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9)
EP.9 개 버릇은 남 못 준다
무저갱에는 햇빛이 들지 않는다.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은 가장 깊은 땅, 오직 칠흑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아침을 알리는 건 요란한 자명종 소리뿐이었다. 몸을 간지럽히는 따스한 햇빛 대신 귀를 찢는 날카로운 울림이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푸르고 높은 하늘, 그곳을 떠다니는 조각배 같은 구름, 따스한 햇빛과 상쾌한 바람…. 지상에 있다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
그러나 무저갱에 있는 건 네모의 꿈을 꾸는 각진 건물과 딱딱한 콘크리트, 인공적인 소음과 태양을 흉내낸 조명 뿐.
하늘에서 비롯된 건 마음을 평안하게 하지만, 인간에게서 나온 것들은 하나같이 신경을 긁는 것밖에 없다. 필시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작품은 노폐물이기 때문이리라.
가장 좋은 것은 자기 속에 담은 뒤, 불쾌한 부분만 거르고 걸러내어 내뱉은 노폐물.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도 인공적인 것을 멀리하는 거겠지.
“…망할. 자명종 소리 좀 조용하게 만들 수는 없나.”
나는 뻐근한 어깨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틀 동안 개의 왕에게 혹사당한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가만히 놔두면 저 자명종이 남은 체력마저도 다 갉아먹을 것이다. 저건 몸에 대미지를 입히는 종류의 소음이다.
군국에서 제작한 자명종은 벽걸이 모델로 통일되어있다. 잠에서 깼으면 다시 눕지 말고 몸을 일으키라는 뜻이다.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국가답다. 비척거리며 일어난 나는 의자에 올라가 정해진 순서로 자명종의 톱니바퀴를 돌렸다.
왼쪽 한 칸, 오른쪽 네 칸, 다시 왼쪽으로 두 칸.
찌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자명종이 죽어가는 귀뚜라미처럼 수그러들었다. 그렇다고 머리가 징징 울리는 지금 상황에서 다시 자고 싶지는 않았기에 머리를 쓸어올리며 방안을 거닐었다.
성능 하나는 확실하네, 나쁜 새끼들.
방은 좁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좋게 말하면 효율적인 가구배치이고, 나쁘게 말하면 좁은 공간에 이것저것 다 밀어 넣었다는 뜻이다. 왼손으로 수납장을 잡고 오른손을 뻗으면 건너편 세면대에 닿는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로는 몸을 씻을 수도 있고 마실 수도 있지만 둘 다 하기에는 배급량이 모자라다.
하지만 옆 방이 비어있지. 옆 방에도 일일 물 배급량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옆 방에서 머리를 감을 생각으로 수돗물을 벌컥 들이켰다.
양팔을 벌리면 방을 다 끌어안을 수 있는 좁은 방. 본래 죄수와 노역자만이 살고 있던 탄탈로스는 좁고 열악했다. 그래도 감옥이라고 가벽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건 이 답답한 공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건, 며칠 전 있었던 대규모 탈옥사건 덕분에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벽을 허물어서 옆 방과 합치자.”
살기 좋은 곳이란 어느 곳일까?
답은 간단하다.
자원은 충분하면서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다.
넓은 집이 비싼 이유는, 공간에 비해 인구가 적기 때문.
놀랍게도, 현재의 탄탈로스는… 살기 좋은 세상의 조건을 만족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저 간악한 콘크리트 벽을 허물고, 다섯 개의 방을 합쳐 왕처럼 살 것이다. 일일 물 배급량도 다섯 배. 이 정도면 매일 샤워도 할 수 있을 터.
아니, 굳이 배급량에 목맬 필요는 없지? 물탱크에 직접 가서 목욕이나 해야겠다. 그야말로 황제나 다름없는 삶!
나는 사악하게 웃으면서 방을 나섰다. 자물쇠 없는 방문을 거칠게 닫으며, 앞으로 있을 행복한 요양생활을 설계하고 있을 때였다.
“멍멍!”
그때. 복도 끝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저게 여기 왜.
복도를 달려온 아지는, 신분을 확인하듯 코를 킁킁거리고는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실로 도살견의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저었다.
“아, 안 돼. 아지야. 참아. 진짜 더는, 더 이상은 무리….”
“멍! 나, 배고파!”
아지의 말에, 나는 왠지 모르게 안심해버렸다.
“군국, 미친 녀석들…. 이게 식량 창고라고?”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입에 음식을 털어놓고 배로 소화한 뒤, 얻은 열량을 태워 몸을 움직여야 한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악용하는 군국은 섭리마저도 악용했다.
정신교육대 탄탈로스는 사람을 살려두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죽이기 위한 공간이다.
군국의 능력으로도 죽일 수 없거나, 후폭풍이 두렵거나, 너무 많은 자원을 소모해야 하거나, 정치적인 부담이 큰 이들. 그런 이들을 잔반처리하듯 쓸어내어 버리는 장소가 바로 탄탈로스인 것이다.
그리고 고립된 이들을 죽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역사적으로 책사들이 했던 것과 비슷했다.
