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81)
EP.81 관측하지 못한 이야기. 창문이 없는 방
동조 마법을 해제하면 아득히 멀어지는 감각이 찾아온다. 그건 마치 좁고 긴 터널을 거꾸로 빠져나오는 것 같다. 외로운 몸이 자신의 의식을 잡아당기면, 골렘과 에이비 사이의 연결이 한계에 달한 거미줄처럼 늘어지다가.
툭, 하고 끊기고.
에이비 대위는 현실로 돌아왔다.
에이비는 매트 위에서 눈을 떴다. 혹여나 싱크로 중 넘어져서 다치는 일이 있을까 싶어 방에 깔아둔 것.
또한, 스트레칭을 위해서 따로 깔아둔 것이기도 했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쉰 에이비는 잠시 자기 팔을 껴안았다. 제복 아래에서 말랑말랑한 살결이 만져진다.
감각에는 이상이 없다. 골렘이 아니라, 그녀의 본신이 확실하다. 동조 마법을 자주 사용하면 가끔 자기가 골렘인지 본신인지 헷갈리기에, 이런 간단한 방식으로 테스트를 해주어야 했다.
확인을 끝마친 그녀는 푹신한 매트를 무릎걸음으로 기어 밖으로 나왔다.
방에서 나오면 좁고 어두우며 번잡한 사무실이 눈에 들어온다. 임무에 필요한 것만 가득한, 그리고 그 의외의 것은 병적일 정도로 배제한 무미건조한 방.
한쪽 벽에는 손바닥만 한 ‘창문’이 벌집처럼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그중 대다수는 밤을 비추는 것처럼 어두웠다. 빛의 잔재라도 보이는 ‘창문’은 오직 두 개.
그중 하나에는 푸른 하늘과 널따란 황야가 비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둡고 흐릿했다.
에이비는 자신의 생체 말단에서 키를 뽑은 뒤, 흐릿한 ‘창문’ 옆에 있는 홈에 꽂았다. 그러자 회색빛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더니 점차 어떤 풍경을 이루었다….
이윽고 그 창문에는 탄탈로스의 식당이 비치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전체적으로 뿌옇게 보이는 전경이 창문 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시조…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시조는 무저갱에 여전히 남아있으며, 요리를 배우고자 했다는 것.
요리를 배우고자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가 당분간 무저갱에서 지내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터.
그보다 지금 탄탈로스 내부의 골렘이 구속되었기에 대처가 필요하다. 에이비는 다음 업무로 돌입했다.
‘창문’을 마주 보고 앉은 에이비는 눈을 감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공기가 부르르 떨리며, 그녀 주변의 세상에 또 다른 법칙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군국의 군인이었으나, 그녀가 쓰는 마법은 제식 마법과는 다르다. 세계를 바꾸어내기 위해 어떠한 스펠이나 영창도 필요하지 않은 자기 세상의 발현.
고유마도. 나팔꽃.
아침에만 피어나며 낮에는 저무는, 한해살이 꽃.
마력으로 이루어진 나팔꽃 줄기가 그녀의 전신을 감싸고 천천히 피어올랐다. 그건 아름다운 덩굴식물이 그녀를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기도, 혹은 배고픈 뱀이 그녀를 집어삼키기 위해 똬리를 트는 것 같기도 했다.
전자든 후자든 상관없다. 맡은 소임만 할 수 있다면.
에이비는 마력을 끌어올렸고, 그 마력을 양분 삼아 자란 나팔꽃은 그녀의 볼 옆쪽에서 꽃봉오리를 맺었다. 그것은 곧 풋풋한 자줏빛 빛깔을 선보이며 아름답게 피어났다.
준비는 끝났다. 눈을 뜬 에이비는 나팔꽃의 암술에 대고는 말했다.
“군국 통신병 에이비 대위입니다. 유엘, 에이비로부터 호출.”
아무도 듣지 못할 말.
이 오지에, 고립된 장소에서 해보았자 결코 전해지지 않을 말.
그러나 ‘동조’의 힘을 지닌 나팔꽃은, 세상 어딘가에 피어났을 다른 꽃에 그 소식을 전해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저 아득히 멀리 있는 누군가로부터 목소리가 날아든다.
『에이비! 기다렸어!』
유난스러운 목소리는 며칠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에이비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답했다.
“유엘. 연결 확인했습니다.”
『오랜만이야! 정확히는, 6일 21시간 34분일까!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일주일을 채울 뻔했어! 걱정하게 하지 마, 에이비!』
“염려해주신 건 고마우나, 연락할 일이 없었습니다. 본관이 가진 유일한 ‘창문’이 구속되는 바람에 갱신되는 정보가 없었습니다.”
짝, 하고 너머에서 손뼉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맞다! ‘창문’이 거의 다 깨졌다고 했지? 혹시 남은 두 개도 깨졌니?』
“부정. 다만, 탄탈로스 내부를 감시하는 마지막 한 개체가 구속되었습니다. 혹, 다른 ‘창문’을 보급해주실 수 있습니까?”
