이 나올지 모른다.
티르칸쟈카는 손을 휘둘렀고 손에서 나온 새카만 어둠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그의 모습을 가렸다. 빛을 막아내는 어둠이니, 골렘의 눈으로는 꿰뚫어 볼 수 없을 것이었다.
『위험합니다!』
그러느라 골렘 쪽 조종이 소홀해진 바람에 떨어뜨릴 뻔했다. 혈조술이 예전만큼 자연스럽지 못한 탓이었다.
어둠을 붙잡고 버틴 골렘은 고개를 빤히 들며 흡혈귀를 나무랐다.
『취급에 주의하여 주십시오. 본 기체는 이 이상의 손상을 받으면 위험합니다.』
떨어뜨릴 뻔했으니 앞으로는 취급을 주의해달라는, 어찌 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말.
분명 그에게는 통했을 말이나, 아쉽게도 시대에 비켜 선 티르칸쟈카에게는 전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골렘을 뭐 그리 애지중지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냐? 골렘의 몇 안 되는 장점이라고 하면 튼튼하다는 것뿐인데 고작 떨어지는 것 가지고.”
티르칸쟈카는 골렘 따위에게 꾸지람을 듣고도 넘어갈 인물이 아니었다.
원시적인 진흙골렘 말고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녀에게 있어, 골렘이란 망가지는 것을 전제로 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인간조차 인형처럼 주무를 수 있는데 감히 골렘이 말대꾸를 하다니.
그 말에서 위기감을 느꼈는지, 골렘이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본 개체는 싱크로 타입입니다. 본 기체는 현재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으며, 프레임의 비틀림이 더욱 커졌다간 동조할 수 없게 됩니다. 또 본관의 몸과 동조하여 조종하는 것이라 충격을 받았다간 그 고통이 본신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골렘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나머지 하나가 조종자의 안전인데, 그마저도 없다고? 그러면 왜 그러한 골렘을 쓰느냐?”
차가운 시선이 골렘을 향했다.
군국의 최신식 싱크로 타입 골렘은 12세기 전의 흡혈귀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야 했다.
『보십시오.』
골렘이 손가락 하나를 서로 다르게 까닥였다. 티르칸쟈카는 신기한 얼굴로 골렘이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골렘은 내친김에 스트레칭이라도 하듯 팔을 크게 한 바퀴 돌렸다. 진짜 인간에 비하면야 가동범위가 한참 좁았지만, 골렘 치고는 대단히 세밀한 움직임이었다.
『싱크로하지 않으면 이토록 먼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조종할 수 없습니다. 감도를 조절할 수 있으나, 마침 그 부분이 고장 난 터라.』
“신기하구나. 그러면 너의 본신은 지금 골렘과 똑같이 움직이고 있느냐?”
『긍정. 골렘과 같은 동작을 취하지 않는다면 싱크로가 해제되기에, 너무 강한 충격을 받으면 위험합니다.』
최신 장난감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던 티르칸쟈카는 문득 물었다.
“아까 다리를 벌린 채 꼴사납게 있던 것도?”
골렘의 동작이 뚝 멈췄다.
『…긍…정….』
스피커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골렘의 다리를 찢어놓은 일은, 명확한 장난기를 담은 괴롭힘이었다.
골렘 너머의 사람은 골렘과 동조하기 위해서라도 제 자리에서 다리를 찢어야 했던 것이다.
“고통스러웠을 텐데, 구태여 왜 계속 동조하고 있었느냐?”
『계속은 아닙니다. 잘 때나 식사할 때, 혹 다른 업무가 있을 때는 해제하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해, 골렘은 한 점 주저없이 말했다.
『탄탈로스를 관찰하고, 그 내용을 보고하는 것. 그것이 본관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티르칸쟈카는 더 묻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골렘의 무례도 그냥 넘어가주기로 했다.
존재가치를 인정받은 골렘은 드디어 눈을 돌릴 여유를 얻었다. 골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습니다. 식당이 기묘하게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만.』
“내가 있을진대 어찌 밝겠느냐.”
그 말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티르칸쟈카이기 때문이다. 골렘도 별다른 의심 없이 수긍했다.
『확인했습니다. 일단 창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