“제기랄. 통조림도 몇 개 안 남았네….”
식량이 아예 없지는 않다. 시조 티르칸쟈카처럼 굶주림으로는 죽지 않는 종류의 죄수도 있었고, 식량을 제공하지 않았다가는 그런 종류의 죄수만 오순도순 살아남을 터였으니까. 그건 군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만한 규모의 감옥에 딸랑 한 평짜리 식량창고라고? 이놈들 아주 의도가 훤히 보여요.”
절대 식량을 ‘비축’하지 못하게 하겠다. 그런 의도가 다분했다. 그때그때 떨어지는 보급물자에 의지해야 죄수들 역시 절박하고 불안해질 테니까. 그리고 서로를 사냥하여 자원을 얻으려고 할 테니까.
“아마 식량도 간신히 굶주림만 면할 정도로 줬겠지. 더 먹고 싶다면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이러면서.”
하지만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살기 좋은 장소란, 자원은 있으면서 사람이 적은 곳이라고.
이 커다란 감옥에 비해 식량창고의 규모는 한참 작았지만, 지금은 나를 포함한 네 명만 있는 상태. 심지어 흡혈귀는 밥도 먹지 않는다. 개한테는 개밥을 만들어주면 된다. 실질적으로 나와 회귀자 뿐.
둘이 먹기에는 차고 넘치는 양이다. 심지어 이곳은 무저갱, 벌레나 곰팡이처럼 부지런한 대지모신의 일꾼도 없어서 상할 걱정도 없다.
“쩝. 미안하다, 아지야. 앞으로는 네가 먹을 고기 양 좀 줄여야겠다.”
“머멍?! 왈! 왈!”
짖지 마. 어쩔 수 없잖아. 개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지.
고기 통조림 세 개. 콩 통조림 스물셋. 전분과 밀가루…. 퍽퍽하기는 하지만 어찌저찌 목숨은 이어갈 수 있겠네. 그리고 뭐, 여기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데 보급도 안 주겠어? 그것까지 생각하면 호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을 터다.
“오늘 밤에는 흡혈귀와 만나야 하니, 좀 든든하게 먹어볼까.”
들어온 첫날은 대강 끼니만 떼웠지만, 앞으로 계속 있을 것 같은데 식생활도 잘 챙겨야지. 오랜만에 요리나 해 먹어야겠다. 나는 콩이 든 압축 통조림 하나를 까서 냄비에 덜어냈다.
“아지야. 콩 좋아하니?”
“멍! 좋아! 콩, 좋아!”
“하긴, 네가 싫어하는 게 있겠냐.”
수도꼭지를 열자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화덕 하나만 있는 간이 주방이지만 그래도 수도는 살아있는 모양이다. 압축 통조림 속에 있던 마른 콩에 물을 넣고 불린다. 메마른 콩은 순식간에 부풀어올랐다.
통조림으로 만들 때부터 야채와 함께 조리하여 넣은 물건이다. 적당히 불린 뒤 끓여도 대강 먹을만한 베이크드 빈즈가 나오지만, 단조로운 맛은 쉽게 질리기 마련이다. 이대로 끝내면 아쉽지.
대충 퍼 온 밀가루로 반죽을 만든 뒤 넓게 폈다. 거기서 파이에 쓸 만큼만 떼어내고, 나머지는 하나로 뭉친 뒤 쟁반으로 거꾸로 덮어놓았다.
“멍! 멍! 멍!”
그동안 물을 잔뜩 머금은 콩이 몸을 한껏 부풀렸다. 아지는 신이 나서 냄비 주위를 자꾸 알짱거렸다.
저 조그만 통조림 깡통 안에 있었다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부피였다. 내가 콩을 불린 건지, 아니면 씨앗부터 심어서 콩을 수확한 건지 모를 정도였다.
“멍! 커졌어! 먹을 게 커졌어!”
“그래. 그래. 좋겠다.”
군국이 다른 건 잘 못하는데 군용 식량 같은 건 기가 막히다 이거지. 이 조그마한 통조림에 며칠간 먹을 수 있는 콩을 압축해놓았으니. 역시. 언제나 전쟁에 진심인 나라는 다르다.
향신료는 사치품. 그딴 게 감옥에 있을 리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소금이나 바싹 마른 양배추. 좀 마음에 안 들지만, 양배추가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자. 군국은 쓸데없이 부피만 크고 열량은 적은 채소조차 사치품 항목에 넣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족속이니까.
채소를 씻고 내려놓았다. 그러자 아지가 질색하며 말했다.
“나, 풀 싫어!”
“너 안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좋아. 슬슬 끓이자. 마른 콩이 들어있는 냄비에다가 소금과 야채를 넣고 끓인다. 그동안 반죽을 화덕 옆에 있는 오븐에다가 넣는다. 와중 적당히 끓어오르는 냄비 안에 전분물로 묽기를 맞춘다. 양념이 조금 든 물이 점점 걸쭉해지며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변모한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내가 끓어오르는 냄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파밧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보다 열 배는 인내심이 부족한 아지가 자기 꼬리를 쫓으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털이 날린다. 나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타박했다.