『으음. 아쉽지만 기다려야 해. 알다시피, 우리 ‘창문’은 워낙 만들기 힘들어서 말이야. 쉽게 안 만들어준다니까…. 하물며 그게 쉽게 부서졌으면 더더욱.』
본래 에이비가 가졌던 ‘창문’은 총 마흔아홉. 그녀가 다룰 수 있는 한계치이자, 무저갱 탄탈로스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군국에서 넉넉하게 지급한 수였다. 인간조차 쉽게 찢어버리는 탄탈로스의 무법자들이 골렘을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테니 예비해두라는 뜻으로.
예상이 잘 들어맞은 건지, 그토록 많았던 ‘창문’ 중 마흔일곱이 손쉽게 부서지고, 남은 것은 단 두 개.
그러나 에이비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그것은 본관의 소관이나, 온전히 본관의 책임은 아닙니다. 탄탈로스에서 ‘창문’을 부수는 교육생이 드문 건 아니었으나, ‘그’처럼 편집증적으로 정성스레 부수는 이는 없었습니다. 애초에, 범죄자를 체포하면서 무장조차 해제하지 않은 파트락시온 장군 책임이….”
『아하하. 큰일 날 소리를. 아무리 우리가 그쪽 소속이 아니어도 장성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유엘이 타이밍 좋게 말을 끊었다. 애꿎은 유엘에게 감정을 토해낼 뻔한 에이비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시정하겠습니다.”
『아냐아냐~. 그럴 수도 있지! 우리는 통신병이지, 감정 없는 흡혈귀는 아니잖아! 햇빛을 못 받는다는 점에서 별 차이는 없긴 하지만!』
자학이 섞인 농담이 흘러나왔다. 경직된 분위기를 흐리려는 유엘의 노력이다.
새삼 상대방에게 폐를 끼쳤다는 불편한 기분을 느끼며, 에이비는 화제를 돌렸다.
“저번에 요청했던 마력초의 보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응! 곧 출발할 것 같아! 하지만, 알지? 통신병은 절대 마력초를 쓰면 안 돼!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감시관이 파견될 거야!』
매사에 부드러운 유엘은 에이비에게 강한 어조를 쓰지 않는다. 그런 유엘이 ‘절대’라고 강조할 정도라면, 그건 정말로 피해야 할 일이라는 뜻.
그러나 에이비는 알고 있었다.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유엘이, 에이비에게 마력초를 보급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노역자가 배신했으니 마력초 보급을 취소해달라, 는 말을 감히 꺼낼 수가 없었다. 에이비의 부탁에 기뻐했을 유엘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잠시 말을 고르던 도중 유엘 쪽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명령서가 접수된 것이다.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나팔꽃 너머로 전해졌다.
『앗. 잠깐만. 긴급 명령서가.』
보고라고 치기에는 너무 길었고, 사담이라 하기엔 너무 짧았다. 이제 둘만의 이야기는 끝낼 시간이었다.
에이비는 입고 있던 옷을 고치며 말했다.
“바쁘신 와중 실례했습니다, 유엘 대위.”
『아니야. 오랜만에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어. 나중에, 또…. 이야기하자.』
그리움을 담은 목소리가 멀어지며, 나팔꽃의 꽃잎이 힘없이 지기 시작한다. 아릿하게 남은 잔향으로 유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군국 통신병 유엘 대위입니다…. 귀하의 요청서를….』
흐려지는 목소리. 그것을 끝으로, 에이비의 어깨에 핀 나팔꽃이 시들었다. 말라비틀어진 것처럼 가닥가닥 끊어지는 덩굴 줄기.
그것들은 땅에 떨어지면서 안개처럼 허공에 녹아들었다.
고유마법은 고유하다. 한 명이 가진 하나의 심상은 다른 것과는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법이라는 신비가 인간의 몸에 깃든 순간부터 생겨난 지상명제.
그러나.
비슷한 적성을 가진 이들을 모아, 엄격하고 규격화된 교육으로 그들의 심상을 연마한다면.
같은 마법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군국은 그것을 실제로 해냈다. 중등군사학교에서부터 엄선한 인재를 모아, 특별히 교육해서 육성한 통신병.
그들의 마법은, 물론 형태는 다 다르나, 공통으로 갖는 특성이 있었다.
동조.
이 마법으로 통신병은 기계장치나 마법진 없이 다른 통신병과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으며, 생체 단말과 키를 이용해 특수제작 된 골렘에 접속할 수 있었다.
가장 쓰레기 같은 통신장비조차 건물과 비견될 만큼 거대하며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점을 생각하면, 통신병이란 그런 부담을 크게 완화하는 동시에 유동성까지 부여한 군국의 성공작이었다.
다만, 그러한 재능을 가진 이들은 손에 꼽기에, 통신병은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임관 즉시 대위가 된다.
대위가 되어봤자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골렘이 전부라, 장교라기보단 말단 병사에 가깝지만.
“고생하십시오, 유엘.”
가장 친했던 이의 행복을 바라며 에이비는 고개를 돌렸다.
