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80)
EP.80 심장의 다른 반쪽
티르칸쟈카는 직접 요리를 하려고 했으나, 12세기 동안 주방에 들어간 적 없는 소녀에게 주방이란 낯선 물건의 천국이었다. 그녀는 주걱보다는 메이스가, 국자보다는 할버드가, 집게보단 톱날검이 더 익숙했던 것이다. 그것도 자기를 향해 겨누어지는 쪽으로.
어쩔 수 없이 골렘이 시범을 보이기로 했다.
골렘은 놀랍도록 요리에 능숙했다.
유일한 문제점이 있다면 크기가 작아서 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으나, 그건 티르칸쟈카가 간단히 해결했다.
티르칸쟈카가 대충 손을 휘젓자, 골렘을 중심으로 새카만 기류가 형성되었다. 그건 아래쪽부터 차근차근 형체를 이루어나가더니, 골렘의 몸을 부드럽게 밀어 올리며 그 몸을 감쌌다.
골렘은 잠시 높아진 시야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골렘의 머리 위쪽으로 솟아난 그림자도 두리번거리는 동작을 따라했다. 골렘이 팔을 들면 그림자도 팔을 들었고, 한 걸음 내디디면 똑같이 한 발을 내밀었다. 마치 그림자 인형이라도 된 것 같았다.
『이건…! 아니, 군국의 기술력으로도 불가능한 일인데?!』
“그림자로서 맺힌 상은 본래보다 한없이 커질 수도, 티끌만큼이나 작아질 수도 있기 마련. 너의 딱 세 배 크기 되는 그림자다. 네가 행동하는 그대로 따라 할 것이다.”
그림자를 몸에 익힌 골렘이 손을 뻗었다. 그림자는 그 움직임에 따라 찬장에서 냄비를 꺼내고 수도꼭지를 열었다. 그림자이지만 실체가 있다는 의미.
자신보다 세 배 큰 동작을 재현하는 그림자에 골렘은 크게 당황했다.
“놀랐느냐? 마음껏 놀라거라. 지배와 조종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힘. 너희들의 깡통인형 놀이나 흙장난과는 궤를 달리하지.”
『…깡통…. 큭, 부정,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몸을 얻게 된 골렘은 손과 발을 바쁘게 놀렸다. 콩을 물에 불리고, 체에 밭쳐 물기를 쭉 뺀 뒤, 빼낸 물을 냄비에 담아 끓이는 동시에 콩은 팬 위에서 바짝 졸였다. 티르칸쟈카는 주의깊게 골렘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며 머리에 담았다.
온갖 노력을 들인 끝에, 골렘이 완성한 요리를 내놓으며 말했다.
『끝났습니다. 콩 통조림 콩조림과 육수 스프입니다.』
“요리란 이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고맙다.”
『별말씀을. 본관은 귀하에게 충분한 편의를 제공할 생각이 있습니다.』
골렘에게도 나름의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
노역자는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고, 다른 교육생은 의지할 대상이 못 된다. 거기다 현재 탄탈로스에서 가장 강하고 영향력이 큰 존재가 티르칸쟈카이니, 내부의 정보가 필요한 골렘 입장에서 끈을 대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좋아. 일을 끝낸 깡통은 치워야겠지.”
『깡…?』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티르칸쟈카는 처음부터 군국에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
“이제 다시 잠들거라.”
『읍? 잠…?!』
툭. 그림자가 스피커를 떼어냈다. 골렘이 눈앞에서 멀어지는 스피커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그림자가 몰려들더니 그 팔과 다리를 구속했다.
처음부터, 정확히는 골렘이 그에게 적의를 보였을 때부터. 이 미래는 예견된 것이었다.
티르칸쟈카는 어둠에 파묻힌 골렘을 내려다보며 나긋하게 말했다.
“성심성의껏 알려주었으니 망가뜨리지는 않으마. 대신, 쓸데없는 소리는 못 하도록 해야겠다. 보아하니 이것이 없으면 말하지 못하는 것 같던데.”
『………!』
“정답인 것 같구나. 내 필요할 때 다시 찾으마.”
딱.
손가락을 튕기자, 골렘의 몸이 어둠에 휘감겨 공처럼 굴러갔다. 티르칸쟈카는 떼어낸 스피커를 찬장 가장 높은 곳에 두었다.
골렘이 홀로 어둠 속에서 바둥거리는 동안, 티르칸쟈카는 접시를 양손에 들고는 그에게로 향했다.
“자. 음식을 내왔다.”
그는 여전히 멍하니 앉아있는 채였다. 그러나 음식 냄새가 그를 자극했는지, 초점 없는 눈이 희미하게 접시를 따라왔다. 입가에서 침이 반짝였다.
식욕은 삶의 의지. 그에게서 그것을 확인한 티르칸쟈카는 크게 기뻐했다.
“다행히 식욕은 남아있나 보구나. 밥이다.”
“…밥.”
“그래. 밥. 맛있게 먹거라.”
그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은 티르칸쟈카는 맞은 편에 앉아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흐릿한 눈으로 음식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손을 뻗었다.
곧장 음식을 향해.
“잠깐!”