“야. 야. 털 날려. 밖에서 돌아.”
“배고파! 배고파!”
“배가 고파도 니 털을 먹을 수는 없잖냐.”
형태는 인간이라 꼬리와 머리카락 아니면 털 난 곳도 없는데 왜 이리 많이 날리는지. 아지는 내 말을 듣고는 잠깐 멈췄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지루한지 몸이 들썩들썩거린다. 풍기는 냄새를 참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냄비에 얼굴을 박을 것 같다.
“기다려!”
“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
안 되겠구만. 이제 슬슬 나를 잡아먹을 눈빛이다. 나는 급히 국자를 하나 꺼내서 스튜를 휘저었다.
뭉개진 콩의 잔해와 둥둥 뜬 채소가 소용돌이친다. 콩 통조림을 만들면서 섞여 들어간 찌꺼기들이 한 점에 모였다. 나는 국자로 그것들을 한데 모아 퍼올렸다. 잔해와 부유물, 콩 껍질 같은 찌꺼기가 가득한 한 국자의 스튜.
빈 통조림 깡통에 그 한 국자를 담았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차임벨을 꺼냈다.
딸랑딸랑-.
“멍! 멍!”
이제 종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완벽히 파악한 아지는 눈을 번쩍이며 자세를 낮추었다. 아지의 입술이 침으로 번들거리는 게 보인다. 나는 개밥이 든 통조림 깡통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자. 먹어.”
아지는 즉시 땅에 엎드려서는 냠냠거리며 개밥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아지가 밥을 먹는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개는 참 좋은 동물이야. 인간이 먹다 남긴 것을 먹을 수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마저 이어나갔다.
졸아든 국물에서는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혀에 달라붙는 전분은 머금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했다.
좋아. 이제 먹어야지.
먼지 쌓인 테이블을 적당히 닦고 냄비를 올려놓는다. 오븐에서 구운, 아직 빵이 되지 못한 밀가루 반죽 구이도 꺼냈다. 있는 것이라고는 통조림 콩 조림과 밀가루덩이 뿐이지만, 이게 어딘가. 내가 좋으면 그게 수라상이다.
기분이나 내볼까. 나는 식탁에 곧게 앉아서 대지모신께 기도를 올렸다. 하루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옵고, 이 저주 받은 땅에서도 저를 굽어 살피시기를.
자. 먹어볼까.
“멍.”
눈을 떠보니, 웬 개가 나랑 겸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뭔.
“어허. 아지야. 식탁에 앉아서 무슨 일이니?”
“멍! 밥 줘!”
앞발을 내미는 걸 보니, 자기에게도 그릇을 달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까 분명 통조림 깡통을 개밥그릇 삼아 줬을 텐데? 슬쩍 아래를 살피니 그건 벌써 다 처먹었다. 이 후안무치한 강아지는 지 몫을 다 먹고도 인간의 식탁을 넘보고 있었다.
허어. 쓰읍.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아주 그냥 인간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하네. 나는 엄하게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내려가라. 여기는 사람들이 먹는 식탁이야.”
“멍.”
쾅!
앞발이 식탁을 때리자, 철로 된 식탁이 제자리에서 3cm 위로 솟구쳤다. 시야 너머로 익힌 콩이 하늘을 나는 모습이 보인다. 내 그릇과 식기 역시 허공에서 부유한다.
쿠궁, 쿠궁.
떨어지는 냄비와 그릇이 독특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타악기로만 연주하는 교향곡 같다. 그 너머에, 입맛을 다시는 강아지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놓은 통조림 깡통을 들어 올렸다. 어찌나 잘 핥아 먹었는지 바닥이 깨끗해서, 방금 공장에서 만들어 입고했다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이것을 개밥그릇 삼아, 국자에다가 콩 조림 국물을 가득 담아 넣….
“콩.”
콩도 한가득 담아서 넣었다. 그리고는 차임벨을 한 번 짤랑 흔든 뒤, 콩이 잔뜩 담긴 개밥그릇을 아지의 앞으로 스르르 밀었다. 아지는 즉각 깡통에 얼굴을 처박고는 챱챱거렸다.
한참 우물거리던 아지는 고개를 들고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멍! 맛있어! 콩 맛있어!”
“흥. 이번만이다. 다음부터는 없을 줄 알아.”
개란 참 빌어먹을 동물이다. 인간이 먹는 것을 처먹는, 말 그대로 인간에게 빌어먹고 사는 더럽고 멍청한 털뭉치.
빌어먹을 개 같으니. 자기가 사람 머리 꼭대기에 있는 줄 아나 보지.
두고 보자. 개의 왕이라고 해도 본질은 개. 언젠가 꼭, 반드시, 이 모든 고된 시간이 끝나고 내가 결국 너를 조련하면. 그때부터는 아주 개처럼 굴려주마.
만물의 영장이라는 게 무엇인지, 내가 몸소 증명해주지!
콩 맛 평범하네.