작은 전등 하나만이 이 답답한 공간을 비춘다. 좁은 책상, 그 위에는 서류나 암호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의복 패킷이 있으니 옷장조차 필요 없고, 콩 통조림이 있어 다른 식량도 없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건은 찬장 하나에 전부 들어있다.
그 이외에는, 삶을 장식할 그 무엇도 없다.
잠시 몸을 뉠 안락한 쇼파도.
웃음보단 비웃음에 가까운 것이 흘러나오는, 시답잖은 내용이 든 잡지도.
하다못해, 잠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조차도.
아무것도.
이곳은 창문 없는 방. 바깥으로 난 문 따위는 없다. 설사 그것이 창문이라도.
커튼을 열고 내리쬐는 햇빛을 맞이하는 것, 창문을 열고 바람을 안에 들이는 것 따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통신병 에이비 대위,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창문’은, 바깥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구는 오직 골렘뿐.
통신병의 방은 무미건조해야 한다. 만일 눈 돌릴 것이 있다면, 필시 통신에 소홀하게 되니까.
보급물자를 받으려면, 업무를 처리하려면, 혹, 기분전환 삼아 세상을 관찰하고 싶다면, 그들만의 창문인 골렘을 통해야 했다.
오직 그것만이 세상과 교류할 유일한 방법.
그나마 유일하게 허락된 안식이… 다른 통신병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세면대로 가 세수를 했다. 수건 패킷으로 얼굴을 닦은 에이비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제복과 모자, 그에 맞추어 깔끔하게 자른 단발이 찰랑거린다. 햇빛을 보지 못해서인지 흐린 조명 아래서도 피부가 하얗다.
예전에는 조금 누렇게 뜬 느낌이 있었으나, 최근 본의 아니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사라졌다.
그렇다고 고맙게 여기고 싶지는 않지만.
새삼 다시 ‘창문’에 생각이 미쳤다. 에이비는 다시 의자에 앉아 ‘창문’을 내다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먼 황야를 바라보는 지상의 골렘,
그리고 식당 한구석에 앉아, 어두컴컴한 식당을 가만히 바라보는 탄탈로스의 골렘.
골렘처럼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에이비가 문득 중얼거렸다.
“…돌아갈까.”
에이비는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남은 두 개의 창문 중, 잠깐 고민하다가, 탄탈로스 안에 있는 골렘의 키를 잡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칭을 시작하고 말았다. 지난 사흘 간, 동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했던 스트레칭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다리를 풀던 에이비 대위는 문득 어떤 사실을 상기해냈다.
“아. 풀렸었지.”
에이비는 과거의 치욕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동조율은 동조하려는 대상과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높아진다. 싱크로 타입 골렘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과 유사한 감각을 지닌 것은 그 때문.
당연히 싱크로를 하기 위해서는 대상과 최대한 비슷한 동작을 취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다리를 찢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체 단말에 키를 꽂으면, 그녀와 공명하는 동조 마법이 다리를 찢어야 한다고 알렸다. 그러면 에이비 대위는 주먹을 꼭 말아쥐고 부들부들 떨며 다리를 벌려야 했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는 말이 있다. 딱딱한 골렘을 매일같이 조종하던 에이비 대위의 몸은 어느샌가 골렘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방에 박혀 골렘이나 조종하고 있으니 유연성이 없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유연하지 못한 그녀에게 새로이 주어진 시련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러나 창문 없는 방에 갇힌 에이비에게는 이겨낸다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첫날.
양발을 벽에 대고 몸을 밀어젖혔다. 숨을 참고 벽을 잡아당겼을 때, 에이비의 두 다리는 애매한 둔각을 이루었다.
골렘에겐 다리찢기란 그저 부품의 배치일 뿐이다. 고통을 느끼는 건 오직 에이비의 몸뿐. 골렘보다 본신이 아프다는 생소한 경험을 하며 에이비는 비명을 질렀다.
둘째 날.
하루종일 스트레칭 아닌 스트레칭을 한 덕분일까. 전날보다 가동범위가 늘었다. 부작용으로 아침부터 다리를 오므리지 못했지만 그건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어쨌건, 동조율이 비교적 높아 접속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골렘에 접속한 에이비 대위가 처음으로 본 건.
손이 간신히 닿지 않을 위치에 놓인 스피커였다.
빠직. 에이비 대위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셋째 날.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 스트레칭을 반복하면 몸이 유연해지나, 다리를 벌린 채 엎드리기까지 하는 건 하루 이틀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경지가 아니다. 육체는 정직하여 벼락치기를 허용하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계속 갇혀있다간 임무도 실패할뿐더러, ‘창문’ 하나가 완전히 닫히는 건 끔찍한 일이었으니.
그렇게 에이비는 자신을 묶은 그를 떠올리며 복수의 다리찢기를 계속했다.
“잡범…. 이 수모는 잊지 않겠어.”
비록 지금 골렘을 구속한 건 시조였으나, 그에게 쌓인 것과 비교하면 티끌도 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구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이비는 복수를 다짐하며 탄탈로스의 골렘에게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