그의 동작이 딱 멎었다. 그 상태로 눈치라도 보는 것처럼 가만히 쳐다보았다. 티르칸쟈카는 숟가락을 그의 손에 고이 쥐여주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잠시 숟가락을 낯설어하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앞에 놓인 수프를 떠먹었다. 처음에는 넘친 수프가 식탁 위로 몇 방울 흘렀으나 숟가락질을 반복할수록 흐르는 양이 줄어들었다.
티르칸쟈카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모든 걸 잊지는 않았구나. 참 잘 된 일이다. 어쩌면 금방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겠구나.”
그가 평생 이대로 있어도, 티르칸쟈카는 그를 영원히 돌볼 것이다.
그러나 별개로 티르칸쟈카는 그의 이전 모습이 그리웠다.
건방지기는 했다. 아닌 척했지만, 은근히 무례했다. 타인의 깊은 고뇌를 매우 우습게 취급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예상을 웃도는 유쾌함과 티 나지 않는 배려가 숨어있었다.
그런 그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백치가 되었다는 사실은 티르칸쟈카의 가슴을 옥죄었다.
“네가 그런 모습이 된 것은, 필시 나의 심장에 네 영혼을 불어넣었기 때문이겠지.”
지금도 가슴에 손을 올리면 그가 전해준 박동이 느껴진다. 이제는 그녀의 심장과 구분할 수 없는, 새빨간 핏빛 하트가 그려진 카드 한 장이 그녀의 가슴 속에 박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나. 단 하나의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아득한 감정이 없이는, 그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아까도 개의 왕이 나를 향해 짖지 않았구나. 정말, 많은 것을 받았다. 내 너에게 딱히 준 것은 없는데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차마 셀 수도 없다. 흥미로운 이야기부터 시작되어, 심장 마사지, 그리고 그렇게 이렇게 뛴 가슴까지. 일련의 선물이 자연스러워, 받은 그녀마저도 되짚기 전까지는 받았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그녀가 준 것은 얼마나 적은가.
몸과 마음을 다해 갚아야 했다.
탁. 숟가락 내려놓은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릇은 전부 비워져 있었다.
그를 바라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티르칸쟈카는, 다시 일어나며 일일이 말을 걸었다.
“다 먹었느냐?”
끄덕.
물음에는 꼬박꼬박 대답이 돌아온다. 간단한 말은 할 줄 안다. 먹는 법, 걷는 법, 움직이는 법은 대강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잊은 건 자기 자신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려주면 된다.
“손을 내다오.”
그가 손을 뻗어왔다. 그 손을 양손으로 꼭 감싼 티르칸쟈카는 자기 가슴을 향해 잡아당겼다.
“너는 기억할지 모르나, 너는 나의 은인이다.”
그의 손은 아무런 저항 없이 따라왔다. 그것을 가슴에 소중히 품은 그녀는, 그 손을 대고 중얼거렸다.
“나의 심장이 멈춰있을 적, 이 손으로… 내 심장을 만져 뛰게 해주었지. 멈춰있던 나의 시간을 네가 깨워주었어.”
조금 커다란 손. 갈비뼈 사이를 지날 때마다 곤란한 듯 멈칫거리던, 그러면서도 결국 심장에 닿아서 많은 것을 선물해주던 손길.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소녀로 돌아온 티르칸쟈카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찬찬히 기억을 되찾거라. 나는 네가 가라고 하기 전까지 떠나지 않을 테니.”
다짐이 아니었다. 따지자면 사실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것에 가까웠다.
티르칸쟈카의 심장이 뛴다고 해서 이 생각이 바뀌리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기에.
그리 말하던 티르칸쟈카는, 그녀의 가슴팍에 닿은 손을 보고는 예전 모습을 떠올렸다.
“막상 심장을 되찾았음에도, 심장에 전기를 흘려보내던 그때가 조금 그립구나. 그때는 매순간 심장에 닿을 손가락을 기다렸는데….”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리 중얼거리던 티르칸쟈카가 이상을 느낀 건 그때였다.
분명 심장은 혈조술 없이도 뛰고 있다. 그의 손을 가져다 대든 그러지 않든, 심장은 똑같이 뛸 터.
분명 그래야 할 터인데.
왠지 모르겠으나, 그의 손을 가슴 가까이에 댈 때마다 그녀의 심장이 더욱 거세게 뛰었다.
그 손에 전기가 흐르는 것도 아닌데.
혈조술을 가졌기에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뛴다. 잃어버린 반쪽이라도 되는 듯.
예전, 심장이 멈추었을 때. 다가올 때마다 자신을 향해 강렬한 것을 쏘아낸 손. 그때를 기억하고 반기는 것 같다. 떨림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간다. 이러다 소중한 심장이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티르칸쟈카는 겁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그녀의 몸과 마음이 이대로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소망하고 있다는 점.
쿵. 쿵. 쿵.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이 절로 붉어진다. 이대로 계속 있다간 이상해질 것 같아, 티르칸쟈카는 급히 손을 밀어냈다.
진한 아쉬움이 멀어져간다. 이상사태에서 벗어낸 티르칸쟈카는 황망한 얼굴로 자기 얼굴을 한 번, 그리고 심장 위쪽을 한 번 매만졌다.
“고장…난 건가…?”
지금 티르칸쟈카로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